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사제들 ‘의문의 죽음’ 추적

한 교구서만 셋… 30대 신부님이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인천 서구 ‘하늘의 문’ 묘원은 고요했다. 덤프트럭 운전사들이 만든 도로의 거친 소음은 묘원에 들어서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해가 잘 드는 곳에 위치한 성직자 묘역에는 선종한 인천교구 소속 사제들이 잠들어 있다. 눈길을 끈 것은 한날한시 사제 서품을 받은 동기 세 신부의 묘역이었다.

인천교구 하늘의 문 묘원은 도로가에 있다. 묘원 근처로 가는 버스는 배차간격이 21분에 달했다. 그나마도 정류장서 30여분을 걸어야 묘원으로 들어가는 샛길이 나왔다. 통행로라고 난 흙길 양옆의 묘역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흙길 끝에 다다르자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가 나왔다. 그리고 그 너머로 성직자 묘역이 보였다.

성직자 묘역
세 명의 동기

하늘의 문 묘원 관리사무소 관계자에 따르면 인천교구 소속 사제들은 선종(가톨릭서 사용하는 죽음의 표현)하면 모두 이곳에 안장된다. 성직자 묘역은 깨끗했다. 작은 꽃 화분이 묘비 양옆에 놓여 있고 잡초는 말끔하게 관리된 상태였다. 

사제의 이름과 세례명, 삶의 시간, 사제 서품 날짜, 한 구절의 말을 새긴 묘비 역시 잘 닦여 있었다.

두 줄로 나란히 조성된 묘역 중 앞줄에는 상대적으로 최근에 선종한 사제들이 묻혀 있다. 2016년 5월30일 선종한 인천교구 2대 교구장인 최기산 주교의 묘역도 앞줄에 위치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젊은 나이에 선종한 사제들의 묘역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같은 날 사제 서품을 받은 A·B·C신부. 2006년 12월8일 서품을 받은 12명의 동기 가운데 이들 세 명은 성직자 묘역에 잠들었다. 세 신부는 모두 35세를 넘기지 못하고 선종했다. A신부는 2009년 11월 사망 당시 30세, 2010년 1월 사망한 B신부는 31세, 2014년 8월 사망한 C신부는 34세였다. 사제 서품을 받은 지는 3년, 4년, 8년 만이다.

세 신부가 사망하고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이들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의 꼬리표는 여전히 끊어지지 않고 있다. 특히 사망 원인에 대한 의혹은 인천교구 안팎서 조용하지만 파장을 일으키며 번지는 모양새다.

같은 기수서 3명 사망
2명 자살 의혹 불거져

세 신부 가운데 B신부는 선종의 이유가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그는 2010년 1월21일 오전 1시30분 급성 심근염으로 서울성모병원서 선종했다. 심근염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심장 근육에 급성 또는 만성으로 염증 세포가 침윤한 상태를 말한다.

한 사제가 B신부에 대해 남긴 포털사이트 글을 보면 그는 병원 입원 당일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인천교구 내 성당에 다니고 있는 한 신자는 “B신부는 체중이 많이 나갔고 체격도 컸다”고 그를 기억했다.

반면 A신부와 C신부는 사망의 원인이 뚜렷하지 않다. 한국 천주교회 사제 인명록이나 언론보도 등을 통해 두 신부가 각각 2009년 11월2일, 2014년 8월2일 사망했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다. 두 신부의 선종 이유를 두고 숱한 말이 오갔다. 이 과정서 두 신부의 사망이 자살로 인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자살은 금기
그런데 왜?


인천교구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A신부가 교구청 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며 “워낙 충격적이고 민감한 사건이라 드러내놓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암암리에 소문이 퍼진 것으로 안다”고 털어놨다.

A신부는 30여명의 신자들과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다녀오고 채 일주일이 안 돼 선종했다. 블로그에 올라온 A신부에 대한 추모글에 따르면 그는 사망 직전 집에 들러 어머니 곁에서 하룻밤을 잔 것으로 파악된다. 

갑작스럽게 전해진 비보에 신자들은 물론 동기 신부들도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세 신부 가운데 가장 최근에 사망한 C신부 역시 자살 의혹이 있다. 하지만 A신부와 달리 C신부의 경우 의혹을 확인할 수 있는 정보를 일부나마 얻을 수 있었다. C신부의 사건을 조사했던 경찰에 따르면 그는 사망 당일 오전 5시경 인천성모병원 주차장의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C신부의 유가족, 친구, 목격자 등을 조사했다. 경찰이 조사한 C신부의 친구는 그가 사망하기 전 보낸 문자메시지를 받은 사람으로 파악됐다. 

문자메시지에는 “힘들었다, 고맙다, 전화는 마음 약해질까 봐 못했다”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유서는 남겼다”는 구절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이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인천교구 홍보실 관계자는 두 신부의 자살 의혹에 대해 “두 사제에 대해서는 ‘심장마비로 인한 선종’으로 돼있다”며 “자살이라는 말은 없다”고 답했다. 이어 “개인적으로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인천교구 입장에서는 그렇게(심장마비로)까지만 나와 있기 때문에 더 드릴 말씀은 없다”고 덧붙였다.

30년 이상 성당에 다녔다는 한 천주교 신자는 “자살은 천주교서 가장 금기로 여기는 것 중 하나”라며 “더군다나 사제가 그랬다면…”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실제 천주교에서는 자살을 살인에 버금가는 대죄로 여겨왔다. 이 때문에 중세에는 자살자에 대한 장례미사도 하지 못하도록 했다.

자살을 바라보는 천주교의 엄격한 분위기는 현대에 들어서야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자살자 수와 자살률이 급격하게 느는 등 자살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자 이들에 대한 기도가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래서 1983년 개정, 반포된 새 교회법에서는 자살자의 장례미사를 거절하도록 한 원칙을 중지했다.

가족 같은
수품 동기

A·B·C신부가 포함된 해당 기수는 사망한 세 명 외에도 2명은 면직, 1명은 휴양 상태다. 천주교 용어집에 따르면 면직은 ‘사제직을 떠나 더 이상 성무를 집행할 수 없는 상황’을 가리킨다. 

출가자가 다시 속세로 돌아간다는 환속이라는 표현도 있지만 인천교구에서는 면직이라 칭한다. 휴양은 치료 등의 목적으로 사제 본인이 휴식을 신청하거나 교구장의 명령에 따라 쉬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날 서품을 받은 12명 가운데 정상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신부는 6명에 불과한 셈이다. 

한 인천교구 관계자는 이들에 대해 “폭탄 맞은 기수”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다른 기수의 상황과 비교해도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2000년부터 2017년 사이 서품을 받은 사제들 가운데 선종한 사람은 A·B·C신부뿐이다.

12명 중 6명만 사제 활동
교구 “심장마비로 선종”

동기 신부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천주교 관계자는 “수품 동기는 형제를 넘어 가족에 버금가는 정을 나눈다”고 말했다. 지난 2005년 시사프로그램 <KBS 스페셜>은 ‘영원과 하루 150년 만의 공개 가톨릭 신학교’ 편을 통해 신학생들의 생활을 공개했다.

신학생들은 1학년 때부터 공동생활을 하고 공동체 유지를 위해 군대도 2학년을 마치고 일괄적으로 간다. 군 생활을 더해 사제가 되기까지 10여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셈이다. 하루 일과는 수업과 기도, 미사 등으로 꽉 채워져 있다. 외출이 제한되는 것은 물론 휴대폰 사용도 어렵다.


방송에 따르면 신학교 학생 가운데 서품을 받지 않고 중도 탈락하는 비율이 35% 정도다. 신학생 100명 중 35명은 사제의 길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그만큼 사제가 되는 과정은 험난하다. 

한 인천교구 관계자는 “사제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유혹을 떨쳐내는 수준이 아니다. 자기 자신, 그와 관련된 모든 상황을 초월해 하느님을 위해 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A·B·C신부들 역시 그 과정을 겪고 사제가 됐을 것”이라며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A·B·C신부가 소속된 인천교구는 사제 사망과 관련해 독특한 특징을 보인다. 

<가톨릭프레스>에서 분석한 자료를 보면, 인천교구의 경우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사망한 사제의 평균 연령이 40대다. 부산이나 광주 등 다른 교구의 평균이 70대 후반인 것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낮다. 두 번째로 낮은 수원교구(68.3세)와 견줘도 인천교구의 평균이 20년 이상 젊다.

2016년 통계청이 조사한 우리나라 남성 평균 기대수명은 79.3세다. 2009년부터 2015년 사이 사망한 사제들의 평균 연령을 보면 부산, 광주, 대전, 서울, 대구, 수원, 인천교구 모두 그에 못 미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따져도 인천교구에 이르면 그 연령이 확연하게 떨어진다. 다시 말해 인천교구서 그만큼 젊은 사제들이 많이 죽었다는 뜻이다.

개인 사정?
구조 문제?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인천교구 소속 사제들의 사망 평균 연령이 다른 교구에 비해 많이 낮다는 것은 쉽게 볼 일이 아니다”라고 운을 떼었다. 그러면서 “수품 동기 가운데 세 명의 사제, 그것도 30대의 젊은 사제들이 사망한 사실은 단순히 개인의 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며 “인천교구의 구조적인 부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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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칫상 오를 그 밥에 그 나물

잔칫상 오를 그 밥에 그 나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압도적인 기세를 앞세워 쟁점 법안들을 한순간에 처리하려고 한다. 수많은 위험과 과제를 풀어야 하는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엔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주요 후보 4명이 출마할 예정이다. 약점도 4인 4색이다.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다음 달 19일 충북 청주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국민의힘 김용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임기 만료로 물러난 이후 주목받았던 유력 당권주자는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한동훈 전 대표 ▲안철수 의원 ▲나경원 의원 등 4명이다. 이어 친한(친 한동훈)계 좌장으로 알려진 6선 조경태 의원과 장성민 경기 안산갑 당협위원장도 출마를 선언했다. 돌고 돌아 4파전 예고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에겐 매우 어려운 숙제들이 수북하게 쌓여 기다리고 있다. 이재명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새 정부 출범 직후의 기세와 압도적인 의석수를 토대로 ▲노란봉투법 ▲방송 3법 ▲농업 4법 ▲상법 추가 개정안 등 쟁점 법안을 이달 임시국회에서 서둘러 처리할 예정이다. 아울러 지난달 11일엔 검찰을 완전히 폐지한 후 기존 권한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옮기는 법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의 의석수는 107석에 불과해서 실질적으로 해당 법안을 막을 힘이 없다. 또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민주당 당 대표 유력 후보 중 1명인 박찬대 전 원내대표는 지난 8일 국민의힘을 겨냥해 “내란범을 배출한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을 끊는다”는 내용이 담긴 법안을 발의했다. 이를 놓고, 박 전 원내대표는 “아직도 반성 없이 내란을 옹호하는 정당에 국민 혈세가 투입돼 내란을 옹호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내란 종식에 역행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정당해산심판 청구 및 인용 가능성을 피부로 느끼도록 위협하면서 자금줄을 끊는 조치라고 해석할 수 있다. 김건희 특검팀은 같은 날 지난 2022년 재보궐선거 공천 개입 의혹을 받는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의 자택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특검팀은 지난 7일엔 서울~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을 받는 국민의힘 김선교 의원의 출국을 금지했다. 특검의 수사 상황에 따라 ‘줄초상’이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이 승부수로 제시했다가 좌초된 5대 개혁안에 담긴 국민의힘의 체질 개선 문제도 새 당 대표의 골머리를 썩일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힘 친윤(친 윤석열)계는 5대 개혁안을 좌초시키면서 친윤계 일원인 송언석 의원을 원내대표로 당선시키는 등 여전한 힘을 드러냈다. 5대 개혁안 중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 당론 무효화 추진 ▲대선후보 강제 교체 시도에 대한 당무감사는 국민의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안건이었다. 신임 당 대표가 이를 완전히 무시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숙제는 내년 6월 진행될 지방선거다. 국민의힘이 승리할 가능성은 벌써 낮게 진단되고 있다. 실제로 패배하면, 다음 달 선출되는 당 대표는 이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쓰고 사퇴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많은 숙제와 뻔한 죽음이 예상되는 ‘독이 든 성배’라고 할 수 있다.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4명은 대권주자급 위상을 가진 정치인들로 이들 모두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다. 앞으로 국민의힘은 어려운 숙제를 잔뜩 안고,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새 정부와 거대 여당을 상대해야 한다. 그래서 대권주자급 위상을 가진 대표가 절실히 필요하다. 전대 다가오는데 또 같은 얼굴들 대표 유력 주자 약점 들춰보니… 하지만 후보 4명은 각자 결함과 한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새 지도부가 구성됐다고 해서 저 많은 과제가 술술 풀릴 가능성은 매우 작다. 국민의힘 대선후보였던 김 전 장관은 지난 4일 서울희망포럼 강연에서 “이재명 대통령에 맞서 내가 싸우겠다”며 “국민이나 당이 위축될 때 침묵하지 않고 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사실상의 당 대표 출마 선언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전 장관은 대선후보의 당무우선권을 매개로 김 전 비대위원장을 지명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이 시도했던 대선후보 강제 교체 시도에 대한 당무감사는 김 전 장관의 이해관계와 직결되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이를 회의적으로 생각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 전 장관의 측근인 국민의힘 김재원 전 대선후보 비서실장은 지난달 13일 YTN <뉴스파이팅>에 출연해 “국민의힘은 이재명정부의 국정 전횡을 전혀 제어하지 못하는 등 야당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며 “당무감사가 지금 당장 시급한 일인지 회의적”이란 견해를 밝혔다. 김 전 장관이 몰두하는 것은 ‘빅텐트’다. 김 전 장관이 사실상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면서 제시한 비전은 ▲권력의 잘못에 맞설 수 있도록 107명이 제대로 뭉친 국민의힘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이낙연 전 총리·바른미래당 손학규 전 대표 등과의 빅텐트 및 연대였다. 하지만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의 주요 과제 중 하나는 당 체질 개선이란 측면에서 김 전 장관의 ‘빅텐트’에 대한 집착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선이 나오고 있다. 김 전 장관은 대선후보 시절에도 빅텐트를 거론했다. 김 전 장관은 이 전 총리의 지지 선언은 이끌었지만,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는 끝내 성사시키지 못했다. 한덕수 전 총리와의 단일화도 스스로 제안했다가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후 태도를 바꿔 대선후보 강제 교체 시도의 불씨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김 전 후보와 친윤계의 갈등이 적나라하게 공개됐다. 대선에서 41%를 득표하는 등 비교적 선전했지만, 이 ‘비교적 선전’은 국민의힘의 처참한 상황에 비해 선전했다는 것일 뿐, 진짜로 선전했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여전히 빅텐트에 집착하고 있다. 빅텐트 정당은 다양한 세력을 묶고 그 이해관계를 조율할 수 있는 지도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대선후보 시절 당내 화합조차 제대로 끌어내지 못했다. 국민의힘의 전신 새누리당을 탈당해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자유통일당을 창당했단 치명적인 약점도 있다. 다시 빅텐트 김문수 집착 심지어 김 전 장관이 대선후보 시절 구상했던 빅 텐트엔 전 목사 등 광장 세력도 포함됐다. 이처럼 상황 판단을 정확히 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관악산에서 열심히 턱걸이를 해도 고령에 따른 판단력 문제가 따라다닐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김 전 장관이 윤석열정부 당시 경제사회노동위원장과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연이어 발탁됐던 이유로는 “고령의 보수 정치인에 대한 예우”란 평가가 계속 나왔다. 이 평가엔 “정치적 영향력과 지도력이 사실상 사라졌기 때문에 부담 없이 발탁했다”는 의미가 있다. 대선후보 교체 시도 당시 당사 후보실을 점거하는 등 젊은 시절 노동운동을 연상시키는 과감한 선택은 일부 돋보였다. 하지만 과감한 정치적 선택도 정확한 판단력과 맞물려야 그 빛을 발한다. 대권·당권주자가 없단 약점이 있는 친윤계가 그나마 지향점이 비슷한 김 전 장관을 당 대표로 옹립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중도를 공략해 다시 정권을 되찾으려면 당 체질은 필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따라서 김 전 장관이 빅텐트에 집착하는 옛 관성을 버리지 못하면, 여당과 제대로 맞설 제1야당 대표가 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남는다. 한동훈 전 대표에 대해선 “어려운 상황에서 정면 승부하는 결기가 부족하다”는 일부의 평가가 있다. 한 전 대표는 중요한 정치적 고비마다 편한 길을 가려는 경향을 보였다. 지난해 22대 총선에서 민주당 이재명 당시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당시 대표를 심판 대상으로 규정한 ‘이조 심판론’이란 구호를 내걸었다가 ‘108석 당선’이란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여당 대표가 야당 대표들에 대한 심판을 총선에서 승리해야 할 이유로 제시한 것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전 대표가 정치 인생에서 제일 빛났던 순간은 지난해 12월3일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였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반대하면서 “국민과 함께 이를 막겠다”고 천명했다. 이어 친한계 의원들을 국회로 소집한 후 민주당과 협조해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등 원로 인사들은 한 전 대표를 극찬했다. 조 대표는 지난 2월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여당 대표가 계엄을 좌절시키긴 어렵다”며 “보통 이런 걸 ‘별의 순간’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친윤계와 합의해 지난해 12월7일 진행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1차 표결 불참을 결정했다. 이어 다음날엔 한 전 총리와 함께 “총리와 여당 대표의 당정 협의를 강화해 국정 공백을 메운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헌법재판소가 한 전 총리 탄핵 심판 결정에서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각계각층에선 한 전 대표를 일컬어 “권력 찬탈을 시도한 것 아니냐”는 취지로 격렬하게 비판했다. 한동훈 급부상 당시 한 전 대표는 ▲조속한 직무 정지 ▲탄핵소추 표결 불참 ▲탄핵 찬성 등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의견을 계속 바꿨다. 그러다가 탄핵소추가 가결된 직후 친윤계의 반발과 최고위원 전원 사퇴 등이 이어지면서 당 대표직에서 쫓겨나듯 물러났다. 이후 한 전 대표는 대선후보 경선 패배 후 대선 유세에 참여했고, 친한계를 움직여 대선후보 강제 교체 반대에 참여하는 등 일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친윤계와의 뿌리 깊은 갈등은 여전하고, 당 대표 출마에 대한 의견을 뚜렷하게 밝히지 않는 등 ‘결기 부족’이란 일각의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나경원 의원은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3일까지 김민석 총리 지명 철회 등을 요구하면서 국회 로텐더홀에서 농성을 진행했다. 하지만 안 하느니만 못한 농성이 되고 말았다. 나 의원은 냉방이 잘 되는 국회 로텐더홀에서 비교적 가격이 비싼 김밥과 유명 메이커 커피를 곁들이고 탁상용 선풍기까지 갖췄다. 이런 상황을 알린 사람은 이 모든 것을 촬영해 스스로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나 의원 자신이었다. 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지난달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캠핑이나 바캉스 같다”고 비웃었다. 지난 2018년 5월 드루킹 특검을 요구하면서 단식 농성을 했던 자유한국당 김성태 전 원내대표도 지난 1일 MBC <뉴스외전>에서 “로텐더홀에서 출판기념회 하듯이 농성한다”고 비판했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도 “피서 농성”이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나 의원은 “주말엔 로텐더홀에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달 30일 YTN <신율의 뉴스 정면승부>에 출연해 “나 의원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는 것”이라며 “국민의힘 지지자들에게 자신의 인상을 남기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지층에게 인상을 남길 수 있을지는 의문이 남는다. 정작 농성의 대상인 김 총리는 같은 날 나 의원을 방문해 “식사는 했느냐”면서 “단식은 하지 말라”고 비웃었다. 김 총리의 기세는 하나도 꺾이지 않았고, 민주당은 지난 3일 김 총리 임명동의안을 가결했다. 대선 경선 그대로 옮겨지나 수많은 난제…독이 든 성배? 그러자 나 의원은 다음날 농성을 해제했다. 나 의원이 6일 동안 진행한 농성은 나 의원이 당 대표에 당선된 후 진행될 대정부 투쟁의 회의적 가능성을 드러냈을 뿐이다. 당 대표 당선 가능성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지 의문이 커진다. 안철수 의원은 지난 7일 오전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에 임명된 후 겨우 8분 만에 사퇴했다. 안 의원은 지난 2일 혁신위원장 내정 당시엔 “국민의힘은 악성 종양이 뼈와 골수까지 전이된 말기 환자”라면서 “메스를 들어 보수 정치를 오염시킨 고름과 종기를 적출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안 의원은 송 비대위원장에게 “대선후보 강제 교체 시도와 관련해 권영세 전 비대위원장과 권성동 전 원내대표에 대한 인적 청산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건의를 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중도·수도권·청년 중심으로 혁신위를 구성하려던 안 의원의 구상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 의원은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국민의힘 혁신 당 대표가 되기 위해 도전할 것”이라며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했다. 안 의원은 혁신위원장 내정 이전부터 당 대표 출마 가능성이 크게 점쳐졌다. 따라서 혁신위원장 내정 당시엔 “친윤계와 손을 잡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이어 일찌감치 “친윤계가 이전처럼 혁신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텐데, 왜 혁신위원장 자리를 받아들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함께 돌아다녔다. 안 의원은 “‘쌍권(권영세·권성동)’ 숙청을 혁신안으로 제시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사실을 직접 공개했다. 따라서 “혁신하는 당 대표가 될 수 있다”는 명분은 챙겼다. 하지만 여전히 안 의원은 국민의힘에서 나 홀로 버티고 있다. 친윤계와의 연대설이 돌아다녔던 이유도 안 의원에게 세가 없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안 의원도 김 전 장관처럼 친윤계와 치명적으로 갈등한 이력이 생겼다. 김 전 장관과 달리 타협할 수 있는 지점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명분은 얻었을지 몰라도, 실리는 스스로 걷어찬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당 대표로 당선되더라도, 메스를 들어 고름과 종기를 적출할 수 있을지 큰 의문이 남는다. 현역 의원 20명 안팎 계보를 거느린 한 전 대표도 친윤계를 이겨내지 못하고 당 대표직에서 사퇴했기 때문이다. 조 의원과 장 당협위원장의 출마 선언은 주요 후보 4명에 비하면 비중 있게 취급되진 않는다. 다만 조 의원에 대해선 “한 전 대표가 불출마하고, 좌장인 조 의원이 대신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수장과 좌장이 동시에 출마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많은 숙제 뻔한 결말? 여러 폭탄을 끌어안고 죽을 가능성이 더 큰 당 대표가 될 것이기 때문에, 불필요한 출혈은 피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정부와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제대로 혁신하지 못하는 틈을 타 압도적인 기세를 타고 쟁점 법안들을 연이어 처리하려고 한다. 그런 가운데 독이 든 성배 취급을 받는 국민의힘 대표 자리에 앉게 될 사람은 누구일까? 자중지란을 거듭하는 국민의힘 내부의 먹구름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