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여론조사 ‘허와 실’

모의고사는 압승…실제 시험에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모의고사는 본 시험의 점수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로 사용된다. 고3 수험생들은 모의고사와 수능의 상관관계로 실제 성적을 예상한다. 국민 스포츠로 자리매김한 프로야구도 시범경기 성적으로 줄 세우기에 들어간다. 선거에도 ‘여론조사’라는 모의고사가 있다. <일요시사>가 여론조사와 실제 선거 결과를 분석해 봤다.
 

6·13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8일과 9일 양일에 걸친 사전투표로 이미 본게임은 시작됐다. 이번 지방선거는 과거에 비해 조용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남북·한미·북미 정상회담 이슈가 선거 내내 블랙홀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정은 조용했을지언정 결과에는 관심이 쏠리게 마련. 문재인정부 첫 선거인만큼 각 정당은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에도?

실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언론의 관심은 ‘여론조사’에 쏠린다. 여론조사는 모집단서 표본을 추출, 이들에게 설계된 질문안으로 답변을 얻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응답자의 답변을 분석해 결과를 도출한다. 사회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연구 기술이지만 특히 선거 때 높은 관심을 받는다. 지지율을 통한 승패가 한 눈에 드러나기 때문에 언론보도에도 자주 활용된다.

여론조사는 여론의 향방을 가늠하는 잣대지만 거꾸로 여론의 움직임을 유도하는 방향키로 작용할 때가 있다. 이 때문에 선거서 여론조사는 후보와 정당에 매우 민감한 영역이다. 결과의 유불리에 따라 실제 민심이 요동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어 지지율이 예상치 못하게 나오는 경우 후보 캠프서 강하게 반발하기도 한다.

실제 경기도 안양시에서는 <중부일보>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 지지율이 낮은 후보 측에서 의구심을 드러낸 바 있다. 지난달 27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는 <중부일보>의 의뢰를 받아 25∼26일 이틀에 걸쳐 안양시에 거주하는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706명을 대상으로 차기 안양시장 후보 지지도를 조사했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 블랙아웃
방송 3사 조사서 여당 초강세

설문조사 결과 더불어민주당 최대호 후보가 54.6%, 자유한국당 이필운 후보가 27.3%, 바른미래당 백종주 후보가 3.6% 등으로 나타났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같은 내용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이 후보 측은 캠프 개소식을 찾은 유권자 수를 근거로 내세우며 결과가 ‘모순의 극치’라고 논평했다. 1, 2위 간 지지율 격차가 더블스코어에 달하는 만큼 실제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한 것이다.

이처럼 여론조사 결과를 둘러싼 후보 간 공방은 선거 기간 중에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특히 선거 일주일 전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이 되면 온갖 추측이 난무한다. 6·13지방선거의 경우 지난 7일 이후 실시한 선거 여론조사 결과는 공표할 수 없다. 이른바 ‘블랙아웃’ 기간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금지 기간 중 여론조사 결과가 공표·보도되면 자칫 선거의 진의를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며 “특히 불공정하거나 부정확한 여론조사 결과가 공표되는 경우 선거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블랙아웃 직전 여론조사 결과가 후보와 정당에는 중요하다.

현재 언론 등에 드러난 여론조사 결과만 높고 보면 이번 지방선거는 여당인 민주당의 압승이 예상된다. 4000여명을 뽑는 지방선거는 물론 12명을 뽑는 재보궐 선거 역시 야당에 앞서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KBS·MBC·SBS 등 지상파 3사와 방송협회가 구성한 ‘방송사 공동 예측조사위원회’가 칸타퍼블릭, 리서치 앤 리서치, 코리아리서치센터 등 3개 여론조사에 의뢰해 지난 2∼5일 사이 실시한 17개 광역단체장 선거 여론조사 결과 민주당이 14곳을 싹쓸이 한다고 나왔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여론조사 결과대로면 볼 것도 없는 대승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최근 실제 선거와 여론조사 결과의 차이를 봤을 때, 개표 전까지 승패를 알 수 없다고 지적한다. 지방선거는 국회의원, 대통령 선거와 비교해 표본수가 작은 시군구 단위까지 조사하기에 정확도가 더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2010년과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대부분의 여론조사 결과가 현재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의 압승을 예측했다. 하지만 결과는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민주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특히 선거 다음날 새벽까지 지지자들의 피를 말리게 한 2010년 6·2지방선거 서울시장 대결은 실패한 여론 예측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2010·2014년 예측 빗나가
조사 업체 이번 성적표는?

당시 서울시장 선거에는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와 민주당 한명숙 후보가 각 당 대표선수로 나섰다. 현직에 있던 오 후보는 선거 기간 내내 여론조사서 한 후보를 여유롭게 따돌렸다. 두 후보의 격차는 블랙아웃 기간까지 15%p 이상 차이 났다. 20%p가 넘는 격차를 보이는 조사도 있었다. 

하지만 투표함을 열자 양상이 달라졌다. 두 후보의 최종 격차는 0.6%p에 불과했다. 압승을 거두리라 예상했던 오 후보는 한 후보와 엎치락뒤치락 한 끝에 신승을 거뒀다.

경기도지사 선거도 서울시장과 비슷했다. 한나라당 김문수 후보, 야권통합후보로 유시민 후보가 나선 경기도지사 선거 역시 운동 기간 내내 10%p가 넘게 김 후보가 앞섰지만 결국 최종 득표율 차는 4.4%p였다. 

인천시장 선거는 아예 결과가 뒤집혔다. 여론조사에서는 한나라당 안상수 후보의 낙승이 예상됐지만 실제 결과는 민주당 송영길 후보의 승리였다.

2014년 6·4 지방선거서도 몇몇 광역단체장 선거서 여론조사와 다른 양상을 보였다. 2010년 인천시장처럼 결과가 아예 뒤집힌 지역도 있었고, 여론조사에서는 후보 간 지지율이 큰 격차를 보였지만 실제 투표에선 박빙의 결과가 나온 곳도 속출했다. 
 

최근 두 번의 지방선거서 여론조사와 실제 선거 결과 사이의 큰 차이가 발생하자 여론조사 무용론, 불신론 등이 불거졌다.

여론조사 전문기관들은 후보와 마찬가지로 선거 이후에 성적표를 받는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빗나간 결과는 여론조사 업체의 조사 방법에 의구심을 자아냈다. 이에 전화번호부를 활용해 여론조사를 진행하던 업체들은 유선전화 RDD(임의걸기, Random Digit Dialing) 방식을 도입했다.


그럼에도 또 다시 여론조사 결과와 실제 선거가 판이한 모습을 보였다. 당장 2016년 20대 총선만 하더라도 투표함을 열기 전까지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180석 이상을 얻어 압승을 거둘 것이라는 예상이 팽배했지만 개표 결과 민주당이 원내 1당으로 도약했다.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자 선관위는 지난해 선거여론조사기관의 공표·보도용 여론조사에도 휴대전화 가상번호 이용 가능, 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등록된 기관만 선거여론조사 공표·보도 허용 등 여론조사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이 담긴 공직선거법 개정 의견을 제출했다. 지난해 2월부터 본격 도입됐다.

이번에는!

서울 여의도에 소재한 여론조사 업체 김○○ 대표는 “여론조사도 유·무선 비율, 조사 시간, 질문안, 통계 보정 방법 등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며 “실제 선거는 그보다 더 많은 변수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한 예측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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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