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오롯이 ‘나라 위해 사는’ 김영진 전 농림부장관

끊임없는 도전, 그리고 응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인류의 역사는 도전과 응전으로 점철돼있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서 자연의 도전에 대한 인간의 응전이 인간 사회의 문명과 역사를 발전시키는 바탕이 된다고 했다. 개인도 안팎서 덮쳐오는 도전을 극복할 때마다 성장한다. 김영진 전 농림부장관은 도전과 응전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일평생을 바쳤다.
 

<일요시사>는 지난 4일, 서울 여의도의 4·19혁명 UN·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등재 및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사무실서 김영진 전 농림부장관을 만났다. 김 전 장관은 인터뷰서 “도전과 응전, 신앙, 약자, 역사, 초심”이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했다. 그의 삶이 응축된 표현이다. 국회의원, 농림부장관, 대학 석좌교수, 재단 이사장, 기념사업회 위원장 등 김 전 장관은 세상의 부름에 답하지 않은 적이 없다.

빈농의 아들
학비없어 고생

“빈직다사(貧職多事)라는 말이 있습니다.”

김 전 장관은 최근 근황을 묻는 질문에 ‘빈직다사’라고 했다. 직책이 대단치 않지만 일은 바쁘다는 뜻이다. 김 전 장관은 현재 광주대학교 석좌교수, 사단법인 국제사랑재단 대표회장, 사단법인 5·18광주민주화운동/4·19혁명/3·1운동 UN·유네스코 등재 및 아카이브센터 이사장, 사단법인 사랑의 쌀나눔본부 상임대표 등 10여개의 직책을 맡고 있다. 

야인이 되기 전에는 5선 국회의원, 농림부 장관 등의 화려한 명패가 그를 수식했다.


1946년 11월17일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장남이었던 그가 네 동생의 학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우체국 사환으로 1년간 일하며 학비를 벌어 이듬해 강진농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대학 공부의 꿈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이뤄졌다. 가난의 기억은 평생 그가 소외된 사람들에게 헌신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1988년 13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국회에 입성할 때 다짐한 게 있습니다. 크리스천으로서 의회 선교의 작은 심부름꾼이 되겠다, 날 닮은 농민과 소외된 사람들이 이 땅에서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성심을 쏟겠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을 명백히 규명하겠다,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김 전 장관은 1988년 4·26총선서 평화민주당 소속으로 전남 강진·완도군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의 국회 입성 과정은 광주서 시작됐다. 1980년 5월 광주는 핏빛으로 물들었다. 시민들은 거리로 나왔고 이 과정서 희생이 잇따랐다. 계엄군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시민을 상대로 총구를 들이밀었다.
 

자식 잃은 부모들이 통곡했고 부모를 여읜 아이들은 울부짖었다. 하지만 1981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1주기 추모식은 진행되지 못했다. 유족들은 집에서도 제사를 지내지 못해 다른 지역의 사찰로 도망치듯 떠났다가 2∼3일 후 숨죽여 돌아왔다. 그만큼 냉혹한 시절이었다.

당시 한국기독청년협의회(EYC) 회장이던 김 전 장관은 전남도청 앞 YMCA서 5·18광주민주화운동 2주기 추모예배를 계획했다. 그는 추모예배 당일까지 당국의 눈을 피하기 위해 후배 집, 교회, 사찰 등을 전전했다.

그가 붙들리면 추모예배는 영락없이 실패로 돌아갈 상황이었다. 2000명이 운집한 추모예배에 나타난 김 전 장관은 “광주의 죄 없는 양민을 학살한 전두환 정권을 처단해야 한다”고 외쳤다. 이후 그는 투옥됐다.


민주화운동
두 번 투옥

두 번째 구속은 야간통행 금지제도 해제 운동 때문이다. 1980년 초에는 밤 12시부터 오전 4시까지 4시간 동안은 말 그대로 돌아다닐 수 없었다. 종교활동은 물론이고 생계와 직결되는 논이나 밭에 문제가 생겨도 나갔다가 붙들리면 유치장 신세를 져야 했다. 인권 의식이 바닥을 치던 때였다.

“야간통행 금지제도는 농민의 생존권과 종교의 자유를 침해했습니다. 반드시 없어져야 할 제도였습니다.”

1980년대부터 농가에 비닐하우스 재배가 퍼졌다. 문제는 비닐하우스가 자연재해에 약하다는 점이었다. 눈이 오면 쓸어내고 바람이 불면 붙잡아야 했다. 제때 그러지 못하면 비닐하우스가 주저앉거나 날아가 한 해 농사를 망치기 일쑤였다. 김 전 장관이 재해대책피해 관련 법안을 발의하기 전까지 피해는 오롯이 농가의 몫이었다.

또 그는 언제, 어디서든 종교의 자유를 표현하기 위해서라도 야간통행 금지제도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전 장관은 3페이지 분량의 청원서를 만들어 교회 등에서 강연하고 국회우체국을 통해 국회의장에게 1000통가량을 보내는 등 운동을 지속했다. 

계엄사령부는 그런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김 전 장관은 입에 재갈이 물리고 눈에 딱지를 붙인 채 기절해 광주 계엄사 분실에 끌려갔다.

그는 발가벗겨진 채 2.3㎡(0.7평) 크기의 방에서 눈을 떴다. 계엄사령부는 그에게 통금 해제 운동의 배후를 물었다. 김 전 장관은 “자금을 받은 일도 없고 배후도 없다”고 반복해 말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백열등은 머리 위에서 작열하고 두들겨 맞고 대화는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고. 김 전 장관은 당시 말 그대로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고 토로했다.

그때 김 전 장관의 귓가에 찬송가가 들렸다. 그의 어머니가 교인들을 이끌고 분실 앞에서 찬송가를 부르고 있던 것이다. 농민들도 합세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노랫소리는 높아졌다. 계엄사령부는 김 전 장관에게 ‘분실서 있었던 일을 발설하지 않고, 통금 해지 운동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쓰라고 강요했다. 

김 전 장관은 이를 거절했다. 분실 앞을 찾는 지역 농민의 수가 점차 불어나자 계엄사령부는 그를 무죄 방면하기에 이른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일평생
세상이 부르면 “나는 간다”

“신앙으로 훈련된 일꾼, 약자인 농민이나 서민들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게 제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김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에 끌려가 한 저항은 빠른 속도로 지역 사회에 퍼져 나갔다. 다시 일터로 돌아간 그는 어느 날 지역 농민 대표, 교인 대표 등의 방문을 받는다. 이들은 믿을 만한 사람을 한 명 뽑아서 국회로 보내기로 했다고 전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을 말하는지 몰랐던 김 전 장관은 신협 조합원들과 함께 동참하겠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그리고 지역 대표들이 자신을 지목했을 때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저는 한 번도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기도해 본 적 없었습니다. 저는 못 합니다.”

그러나 지역 대표들은 거듭 김 전 장관을 찾아왔다. 그는 고민 끝에 출마를 결심했다. 당시 평화민주당 김대중 총재의 공천을 받아 그는 전남에 출마했다. 그의 상대는 전두환·노태우씨의 육사 11기 동기였고, 재선 국회의원인 민주정의당 김식 전 의원이었다. 모두 상대가 너무 강하다고 했지만 개표함을 열어보니 김 전 장관의 승리였다. 
 

호남 출신 고졸 정치인의 등장이었다.

김 전 장관의 초선 시절 활약은 엄청났다. 그는 13대 국회서 부활한 국정감사의 스타였고,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상 규명을 위한 ‘광주청문회’서 활약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이해찬 전 총리가 김 전 장관과 함께 광주청문회서 활약했다. 김 전 장관은 저수지서 멱을 감다 총에 맞은 소년들의 사진을 내밀며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노무현과
청문회 스타

1980년 5월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이후 1988년 청문회가 열릴 때까지 광주는 폭도들의 도시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채였다. 계엄군에 저항하다 사망한 시민들이 묻힌 망월동은 저주의 땅으로 불렸고 사람들은 그곳에 침을 뱉었다. 광주청문회는 국회의 정부 비판과 견제, 감시 기능을 되살리고 정의를 확립하는 기점이 됐다.

“아무리 굳은 결심을 해도 도전을 받게 마련입니다. 정치를 하는 동안 제게 찾아왔던 큰 도전은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이었습니다.”

그는 초선부터 14대, 15대, 17대까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수산 위원회) 상임위원으로 활동했다. 일반적으로 2년에 1번, 전반기와 후반기 상임위를 바꿀 수 있음에도 김 전 장관은 4선을 하는 동안 농수산 위원회에만 있었다. 

상임위를 정할 때 원내대표실에 희망 상임위를 3개 적어 내는데, 그의 1∼3지망은 늘 농수산위원회였다.

그가 농수산 위원회서 활약할 때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문제가 불거졌다. 협상의 핵심 쟁점은 쌀 시장 개방이었다. 총 농민의 90%가 쌀이라는 단일품목에 생계를 걸고 있던 때였다. 쌀 시장 개방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김 전 장관은 스위스 제네바로 넘어갔다. 

그는 한글과 영어로 ‘미국은 람보식 수입 개방 압력을 당장 중단하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거세게 항의했다.

김 전 장관은 미국 대표를 붙들고 대화를 시도했으나 여의치 않자 다른 방법을 모색하기에 이른다. 그때 나온 방법이 삭발식과 단식 투쟁이다. 그는 머리를 밀고 물과 소금만으로 15일을 버텼다. CNN, NHK 등 외신을 통해 김 전 장관의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 농민들이 제네바로 날아와 그에게 힘을 보탰다. 

통역을 위해 제네바에 온 장정애씨도 함께 머리를 밀고 김 전 장관의 곁에 앉았다.

한국서 온 국회의원이 머리를 깎고 단식투쟁을 하는 모습은 국내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쳤다. 김 전 장관의 행동은 각국 의원들이 모여 만든 연맹의 저항으로 발전했다. 

김 전 장관은 NHK 등 외신과의 인터뷰서 “한국과 제3세계 농민의 생존권을 짓밟는 협상은 인류 공영과 세계 평화라는 UN의 지상 목표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투쟁의 결과는 한국의 쌀 관세화 유예조치로 나타났다.

“어느 날인가 보좌관이 코앞에 봉투를 들이 밀었습니다. 생선 냄새가 강하게 올라왔습니다. 제 지역구 완도군 어민이 생선을 잡아다 판 돈 중 3000원을 봉투에 넣어 후원금으로 낸 겁니다. 물고기 잡는 어민이 저한테 의정활동 잘하라고 격려 차원서 보내주신 돈이죠.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농수산 위원회 외길을 걸었던 김 전 장관은 2003년 노무현정부서 초대 농림부장관으로 발탁됐다. 노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은 민주화 운동 동지이자 ‘야자 트는’ 친구 사이였다.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당시 제네바서 단식투쟁을 하던 김 전 장관에게 노 전 대통령은 수차례 전화로 응원을 전했다고 한다.

김 전 장관은 농림부장관 재직 당시 노 전 대통령에게 “북한 어린이들은 피골이 상접해 있다. 3∼4세 때 영양 공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설령 성인이 된다 해도 인간 구실을 못한다”며 북한에 쌀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반대가 있긴 했지만 결국 그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쌀 300만석이 북한으로 전달됐다.

약자 보듬고 역사 관심
소외된 사람들에 헌신

“새만금 사업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국민적 합의가 도출된 국책사업이었습니다. 그런 대형 사업이 법원의 결정으로 중단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주무장관인 제가 나서야 했습니다.”

김 전 장관의 장관 재임 기간은 채 5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그는 법원서 새만금 사업 중단을 결정하자 이에 항의하는 뜻에서 사퇴를 결심했다. 노 전 대통령은 그에게 사퇴 의사를 철회하라고 권고했지만 김 전 장관은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장관직서 물러난 그는 새만금 친환경개발 범국민협의회를 만들어 활동을 이어 나갔다. 대법원은 2006년 새만금 사업의 ‘계속 추진’ 판결을 내렸다.
 

5선 국회의원과 장관직을 뒤로 한 김 전 장관이 최근 몰두하고 있는 것은 북한 어린이 돕기 운동과 5·18 광주민주화운동/4·19혁명/3·1운동 UN·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 추진이다. 

대표회장을 맡고 있는 국제사랑재단은 그가 농림부장관 재직 당시 쌀 북송과 궤를 같이 한다. 북한 아이들의 고난에 동참하는 기도를 하면서 가족 단위별로 한 끼를 금식하고, 그 금액을 모아 이유식이나 분유, 빵 등을 구입해 북한으로 보내는 것. 올해로 11회째를 맞았다.

김 전 장관의 기록유산 유네스코 등록 추진 여정은 2008년 18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교육위원회)서 시작됐다. 광주 서구을서 당선된 그는 상임위를 교육위원회로 정했다. 

지역구 여론조사 결과 지지자들이 그가 교육위원회서 활동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아태지역 국회 교육위원 야당 중진 자격으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찾았다가 유네스코 등재 기록유산에 한국 관련 자료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5·18광주민주화운동, 4·19혁명, 3·1운동이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등재돼있지 않다는 사실에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신청조차 돼있지 않았다는 사실에는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습니다.”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는 2년에 한 번 각국서 들어온 자료를 검토해 선정한다. 그는 고심 끝에 가장 최근에 일어난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먼저 등재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광주시민들에게 당시의 자료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그 결과 수만 점의 자료가 모였다.

“광주여고 1학년 주소연양이 쓴 일기장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광주시민은 폭도가 아닙니다. 저는 엄마, 아빠, 오빠들과 함께 인간 띠를 만들어 밤새 광주은행을 지켰습니다. 광주시민은 폭도가 아닙니다’ 그 일기장 끝부분에 눈물자국이 배어 있습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록유산 등재를 반대하던 나라도 주소연양의 일기 구절에 마음을 돌렸다. 현재 4·19혁명은 영문 번역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 전 장관은 4·19혁명이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등재되면 5·18광주민주화운동처럼 아카이브를 크게 만들어 국민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우리 역사를 알리고 싶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3·1운동까지 기록유산에 등재되면 그가 생각하는 한국 근현대사의 3대 민족민주화평화운동이 모두 유네스코에 올라가는 셈이다.

기록유산 등재
3·1운동까지

평생 신앙과 약자 그리고 역사라는 세 가지 초심을 지키며 살아온 김 전 장관의 목표는 소박했지만 여전히 사회의 부름에 목말라 있었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뭐가 돼야겠다는 생각은 지금도 전혀 없습니다. 그저 앞으로 제 건강이 허락하는 한 사회가 저를 부를 때 어디든지 가서 어떤 역할이든 감당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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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로 열린 윤영호 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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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를 둘러싼 정치권 로비·금품 제공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이른바 ‘통일교 특검’이 본궤도에 올랐다. 여야는 통일교의 정치권 금품 지원 의혹 수사를 위한 특별검사법을 각자 발의한 뒤 협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문진석 원내운영수석부대표와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김은혜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지난 22일 국회에서 만나 이같이 합의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31일 “2차 종합특검, 통일교·신천지 특검(법의 국회 통과)을 설(내년 2월17일) 연휴 전에 반드시 마무리짓겠다”고 밝혔다. 정치인 줄줄이 특검 수사의 초점은 정치인 개개인의 비위 여부를 넘어, 통일교가 어떻게 조직적으로 정치권에 접근해 정책·인사·사업에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를 살펴볼 예정이다. 그 과정에서 불법 정치자금이나 뇌물 제공이 있었는지 여부도 핵심이다. 수사선상에는 통일교 지도부와 핵심 실무 라인은 물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실명이 거론된 정치권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종교의 이름’으로 포장된 정치 로비의 실체가 드러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특검은 출범과 동시에 통일교 내부 자금 흐름과 의사결정 구조를 정밀 추적하고 있다. 수사의 출발점은 통일교 고위 간부였던 윤영호 전 세계본부장의 진술과 관련된 자료다. 윤 전 본부장은 검찰·경찰 조사 과정에서 “정치권 인사들에게 현금과 고가 물품이 전달됐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이 진술의 신빙성을 가리기 위해 통일교 본부 및 산하 단체 회계, 자금 집행 내역, 내부 문건을 대거 확보해 분석 중이다. 통일교 측은 “조직 차원의 불법 지시는 없었다”며 일부 인사의 개인적 일탈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으나, 특검은 지도부 보고·승인이 있었는지 여부를 핵심 쟁점으로 보고 있다. 이번 특검이 주목받는 이유는 수사의 외연이 정치권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와 수사 과정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 소속 전·현직 의원, 광역단체장, 정부 인사들의 이름이 잇따라 등장했다. 민주당에서는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 임종성 전 의원, 강선우 의원,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의 이름이 언론 보도에서 거론됐다. 국민의힘 계열에서는 권성동 의원, 김규환 전 의원 등이 수사 관련 기사에 등장했다. 이들 대부분은 “금품을 받은 사실이 없다”거나 “통일교와의 접촉은 공식 행사 차원이었다”며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특검은 진술과 물증을 대조해 사실관계를 가려내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계열에서 가장 먼저 거론된 인물은 전 전 장관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는 2018년 전후 통일교 고위 인사로부터 현금 또는 고가 물품을 받았다는 취지의 진술이 수사 과정에서 나왔다. 여야 각자 특검법 발의 후 협의키로 여야 막론 정교 유착 전모 밝혀지나 해당 의혹은 윤 전 본부장의 진술을 통해 처음 알려졌고, 이후 경찰과 특검이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핵심 쟁점은 실제 금품 전달 여부와 함께, 당시 전 전 장관의 직무와 관련된 대가성이 있었는지 여부다. 전 전 장관은 관련 보도 직후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이 없다”며 의혹을 부인해 오고 있다. 같은 당의 임 전 의원 역시 통일교 정치권 로비 의혹 명단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의 경우 구체적인 금액이나 전달 시점이 특정되지는 않았지만, 통일교 측이 “여야 정치인 다수에게 자금을 전달했다”는 취지로 진술하는 과정에서 실명이 언급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부 매체는 특검이 임 전 의원을 포함한 인사들에 대해 소환 조사 가능성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쟁점은 통일교와의 관계가 단순한 접촉 수준이었는지, 아니면 정치자금법 위반에 해당하는 금품수수로 이어졌는지다. 임 전 의원 역시 불법 자금 수수 의혹을 부인하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보도됐다. 강 의원은 금품수수보다는 ‘접촉·관리 대상’ 의혹으로 이름이 거론됐다. 보도된 통일교 관계자 간 통화 녹취 또는 내부 언급에서 강 의원의 이름이 등장했다는 내용이 전해지면서다. 해당 보도들은 통일교 측이 정치권 인사들을 분류·관리하며 접근 전략을 세웠다는 의혹을 전하는 맥락에서 강 의원을 언급했다. 현재까지 강 의원과 관련해 현금이나 물품 제공 정황이 확인됐다는 보도는 없다. 그는 통일교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전면 부인했다. 노 전 실장 역시 통일교 인사 간 통화 녹취 또는 내부 문건에서 이름이 언급됐다는 언론 보도로 연관 의혹이 제기됐다. 그의 경우도 금품수수 의혹보다는, 통일교가 ‘영향력 있는 정치·권력 인사’로 인식하고 접촉을 시도했는지 여부가 쟁점이다. 노 전 실장 측은 통일교와의 불법적 관계나 금품수수는 없었다는 취지로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계열에서는 권 의원이 통일교 특검 국면에서 가장 무겁게 거론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통일교 측이 권 의원에게 정치자금 또는 현금 성격의 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정치자금법 위반 여부를 들여다보는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일부 매체는 압수수색이나 계좌 추적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권력 과시 여야 통일? 쟁점은 자금이 실제로 전달됐는지, 전달됐다면 정치자금으로 신고됐는지, 그리고 대가성이 있었는지 여부다. 권 의원 측은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하고 있다. 김 전 의원은 통일교 측이 관리·접촉 대상으로 삼았던 정치인 명단 관련 보도에서 이름이 등장했다. 그의 경우도 구체적인 금품 전달 사실이 확인됐다는 보도보다는, 통일교 내부에서 ‘정치권 접점 인사’로 분류됐다는 정황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수사기관은 통일교 자금과의 실질적 연결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김 전 의원 역시 불법 자금 수수 의혹을 부인했다. 이들 사례를 시기별로 정리하면 공통적인 흐름이 드러난다. 2018년 전후 통일교 내부에서 정치권 로비를 담당하는 실무·재정 라인이 가동됐다는 진술이 나오고, 2022년 이후 통일교 지도부 관련 사건이 불거지면서 과거 정치권 접촉 내역이 재조명됐다. 2024~2025년에는 경찰 수사와 특검 출범을 계기로 통일교 고위 인사 진술, 녹취, 내부 문건 일부가 언론에 공개되며 정치인 실명 보도가 잇따랐다. 의혹의 유형을 나누면 세 가지로 첫째, 전재수·권성동처럼 현금 또는 정치자금 성격을 띤 자금 제공 의혹이 직접 제기된 경우다. 둘째, 임종성처럼 통일교 측 진술에서 ‘자금 전달 대상’으로 언급됐으나 구체성이 아직 부족한 경우다. 셋째, 강선우·노영민·김규환처럼 통일교 내부 녹취나 문건에서 ‘접촉·관리 대상’으로 거론된 경우다. 특검은 이 세 유형을 종합해 통일교의 정치권 접근이 우발적이었는지, 아니면 계획적·조직적이었는지를 판단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특검의 법적 판단은 몇 가지 체크 리스트에 따라 갈릴 가능성이 크다. 통일교 자금 또는 물품이 실제로 정치인 또는 그 측근에게 전달됐는지에 대한 물증(계좌 흐름, 현금 출처, 구매 내역)이 확보되는지 여부다. 줬다는데 안 받았다 또 해당 정치인의 직무와 관련된 청탁이나 편의 제공 요구가 있었는지, 즉 대가성이 입증되는지다. 이어 자금이 개인 차원의 일탈이 아니라 통일교 지도부 또는 조직의 승인·묵인 아래 이뤄졌는지 여부다. 또 정치자금으로 볼 경우 신고 누락이 있었는지, 뇌물로 볼 경우, 공소시효와 구성요건을 충족하는지 여부다. 현재까지 통일교 특검에서 거론된 정치인들과 관련한 보도는 모두 ‘의혹 제기’ 또는 ‘수사 진행 상황’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특검이 이 사안을 개별 정치인의 문제로 보지 않고, 종교단체가 정치권을 상대로 벌인 장기적 로비 구조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추가 소환과 기소 여부에 따라 파장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크다. 통일교 특검이 향하는 끝이 어디인지, 그리고 정치권 전반의 신뢰 문제로까지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특검 수사의 또 다른 축은 대통령 배우자인 김건희씨를 둘러싼 고가 선물 수수 의혹이다. 통일교 측이 명품 가방과 귀금속 등을 전달하며 각종 편의를 기대했다는 의혹이다. 이 사안은 정치인 대상 로비와는 별도의 트랙에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다만 특검은 통일교 지도부가 동일한 자금·조직 라인을 활용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며, 두 사건을 구조적으로 연결해 보고 있다. 특검이 들여다보는 ‘로비 방식’은 전통적인 봉투 전달에 국한되지 않는다. 통일교 및 연계 단체들은 국제회의, 평화 포럼, ‘평화대사’ 위촉 행사 등을 통해 정치인과의 접점을 넓혀 왔다. 문제는 이 같은 공식 행사 뒤편에서 현금·물품 제공이나 정치적 대가성 요구가 있었는지다. 특검은 행사 전후 일정, 면담 기록, 수행 인력 동선, 통신 기록 등을 종합 분석해 접촉의 성격을 규명하고 있다. 특히 정치자금법상 신고되지 않은 후원이거나, 직무 관련성이 인정될 경우 청탁금지법·뇌물죄 적용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정치권의 반응은 엇갈린다. 여야 모두 ‘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파장 관리에 고심하는 기류가 역력하다. 하나같이 “접촉은 공식 행사 차원” 레퍼토리 반복···한 입서 나온 증언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불법이 있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원칙론을 내세웠다. 여권과 야권 일각에서는 “특검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경계론도 제기된다. 그러나 특검 수사 대상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확대되면서, ‘편파 수사’ 논란은 힘을 잃는 분위기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특검의 성패가 ‘대가성 입증’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단순한 친분 관계나 종교 행사 참석만으로는 처벌이 어렵고, 금품 제공과 구체적 직무 행위 사이의 인과관계가 입증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자금법 위반의 경우 공소시효 문제도 변수로 작용한다. 특검이 초기부터 강제수사에 나선 배경에는 이 같은 시간적 제약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통일교 특검은 한국 정치사에서 반복돼온 ‘종교-정치 유착’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종교의 자유와 정치의 독립성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어디에서 충돌하는지, 그 경계선을 명확히 그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수사가 개인 처벌에 그칠지, 아니면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통일교 특검이 던진 질문은 “정치가 누구의 돈과 조직에 의해 움직였느냐?”다. 특검의 칼끝이 어디까지 향할지, 그 결과가 한국 정치의 신뢰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편, 핵심 피고인·피의자로는 통일교 지도부(한학자 총재)와 통일교 고위 간부(윤영호 전 세계본부장) 등이 거론된다. 한 언론은 특별검사팀 발표를 인용해 한 총재가 통일교 자금의 유용 및 증거인멸 지시, 정치자금법 위반·뇌물 등 혐의로 기소됐고, 김건희(전 영부인)씨 및 권 의원(국민의힘) 등에게 전달된 것으로 의심되는 금품·자금이 수사의 초점이라고 전했다. 특히 보도에 따르면, 통일교 측은 2022년 1월 권 의원에게 1억원을 제공했다는 의혹, 2022년 7월 김씨에게 명품 등을 제공했다는 의혹 등이 ‘수사기관 주장’으로 적시돼있으며, 당사자들은 부인 취지 입장을 밝혀왔다. 로비 자금의 ‘규모’ 논란을 키운 장면은 통일교 핵심 시설(가평 천정궁) 압수수색 과정에서 거액 현금이 발견됐다는 보도였다. <MBC>는 특검 압수수색 당시 한학자 총재 개인 금고에서 외화 포함 약 280억원 상당 현금이 확인됐다며, 이 돈이 통일교 회계와 별개로 관리된 자금이라는 점 때문에 ‘정치권 로비 자금’ 의심이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여기에 2022년 지방선거 전후 ‘정치 후원금’ 형태의 지원 의혹으로는, 법정 진술을 인용해 유상범 의원(국민의힘), 백경현(경기 구리시장), 김진태(강원도지사) 등의 이름과 액수가 거론됐다고 알려졌다. 또 나온 김건희 통일교 로비 의혹의 ‘작동 방식’으로 자주 지목되는 것은 산하·연계 조직의 외피를 통한 접점 확보다. 예컨대 UPF(천주평화연합) 같은 NGO 성격 단체가 각종 국제 행사(월드서밋 등)를 주최하고, ‘평화대사’ 위촉 등으로 정치인·지자체 관계자·지역 인사들과의 네트워크를 확장해 왔다는 설명이 반복된다. UPF가 권역을 나눠 주요 인사를 접촉·관리하는 구조였다는 의혹을 전하며, 자금 집행과 조직적 접촉이 실제 정치자금 제공이나 청탁과 연결됐는지가 수사의 핵심이라고 짚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