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84)전투 개시

백제의 기습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그 이야기는?”

“소장이 고구려의 침략을 봉쇄하겠습니다. 아울러 김흠운(김춘추의 딸인 요석공주의 남편)으로 하여금 백제군의 침략을 방어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지원을 요청하시고 속히 장기적인 측면에서 군사력을 강화시켜야 할 일이옵니다.”

“당에 말이오?”

“지금 저들이 합세해서 총공세를 펼친다 함은 단지 국경의 성 몇 개가 아니라 우리 신라 자체를 점령하고자 하는 듯합니다. 소장이 목숨을 걸고 방어해 보겠으나 만에 하나 어떻게 될지 모르니 당장 당에 지원을 요청해서 그들의 침략행위를 잠시 중단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전장으로


“그리고 장기적으로 군사력을 강화해야 하고요.”

“반드시 우리 손으로 이 민족을 통일해야 하옵니다.”

유신의 건의를 받아들인 무열왕은 즉각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고 김유신과 김흠운은 전장으로 향했다. 

김유신이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 군과 대치 상태를 이루고 있을 즈음 흠운은 급히 백제의 양산(陽山, 충북 옥천)으로 진군하여 조비천성(助比天城) 가까이 이르러 진을 쳤다.

저녁 무렵 진이 완성되자 흠운이 다음날의 결전을 위해 일찌감치 휴식을 취하라 지시하고 막사에 들었다. 

막 잠에 빠져들려는 시점에 함성이 일어났다. 

급히 밖으로 나서자 화살이 어둠을 가르고 빗발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백제군이 야음을 틈타 기습공격을 감행하자 미처 준비가 되지 않은 신라군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그를 살피던 흠운이 급히 말 위에 올랐다.

“장군, 멈추십시오.”

어둠 속에서 다가선 대사(大舍, 관직) 전지가 급하게 고삐를 잡았다. 그를 확인한 흠운이 잠시 멈칫하다가는 고삐를 빼앗았다.

“어서 물러나거라!”

“이 어둠속에 무얼 하시려는 겁니까!”

“무얼 하다니, 당연히 저 백제 놈들을 쳐부수어야지!”

“어둠속에서 적진으로 들어감은 기름을 들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격입니다. 즉 죽음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잠시 고정하시고 수진에 임하시고 내일 설욕하도록 하심이 마땅합니다.”

전지가 말을 마침과 동시에 다시 고삐를 낚아챘다.

“나를 파렴치한으로 만들려는 게냐. 어서 물러나거라!”

흠운의 고함에 전지가 급히 무릎을 꿇었다.

“장군께서 지금 적진으로 들어가 싸우다 죽게 되어도 아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장군은 전하의 사위이니, 만약 적의 손에 죽는다면 백제는 자랑으로 삼을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러니 신중히 생각하십시오.”


전지의 말이 절규에 가까웠다.

“대장부로서 이미 나라에 몸을 바쳤는데 남이 알아주고 말고 무슨 상관이더냐. 그러니 어서 손을 놓아라!”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다…김유신 출격
성충, 은고에 빠져있는 의자왕에 직언

말뿐이 아니었다. 

칼을 뽑아 고삐를 잡고 있는 전지의 손을 찌르고 그 순간을 틈타 급히 앞으로 달려 나갔다. 

얼마 내달리지 않아 백제군의 선두와 마주쳐 그야말로 고군분투하는 중에 장수로 보이는 사람이 앞을 가로막았다.


“나 백제의 계백인데 장군은 누구요!”

흠운이 일언반구 없이 그대로 계백을 향해 칼을 휘둘러나갔다. 

순간 계백이 뒷걸음질 쳤고 그 틈을 노려 백제 병사들이 창으로 흠운을 찔렀다. 이어 흠운의 온 몸에서 피가 흐르며 이내 땅으로 떨어졌다.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흠운의 주위로 백제 병사들이 몰려들어 다시 칼질하려 하자 계백이 급하게 다가가 멈추라 하고는 그의 상태를 점검했다. 

이미 저승길로 접어든 그를 살피는 중에 다시 흠운의 출전 소식을 접한 신라의 대감(大監, 장군을 보좌하던 무관) 예파와 소감(小監, 하급 무관) 적득이 칼을 휘두르며 현장으로 급하게 다가섰다. 

그러나 계백 앞에 이르기 전에 두 사람 모두 백제군의 칼과 창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진덕여왕의 죽음과 신라군과 전쟁에서의 승리로 의자왕의 은고에 대한 신임은 도를 더해갔다. 

단지 신임 여부를 떠나서 오석산을 마시고 빠져드는 황홀경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급기야 은고를 위해 태자궁을 사치스럽게 꾸미고 그곳에서 시도 때도 없이 은고가 벌이는 향연에 함몰되었다.

“전하, 드시지요.”

“오늘은 무엇을 준비했는고?”

“먼저 말씀드리면 재미가 반감되옵니다. 그러니 직접 보시며 체험하심이 이로울 일이옵니다.”

살짝 눈을 흘기는 은고의 안내로 오석산을 먹고 태자궁의 호화스러운 방에 들자 의자왕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어린 궁녀 네 명이 술상을 앞에 두고 자신을 맞이했던 때문이었다. 

그를 의식하며 헛기침하고 자리에 앉는 순간 약효가 서서히 온몸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방금 전의 어색함이 급격하게 사라지고 그 자리를 당당함이 대신했다. 

마치 그를 알고 있다는 듯 은고가 달려들어 옷을 벗기자 의자왕 역시 은고의 옷을 갈가리 찢기 시작했다. 

그를 신호로 알몸의 여인들이 의자왕에게 달려들었다. 

곧바로 여인들과의 사투가 이어졌다. 

네 여인이 의자왕의 사지를, 중앙은 은고가 담당해나가기를 잠시 후 여섯의 몸뚱이가 한 데 어울려 흐느적거렸다. 

오랜 시간이 지나 의자왕이 정신을 가다듬고 은고와 술로  여운을 달래는 중에 밖에서 고성이 들려왔다.

“무슨 일이냐?”

“전하, 신 성충이옵니다.”

“장군이 어인 일이오!”

“긴급히 아뢸 말씀이 있어 찾아뵈었습니다.”

“대전에서 하면 아니 되겠소?”

“아니 되옵니다. 바로 이곳에서 아뢸 일입니다.”

잔을 비우고 은고를 바라보자 고개를 끄덕였다.

“들여라!”

성충이 방에 들자 기상천외한 광경에, 아랫도리 부근이 피로 발갛게 물들고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알몸의 여인들을 주변에 두고 의자왕이 은고와 함께 알몸으로 술을 마시는 모습에 한동안 눈동자를 고정시키지 못하다가는 급하게 부복했다.

“그러지 말고 이리 와서 술이나 한잔하시오.”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성충의 목소리가 심하게 갈렸다.

“무엇을 통촉하라는 게요, 술이나 한잔하자는데.”

“전하, 부디…….”

“부디고 뭐고 어서 이리 와서 잔 받으시오!”

의자왕과 성충의 소리에 널브러져 있던 여인들이 정신이 드는지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성충의 존재를 확인한 그녀들이 가벼운 천으로 주요 부분을 가리며 급하게 자리에서 물러났다.

“전하, 먼저 용포를 거치심이 가당한 줄 아옵니다.” 

성충이 의자왕을 직시하자 은고가 자리에서 일어나 용포로 되는대로 의자왕의 몸을 가리고 저 역시 갈기갈기 찢긴 옷으로 대충 주요한 부분을 가렸다. 

순간 성충이 무릎걸음으로 상 가까이 다가갔다.

“장군에게 술 한 잔 따르게.”

은고가 조신하게 움직여 잔을 채워 성충에게 건넸다.

“전하, 왜 이러십니까!”

직언하다

손을 들어 은고가 건네는 잔을 거부하고 성충이 작심한 듯 소리를 높였다.

“뭘 말이오?”

“연이은 이런 행동 말입니다.”

“이게 어떻다고.”

“국정을 소홀히 하고 요망한 계집에게 휘둘러 지내는 지금이 정상이라 할 수는 없겠지요!”

“뭐, 뭐라!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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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