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테마기획② 구조조정 한파 뛰어넘기-재벌들 한파극복 사투

짙어지는 IMF 먹구름 “해고만은 제발…”

재계가 초비상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불똥이 국내 실물경제로 옮겨 붙은 탓이다. 산업 현장 곳곳에서 들려오는 공장가동 중단 소식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임금삭감에 희망퇴직, 유·무급휴직 얘기가 나오더니 급기야 감원, 해고 등 인력 구조조정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10년 전 덮쳤던 ‘검은 그림자’가 다시 드리우고 있는 셈이다. 각 기업은 제2의 IMF 사태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갈 때까지 가더라도 최소한 ‘사람’만은 버리지 않겠다는 복안이다. ‘구조조정 한파’를 뛰어넘기 위한 재계의 눈물겨운 사투를 조명해 봤다.


GM대우자동차는 오는 12월 부평과 군산, 창원 등 전국 공장 가동을 일시적으로 중단한다. 해외시장 수요 급감에 따라 생산라인 조절로 재고량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이미 지난달부터 연말까지 미국 앨라배마 공장 가동을 부분적으로 중단하기로 했다. 쌍용차도 생산량 조절을 위해 일부 공장가동을 사실상 중단했다.

자동차업계가 글로벌 경기침체 직격탄을 맞았다. 판매 부진이 계속되자 생산 중단, 감산 등의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는 것. ‘구조조정 회오리’는 자동차업계뿐만 아니라 금융, 유통, 제조 등 전 산업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물론 수요가 줄어들면서 감산에 들어간 것이다.
LG디스플레이는 7월부터 생산량을 10% 가량 축소했다. 하이닉스는 국내와 미국, 중국 소재 라인 4개를 9월부터 연말까지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있다. SK에너지와 LG화학, 롯데대산유화 등 석유화학업계도 전체적으로 생산공장의 가동률을 10∼30% 낮춘 상태다. 포스코와 동부제철,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철강업계도 제품 생산을 줄이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감원 한파’다.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 태풍이 IMF 이후 10년 만에 다시 가시화되고 있다. ‘제2의 IMF가 다가오고 있다’는 분석도 여기서 힘을 얻는다.
‘감원 먹구름’이 가장 짙게 드리운 곳은 금융권이다.
하나대투증권은 최근 장기근속자를 대상으로 1백명 정도의 희망퇴직 신청을 받기로 했다. SC제일은행은 지난 9월부터 희망퇴직 신청을 실시해 직원 1백90여명이 둥지를 떠났다. 신한은행, 농협, 씨티은행 등 다른 금융사들도 감축 대열에 조만간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다른 업종도 예외가 아니다.
쌍용차는 사내 협력업체 직원을 상대로 희망퇴직을 받고 있으며, 금호타이어는 팀장급 이상 장기근속자를 대상으로 연봉 1백%까지 지급을 조건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이외에도 미분양 물량이 쌓이고 있는 건설업계와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여행·유통업계도 감원바람이 닥친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실물경제 악화로 경영 상황도 악화되면서 인력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감산이 결국 감원으로 이어져 금융권에서 시작된 사실상의 정리해고 방안인 희망퇴직 등 인력 구조조정이 갈수록 전방위 업종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사정이 이렇자 각 기업들은 최소한 제2의 IMF 사태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갈 때까지 가더라도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다”고 입을 모으는 것도 같은 이유다.

국내 실물경제 위기 고조…생산중단, 감산 등 확산
희망퇴직, 유급휴직 등 자구책으로 해직 사태 차단
최후의 보루 총동원  “짜고 또 짠다”
임금 삭감 등 쥐어짜기식 초긴축 경영

주우식 삼성전자 부사장은 지난달 24일 기업설명회(IR)에서 “운영 효율을 강화하되 특단의 구조조정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현대·기아차그룹 측도 “소비심리 위축으로 감산 등은 부분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인위적 구조조정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대신 고강도 자구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가동해 불황을 극복한다는 복안. 우선 자발적인 임금 삭감이 눈에 띈다.
우리금융그룹은 계열사의 임원 급여를 10% 반납하기로 했다. 기업은행 역시 은행장을 비롯한 임원들의 연봉을 15% 이상 삭감하는 자구안을 내놓았다. 국민은행은 지주회사 회장, 사장과 은행장 연봉은 20%, 나머지 임원은 10%씩 깎기로 했다. 하나금융과 신한금융도 전 계열사 임원의 급여를 10∼20%씩 자진반납 형식으로 줄이기로 했다. 금융감독원은 앞서 은행권을 압박하기 위해 임금 삭감 카드를 먼저 빼들었다. 금감원장 30%, 부원장 및 부원장보 등 본부장 10% 등 경영진의 내년 연봉을 자진 삭감해 지급받기로 한 것.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경제 불안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국민들과 아픔을 공유하고 현 위기상황을 함께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기 위해 임금 자진 삭감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근로자들도 임금을 동결하는 등 고통분담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KT 노사는 지난 11일 어려운 경영상황을 인식하고 범국가적 경제위기 극복노력에 동참하기 위해 금년 임금을 동결하기로 했다. KT는 1998년, 2001년, 2006년에도 임금을 동결한 바 있다.
대한항공 노조도 지난 8월 1999년 노조 설립 이후 최초로 자발적으로 임금 동결을 받아들였고, 이 영향으로 아시아나항공 노조도 지난 9월 올해 임금을 동결하기로 잠정합의했다.
쌍용양회 노조는 3년 연속 임금 동결에 합의했다. 쌍용양회 노사는 지난 10월 임금을 동결하고, 올 연말까지 비상경영 체제를 가동하기로 했다. 한광호 쌍용양회 노조위원장은 “어려운 여건을 감안해 노사를 떠나 모두가 고통을 분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인력 구조조정의 마지막 보루로 ‘유·무급 휴직제’를 도입한 기업도 늘고 있다.
지난 7월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중단된 금강산 관광 여파로 난관에 빠져 있는 현대아산은 직원들을 교대로 재택근무를 시킨데 이어 유급휴가제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현대아산 임원을 제외한 1백65명의 전 직원은 의무적으로 연말까지 20일의 휴가를 가야 한다. 이들은 이 기간 동안 정상월급의 70%의 급여를 받는다.
쌍용차는 감산, 희망퇴직과 함께 유급 휴직 신청도 받고 있다. 정규직원 및 사내 협력업체 직원(비정규직) 3백50여명이 대상이다. 현대아산과 마찬가지로 이 기간 동안 월급은 보통 때의 70%만 받는다.
쌍용차 측은 “자동차 판매가 부진한 데다 신차 출시마저 내년 하반기로 잡혀 있어 감산, 희망퇴직, 유급 휴직 등이 불가피했다”며 “그러나 감원을 하지 않기 위해 유급 휴직을 도입했기 때문에 강제 인력 구조조정은 없다”고 못박았다.

일부 항공사와 대형 여행사를 빼고 거의 모든 여행사에선 무급휴가가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의 ‘쥐어짜기’식 초긴축 경영도 잇따르고 있다. 임직원들의 골프 금지, 판관비 등 업무추진비 삭감, 해외출장 억제, 조명·전원 끄기 등 원초적인 비용절감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특히 ‘자린고비’식 경비 절감에 돌입한 기업이 적지 않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1월부터 기내 서비스용 카트를 경량화 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카트 무게를 줄여 연료를 절감하겠다는 생각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승객용 음용수는 물론 화장실용 물까지 줄였다.
하이닉스는 지난 9월부터 직원들에 대한 보너스, 인센티브를 비롯해 매달 지급하던 문화상품권까지 일시적으로 지급을 중단했다.
SK그룹은 지난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기로 했던 최고경영자(CEO) 세미나를 돌연 취소했다. 해외 회의가 낭비란 계산에서다. SK그룹은 올 하반기 해외에서 열기로 했던 1∼2개의 다른 임원회의도 국내에서 열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임직원간 골프 금지령을 내렸다. 일부 계열사엔 경조사비, 식대비 등 복지비용 축소와 해외 출장 자제령도 떨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LG전자도 국내 출장의 경우 철도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직원들에게 독려하고 있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서울 양재동 본사 주요 에스컬레이터의 가동을 중단했다. 실내조명도 최소 조도로 낮췄다. SK텔레콤도 근무 시간 외에 사무실 전등이 꺼지는 자동 시스템을 설치했다.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불똥이 국내 실물경제로 옮겨 붙은 만큼 다양한 비용절감 방안들이 쏟아지고 있다”며 “각 기업들은 IMF 당시처럼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만은 피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1990년대 말 IMF 당시 수많은 가장들이 직장을 잃은 구조조정 삭풍을 겪어야 했다. 이 지경을 우려하고 있는 기업들은 여러 자구책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형국. 겹겹의 우산으로 대규모 감원 폭풍을 언제까지 막을 수 있을지 불안한 요즘이다.
 

당신의 해고 경험은?
10명 중 7명 “아찔했다”


직장인 10명 중 7명은 회사 측의 일방적 해고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1천2백2명을 대상으로 지난 10월28일부터 31일까지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2.0%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회사 측으로부터의 일방적 해고를 직접 경험했거나 주위에서 당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 중 직접 해고를 당한 직장인은 38.6%로 나타났으며, 비정규직(48.1%)이 정규직(35.5%)보다 높았다. 해고 사유(복수응답)는 ‘구조조정’이 39.7%로 가장 많았고, ‘상사와의 마찰’(29.8%)과 ‘업무성과 부진’(25.4%)이 뒤를 이었다. 이어 ‘계약만료’(18.5%), ‘해당사업(직무) 종료’(9.2%), ‘질병 발병 등 건강문제’(5.1%), ‘결혼·임신 등 가정사’(4.8%), ‘회사에 대한 나쁜 소문의 근원’(3.9%), ‘사내 루머’(3.7%) 등의 순이었다.
주로 진행된 해고 방법에 대해선 59.7%가 ‘권고사직’이라고 답했다. 또 ‘자발적 퇴사 유도’(21.4%), ‘해당 직무(부서) 소멸’(7.7%), ‘희망퇴직’(7.3%) 등도 있었다.
해고를 처음 통보 받았을 때부터 실제 퇴사까지 소요된 기간은 평균 15.9일로 집계됐다. 정규직(17.4일)이 비정규직(11.9일)보다 평균 5.5일 길었다.
한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실업률이 내년 상반기 3.7%로 확대돼 고용사정이 더 악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취업자 증가폭은 정부 목표 20만명의 절반 수준인 10만명 내외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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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수사 외압’ 의혹 산으로 가는 속사정

‘마약 수사 외압’ 의혹 산으로 가는 속사정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마약 수사 외압 의혹이 제기된 지 2년이 지났다. 대통령실과 검찰이 어떻게 개입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유통·공급책들의 진술도 뒤집혔다. 백해룡 경정이 제기한 의혹이 과도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사건에 연루된 세관 직원들도 수년간 겪은 억울함을 주장하고 나섰다.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는 분위기다. “거짓말할 사람은 아닌데….” <일요시사>와 만난 한 경찰의 말이다. 그는 2년 전 서울 영등포경찰서 형사2과장이던 백해룡 경정과 마약 사건을 수사했다. 필로폰 74kg이라는 역대급 성과를 내 기뻐하던 수사팀의 분위기는 침울하다. 실제 누가 외압을 행사했고 개입했는지 의구심을 가지는 경찰도 많았으나 이제는 아니다. 과도한 의혹? 백 경정은 지금까지 마약 수사 외압 의혹 사건이 벌어진 원인으로 윤석열정부 대통령실과 검찰을 지목했다. 직접 노만석 전 검찰총장 권한대행과 통화했던 녹취를 언급하면서 검찰이 사건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백 경정 수사팀에 지휘권이 없는 인사들이 수차례 연락을 취한 점은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와 비교해보면 ‘압력을 넣었다’는 맥락은 일치하지만 누가 압력을 행사했고 어떻게 대통령실과의 접촉 등이 이뤄졌는지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두 사건 모두 용산이 개입한 게 아니냐는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백 경정 팀의 수사에 허점이 있던 걸까? 백 경정이 지휘한 영등포서 마약수사팀이 말레이시아 조직의 마약 유통 과정을 들여다봤던 건 2년 전이다. 당시 수사팀은 “세관의 협조가 있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하고 믿을 수 없었다. 당시 수사팀에 합류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허위 진술이 아니냐고 의견을 개진한 사람도 있었으나 진술이 상당히 구체적이었고, 진술한 당사자가 허위로 진술할 이유도 없었다”고 말했다. 수사팀은 조직원을 데리고 진술 검증을 위해 직접 공항을 찾아가 현장 조사에 나섰다. 조직원들은 공항에서 자신들이 들어온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했고 지원해준 세관 직원들의 얼굴까지 기억했다. 이들은 말레이시아 마약 조직 총책이 미리 준비해둔 옷을 입게 한 뒤 사진을 찍으며 “한국에 있는 보스에게 보내면 사진이 세관에 전달돼 세관 직원들이 옷을 보고 너희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 한국 세관 직원 2명의 사진을 위챗 채팅방에 올렸다. 조직원들은 총책의 말을 믿고 온몸에 마약을 감은 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으로 향했다. 출국 심사는 순조로웠다. 아무런 제지 없이 2023년 1월27일 인천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직원들은 공항에서 세관 직원이 손을 흔들며 인사했고, 이들의 안내를 받아 입국장으로 향했다고 한다. 이들이 탄 대한항공 항공편은 ‘일제 검역’ 대상으로 지정돼있었다. 반드시 검역구역을 통과해야 했는데 세관 측의 도움으로 검역을 거치지 않고 세관 구역으로 빠져나오는 게 가능했다. 영등포서 마약수사팀 의견 통일 안 돼 운반책들 “세관 도움 없었다” 주장 번복 조직원들과 현장 조사까지 마친 수사팀은 세관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지만 관세청은 반대했다. 마약 조직의 허위 진술이라고 판단한 관세청은 영등포서의 브리핑에서 세관이 언급되는 걸 막으려 했던 건 사실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공항에서 말레이시아 유통책들에게 먼저 말을 건네고 이들을 인솔한 혐의를 받는 세관 직원의 경우 입국 당일 연차를 사용 중이었다. 관세청은 그의 GPS와 사진 기록 등을 토대로 실제 다른 지역에 있었음을 객관적으로 확인했다고 한다. 수사팀은 조직원들과 세관 직원들의 금전거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서울남부지검에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으나 “대가를 주고받았다는 구체적 진술이 없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수사팀은 “마약 유통책들은 하부 조직원들에 불과해 조직 총책과 세관 직원들 사이 대가 관계를 구체적으로 진술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수사팀은 다른 가족 명의로 돈을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계좌를 폭넓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봤다. 백 경정은 과거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수사팀이 압수한 마약 총량은 74kg이다. 시가로 2000억원이 넘고 필로폰 단일 적발 압수량으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라며 “서울경찰청 차원에서 ‘세관’이 언급되면 안 된다거나 관련 내용을 삭제하라고 했다”고 강조했다. 백 경정은 당시 서울경찰청 생활안전부장이었던 조병노 경무관과 통화하기도 했다. 조 경무관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 로비 창구로 의심받는 해병대 단톡방 멤버를 통해 인사 청탁한 의혹을 받고 있다. 또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공범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먼트 대표가 언급한 인물이기도 했다. 백 경정은 당시 전화 통화에서 “저도 수사만 하는 사람인데 뭘 알겠나? 수사만 하는 것인데 일하다가 (숨이) 턱턱 막히고 그런다”며 “들리는 얘기들이 ‘대통령실에서 알게 돼 심각하게 보고 있다’ 이런 얘기를 듣고 제가 심적 부담을 얼마나 느끼겠느냐”라고 말하자, 조 경무관은 “대통령실에서 또 연락이 왔나요?”라고 되물었다. 뒤집힌 분위기 백 경정은 같은 달 김찬수 전 영등포경찰서장이 전화를 걸어와 “이 사건 용산에서 알고 있다” “심각하게 보고 있다. 브리핑을 연기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서장은 이후 대통령실 행정관으로 영전하게 된다. 이 같은 여러 압박을 받은 백 경정은 결국 언론 브리핑을 앞두고 보도자료를 수정했다고 토로했다. 마약 수사는 주로 마약 유통·전달책의 첩보로 시작된다. 사정기관에 첩보를 제공하는 이들을 ‘야당’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형량 거래인 ‘플리바게닝’을 통해 허위 사실을 진술할 때가 있다. 베테랑 수사관들도 이들의 주장을 검증하다가 헛수고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경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마약 수사에서 가장 어려운 게 물적 증거가 부족할 때다. 실제 검찰이든 경찰이 국정원의 첩보 또는 야당의 정보에 의존하다가 뒤통수를 맞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백 경정팀에 “세관의 협조가 있었다”고 진술했던 운반책 3명은 최근 급작스레 진술을 뒤집었다. 이들은 검경 합동수사단 조사에서 “세관 직원이 밀수를 도운 적 없다” “오래된 사건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백 경정이 주장해온 의혹의 뿌리가 흔들린 셈이다. 서울동부지검에 구성된 합동수사단도 백 경정이 제기한 의혹을 재검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백 경정 수사팀에 합류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마약 운반책들의 진술에 대해 조금 더 의심했어야 했다. 신중하지 못했던 것 같다”면서도 “그렇다고 백 경정의 판단이 100% 틀렸다고 볼 수도 없다. 수사 과정에서 수상한 부분이 많았던 건 사실 아니냐. 의혹이 말끔하게 해소됐으면 한다”고 했다. 마약 운반책들을 도왔다는 의혹을 받는 인천공항본부 세관 직원은 여러 명이다. 직원 대부분은 백 경정팀 수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우리가 마약 공범? 익명을 요구한 세관 직원 A씨는 <일요시사>에 “공황장애에 걸린 직원도 있고 확실하지도 않은 운반책들의 진술에 대해 ‘사실이지 않느냐’고 따져 묻는 경찰도 있었다. 그 자체가 우리가 범죄자라고 전제한 수사”라며 “2년이 지나도 나오는 게 없지 않나. 운반책들도 진술을 뒤집었다고 하는데 이젠 진상규명이 됐으면 한다”고 토로했다. 마약 운반책들은 백 경정팀 조사에서 세관 직원들이 공항 밖 택시 승강장까지 동행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그러나 진술에서 언급된 날 지목된 세관 직원들은 공항 건물 밖으로 나갔다 오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 출입 기록에도 나오지 않는다. 세관 직원 안내로 바닥에 그려진 ‘그린 라인(초록색 줄)’을 따라 검사를 받지 않고 공항 밖으로 나왔다는 진술에도 의심이 필요하다. 다른 세관 직원 B씨는 “운반책들이 2023년 1월에 그린 라인을 따라서 공항 밖으로 나갔다고 하는데 그린 라인은 그해 5월에야 생겼다. 조금만 유심히 들여다보고 수사했다면 운반책들의 진술 중 거짓말이 있다는 걸 알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관세청 측은 “마약 조직들이 운반책을 안심시키기 위해 세관 직원을 포섭해 놨다고 거짓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혀 왔다. 유엔 국제마약통제위원회(INCB)도 “부정부패에 대한 허위 증언이 마약 단속 공무원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범죄 단속을 위한 노력을 무력화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다만 수사가 진행되자 일부 세관 직원이 휴대전화를 여러 번 초기화한 이유는 오리무중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그때 수사했을 때 직원 폰을 압수해 분석했는데 초기화된 걸 확인했었고 과거 자료가 전혀 없는 상태였다. 해당 직원은 직접 초기화한 후 사설 포렌식 업체에 찾아가 복구가 가능한지 확인하기도 했다”며 “사생활과 관련된 영상이 있다면서 휴대전화를 초기화했다고 주장하다가 세관과 관련된 인사에 대한 의전 영상이 있다면서 말을 바꿨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세관이 마약 운반책들을 뒤에서 은밀하게 도왔다는 의구심이 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 상황에 누가 의심을 안 하겠나”고 강조했다. 세관 직원들 “2년간 범죄자 취급···억울” 휴대전화 초기화는? 수상한 점 여전히 존재 백 경정의 합수단 파견은 본래 지난 14일까지였다. 그러다 전날인 13일, 경찰청은 서울동부지검 합동수사단에 파견된 백 경정의 파견 기간을 돌연 2개월 연장했다. 내년 1월14일까지로 늘린 것이다. 앞서 동부지검은 지난 10일과 12일 두 차례에 걸쳐 대검찰청에 백 경정 파견의 연장과 관련해 협의를 요청한 바 있다. 대검찰청은 동부지검의 요청을 검토한 뒤 경찰청에 연장을 요청했다. 동부지검은 백 경정을 팀장으로 한 별도의 수사팀을 구성했고 본인과 관련 없는 사건을 수사하도록 전결권을 부여했다. 그는 합수단에 합류한 지 약 한 달 만인 이날부터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킥스) 사용 권한을 받아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백 경정의 바람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수사관 4명 중 2명이 원대 복귀했고 인원은 충원되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백 경정은 “두 사람이 파견 기한 만료 전 복귀 의사를 밝혔는데, 파견 만료로 원대 복귀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백 경정에게 “개인 사정이 있어 파견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백 경정은 “계속 수사에 차질을 겪어 왔다. 검찰은 압수수색에 스무명이 넘게 나가는 상황에서 남은 3명이 수사를 이어가겠나”라며 “팀을 꾸렸으면 적어도 수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구성은 갖춰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동부지검 관계자는 “어렵게 파견 인력을 확보했었다”면서 “백 경정의 충원 의사를 대검에 전달했지만 인력은 보내는 쪽인 경찰에서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백 경정과 동부지검 간 갈등은 끝나지 않는 모양새다. 백 경정은 최근 14일 A4 용지 12장 분량의 자체 보도자료를 만들어 개인 명의로 배포했다. 그는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 사용 권한을 받았고 파견도 2개월 연장됐다”면서 “조만간 사건번호를 생성해 수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자신이 주도할 수사 범위에 ▲세관 마약 연루 의혹 ▲검찰의 마약 밀수 사건 은폐 ▲대통령실과 경찰 지휘부의 수사 외압 의혹 등을 포함한다고 했다. 이 중 수사 외압 의혹은 합수단 지휘 책임이 있는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이 지난달 파견 온 백 경정에게 별도 수사팀을 내줄 당시 수사 대상에서 제외한 분야다. 공중분해 위기 지속 영등포경찰서에서 세관 연루 의혹을 캐던 백 경정이 스스로 외압 피해자라 주장하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에 경찰 지휘부 등을 고발한 사건이라 직접 수사하면 공정성 논란이 불거질 우려가 커서다. 동부지검은 백 경정의 보도자료에 대해 “우리와 협의한 내용이 아니며 기존 수사 범위에서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동부지검 관계자는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상 경찰도 자신과 이해관계가 얽힌 사건은 회피하도록 규정돼있다”며 “자신이 당사자인 사건은 수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