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질공원여행 ①충남 태안해안국립공원

수만 년의 시간과 바다, 바람이 만든 작품

서해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태안해안국립공원은 다양한 지질 환경을 갖춰 자연 학습장으로도 손색이 없다. 구불구불한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해안사구와 울창한 소나무 숲이 이어진다. 수평선 너머로 아득하게 지는 노을은 여행자에게 주는 또 다른 선물이다.

태안해안국립공원은 1978년 우리나라 13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전체 면적 37만7019㎢, 태안반도와 안면도를 남북으로 아우른 해안선이 230km에 달한다.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27개 해변은 저마다 독특한 풍광을 자랑한다. 드넓은 갯벌과 사구, 갖가지 기암괴석과 크고 작은 섬도 서해의 아름다운 경관을 느끼게 해준다.

곰솔·해송 산책로

태안해안국립공원을 가장 알차게 돌아보는 방법은 7개 코스로 된 태안해변길을 따라 걷는 것이다. 1코스 ‘바라길’은 학암포-신두리(12km, 약 4시간 소요), 2코스 ‘소원길’은 신두리-만리포(22km, 약 8시간 소요), 3코스 ‘파도길’은 만리포-파도리(9km, 약 3시간 소요), 4코스 ‘솔모랫길’은 몽산포-드르니항(16km, 약 4시간 소요), 5코스 ‘노을길’은 백사장항-꽃지해변(12km, 약 3시간40분 소요), 6코스 ‘샛별길’은 꽃지해변-황포항(13km, 약 4시간 소요), 7코스 ‘바람길’은 황포항-영목항(16km, 약 5시간 소요)을 잇는다. 


태안해안국립공원이 보여주는 가장 큰 지질학적 특징은 해안사구다. 해안의 모래가 북서 계절풍에 밀려 조금씩 육지 쪽으로 이동하다가 식물 같은 장애물에 걸려 오랜 기간 쌓여서 만들어진다. 육지에서 볼 수 없는 경관과 특색 있는 식물 덕분에 생태적 중요성이 크다. 해안사구는 해안 지역을 지켜주는 자연 방파제 역할도 한다. 
태안해안국립공원에는 크고 작은 해안사구 23개가 형성됐는데, 이를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곳이 태안해변길 5코스 ‘노을길’이다. 특히 삼봉해변에서 기지포해변까지 이어지는 구간에 해안사구가 발달했다. 이 지역은 태안해안국립공원의 해안사구 복원 구역으로, 육지와 해변을 콘크리트 제방이 아니라 부드럽고 완만한 모래언덕이 나눈다.


삼봉해변에서 ‘사색의 길’이라 불리는 곰솔 숲길을 지나면 기지포해변에 닿는다. 곰솔은 잎이 곰 털처럼 거칠다고 붙은 이름이다. 이 구간에는 해안사구 위에 탐방로가 조성됐고, 사색의 길에는 30여m 높이로 자란 곰솔 수천 그루가 터널을 이룬다. 짙은 숲 그늘을 걸으면 온몸이 상쾌해진다. 
길은 기지포해변에서 두 갈래로 나뉜다. 안쪽은 모래 숲길이고, 바깥쪽은 나무 데크다. 휠체어와 유모차가 다닐 수 있도록 배려한 무장애 탐방로다. 길이가 1004m라서 ‘천사길’로 불린다. 기지포해변의 해안사구는 과거에 가장 많이 훼손된 지역이 빠른 속도로 복원되어 더 의미 있다. 길을 걷다 보면 해안사구가 쓸려 내려가는 걸 방지하기 위해 대나무 말뚝을 촘촘히 박아 설치한 모래 포집기가 눈에 띈다.



탐방로를 따라가면 해안사구에 어떤 동식물이 사는지 알려주는 안내판이 설치되었다. 기지포 해안사구에는 갯완두, 갯쇠보리, 갯그령, 갯메꽃, 좀보리사초, 통보리사초, 순비기나무, 갯방풍, 모래지치 같은 식물과 멸종 위기종 표범장지뱀이 산다고 한다. 기지포는 해변에 자리한 마을 모습이 베틀을 닮았다고 붙은 이름이다.


일반인에게 가장 잘 알려진 해안사구는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천연기념물 431호)일 것이다. 무려 1만년 동안 만들어진 해안사구로, 전체 길이 3.4km에 가장 높은 곳은 19m나 된다. 수십년 전만 해도 신두리 해안사구는 쓸데없는 모래밭에 지나지 않았으나, 1990년대 말부터 한반도에서 보기 드문 사막 지형으로 알려지며 관심을 끌었다. 1990년대 초반에는 트럭이 공사용 모래를 쓸어 담을 정도였다고 한다.

한반도 내 사막지형 신두리 해안사구
멸종위기종 금개구리, 표범장지뱀 등 서식

신두리 해안사구는 생명의 보고다. 갯방풍과 갯메꽃, 갯그령 등이 척박한 모래땅에 뿌리를 내리고 산다. 멸종 위기종 금개구리와 표범장지뱀, 노랑부리백로(천연기념물 361호) 등 보존 가치가 높은 동물도 서식한다. 2001년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로 지정했고, 이듬해엔 해양수산부가 사구 주변의 바다를 ‘해양 생태계 보전 지역’으로 정했다.


몽산포해변에도 해안사구가 있다. 해변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백사장과 그 뒤에 울창한 송림으로 유명하다. 예부터 해풍을 막기 위해 심은 소나무라고 한다. 오토캠핑장이 있고, 썰물 때면 길이 3km 갯벌이 펼쳐져 체험 여행지로 인기다. 눈앞의 바다 위로 올망졸망하게 솟은 무인도의 풍광도 운치 있다. 해변 뒤쪽으로 66 만1000㎡가 넘는 솔밭이 펼쳐진다. 


태안에는 봄 여행을 즐기기 좋은 곳이 많다. 신두리 해안사구에서 가까운 천리포수목원은 국내 최초의 민간 수목원이다. 1979년에 귀화한 독일계 미국인 고 민병갈(본명 칼 밀러) 설립자가 일궜다. 30 년 넘도록 식물 관련 전공자와 회원에게 입장을 허용하다가, 지난 2009년부터 일반인에게 개방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식물 종류를 보유한 곳으로, 국내 자생종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수집한 희귀 수목도 만날 수 있다. 습지원, 수국원, 호랑가시나무원, 암석원, 작약원 등 테마 정원을 갖췄다.


떠들썩한 포구의 정취가 느껴지는 백사장항은 꽃게와 대하의 집산지다. 백사장항과 드르니항을 잇는 대하랑꽃게랑인도교가 볼 만하다. 2013년에 개통한 이 다리는 길이 250m로, 나선형 진입로가 눈길을 끈다.
태안을 대표하는 풍경은 꽃지해변의 일몰이다. 꽃지 낙조는 전북 부안군 채석강, 인천 강화군 석모도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일몰로 꼽힌다. 붉은 햇덩이가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 사이로 떨어질 때, 커다란 해가 온 세상을 삼킬 듯 붉게 물들이며 사라지는 장면은 아름답다 못해 장엄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해변에는 오후 5시쯤이면 노을을 즐기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든다. 꽃지는 ‘꽃이 많이 피는 곳’이라는 뜻으로, 화지(花地)라고도 한다. 할미바위에는 전설이 있다. 신라 때 장보고의 부하 장수로 안면도를 지키던 승언이 갑자기 북방으로 발령이 나서 떠났는데, 아내 미도가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 할미바위가 됐다는 것이다. 



천수만을 바라보고 서 있는 안면암에도 가보자. 1998년에 지었으며, 3층 높이 대웅전이 웅장하다. 선원과 불경 독서실, 삼성각, 용왕각, 불자 수련장 등을 갖췄다. 절 앞 부교를 따라 천수만에 있는 여우섬과 조구널섬까지 걸어갈 수 있다. 

충남 향토음식 ‘우럭젓국’

태안을 대표하는 음식은 간장게장이다. 질 좋은 꽃게가 많이 잡히는 덕분에 꽃게장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간장게장과 함께 태안의 대표적인 밥도둑이 우럭젓국이다. 우럭은 예부터 서해안에서 많이 잡혔는데, 냉동 시설이 좋지 않던 시절에는 우럭을 소금에 절여 말렸다. 대가리와 뼈로 국물을 우리고 꾸덕꾸덕하게 마른 우럭과 두부, 무를 넣어 끓인 우럭젓국은 개운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삼봉해변-기지포해변 탐방→신두리 해안사구→천리포수목원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태안해변길 5코스 ‘노을길’→백사장항→꽃지해변 일몰 
[둘째 날] 신두리 해안사구→천리포수목원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오감관광(태안군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www.taean.go.kr/tour.do
- 국립공원관리공단 www.knps.or.kr
- 천리포수목원 www.chollipo.org
- 안면암 www.anmyeonam.org  

문의 전화
- 태안군청 문화체육관광과 041)670-2766 
- 태안해안국립공원 041)672-9737
- 천리포수목원 041)672-9982
- 안면암 041)673-2333

대중교통 정보
[버스] 서울-안면도,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하루 4회(07:30~17:50) 운행, 약 2시간20분 소요. 서울남부터미널에서 11회(06:40~16:00) 운행, 3시간10분~3시간30분 소요. 
*문의: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 0114 고속버스통합예매 www. hticket.co.kr 서울남부터미널 1688-0540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자가운전
경부고속도로→평택화성고속도로→서해안고속도로 홍성 IC→내포로→천수만로→안면대로→삼봉해수욕장 방면→기지포해변   

숙박 정보
- 해송향기펜션: 안면읍 밧개길, 010-3303-0633, http://drama1212.cafe24.com
- 해랑펜션: 고남면 옷점길, 041)673-9995, www.haerang.co.kr
- 리솜오션캐슬: 안면읍 꽃지해안로, 041)671-7000, www.resom.co.kr  

식당 정보
- 토담집(우럭젓국): 태안읍 동백로, 041)674-4561
- 이원식당(박속낙지탕): 이원면 원이로, 041)672-8024
- 원풍식당(박속낙지탕): 원북면 원이로, 041)672-5057
- 화해당(간장게장): 근흥면 근흥로, 041)675-4443, www.hwahaedang.com


주변 볼거리
바람아래해수욕장, 안면도자연휴양림, 안면도쥬라기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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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