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 ‘임대보증금 7000억원 증발’ 공방전

7567억 중 7072억 어디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건국대학교가 올해로 개교 72주년을 맞았다. 유자은 이사장과 민상기 총장은 기념식서 학교 발전을 위해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말의 성찬으로 덮기엔 건국대 속사정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 지난 10여년간 드러난 많은 의혹이 여전히 학교의 위험요소로 똬리를 틀고 있다. 그 중심에 증발한 7000억원의 임대보증금 문제가 있다.

2010년 6월 교육부(당시 교육과학기술부)가 학교법인에 통보한 ‘학교법인 기본재산 관리 안내’에 따르면 수익용 기본재산을 임대하고 받은 임대보증금은 반드시 금융기관에 예치해야 한다.

지난해 1월 교육부의 ‘사립대학(법인) 기본재산 관리 안내서’에는 교비회계로 전출, 법인 일반회계 지급 등 반환을 위한 보관·유지 외의 용도로 임대보증금을 사용하려면 관할청의 수익용 기본재산 처분 허가가 필요하다고 돼있다. 다시 말해 임대보증금은 학교법인서 임의로 사용할 수 없는 돈인 셈이다.

임대보증금
임의사용 제한

건국대의 임대보증금 실태는 2016년 감사원의 ‘교육부 기관운영 감사’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감사원은 2016년 11월21일부터 같은 해 12월7일까지 진행한 교육부 감사에서 학교법인의 수익용 기본재산에 대한 임대보증금 예치 현황을 검토했다.

그 결과 건국대는 금융기관에 예치하지 않은 임대보증금 중 일부를 수익용 기본재산이 실질적으로 감소되는 법인 운영비 등으로 사용했다. 보전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건국대가 더클래식, 건국AMC 등을 통해 받은 임대보증금은 7566억6000만원에 달한다. 그러나 감사원 감사 당시 금융기관에 예치된 임대보증금은 495억원에 불과했다. 7071억6000만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액수가 다른 용도로 사용됐다는 뜻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확인 결과 건국대의 지난해 연평균 등록금은 816만7000원. 숫자만 놓고 봤을 때 미예치 임대보증금 7071억6000만원이면 8만6000여명의 학생이 건국대서 1년간 공부할 수 있다.

2016년 교육부 감사로 실태 드러나
임대보증금 사용처 두고 의혹 나와

감사원에 따르면 건국대와 같은 상황의 학교법인들은 금융기관에 예치하지 않은 임대보증금을 ▲법인 운영비 ▲대체취득 ▲교비전출 ▲기채상환 ▲부담승계 ▲기타 등 6가지 용도로 사용했다. 건국대의 경우 ▲교비전출 ▲대체취득 ▲수익사업체 운영비 ▲기타 등의 용도로 미예치 임대보증금을 지출했다.

2016년 9월 말 기준 건국대 임대보증금 세부 지출 내역을 보면 다음과 같다. 

백화점(159억), 쇼핑몰(183억), 영존(601억), 클래식(3795억), 골프장(545억) 등 공사비로 5286억원이 사용됐다. 여기에 각종 시설물 구축(83억), 노유자 시설 세대별 집기·비품류 등(66억), 전산시스템 구축(7억) 등 고정자산을 매입하는 데 157억을 썼다. 또 교비전출 용도로 1235억원을 지출했다.

문제가 된 부분은 운영비와 기타 내역이다. 건국대는 클래식 영업손실(107억), 지급이자(128억), 세금(9억) 등 330억원을 운영비로 사용했다고 밝혔다. 기타 내역에는 단기대여(8억), 예치금(54억)이 포함됐다. 감사원은 건국대서 운영비와 기타 등의 이유로 지출한 393억원이 수익용 기본재산의 실질적인 감소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운영비+기타
기본재산 감소

감사원은 건국대가 임의로 사용한 임대보증금에 대해 보전 조치 등 수익용 기본재산 관리방안을 마련하도록 하라고 교육부에 통보했다. 이에 건국대는 지난해 5월 임대보증금 보전계획을 교육부에 제출했다. 

2017년(31억), 2018년(83억), 2019년(89억), 2020년(92억), 2021년(96억) 등 5년에 걸쳐 법인운영 수익, 재산 매각 등의 방식으로 재원을 마련해 보전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감사원의 감사를 거쳐 교육부의 조치에 따라 건국대의 이행으로 마무리될 듯했던 임대보증금 사안은 최근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감사원이 미처 지적하지 못한 부분서 석연치 않은 점이 발견된 것이다.
 

건국대 설립자 상허 유석창 선생의 자녀 등으로 구성된 건국대 정상화 위원회(이하 건정위)는 ▲교비전출(1235억) ▲예치금(54억) ▲클래식 지급이자(128억) ▲골프장 공사비(545억) 등의 항목 역시 임의사용한 돈으로 분류, 보전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건정위의 지적대로면 건국대가 임의로 사용한 임대보증금은 2000억원 이상으로 크게 늘어난다.

먼저 건국대가 교비전출금 명목으로 지출했다고 밝힌 1235억원이 문제로 지목됐다. 건정위에 따르면 건국대는 이 돈에 대해 학생들의 등록금에 대한 국세청의 환급금과 법인의 법정부담금을 교비회계로 전입하는 자금이라고 설명했다.

사립대학의 경우 매 학기 학생들의 등록금을 금융기관에 납입하면 국세청이 먼저 등록금 소득에 대한 원천징수를 진행하고 이후 환급절차를 거친다. 이때 환급금은 교비회계로 전입된다. 

당초 학교법인은 수익사업에서 발생한 소득의 80% 이상을 교비회계로 전입하도록 돼있다. 그러나 환급금의 경우 교비회계에 속하는 등록금서 발생한 돈이므로 법인회계와 무관하다.

법정부담금 부분도 의아한 구석이 있다. 법정부담금은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 ‘국민건강보험법’ 등에 따라 사립대학 법인이 부담해야 하는 사학연금·건강보험·국민연금·고용산재보험 등 4대 보험 비용과 교직원 퇴직수당을 말한다. 건국대의 경우 이 같은 법정부담금을 교비회계서 먼저 지급하고, 이후 법인회계에 속하는 자금으로 변제한다.

건정위 관계자는 “납세환급금이나 법정부담금은 교비회계와 관련 있는 돈인데도 불구하고 건국대는 법인의 운영수익금을 교비로 전입시킨 것처럼 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157억원을 들여 신축한 예술문화대학건물이 교비회계로 전입된 사실을 고려하더라도 최소 1078억원의 사용처가 불분명하다”고 강조했다.

건국대가 환수 받아야 할 성격의 돈을 받지 않았다는 의혹도 있다. 감사원은 교육부 감사에서 건국대가 공중연결 통로 공사 예치금으로 지출한 41억5700만원에 대해 보전 처분을 지시했다. 

학교법인은 지하철 2호선과 백화점 사이 공중연결 통로 설치비용으로 15억2900만원을, 노유자 시설 동별 사용승인 조건으로 36억9600만원 등 총 52억2500만원을 광진구청에 예치했다. 하지만 지하철공사와 주민들의 반대로 공중연결 통로 설치는 무산됐다.


김기동 광진구청장은 2011년 6월29일 본회의서 “2010년 6월23일 결정된 시 도시건축 공동 위원회의 수정가결에 따라 건국대에서 예치한 총 52억2500만원을 근거로 교통종합개선계획 용역을 수행 중에 있다”며 “2010년 12월 용역 중간보고가 있었고 금년 7월 말경이면 용역이 완료될 예정에 있다”고 밝혔다. 

예치금이 이미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으니 돌려줄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몇몇 부분서
추가 의혹 나와

최근에도 광진구청은 2010년 8월26일 서울시 고시를 근거로 예치금을 건국대에 돌려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당시 서울시는 “도시미관 및 경관을 저해하는 고가구조물을 철거하는 추세에서 새로운 보도육교 형식의 구조물 설치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지하철 2호선 건대입구역과 지구특별계획구역을 연결하는 공중연결통로 설치계획 변경(폐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주변의 교통운영 보행 및 차도 공간, 보행량 등을 고려해 종합적인 개선대책을 수립·시행토록 지구단위계획을 변경한다”고 덧붙였다. 


광진구청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서울시 고시에 재원조달은 사업시행자와 별도 협의 후 확정한다고 돼있다”며 “해당 문제에 대해서는 건국대와 이야기가 끝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건정위는 공사가 진행되지 않았으니 예치금을 돌려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건정위는 “서울시 도시건축심의위원회가 결정할 수 있는 예치금은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른 이행보증금”이라며 “이는 준공검사를 받은 때 즉시 반환돼야 하는 자금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맞섰다. 

이어 “허가청에 대해 미환수의 방법으로 재산상의 이익을 제공하는 이유를 밝혀야 한다”며 “혹여나 자금에 뇌물의 성격이 있는 것은 아닌지 파악이 필요하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5년에 걸쳐 보전 조치 지시
교육부 5월에야 “이행했다”

건국대 임대보증금 사용 실태를 둘러싼 후폭풍은 학교의 방만한 자금 운영과 교육부의 안일한 관리·감독서 비롯됐다는 게 중론이다. 임대보증금의 일부를 임의로 사용한 건국대에 1차 책임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교육부의 관리·감독이 소홀하지 않았다면 이 문제가 현재까지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건국대 임대보증금 문제는 2016년 감사원 감사 이전인 2013년에도 한 차례 불거진 바 있다. 지난 2013년 6월 한국사학진흥재단은 건국대 학교법인과 대학의 2012 회계연도 재정 및 예·결산 실태를 점검했다. 

그 결과 학교법인이 운영하는 스타시티 상가와 더클래식 500의 임대보증금 총액이 7000억원을 상회하지만 법인이 보유한 금융자산은 316억원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임대보증금을 지급할 수 있는 금액을 확보해야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당시 언론보도서 교육부는 사학진흥재단의 조사결과를 넘겨받고 학교 측의 소명을 받은 후 위법 사실이 최종 확인되면 관련 법규에 따라 조치할 방침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3년 뒤 2016년 감사원의 교육부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교육부는 매년 학교법인으로부터 수익용 기본재산 보유현황을 보고 받았을 뿐 감사원 감사일(2016년 11월21일)까지도 전체 학교법인의 임대보증금 예치 현황을 재대로 관리하지 않고 있다”며 “임대보증금 임의 사용 여부를 조사하지 않고 있었다”고 적시했다.

관리·감독 소홀
사후 대처 부실

교육부의 부실한 사후 대처 또한 입길에 오르고 있다. 학교법인의 임대보증금 임의사용액 보전 조치마저도 관리·감독이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 교육부 사립대학정책과 관계자 A씨는 지난 17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건국대가 2017년 보전계획금인 31억원을 지난해 12월31일 기준으로 모두 이행 완료했다고 밝혔다.

이는 올해 1~2월 <일요시사>의 취재 내용과 사뭇 다른 답변이다. 지난 1월16일 교육부 사립대학정책과 관계자 B씨는 건국대의 임대보증금 임의사용액 보전이 (지난해)11월 말 기준으로 50%를 조금 넘어섰다고 설명했다. B씨는 감사원의 교육부 감사 당시 임대보증금 관련 대응을 했던 직원으로 알려졌다.
 

당시 B씨는 건국대서 전액 보전 조치를 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정확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이달(1월)중에 지난해 12월 말 실적을 제출하라는 공문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2월6일에는 B씨가 “업무가 바뀌었다, 해당 부서에서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건정위 관계자는 4월에도 건국대의 보전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A씨는 “그 분(B씨)은 그 당시 담당자가 아니었다. 선의로 확인해 드리려 했는데 공문을 미처 못 보신 것 같다”고 답했다.

건정위는 지난해 11월 성명을 통해 “임대보증금 임의사용으로 인한 학교법인의 손해는 이사장과 이사들의 위법행위로 인한 결과”라며 “그 보전을 피해자인 법인에 전가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