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테마기획② 구조조정 한파 뛰어넘기-재벌들 한파극복 사투

짙어지는 IMF 먹구름 “해고만은 제발…”

재계가 초비상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불똥이 국내 실물경제로 옮겨 붙은 탓이다. 산업 현장 곳곳에서 들려오는 공장가동 중단 소식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임금삭감에 희망퇴직, 유·무급휴직 얘기가 나오더니 급기야 감원, 해고 등 인력 구조조정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10년 전 덮쳤던 ‘검은 그림자’가 다시 드리우고 있는 셈이다. 각 기업은 제2의 IMF 사태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갈 때까지 가더라도 최소한 ‘사람’만은 버리지 않겠다는 복안이다. ‘구조조정 한파’를 뛰어넘기 위한 재계의 눈물겨운 사투를 조명해 봤다.


GM대우자동차는 오는 12월 부평과 군산, 창원 등 전국 공장 가동을 일시적으로 중단한다. 해외시장 수요 급감에 따라 생산라인 조절로 재고량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이미 지난달부터 연말까지 미국 앨라배마 공장 가동을 부분적으로 중단하기로 했다. 쌍용차도 생산량 조절을 위해 일부 공장가동을 사실상 중단했다.

자동차업계가 글로벌 경기침체 직격탄을 맞았다. 판매 부진이 계속되자 생산 중단, 감산 등의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는 것. ‘구조조정 회오리’는 자동차업계뿐만 아니라 금융, 유통, 제조 등 전 산업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물론 수요가 줄어들면서 감산에 들어간 것이다.
LG디스플레이는 7월부터 생산량을 10% 가량 축소했다. 하이닉스는 국내와 미국, 중국 소재 라인 4개를 9월부터 연말까지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있다. SK에너지와 LG화학, 롯데대산유화 등 석유화학업계도 전체적으로 생산공장의 가동률을 10∼30% 낮춘 상태다. 포스코와 동부제철,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철강업계도 제품 생산을 줄이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감원 한파’다.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 태풍이 IMF 이후 10년 만에 다시 가시화되고 있다. ‘제2의 IMF가 다가오고 있다’는 분석도 여기서 힘을 얻는다.
‘감원 먹구름’이 가장 짙게 드리운 곳은 금융권이다.
하나대투증권은 최근 장기근속자를 대상으로 1백명 정도의 희망퇴직 신청을 받기로 했다. SC제일은행은 지난 9월부터 희망퇴직 신청을 실시해 직원 1백90여명이 둥지를 떠났다. 신한은행, 농협, 씨티은행 등 다른 금융사들도 감축 대열에 조만간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다른 업종도 예외가 아니다.
쌍용차는 사내 협력업체 직원을 상대로 희망퇴직을 받고 있으며, 금호타이어는 팀장급 이상 장기근속자를 대상으로 연봉 1백%까지 지급을 조건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이외에도 미분양 물량이 쌓이고 있는 건설업계와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여행·유통업계도 감원바람이 닥친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실물경제 악화로 경영 상황도 악화되면서 인력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감산이 결국 감원으로 이어져 금융권에서 시작된 사실상의 정리해고 방안인 희망퇴직 등 인력 구조조정이 갈수록 전방위 업종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사정이 이렇자 각 기업들은 최소한 제2의 IMF 사태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갈 때까지 가더라도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다”고 입을 모으는 것도 같은 이유다.

국내 실물경제 위기 고조…생산중단, 감산 등 확산
희망퇴직, 유급휴직 등 자구책으로 해직 사태 차단
최후의 보루 총동원  “짜고 또 짠다”
임금 삭감 등 쥐어짜기식 초긴축 경영

주우식 삼성전자 부사장은 지난달 24일 기업설명회(IR)에서 “운영 효율을 강화하되 특단의 구조조정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현대·기아차그룹 측도 “소비심리 위축으로 감산 등은 부분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인위적 구조조정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대신 고강도 자구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가동해 불황을 극복한다는 복안. 우선 자발적인 임금 삭감이 눈에 띈다.
우리금융그룹은 계열사의 임원 급여를 10% 반납하기로 했다. 기업은행 역시 은행장을 비롯한 임원들의 연봉을 15% 이상 삭감하는 자구안을 내놓았다. 국민은행은 지주회사 회장, 사장과 은행장 연봉은 20%, 나머지 임원은 10%씩 깎기로 했다. 하나금융과 신한금융도 전 계열사 임원의 급여를 10∼20%씩 자진반납 형식으로 줄이기로 했다. 금융감독원은 앞서 은행권을 압박하기 위해 임금 삭감 카드를 먼저 빼들었다. 금감원장 30%, 부원장 및 부원장보 등 본부장 10% 등 경영진의 내년 연봉을 자진 삭감해 지급받기로 한 것.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경제 불안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국민들과 아픔을 공유하고 현 위기상황을 함께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기 위해 임금 자진 삭감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근로자들도 임금을 동결하는 등 고통분담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KT 노사는 지난 11일 어려운 경영상황을 인식하고 범국가적 경제위기 극복노력에 동참하기 위해 금년 임금을 동결하기로 했다. KT는 1998년, 2001년, 2006년에도 임금을 동결한 바 있다.
대한항공 노조도 지난 8월 1999년 노조 설립 이후 최초로 자발적으로 임금 동결을 받아들였고, 이 영향으로 아시아나항공 노조도 지난 9월 올해 임금을 동결하기로 잠정합의했다.
쌍용양회 노조는 3년 연속 임금 동결에 합의했다. 쌍용양회 노사는 지난 10월 임금을 동결하고, 올 연말까지 비상경영 체제를 가동하기로 했다. 한광호 쌍용양회 노조위원장은 “어려운 여건을 감안해 노사를 떠나 모두가 고통을 분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인력 구조조정의 마지막 보루로 ‘유·무급 휴직제’를 도입한 기업도 늘고 있다.
지난 7월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중단된 금강산 관광 여파로 난관에 빠져 있는 현대아산은 직원들을 교대로 재택근무를 시킨데 이어 유급휴가제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현대아산 임원을 제외한 1백65명의 전 직원은 의무적으로 연말까지 20일의 휴가를 가야 한다. 이들은 이 기간 동안 정상월급의 70%의 급여를 받는다.
쌍용차는 감산, 희망퇴직과 함께 유급 휴직 신청도 받고 있다. 정규직원 및 사내 협력업체 직원(비정규직) 3백50여명이 대상이다. 현대아산과 마찬가지로 이 기간 동안 월급은 보통 때의 70%만 받는다.
쌍용차 측은 “자동차 판매가 부진한 데다 신차 출시마저 내년 하반기로 잡혀 있어 감산, 희망퇴직, 유급 휴직 등이 불가피했다”며 “그러나 감원을 하지 않기 위해 유급 휴직을 도입했기 때문에 강제 인력 구조조정은 없다”고 못박았다.

일부 항공사와 대형 여행사를 빼고 거의 모든 여행사에선 무급휴가가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의 ‘쥐어짜기’식 초긴축 경영도 잇따르고 있다. 임직원들의 골프 금지, 판관비 등 업무추진비 삭감, 해외출장 억제, 조명·전원 끄기 등 원초적인 비용절감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특히 ‘자린고비’식 경비 절감에 돌입한 기업이 적지 않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1월부터 기내 서비스용 카트를 경량화 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카트 무게를 줄여 연료를 절감하겠다는 생각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승객용 음용수는 물론 화장실용 물까지 줄였다.
하이닉스는 지난 9월부터 직원들에 대한 보너스, 인센티브를 비롯해 매달 지급하던 문화상품권까지 일시적으로 지급을 중단했다.
SK그룹은 지난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기로 했던 최고경영자(CEO) 세미나를 돌연 취소했다. 해외 회의가 낭비란 계산에서다. SK그룹은 올 하반기 해외에서 열기로 했던 1∼2개의 다른 임원회의도 국내에서 열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임직원간 골프 금지령을 내렸다. 일부 계열사엔 경조사비, 식대비 등 복지비용 축소와 해외 출장 자제령도 떨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LG전자도 국내 출장의 경우 철도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직원들에게 독려하고 있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서울 양재동 본사 주요 에스컬레이터의 가동을 중단했다. 실내조명도 최소 조도로 낮췄다. SK텔레콤도 근무 시간 외에 사무실 전등이 꺼지는 자동 시스템을 설치했다.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불똥이 국내 실물경제로 옮겨 붙은 만큼 다양한 비용절감 방안들이 쏟아지고 있다”며 “각 기업들은 IMF 당시처럼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만은 피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1990년대 말 IMF 당시 수많은 가장들이 직장을 잃은 구조조정 삭풍을 겪어야 했다. 이 지경을 우려하고 있는 기업들은 여러 자구책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형국. 겹겹의 우산으로 대규모 감원 폭풍을 언제까지 막을 수 있을지 불안한 요즘이다.
 

당신의 해고 경험은?
10명 중 7명 “아찔했다”


직장인 10명 중 7명은 회사 측의 일방적 해고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1천2백2명을 대상으로 지난 10월28일부터 31일까지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2.0%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회사 측으로부터의 일방적 해고를 직접 경험했거나 주위에서 당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 중 직접 해고를 당한 직장인은 38.6%로 나타났으며, 비정규직(48.1%)이 정규직(35.5%)보다 높았다. 해고 사유(복수응답)는 ‘구조조정’이 39.7%로 가장 많았고, ‘상사와의 마찰’(29.8%)과 ‘업무성과 부진’(25.4%)이 뒤를 이었다. 이어 ‘계약만료’(18.5%), ‘해당사업(직무) 종료’(9.2%), ‘질병 발병 등 건강문제’(5.1%), ‘결혼·임신 등 가정사’(4.8%), ‘회사에 대한 나쁜 소문의 근원’(3.9%), ‘사내 루머’(3.7%) 등의 순이었다.
주로 진행된 해고 방법에 대해선 59.7%가 ‘권고사직’이라고 답했다. 또 ‘자발적 퇴사 유도’(21.4%), ‘해당 직무(부서) 소멸’(7.7%), ‘희망퇴직’(7.3%) 등도 있었다.
해고를 처음 통보 받았을 때부터 실제 퇴사까지 소요된 기간은 평균 15.9일로 집계됐다. 정규직(17.4일)이 비정규직(11.9일)보다 평균 5.5일 길었다.
한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실업률이 내년 상반기 3.7%로 확대돼 고용사정이 더 악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취업자 증가폭은 정부 목표 20만명의 절반 수준인 10만명 내외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