<단독> 사제들 ‘의문의 죽음’ 추적

한 교구서만 셋… 30대 신부님이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인천 서구 ‘하늘의 문’ 묘원은 고요했다. 덤프트럭 운전사들이 만든 도로의 거친 소음은 묘원에 들어서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해가 잘 드는 곳에 위치한 성직자 묘역에는 선종한 인천교구 소속 사제들이 잠들어 있다. 눈길을 끈 것은 한날한시 사제 서품을 받은 동기 세 신부의 묘역이었다.

인천교구 하늘의 문 묘원은 도로가에 있다. 묘원 근처로 가는 버스는 배차간격이 21분에 달했다. 그나마도 정류장서 30여분을 걸어야 묘원으로 들어가는 샛길이 나왔다. 통행로라고 난 흙길 양옆의 묘역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흙길 끝에 다다르자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가 나왔다. 그리고 그 너머로 성직자 묘역이 보였다.

성직자 묘역
세 명의 동기

하늘의 문 묘원 관리사무소 관계자에 따르면 인천교구 소속 사제들은 선종(가톨릭서 사용하는 죽음의 표현)하면 모두 이곳에 안장된다. 성직자 묘역은 깨끗했다. 작은 꽃 화분이 묘비 양옆에 놓여 있고 잡초는 말끔하게 관리된 상태였다. 

사제의 이름과 세례명, 삶의 시간, 사제 서품 날짜, 한 구절의 말을 새긴 묘비 역시 잘 닦여 있었다.

두 줄로 나란히 조성된 묘역 중 앞줄에는 상대적으로 최근에 선종한 사제들이 묻혀 있다. 2016년 5월30일 선종한 인천교구 2대 교구장인 최기산 주교의 묘역도 앞줄에 위치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젊은 나이에 선종한 사제들의 묘역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같은 날 사제 서품을 받은 A·B·C신부. 2006년 12월8일 서품을 받은 12명의 동기 가운데 이들 세 명은 성직자 묘역에 잠들었다. 세 신부는 모두 35세를 넘기지 못하고 선종했다. A신부는 2009년 11월 사망 당시 30세, 2010년 1월 사망한 B신부는 31세, 2014년 8월 사망한 C신부는 34세였다. 사제 서품을 받은 지는 3년, 4년, 8년 만이다.

세 신부가 사망하고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이들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의 꼬리표는 여전히 끊어지지 않고 있다. 특히 사망 원인에 대한 의혹은 인천교구 안팎서 조용하지만 파장을 일으키며 번지는 모양새다.

같은 기수서 3명 사망
2명 자살 의혹 불거져

세 신부 가운데 B신부는 선종의 이유가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그는 2010년 1월21일 오전 1시30분 급성 심근염으로 서울성모병원서 선종했다. 심근염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심장 근육에 급성 또는 만성으로 염증 세포가 침윤한 상태를 말한다.

한 사제가 B신부에 대해 남긴 포털사이트 글을 보면 그는 병원 입원 당일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인천교구 내 성당에 다니고 있는 한 신자는 “B신부는 체중이 많이 나갔고 체격도 컸다”고 그를 기억했다.

반면 A신부와 C신부는 사망의 원인이 뚜렷하지 않다. 한국 천주교회 사제 인명록이나 언론보도 등을 통해 두 신부가 각각 2009년 11월2일, 2014년 8월2일 사망했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다. 두 신부의 선종 이유를 두고 숱한 말이 오갔다. 이 과정서 두 신부의 사망이 자살로 인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자살은 금기
그런데 왜?


인천교구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A신부가 교구청 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며 “워낙 충격적이고 민감한 사건이라 드러내놓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암암리에 소문이 퍼진 것으로 안다”고 털어놨다.

A신부는 30여명의 신자들과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다녀오고 채 일주일이 안 돼 선종했다. 블로그에 올라온 A신부에 대한 추모글에 따르면 그는 사망 직전 집에 들러 어머니 곁에서 하룻밤을 잔 것으로 파악된다. 

갑작스럽게 전해진 비보에 신자들은 물론 동기 신부들도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세 신부 가운데 가장 최근에 사망한 C신부 역시 자살 의혹이 있다. 하지만 A신부와 달리 C신부의 경우 의혹을 확인할 수 있는 정보를 일부나마 얻을 수 있었다. C신부의 사건을 조사했던 경찰에 따르면 그는 사망 당일 오전 5시경 인천성모병원 주차장의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C신부의 유가족, 친구, 목격자 등을 조사했다. 경찰이 조사한 C신부의 친구는 그가 사망하기 전 보낸 문자메시지를 받은 사람으로 파악됐다. 

문자메시지에는 “힘들었다, 고맙다, 전화는 마음 약해질까 봐 못했다”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유서는 남겼다”는 구절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이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인천교구 홍보실 관계자는 두 신부의 자살 의혹에 대해 “두 사제에 대해서는 ‘심장마비로 인한 선종’으로 돼있다”며 “자살이라는 말은 없다”고 답했다. 이어 “개인적으로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인천교구 입장에서는 그렇게(심장마비로)까지만 나와 있기 때문에 더 드릴 말씀은 없다”고 덧붙였다.

30년 이상 성당에 다녔다는 한 천주교 신자는 “자살은 천주교서 가장 금기로 여기는 것 중 하나”라며 “더군다나 사제가 그랬다면…”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실제 천주교에서는 자살을 살인에 버금가는 대죄로 여겨왔다. 이 때문에 중세에는 자살자에 대한 장례미사도 하지 못하도록 했다.

자살을 바라보는 천주교의 엄격한 분위기는 현대에 들어서야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자살자 수와 자살률이 급격하게 느는 등 자살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자 이들에 대한 기도가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래서 1983년 개정, 반포된 새 교회법에서는 자살자의 장례미사를 거절하도록 한 원칙을 중지했다.

가족 같은
수품 동기

A·B·C신부가 포함된 해당 기수는 사망한 세 명 외에도 2명은 면직, 1명은 휴양 상태다. 천주교 용어집에 따르면 면직은 ‘사제직을 떠나 더 이상 성무를 집행할 수 없는 상황’을 가리킨다. 

출가자가 다시 속세로 돌아간다는 환속이라는 표현도 있지만 인천교구에서는 면직이라 칭한다. 휴양은 치료 등의 목적으로 사제 본인이 휴식을 신청하거나 교구장의 명령에 따라 쉬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날 서품을 받은 12명 가운데 정상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신부는 6명에 불과한 셈이다. 

한 인천교구 관계자는 이들에 대해 “폭탄 맞은 기수”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다른 기수의 상황과 비교해도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2000년부터 2017년 사이 서품을 받은 사제들 가운데 선종한 사람은 A·B·C신부뿐이다.

12명 중 6명만 사제 활동
교구 “심장마비로 선종”

동기 신부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천주교 관계자는 “수품 동기는 형제를 넘어 가족에 버금가는 정을 나눈다”고 말했다. 지난 2005년 시사프로그램 <KBS 스페셜>은 ‘영원과 하루 150년 만의 공개 가톨릭 신학교’ 편을 통해 신학생들의 생활을 공개했다.

신학생들은 1학년 때부터 공동생활을 하고 공동체 유지를 위해 군대도 2학년을 마치고 일괄적으로 간다. 군 생활을 더해 사제가 되기까지 10여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셈이다. 하루 일과는 수업과 기도, 미사 등으로 꽉 채워져 있다. 외출이 제한되는 것은 물론 휴대폰 사용도 어렵다.


방송에 따르면 신학교 학생 가운데 서품을 받지 않고 중도 탈락하는 비율이 35% 정도다. 신학생 100명 중 35명은 사제의 길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그만큼 사제가 되는 과정은 험난하다. 

한 인천교구 관계자는 “사제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유혹을 떨쳐내는 수준이 아니다. 자기 자신, 그와 관련된 모든 상황을 초월해 하느님을 위해 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A·B·C신부들 역시 그 과정을 겪고 사제가 됐을 것”이라며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A·B·C신부가 소속된 인천교구는 사제 사망과 관련해 독특한 특징을 보인다. 

<가톨릭프레스>에서 분석한 자료를 보면, 인천교구의 경우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사망한 사제의 평균 연령이 40대다. 부산이나 광주 등 다른 교구의 평균이 70대 후반인 것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낮다. 두 번째로 낮은 수원교구(68.3세)와 견줘도 인천교구의 평균이 20년 이상 젊다.

2016년 통계청이 조사한 우리나라 남성 평균 기대수명은 79.3세다. 2009년부터 2015년 사이 사망한 사제들의 평균 연령을 보면 부산, 광주, 대전, 서울, 대구, 수원, 인천교구 모두 그에 못 미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따져도 인천교구에 이르면 그 연령이 확연하게 떨어진다. 다시 말해 인천교구서 그만큼 젊은 사제들이 많이 죽었다는 뜻이다.

개인 사정?
구조 문제?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인천교구 소속 사제들의 사망 평균 연령이 다른 교구에 비해 많이 낮다는 것은 쉽게 볼 일이 아니다”라고 운을 떼었다. 그러면서 “수품 동기 가운데 세 명의 사제, 그것도 30대의 젊은 사제들이 사망한 사실은 단순히 개인의 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며 “인천교구의 구조적인 부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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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한상진 기자 = 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지난달 28일 실행에 옮겼다. 이 같은 결정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란 핵 보유 가능성 차단’ ‘이란 정권교체’ ‘중동지역 미국 영향력 강화’ ‘석유 패권 우위’ 등이다. 아울러 이란 석유의 상당 부분을 수입하는 중국 견제 효과까지 노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이란과 8차례에 걸쳐 핵 협상을 진행했다. 이란 측에서 트럼프정부에 큰 사업적 이익을 제안하기도 하면서 상당한 진전을 봤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이란이 핵 능력에 대한 완전한 포기를 약속하지 않으면서, 미국은 이란 수뇌부 제거 없이는 이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란 공습 이틀 후인 지난 2일(현지시각) 37년간 이란 최고 지도자로 군림해 온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다. 공습 결정 여러 요인 하메네이는 지난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혁명수비대 및 국방 관련 요직을 거치며 권력기반을 다졌다. 이후 국회의원과 이슬람공화당 지도부를 역임했고, 지난 1981년 대통령에 선출돼 두 차례 연임하며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다. 그는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따라 대내적으로 여성, 종교적 소수자를 탄압하며 억압적인 정책을 펼쳤다. 이란 내에서 발생하는 시위에 대해서도 잇달아 강경하게 진압했다. 지난 2009년 강경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반발하는 시위를 비롯해, 지난 2022년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붙잡힌 22세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의문사하며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 등을 강경하게 진압했다. 특히 올해 초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서는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바시즈민병대를 동원해 무차별적 유혈 진압을 밀어붙였다. 이 시위는 이란 핵개발에 따른 서방의 제재가 수년간 이어지며 경제난이 누적됐고, 테헤란 상인들의 항의가 대규모 반정부시위로 번진 것이었다. 이란 당국은 이 사태로 인한 사망자를 3117명으로 집계했지만, 외부에서는 3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메네이의 사망으로 이란 내 정치 지형은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군사행동이 끝난 후 이란인들에게 “여러분의 정부를 장악하라”고 촉구했다. 미국이 직접 나서 정권교체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 초 있었던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의 불길이 다시 붙으면 친미 정권 수립으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하는 분위기다. 트럼프정부는 글로벌 에너지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 이번 공습으로 이란산 원유에 대한 일정한 영향력을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 베네수엘라산 원유처럼 직접 모든 것을 통제하지는 않더라도, 향후 이란의 정치적 주도권을 잡는 세력이 원유 문제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타협할 가능성이 크다. 미·이 전쟁 여파 국내 강타 금융, 산업 등 전방위 요동 이렇게 되면 이미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은,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에 이어 중동지역 원유 생산에도 관여하게 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훨씬 넘어서는 시장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은 우리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우선 증시가 크게 출렁였다. 지난 3일 코스피가 역대 최대 낙폭(452.22포인트)을 기록했고, 상장사 전체 시가총액은 하루 사이 377조원 넘게 줄었다. 주요 코피스 종목도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은 이날 종가 기준 4769조4000억원으로 전 거래일인 지난달 27일 대비 376조9396억원 감소했다. 삼성전자는 시가총액이 전 거래일 대비 약 126조6803억원 감소했다. 주가는 이날 9.88% 급락하며 5거래일 만에 20만원 선을 내줬다. SK하이닉스도 100만원 선이 깨지며, 시총이 86조9497억원(11.50%) 줄었다. 이 밖에 현대차(-11.72%), LG에너지솔루션(-7.96%), 삼성바이오로직스(-5.46%) 등 주요 기업들의 시총 감소분이 상대적으로 컸다. 반면 방산주는 급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주가가 19.83% 오른 143만2000원, 한화시스템은 29.14% 오른 14만6700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LIG넥스원은 11.15% 오른 68만8000원을 기록하며 상한가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투자심리가 악화하며 7.24% 급락한 5791.91에 거래를 마쳤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다.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의 전면전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고,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 전쟁의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로 인해 지난 3일과 4일 이틀 연속 매도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도호가 일시중지)가 발동되기도 했다. 금융권 직격타 코스피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된 건 지난달 6일 이후 한 달 만이다. 지난 4일 오전 9시25분 기준 코스피 지수는 189.43포인트(3.27%) 내린 5602.48에 거래되고 있다. 지수는 199.32포인트(3.44%) 내린 5592.59에 개장했다. 코스닥지수는 35.83포인트(3.15%) 내린 1101.87에 거래 중이다. 지수는 전날보다 25.62포인트(2.25%) 내린 1112.08에 개장했다. 환율 역시 급등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중동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위험 자산 회피 심리로 원·달러 환율이 한때 1500원을 돌파했다. 1500원 돌파는 지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이다. 4일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2.9원 오른 1479.0원에 개장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0시20분쯤 원·달러 환율이 야간 거래에서 심리적 저항선인 1500원을 넘어섰다. 환율은 1506원까지 올랐다가 다시 1500원 밑으로 하락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돼 환율이 급등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산업계도 고환율에 따른 환경 변화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통상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수출 단가 측면에서 이익을 줄 수 있지만, 원자재 수입 가격 상승과 결합할 경우 실질적인 부담이 커지게 된다. 반도체와 조선 업종은 단기 방어가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항공과 철강은 비용 부담이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출 주력 품목인 반도체의 경우 현재 시장의 공급 제약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원가 상승 일정 부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조선의 경우 수주 산업인 만큼 이미 3년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하고 있어, 고환율 영향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수주한 선박을 건조해 선주사에 인도하는 구조라, 이미 3~4년치의 수주 잔고를 확보한 상태다. 따라서 현재 환율 흐름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아울러 조선 업계 특성상 달러로 수주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단기적 관점에서 환율 상승은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동차의 경우 양날의 검이다. 미국 수출 및 매출이 늘어나고 있어 달러 강세가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반면, 자동차 한 대에 수백개 이상의 부품이 들어가는 만큼 원자재 부담이 상존한다. 다른 업종 대비 상대적으로 부담은 덜하지만, 역시 환율 시장의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종 별로 희비 교차 항공의 경우 항공기 리스료, 정비료 등 주요 비용이 달러로 결제되는 만큼 업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3~4월은 항공업계 전통적 비수기다. 개학과 함께 공휴일이 적어 여객 수요가 일시적으로 둔화되기 때문이다. 항공기 이용률이 낮은 상황에서 환율 상승은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아울러 소비자 부담도 확대돼 수요 위축이 나타날 수 있다. 보통 항공사들의 유류할증료는 1개월 시차를 두고 항공권 가격에 반영된다. 다음 달에 항공권을 구매할 경우 인상된 유류할증료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철강업계는 중동 정세 불안으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크게 상승하는 가운데, 고환율 부담까지 겹치며 이중고를 겪고 있다. 철강은 업종 특성상 환율 상승으로 수입 원자재 가격이 올라도 이를 철강 제품 가격에 즉시 반영하기 구조다. 그만큼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 정유업계에는 환율 상승이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이다. 달러 상승에 따라 비용이 증가하지만, 수출할 때에도 높아진 달러가 적용돼 비용 부담이 상쇄된다. 특히 이전에 저렴하게 사들인 원유에 대한 재고 평가이익 인식은 재무적 개선으로 이어진다. 원유 재고 평가이익은 정유사가 보유한 원유(재고) 가치가 시세 변동으로 장부상에 이익으로 올라가 실적에 반영되는 현상을 뜻한다. 유가 상승 시 저가로 산 원유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다. 기름값도 급등세를 보였다. 지난 4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 자료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 기준 서울 지역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전날보다 L당 56.9원 오른 1845.4원으로 집계됐다. 서울 휘발유 평균 가격이 1800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 12월18일(1802.7원) 이후 약 2개월 반 만이다. 주가·환율·유가 변동 산업계 직결 모건스탠리 “수출지향 한국 더 민감” 같은 기간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 역시 L당 61.6원 상승한 1784.6원을 기록했다. 경유 가격 상승 폭은 더 컸다. 서울 지역 경유 평균 판매가는 1811.2원으로 전날보다 103.8원 뛰었다. 전국 평균 경유 가격도 1741.8원으로 하루 만에 1700원을 돌파했다. 싱가포르 석유 제품 시장가에 연동된 국내 주유소 가격은 통상 2∼3주 차이를 두고 국제 유가 변동이 반영된다. 다만 전쟁 확산 우려 등에 따라 주유 수요가 늘고 환율 변수까지 겹치면서 가격 상승 압력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이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한 이후 국제 유가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 2일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시도하는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공식 경고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됐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도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을 틈타 기름값을 과도하게 올리는 주유소들을 제재하기 위해 ‘최고가격 지정’ 작업에 착수했다. 주유소 담합 조사 등 시간이 필요한 조치에 앞서, 즉각적인 가격 통제에 나선 것이다. 또 주유소 담합 적발 시 ‘가격 재결정 명령’을 내리기로 하는 등 유가 잡기 총력전에 나섰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5일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 장관 태스크포스(TF)를 주재하고 ‘중동 사태에 편승한 시장교란 행위 근절 방안’ 등을 논의했다. 구 부총리는 이날 “현재 국내 석유류 수급 상황은 안정적이며 국제 가격의 국내 반영 시차 등을 고려할 때 아직 국내 가격에 실질적 영향을 줄 시점은 결코 아니다”며 “석유류 최고 가격의 지정 등을 포함해 가능한 모든 행정 조치를 활용해 철저히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임시 국무회의에서 석유 판매가격의 최고 가격 지정을 지시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가운데,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수입산 석유·가스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이 전쟁에 따른 경제적 여파가 심각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한국 경제가 중국보다 원유·천연가스 가격 상승에 따른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일(현지시각) 모건스탠리의 아시아 수석 이코노미스트 체탄 아야 등은 전날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전망했다. 보고서는 “아시아 국가들은 제조업 비중이 높고 수출 지향 경제인 만큼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유가 변동에 더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이러다 진짜 대전 터지면… 이어 석유·가스 무역적자 수준을 근거로 한국을 포함해 태국·대만·인도 등이 상대적으로 성장 측면에서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번 전쟁에 따른 아시아의 전체적 여파는 유가 상승 수준과 고유가 지속 기간에 달려있다”면서 “현재까지는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jins.h@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