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사제들 ‘의문의 죽음’ 추적

한 교구서만 셋… 30대 신부님이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인천 서구 ‘하늘의 문’ 묘원은 고요했다. 덤프트럭 운전사들이 만든 도로의 거친 소음은 묘원에 들어서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해가 잘 드는 곳에 위치한 성직자 묘역에는 선종한 인천교구 소속 사제들이 잠들어 있다. 눈길을 끈 것은 한날한시 사제 서품을 받은 동기 세 신부의 묘역이었다.

인천교구 하늘의 문 묘원은 도로가에 있다. 묘원 근처로 가는 버스는 배차간격이 21분에 달했다. 그나마도 정류장서 30여분을 걸어야 묘원으로 들어가는 샛길이 나왔다. 통행로라고 난 흙길 양옆의 묘역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흙길 끝에 다다르자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가 나왔다. 그리고 그 너머로 성직자 묘역이 보였다.

성직자 묘역
세 명의 동기

하늘의 문 묘원 관리사무소 관계자에 따르면 인천교구 소속 사제들은 선종(가톨릭서 사용하는 죽음의 표현)하면 모두 이곳에 안장된다. 성직자 묘역은 깨끗했다. 작은 꽃 화분이 묘비 양옆에 놓여 있고 잡초는 말끔하게 관리된 상태였다. 

사제의 이름과 세례명, 삶의 시간, 사제 서품 날짜, 한 구절의 말을 새긴 묘비 역시 잘 닦여 있었다.

두 줄로 나란히 조성된 묘역 중 앞줄에는 상대적으로 최근에 선종한 사제들이 묻혀 있다. 2016년 5월30일 선종한 인천교구 2대 교구장인 최기산 주교의 묘역도 앞줄에 위치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젊은 나이에 선종한 사제들의 묘역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같은 날 사제 서품을 받은 A·B·C신부. 2006년 12월8일 서품을 받은 12명의 동기 가운데 이들 세 명은 성직자 묘역에 잠들었다. 세 신부는 모두 35세를 넘기지 못하고 선종했다. A신부는 2009년 11월 사망 당시 30세, 2010년 1월 사망한 B신부는 31세, 2014년 8월 사망한 C신부는 34세였다. 사제 서품을 받은 지는 3년, 4년, 8년 만이다.

세 신부가 사망하고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이들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의 꼬리표는 여전히 끊어지지 않고 있다. 특히 사망 원인에 대한 의혹은 인천교구 안팎서 조용하지만 파장을 일으키며 번지는 모양새다.

같은 기수서 3명 사망
2명 자살 의혹 불거져

세 신부 가운데 B신부는 선종의 이유가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그는 2010년 1월21일 오전 1시30분 급성 심근염으로 서울성모병원서 선종했다. 심근염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심장 근육에 급성 또는 만성으로 염증 세포가 침윤한 상태를 말한다.

한 사제가 B신부에 대해 남긴 포털사이트 글을 보면 그는 병원 입원 당일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인천교구 내 성당에 다니고 있는 한 신자는 “B신부는 체중이 많이 나갔고 체격도 컸다”고 그를 기억했다.

반면 A신부와 C신부는 사망의 원인이 뚜렷하지 않다. 한국 천주교회 사제 인명록이나 언론보도 등을 통해 두 신부가 각각 2009년 11월2일, 2014년 8월2일 사망했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다. 두 신부의 선종 이유를 두고 숱한 말이 오갔다. 이 과정서 두 신부의 사망이 자살로 인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자살은 금기
그런데 왜?

인천교구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A신부가 교구청 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며 “워낙 충격적이고 민감한 사건이라 드러내놓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암암리에 소문이 퍼진 것으로 안다”고 털어놨다.

A신부는 30여명의 신자들과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다녀오고 채 일주일이 안 돼 선종했다. 블로그에 올라온 A신부에 대한 추모글에 따르면 그는 사망 직전 집에 들러 어머니 곁에서 하룻밤을 잔 것으로 파악된다. 

갑작스럽게 전해진 비보에 신자들은 물론 동기 신부들도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세 신부 가운데 가장 최근에 사망한 C신부 역시 자살 의혹이 있다. 하지만 A신부와 달리 C신부의 경우 의혹을 확인할 수 있는 정보를 일부나마 얻을 수 있었다. C신부의 사건을 조사했던 경찰에 따르면 그는 사망 당일 오전 5시경 인천성모병원 주차장의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C신부의 유가족, 친구, 목격자 등을 조사했다. 경찰이 조사한 C신부의 친구는 그가 사망하기 전 보낸 문자메시지를 받은 사람으로 파악됐다. 

문자메시지에는 “힘들었다, 고맙다, 전화는 마음 약해질까 봐 못했다”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유서는 남겼다”는 구절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이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인천교구 홍보실 관계자는 두 신부의 자살 의혹에 대해 “두 사제에 대해서는 ‘심장마비로 인한 선종’으로 돼있다”며 “자살이라는 말은 없다”고 답했다. 이어 “개인적으로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인천교구 입장에서는 그렇게(심장마비로)까지만 나와 있기 때문에 더 드릴 말씀은 없다”고 덧붙였다.

30년 이상 성당에 다녔다는 한 천주교 신자는 “자살은 천주교서 가장 금기로 여기는 것 중 하나”라며 “더군다나 사제가 그랬다면…”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실제 천주교에서는 자살을 살인에 버금가는 대죄로 여겨왔다. 이 때문에 중세에는 자살자에 대한 장례미사도 하지 못하도록 했다.

자살을 바라보는 천주교의 엄격한 분위기는 현대에 들어서야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자살자 수와 자살률이 급격하게 느는 등 자살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자 이들에 대한 기도가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래서 1983년 개정, 반포된 새 교회법에서는 자살자의 장례미사를 거절하도록 한 원칙을 중지했다.

가족 같은
수품 동기

A·B·C신부가 포함된 해당 기수는 사망한 세 명 외에도 2명은 면직, 1명은 휴양 상태다. 천주교 용어집에 따르면 면직은 ‘사제직을 떠나 더 이상 성무를 집행할 수 없는 상황’을 가리킨다. 

출가자가 다시 속세로 돌아간다는 환속이라는 표현도 있지만 인천교구에서는 면직이라 칭한다. 휴양은 치료 등의 목적으로 사제 본인이 휴식을 신청하거나 교구장의 명령에 따라 쉬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날 서품을 받은 12명 가운데 정상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신부는 6명에 불과한 셈이다. 

한 인천교구 관계자는 이들에 대해 “폭탄 맞은 기수”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다른 기수의 상황과 비교해도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2000년부터 2017년 사이 서품을 받은 사제들 가운데 선종한 사람은 A·B·C신부뿐이다.

12명 중 6명만 사제 활동
교구 “심장마비로 선종”

동기 신부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천주교 관계자는 “수품 동기는 형제를 넘어 가족에 버금가는 정을 나눈다”고 말했다. 지난 2005년 시사프로그램 <KBS 스페셜>은 ‘영원과 하루 150년 만의 공개 가톨릭 신학교’ 편을 통해 신학생들의 생활을 공개했다.

신학생들은 1학년 때부터 공동생활을 하고 공동체 유지를 위해 군대도 2학년을 마치고 일괄적으로 간다. 군 생활을 더해 사제가 되기까지 10여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셈이다. 하루 일과는 수업과 기도, 미사 등으로 꽉 채워져 있다. 외출이 제한되는 것은 물론 휴대폰 사용도 어렵다.

방송에 따르면 신학교 학생 가운데 서품을 받지 않고 중도 탈락하는 비율이 35% 정도다. 신학생 100명 중 35명은 사제의 길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그만큼 사제가 되는 과정은 험난하다. 

한 인천교구 관계자는 “사제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유혹을 떨쳐내는 수준이 아니다. 자기 자신, 그와 관련된 모든 상황을 초월해 하느님을 위해 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A·B·C신부들 역시 그 과정을 겪고 사제가 됐을 것”이라며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A·B·C신부가 소속된 인천교구는 사제 사망과 관련해 독특한 특징을 보인다. 

<가톨릭프레스>에서 분석한 자료를 보면, 인천교구의 경우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사망한 사제의 평균 연령이 40대다. 부산이나 광주 등 다른 교구의 평균이 70대 후반인 것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낮다. 두 번째로 낮은 수원교구(68.3세)와 견줘도 인천교구의 평균이 20년 이상 젊다.

2016년 통계청이 조사한 우리나라 남성 평균 기대수명은 79.3세다. 2009년부터 2015년 사이 사망한 사제들의 평균 연령을 보면 부산, 광주, 대전, 서울, 대구, 수원, 인천교구 모두 그에 못 미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따져도 인천교구에 이르면 그 연령이 확연하게 떨어진다. 다시 말해 인천교구서 그만큼 젊은 사제들이 많이 죽었다는 뜻이다.

개인 사정?
구조 문제?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인천교구 소속 사제들의 사망 평균 연령이 다른 교구에 비해 많이 낮다는 것은 쉽게 볼 일이 아니다”라고 운을 떼었다. 그러면서 “수품 동기 가운데 세 명의 사제, 그것도 30대의 젊은 사제들이 사망한 사실은 단순히 개인의 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며 “인천교구의 구조적인 부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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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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