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적폐’ 정부보조금 비리 복마전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6.14 11:37:44
  • 호수 11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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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1조’ 먼저 쓰면 임자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공적자금 부정수급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정부가 매년 기술개발사업(R&D)에  수조원의 예산을 쏟아 붓고 있다. 눈먼 돈이다. 대학 교수나 민간 기업 연구책임자들이 정부 연구비를 유용하다 적발된 사례는 상당히 흔하게 나타난다. 학계와 사정기관에서는 연구비 유용이 이번 정부서 청산돼야 할 생활적폐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지난달 13일 ‘권력형 적폐청산’을 넘어 ‘생활 적폐청산’으로 그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조 수석은 “앞으로 권력 전횡분야에 더해 채용비리·학사비리, 토착비리, 공적자금 부정수급, 재개발·재건축 비리, 경제적 약자 상대 불공정·갑질행위 등 민생과 직결된 영역서 벌어지는 생활적폐 청산에도 주력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권력형서 
생활로 확대

학계에선 ‘공적자금 부정수급’에 방점을 찍었다. 서울 K대학의 연구원으로 지냈던 P씨는 “공적자금 중 가장 많이 편성된 게 기술개발사업 연구비”라며 “연구책임자인 교수들이 정부서 받은 연구비를 ‘쌈짓돈’으로 쓰고 있다”고 주장했다. 

수년간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으며 기술개발 과제를 수행했던 I사의 연구원 L씨도 “연구원들에게 지급되는 연구수당을 회사에 다시 반납했다”며 “이 돈이 회사 자금으로 쓰인 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국가연구개발사업과 관련된 연구부정행위 등으로 제재조치를 받은 건수가 최근 5년간 총 수천여건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10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최명길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를 인용해 이같이 주장했다. 

자료에 따르면, 국가 연구개발사업 관련 연구 부정 행위 등으로 제재조치를 받은 건수는 최근 5년간 총 8623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연평균 1700건을 웃도는 규모다.

현행 과학기술기본법에 따르면 중앙행정기관은 소관 국가R&D 사업에 참여한 기관, 단체, 기업, 연구책임자 또는 임직원에 대해 연구부정, 용도 외 사용 등 문제가 발생한 경우 향후 국가R&D 사업 신청 및 참여를 제한해야 하고 기 출연 또는 보조한 사업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환수해야 한다. 

느슨한 정부의 R&D 관리·감독
기술개발사업 연구비 부정수급

아울러 연구비를 용도 외로 사용했을 경우 사업비 환수는 물론 징벌적 과징금 성격의 제재부가금을 사용 금액의 5배 이내 범위서 부과할 수 있다. 이 같은 연구부정 행위 등에 따른 제재는 평가단의 심의를 거쳐 부득이한 사유가 인정될 경우 면제하고 있다. 실제 제재가 확정된 사안은 상당한 고의성이 인정된 경우다.

실제로 참여제한 제재조치를 사유별로 보면 기술료 미납이 3932건, 연구결과 불량 1709건, 지식재산권 개인명의 출원·등록이 1683건, 연구개발비 용도 외 사용이 1066건 순으로 많았다.  

기술료 미납은 연구과제 참여 기업이 연구개발결과를 활용하는 사업을 제때하지 않거나 기술료를 납부하지 않는 경우 등이다. 또 용도 외 사용은 연구개발비를 횡령, 편취, 유용 또는 참여연구원의 인건비를 연구책임자나 연구기관이 가로챈 경우다. 


이 외 장비나 재료 비용을 과다계상해 집행하거나 연구개발비를 타 용도로 전용한 경우, 시설·장비 등을 임의 처분한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 중 사업비 환수 조치가 결정된 건수는 총 885건이며, 환수 대상 금액은 1976억원이다. 그러나 환수된 금액은 966억원에 불과해 환수율이 5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잇단 횡령·유용
회사 대표도 꿀꺽

사업비 환수 조치서 연구개발비 용도 외 사용에 따른 사업비 환수 조치는 447건으로 타 사유로 인한 사업비 환수 조치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다음으로는 연구결과불량에 따른 사업비 환수 조치가 244건, 지식재산권 개인 명의 출원·등록으로 인한 사업비 환수도 112건이나 됐다. 

연구비 부정사용 사례는 항목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하다. 지난해 한국연구재단의 ‘인건비 등 연구비 관리 부정’ 감사결과처분요구서를 보면 교수들의 연구비 횡령 백태를 알 수 있다. 

A교수는 2013년부터 실험실서 지도 받고 있는 학생들을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과제에 참여시키고, 학생들에게 지급된 인건비 중 일부를 학생 1인의 명의로 된 통장에 계좌이체 또는 현금 입금 방식으로 회수했다. 이 같은 방법으로 편취한 인건비 3억4145만원을 개인 기부금 납부, 대응자금 대납을 포함해 용도가 불분명한 곳에 사용했다.  
 

교수는 2010∼2016년까지 석·박사 대학원생의 통장 등을 회수해 인건비 등 5억1172만원을 부정적으로 편취했다. 이것도 부족했는지 B교수는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지도학생에게 허위진술 강요, 학위논문 심사거부 등의 비상식적 행태를 보였다.  

지난해 한국연구재단은 관행적·고질적 연구비 비리가 성실한 연구자를 매도하고 재단과 국가 R&D 전체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고 판단해 2016년 연구비 비리 감사를 강화한 바 있다. 

한국연구재단은 2016년 5월 이후 13회의 특정감사를 실시해 연구비를 횡령한 6명의 연구자에 대해 재단 설립(2009년) 이후 최초로 형사고발했고 지원금 환수, 국가연구 개발사업 참여제한 조치를 취했다. 이어 지난해 검찰은 이들 교수에 대한 압수수색과 수사를 벌인 바 있다. 

민간 기업서도 연구비 횡령이 만연하고 있다. 2016년 11월 대구 동부경찰서는 태양광 관련 연구 명목으로 받은 국가지원금을 다른 용도로 유용한 혐의로 A사 대표 이모씨와 연구소장 김모씨를 구속하고 관리팀장 김모씨 등 직원 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씨 등은 2012년부터 2년 동안 태양광 관련 연구비 명목으로 받은 국가지원비 중 8억2000만원을 본사의 자재 구입비와 직원 인건비로 빼돌려 사용했다. 울산에 본사를 둔 A사는 경북 영천에 연구소를 설립한 뒤 2012년 당시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부)서 ‘광역경제권 선도산업 육성사업’ 대구경북경제권역 ‘그린에너지-태양광’ 분야의 연구사업기업으로 선정돼 3년간 국비 42억원을 받았다.

그러나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자 대표 이씨와 연구소장 김씨 등은 직원들과 공모해 연구소와 업무 연관성이 없는 직원들을 연구소 직원으로 올려놓고 1억1000만원가량의 급여를 지급했다. 


또 플랜트제조 전문기업인 A사의 본사에 원자재 구입 등에 7억1000만원을 사용한 뒤 연구소 연구자재를 들여온 것처럼 서류를 꾸며 돈을 타낸 것으로 밝혀졌다.

기업과 대학 교수들이 함께 연구비를 횡령한 사례도 있다. 실험 결과를 조작해 수십억원의 정부 연구비를 받아낸 환경전문기업 대표와 교수가 올해 1심서 실형 선고와 함께 법정 구속됐다.

서울북부지법 형사합의11부는 지난 2월5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환경전문기업 E사 대표 김모씨에게 징역 4년, 사립대 박모 교수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같은 혐의로 함께 기소된 E사 상무 강모씨 등 3명도 징역 1년6개월서 3년 사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2012∼2013년 환경부가 인도네시아서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으로 추진한 고효율 폐수처리시설 지원사업에서 실험 결과를 조작해 정부 출연 연구비 17억원을 받아내고 연구비 일부를 횡령한 혐의로 기소됐다.

실험 조작해
지원비 빼돌려


이 사업은 기름야자 열매서 팜유를 추출할 때 나오는 폐수서 유기물을 최대 99% 제거해 퇴비로 처리하는 프로젝트였다. E사는 2010년 해당 분야 권위자인 박 교수와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나 제거 효율이 93%에 그쳤다. 기존 기술로도 90∼95%의 유기물 제거가 가능했다. 

이에 이들은 오염도가 낮은 폐수로 실험하거나 폐수처리 효율이 높게 나온 자료만 취합하는 등의 수법으로 99% 효율을 달성한 것처럼 환경부에 보고해 지원금을 받았다. 대부분 지원금을 다시 투자했지만 결국 목표 효율을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 
 

E사는 2011∼2012년 다른 연구개발 과제서 받은 정부 지원금 1억7000만원을 횡령한 혐의도 확인됐다.

그렇다면 왜 연구비 오남용 또는 부정사용 사례가 발생하게 되는 걸까. 학계에선 그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제도를 잘 몰라서 발생하는 경우이고, 둘째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연구비를 부정 사용하는 경우로 나눴다. 먼저 제도를 잘 몰라서 발생하는 연구비 오남용 사례의 경우는 정부 R&D 정책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게 학계의 입장이다. 국가연구사업규모가 확장되면서 23개 부처, 30여개 관리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5년간 9000건 적발
유용시 제재 강화

문제는 부처마다 조금씩 다른 연구비 관리규정을 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서 관리인력이 부족한 연구현장에선 복잡한 규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는 규정을 어기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문제점을 근원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현재 부처마다 다르게 운용하고 있는 R&D 관리규정을 없애고 ‘국가연구개발사업 공동관리규정’ 하나로 통일해 적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이런 문제점을 근원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해 9월 ‘(가칭)국가연구개발특별법(안)’을 발의했다. 

불순한 의도를 갖고 연구비를 부정하게 사용할 경우에는 ‘일벌백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전히 대부분 연구원은 밤낮없이 주말 없이 연구에만 전념하면서 세계적인 성과창출을 위해 열정을 쏟고 있다. 하지만 소수의 연구자들이 문제를 일으켜 과학 기술계 전체가 매도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만연한 문제로 산업통상자원부는 강력한 제재 방안을 마련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9월15일 고시를 통해 연구자 중심의 연구 환경을 조성하고 연구 책임성 강화를 위해 산업기술혁신촉진법과 시행령을 개정했다. 

개정법과 시행령에는 연구자가 연구부정 행위를 반복할 경우 제재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과거에는 연구비 부정사용 등의 부정행위를 반복해도 최대 5년까지만 국가 R&D 참여를 제한했지만, 앞으로는 위반 횟수에 따라 최대 10년까지 제한할 수 있다.

소 잃고…
이제야 정비

기존에는 연구비를 유용하다 적발돼도 참여제한 기간이 5년이었지만, 개정 후에는 1회 위반 5년, 2회 위반 7년 6개월, 3회 이상 위반 10년으로 기간이 늘어난다. 또 전에는 같은 R&D 과제를 수행하면서 2개 이상의 부정행위를 하더라도 참여제한 기간이 최대 5년이었지만 앞으로는 중대한 부정행위에 대해서는 과거 전력이 있는 경우 최대 10년까지 제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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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재명정부가 내란을 방조하거나 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을 가리기 위해 TF를 구성했다. 내년 1월까지 공무원 75만명을 대상으로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한다. 일부 기관은 자체적으로 판단해 TF를 구성하는 걸 두고 고민하고 있다. TF는 강제성이 없으며, 이미 조사를 끝내 인사에 반영한 기관도 존재한다.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태스크포스)는 중앙행정기관 49곳에 구성됐다. 구체적으로 각 부처 25곳이 포함됐다. TF는 총 48개다. 활동 목표가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각 기관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별검사)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방조·간접 가담자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24일 TF 실무 책임자들과 첫 간담회를 갖고 “TF의 조사 활동은 대상, 범위, 기간, 언론 노출, 방법 모두 절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TF 활동과 구성원은 즉각 바로잡겠다”면서 “TF 활동의 유일한 목표는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 TF는 공무원 75만명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개인 휴대전화까지 제출받아 조사한다는 방침 등이 인권침해란 논란이 일었다. 총리실에 설치된 ‘총괄 TF’는 이날까지 부처 25곳을 포함한 기관 49곳에서 TF 48개가 출범했다.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로 구성된 총리실에 단일 TF가 설치되면서 TF 숫자는 하나 줄었다. TF는 대부분 10~15명으로 구성됐지만, 전체 인원이 많은 국방부(53명), 경찰청(30명), 소방청(19명) 등은 대규모 조사단을 꾸렸다. TF 48개의 총인원은 정부 내부 인사 536명을 포함해 661명에 달한다. TF 48개 중 32개에 외부 인사 125명이 참여했고 그중 76명(60.8%)은 법조인, 31명(24.8%)은 학자, 18명(14.4%)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TF는 ‘내란의 사전 모의나 실행, 사후 정당화, 은폐’를 한 공무원은 ‘내란 참여’로, ‘내란의 일련의 과정에 물적·인적 지원을 도모하거나 실행’한 공무원은 ‘내란 협조’를 한 것으로 보기로 했다. 적발된 공무원에게는 내년 2월13일까지 ‘징계’나 ‘승진 배제’ 같은 인사 조치할 방침이다. 또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설치해 동료 공무원들에게 제보·투서를 받고, 의심 공무원은 개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의혹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면 대상자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의혹이 상당한 데도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수사 의뢰까지 가능한 선을 정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TF 조사 권한을 두고 이견이 나온다. 형사가 아닌 행정 절차이지만 일반적인 조사가 아닌 만큼 행정법이 지켜져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무원 75만명 전방위 조사 문제없나 형소법 원칙 유명무실…권력남용 소지 한 서초동 변호사는 “영장 없는 조사를 두고 많은 문제 제기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인사상 불이익으로 압박하거나 진술을 강요하면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 최소한의 범위를 규정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TF가 정한 선이 어느 지점까지인지가 핵심일 것 같다”고 조언했다. 국회도 과거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발간한 ‘권력적 행정조사의 쟁점 및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 행정조사 과정에서 영장주의·진술거부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행정조사에서 수집된 자료가 수사기관으로 넘어가 형사 처벌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사소송법상 원칙이 유명무실해지고, 국가권력이 남용될 소지도 있다. 업무용 PC나 이메일에서는 변호사와 상담한 내용까지 확보되는 사례도 있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행정조사 위법성과 관련해서는 판례도 존재한다. 지난 2012년 서울고법은 기관이 업무용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를 동의 없이 확보해 공무원을 해임한 사건에서 이를 위법한 증거수집으로 보지 않았다. 법원은 기관이 통신비를 부담했고, 감사 목적이 공익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했다. 조직 내부 감사는 세무조사·공정거래위원회 조사·근로감독 등과 달리 별도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조사의 한계 역시 모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내부 감사가 법적 문제를 일으킨 선례 역시 많지 않다. 민간인의 TF 참여도 새로운 논란이다. 정부는 감사부서 공무원 외에 민간인을 포함하거나 아예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된 TF를 둘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민간인이 공무원에 대해 조사권을 행사하는 셈인데, 정부는 TF 설치를 위한 별도 입법을 마련하지 않았다. 논란 불구 조사 시작 공직사회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조사 기준이 모호해 억울한 문책 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반면 계엄을 방관했거나 동조한 세력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핵심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은 기획재정부·국방부·행정안전부·경찰·검찰·법무부 등이다. 기재부의 경우 최상목 전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겸했다. 최 전 장관이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비상입법기구 예비비 편성 등 계엄 지시 문건 등을 받고 1급 고위직들을 소집해 회의를 연 바 있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이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김동일 전 예산실장과 신중범 전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등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아시아거시경제감시기구(AMRO)로 파견되기 직전 명예 퇴직금을 수령한 것을 두고 ‘해외도피’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외교부는 이번 국감에서 비상계엄 직후 대통령실이 외교부 장관 명의로 ‘합법적 계엄’이란 내용의 공문을 주미한국대사관에 보내고, 이를 ‘3급 기밀’로 지정한 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TF가 가동되면서 외교부 인사는 사실상 ‘중단’ 상태다. 외교부는 애초 올해 말까지 1급 인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TF 활동이 시작되면서 어렵게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외교부 실·국장 및 재외 공관장 인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 인사는 특임 대사 임명과도 맞물려 있지만 인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특히 현 정부는 특임 대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외교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임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전문가·정치인·학자 등을 대통령이 재외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주요 공관장 인사가 늦어지면서 사안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불법구금 사태 당시에도 조지아주를 관할하는 주애틀란타총영사직은 공석이었고, 캄보디아 사태 때도 주캄보디아 대사직이 비어있었다. 필요는 한데… 이중 감사 검찰 TF는 최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다음 달 12일까지 제보용 익명 게시판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통해 관련 제보를 받겠다고 공지했다. 단장은 구자현 검찰총장 대행이 김성동 대검 감찰부장과 주혜진 대검 감찰1과장이 각각 부단장과 팀장을 맡아 10여명이 참여했다. 법무부에 설치된 TF 역시 같은 날 공지를 게시했다. 법무부에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TF 단장을 맡고 내외부 인사 10여명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법무부는 내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제보를 접수하는 한편, 검찰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개설해 운영할 예정이다. 경찰은 경무관 승진, 총경 인사를 앞두고 숨죽이는 분위기다. 앞서 계엄 수사로 조지호 경찰청장 등 수뇌부가 재판에 넘겨졌지만, 계엄 당시 국회 출입 통제나 체포조 투입에 관여됐던 간부 상당수는 기소를 피했다. 국방부는 이중 감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12개 기관을 대상으로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취임 직후 감사관실 주도로 중령급 이상 간부를 전수 조사해 지난주 보고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고, 이는 이번 3성 장군 인사에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총리실의 지시에 따라 기존 감사자료를 제출하는 수준에서 협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관실은 조사본부를 합류시켜 TF를 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국방부의 자체 감사는 합참 현역 장교뿐 아니라 본부 군무원과 민간 공무원까지 포함한 대대적 감사였다. 지난 9월 진영승 합참의장 취임 이후, 권대원 합참차장을 제외한 합참 장군 전원과 2년 이상 근무한 중령·대령에 대한 대규모 인적 쇄신이 실제로 단행됐다. 합참의 지시에 따라 장교들의 진급이 보류되거나 보직이 변경됐다. 국정원은 이미 이종석 국정원장 취임 이후 직원들의 비상계엄 관련 여부 등 내부 조사를 마쳤다. 특히 의무적으로 TF를 구성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은 지난 8월 첫 1급 인사를 단행하고 최근까지 2∼4급 인사를 마무리했다. 애매한 의혹 제기 투서 남발 우려 일부 기관 자체 판단 별도 TF 설치 이 인사는 이 원장 취임 이후 진행한 내부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정원은 이 원장 취임 두 달 만인 8월 1급 간부 20여명의 인사를 단행하면서 그간 정권이 바뀐 뒤 1급 간부를 모두 교체하던 관행과 달리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간부들을 일부 유임시켰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TF 설치를 두고 대통령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본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임 국정원장이 취임하면 국정원은 윗선 지침이 없어도 원장 지시하에 내부적으로 감찰이나 조사를 철저하게 해 왔다”며 “대통령실에서 직접 관리해 TF 조사가 이뤄져도 추가로 드러날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달 4일, 국정원 국정감사 이후 브리핑에서 “국정원이 불법적 비상계엄 상황에서 내란·외환 정보수집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면서 “국정원은 국정원법 4조에 따라 내란죄·외환유치 관련 자료를 특검에 이미 제출했고 계엄 시 국정원 역할 재정비와 실효적 안보조사체계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침해 진정이 들어온 기구를 인권위가 설치하면 모순”이란 이유로 TF 설치를 거부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TF 구성 반대 의결 과정에서 절차상 흠결이 지적되자 다음 전원위원회에 다시 상정해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인권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등 독립기관은 TF 설치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기로 정해졌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21차 전원위원회에서 “정부에서 부처 내 헌법존중 TF를 자율적으로 만들라는 권고가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위원들에게 물었다. 이에 한석훈 위원이 구두로 안건 발의를 제안했다. 이후 안건 발의자로 참여한 김용원·이한별 위원 포함 발의자 세 명과 강정혜·김용직 위원, 안 위원장 등 6인이 ‘TF 구성 반대’에 손을 들면서 의결됐다. 부역자 남았나 인권위 안팎에선 자율적 설치라고 해도, TF 설립 취지에 비쳐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위원들이 안건을 즉석에서 상정해 반대 의결까지 한 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반대 의견을 낸 안 위원장과 김용원 위원 등은 지난 2월 ‘윤석열 방어권 안건’ 의결에 찬성해 특검에 내란 선동·선전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