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함께하는 여행 ②단양 잔도

남한강 절벽따라 '아슬아슬' 산책로

남한강 절벽 사이에 한 줄기 자줏빛 길이 선명하다. 벼랑 따라 물줄기 위에 들어선 충북 단양 잔도는 수려한 남한강 풍류에 아슬아슬함을 더한다. 단양 잔도는 지난해 새롭게 단장해 일반에 공개됐다. 만학천봉 절벽 아래 나무 데크를 조성한 것이다. 길이 1.2km 남짓한 단양 잔도는 상진철교 아래에서 시작해 절벽이 끝나는 만천하스카이워크 초입까지 연결된다. 

‘잔도(棧道)’는 벼랑에 선반처럼 매단 길로 방송을 통해 중국 장가계(張家界)의 잔도가 잘 알려졌다. 남한강 변에 마련된 나무 데크는 느림보강물길을 따라 반대편 단양 읍내로도 연결된다. 단양관광호텔, 단양군보건소 앞으로 이어지는 길이 제법 운치 있다. 호젓한 길 따라 꽃나무와 벤치가 어우러져 완연한 봄이 강물과 함께 흐른다.

5개 코스 ‘느림보강물길’

단양 잔도는 단양과 남한강 줄기를 에워싸고 이어지는 느림보강물길의 일부다. 느림보강물길은 1코스 삼봉길에서 5코스 수양개역사문화길까지 5개 코스가 있다. 상진리에서 출발하는 수양개역사문화길 가운데 벼랑 아래로 연결되는 흥미진진한 구간이 단양 잔도다. 


상진철교에서 시작된 단양 잔도는 출발부터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잔도 위로 열차가 간간이 오가며 봄나들이의 운치를 더한다. 열차가 지날 때는 ‘일단 멈춤’. 잔도 곳곳에는 벼랑에서 돌덩이가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보호 덮개가 설치되었다. 


본격적으로 잔도에 들어서면 아슬아슬한 벼랑길이 이어진다. 단양 잔도는 수면 위 높이 약 20m, 폭 2m가량 된다. 한 쪽은 깎아지른 절벽이고, 반대편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강물이다. 고개를 빼꼼히 내밀면 수직으로 형성된 괴석이 긴장감을 더한다. 잔도에는 나무 데크 곳곳에 성긴 구멍을 뚫어 발아래 강물을 볼 수 있게 했다. 구멍 위를 지날 때면 아찔함에 탄성이 쏟아진다. 



느림보강물길 구간답게 단양 잔도에서는 성큼성큼 걷기보다 느릿느릿 이동해보자. 강바람을 맞으며, 흘러나오는 음악에 귀 기울이며 소중한 순간을 사진에 담아도 좋다. 봄이 무르익으면 잔도 주변으로 다양한 식물이 얼굴을 내민다. 물푸레나무, 굴피나무, 부처손 등 10여 종이 잔도에 숨은 자연이다.
잔도에서 남한강 건너를 바라보면 열차가 머무는 단양역이다. 단양역에서는 만학천봉과 잔도의 윤곽이 한눈에 들어온다. 강물 위에, 벼랑 사이에 그어진 한 줄기 아슬아슬한 산책로가 또렷하다. 구불구불 벼랑길을 에워싸고 이어진 잔도는 나무 벤치와 스탬프 투어 확인 포인트를 만나며 마무리된다. 이곳에서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까지 느림보강물길을 계속 걸어도 되고, 만천하스카이워크에 올라 일대를 내려다봐도 좋다. 

길이 1.2km 벼랑 따라 물줄기 위 잔도
유리 바닥 스카이워크 아찔함 더해

만천하스카이워크는 단양 잔도와 어우러져 최근 인기를 끄는 곳이다. 만학천봉 위에 들어선 스카이워크에 오르면 단양 읍내와 남한강 물줄기가 발아래 펼쳐진다. 투명한 강화유리 사이로 80~90m 아래 수면을 내려다보며 하늘 길을 걷는 아찔함이 더해진다. 스카이워크에 오르는 회전 경사로는 높이와 방향에 따라 단양을 다채롭게 조망하는 재미가 있다. 스카이워크에서 내려올 때 짚와이어를 이용하면 하늘을 나는 짜릿한 경험도 가능하다. 


스카이워크 체험 뒤에는 잔도를 거쳐 단양군보건소, 단양 읍내 방향으로 느림보강물길 4코스 상상의거리를 걸어본다. 4월에는 벚꽃이, 5월이면 장미 터널이 어우러지는 꽃길이다. 단아한 강변 산책로와 휴식처가 곁들여져 가족 나들이를 더욱 풍성하게 채운다. 


잔도 코스에 대중교통으로 닿으려면 단양시외버스공영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단양군보건소 앞에서 내린다. 단양역에서 상진대교를 건너갈 수도 있는데, 연결 보행로가 공사 중이라 주의가 필요하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단양 읍내에 자리한 다누리아쿠아리움이 호기심을 부추긴다. 다누리아쿠아리움은 국내 최대 민물고기 생태관으로 국내외 서식하는 어류 180여 종, 2만2000여 마리가 있다. 다채로운 수조 외에도 수달전시관, 낚시박물관, 4D체험관을 갖췄다. 아쿠아리움 전면에는 단양 토속 어류의 상징인 쏘가리 조형물이 있어 사진 촬영 포인트로 사랑받는다. 


단양의 볼거리는 강물 따라 쉼 없이 이어진다. 단양 도담삼봉(명승 44호)은 단양팔경 가운데 으뜸으로 꼽히는 명소다. 남한강에 솟아오른 세 봉우리인 도담삼봉에는 삼도정이라는 정자가 들어서 운치를 더한다. 


특히 물안개가 은은히 피어오를 때면 그 신비로움이 절정에 이른다. 유년 시절 도담삼봉과 함께 한 정도전은 뒷날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했다. 



도담삼봉 인근에는 단양팔경 2경이자 자연이 빚은 조형미가 돋보이는 단양 석문(명승 45호)이 있어 함께 둘러보면 좋다. 고수대교 너머 고수동굴(천연기념물 256호)은 200만년 세월을 간직한 석회굴로, 1km 가까이 신비한 동굴 탐험으로 안내한다. 

단양 특산물 ‘마늘’

여행의 마무리는 단양구경시장이다. 2018년 대표 전통시장으로 선정된 단양구경시장은 이곳 특산물인 마늘이 들어간 다채로운 음식이 많다. 마늘순댓국, 마늘통닭, 올갱이해장국 등은 단양구경시장이 자랑하는 별미다. 끝자리 1·6일에는 오일장도 선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단양 잔도→만천하스카이워크→도담삼봉, 석문→다누리아쿠아리움→단양구경시장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단양 잔도→만천하스카이워크→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느림보강물길 4코스 상상의거리 
[둘째 날] 도담삼봉, 석문→고수동굴→다누리아쿠아리움→단양구경시장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단양군 문화관광 http://tour.dy21.net/home
- 만천하스카이워크 www.mancheonha.com
- 다누리아쿠아리움 www.danuri.go.kr  

문의 전화
- 단양군청 문화관광과 043)420-2554
- 만천하스카이워크 043)421-0015
- 다누리아쿠아리움 043)423-4235
- 고수동굴 043)422-3072
- 도담삼봉 043)420-3544

대중교통 정보
[버스] 서울-단양,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12회(07:00〜18:00) 운행, 약 2시간30분 소요. 
*문의: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www.ti21.co.kr 단양시외버스공영터미널
[기차] 청량리역-단양역, 무궁화호·새마을호 하루 9회(06:40~ 21:03) 운행, 약 2시간15분 소요. 서울역-단양역, O-train 하루 1회(08:20) 운행, 약 3시간20분 소요.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자가운전
중앙고속도로 북단양 IC→각시봉터널→삼봉로→단양군보건소   

숙박 정보
- 카르페디엠: 단양읍 다리안로, 043)421-2155, www.carpediem-resortel.co.kr
- 대명리조트 단양: 단양읍 삼봉로, 1588-4888
- 소선암자연휴양림: 단성면 대잠2길, 043)422-7839, https://sof.cbhuyang.go.kr
- 소선암오토캠핑장: 단성면 선암계곡로, 043)423-0599, www.campsoseonam.co.kr 

식당 정보
- 충청도순대(마늘순댓국): 단양읍 도전5길, 043)421-1378 
- 경주식당(올갱이해장국): 단양읍 도전6길, 043)423-0504
- 대교식당(쏘가리매운탕): 단양읍 중앙2로, 043)423-4005, http://kbs1.kr/h/daegyo
- 오성통닭(마늘통닭): 단양읍 도전5길, 043)421-8400


축제·행사 정보
소백산철쭉제: 2018년 5월24~27일, 단양읍 상상의거리·소백산 일원, 043)420-2562, http://sobaeksan.or.kr

주변 볼거리
구인사, 천동동굴, 방곡도예촌, 온달관광지, 사인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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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