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 세태> ‘학습지 푸는’ 어른들 천태만상

퇴근하고 문제 푸는 재미에 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말은 시대상을 반영한다. 시대 변화에 따라 용어는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한다. 가끔씩 사용되던 용어가 상황에 따라 재등장하는 사례도 심심찮다. 일과 생활의 조화를 뜻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 한 예다. 최근 ‘돈보다 워라밸’을 외치는 직장인이 늘면서 시대의 트렌드로 떠올랐다. 직장인의 워라밸에 대한 욕구는 다양한 시장에 침투 중이다.
 

많은 사람에게 최고의 가치는 여전히 ‘돈’이다. 경기 불황이 지속되고 취업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돈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는 더욱 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전과 차이라면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을까’ 고민하던 게 ‘어떻게 하면 돈을 잘 쓸 수 있을까’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녁 있는 삶

야근이나 주말 근무를 불사하고라도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의 목표는 대개 내 집 장만, 결혼 자금, 학자금 등이다. 수입을 모아 만든 목돈으로 원하는 것을 얻겠다는 장기 계획은 오랫동안 직장인의 보편적인 목표였다.

하지만 최근 조금씩 다른 기류가 나오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매일 9시까지 야근해야 하지만 월급을 많이 주는 일’ vs ‘매일 6시 정시 퇴근이지만 월급이 적은 일’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경우가 있다. 

돈이나 여유 중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지만, 요즘에는 월급이 조금 적더라도 저녁시간을 쓸 수 있는 후자를 선택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추세다.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의 등장이다. 워라밸은 일과 생활이 조화롭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원래 일하는 여성에 한정돼 사용됐지만 요즘에는 남녀, 기혼, 미혼을 불문하고 모든 노동자를 대상으로 발전했다.

워라밸 욕구 커지면서
직장인 취미 다양해져

워라밸에 대한 직장인의 욕구는 상당한 수준이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 93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직장인의 58.3%가 워라밸이 좋다면 연봉이 낮아도 이직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워라밸에 대한 선호도는 아르바이트생들에게서도 나타났다.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천국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60.1%가 월급이 낮더라도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선호한다고 했다.

직장인과 구직자의 워라밸 선호 현상은 기업 문화를 바꾸고 있다. 
 

국회가 지난달 28일 1주일 최대 근로시간을 68시간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제도적 장치도 만들어졌다. 여유가 생긴 일부 직장인들은 말 그대로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기 위한 다양한 취미 활동에 빠져들고 있다. 그중 하나가 ‘학습지 풀기’다.

“○○학습지 다 못 풀었다. 선생님한테 혼날 텐데….” “○○학습지 영어 어때? 일본어가 괜찮다던데….” “○○학습지 밀렸다. 뭐라고 하지?” “○○학습지 푸는 데 재밌다.”


아이들의 대화가 아니다. 직장인 등 성인이 대부분인 온라인 커뮤니티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글이다. 미취학 아동이나 초등학생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학습지에 직장인들이 흥미를 느끼고 있다. 

학습지 간 비교나 추천 과목 등 관련 질문을 하면 댓글이 순식간에 10개 이상 달릴 정도.

학습지는 학원에 다닐 시간이 없는 직장인들에게 특히 각광받고 있다. 이들은 학습지에 대해 “성실한 참여를 전제했을 때, 적은 비용으로 높은 효율을 얻을 수 있는 학습 수단”이라고 입을 모았다.

월 3만∼5만원대의 부담 없는 가격과 효율적인 시간 운용이 장점으로 꼽힌다. 방문 선생님이 필요하면 시간을 맞추면 되고 혼자 공부하고 싶으면 학습지만 받아보는 것도 가능하다. 가정방문이 부담스럽다면 직장 근처 카페서 만나는 경우도 있다.

언어공부 하기 제격?
불안한 미래 대비책?

한 방문 학습지 업체의 성인 회원 수는 전년 대비 전체의 50.5%로 급격하게 증가했다. 또 다른 학습지 업체는 성인 회원수가 3년 반 동안 2.5배나 늘어났다. 스마트폰과 유튜브 등의 발달로 위축되던 학습지 시장은 성인 회원 수의 증가로 다시 봄날을 맞이하는 분위기다.

그러면서 학습지 업체들은 성인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잇달아 개발하고 있다. 선생님 방문에 부담을 느끼는 성인들을 위해 한 달에 한 번 교재만 우편을 통해 받는 통신 학습이나 자격증 취득에 도움이 될 만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식이다.

학습지를 시작한 직장인 10명 가운데 7명은 외국어에 몰두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구사할 수 있는 언어의 가짓수가 무기로 작용하는 시대가 되면서 일본어나 영어, 중국어 등 다른 나라 언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게 학습지 시장에도 적용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 조사에 따르면 학습지 성인 회원 가운데 32.6%가 일본어, 21.8%가 영어, 16.6%가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습지 푸는 어른’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공부하는 직장인

먼저 학습지에 대한 성인들의 관심이 ‘자기계발형 취미’의 연장선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워라밸 시대에 접어들면서 퇴근 이후 취미 생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학습지는 취미이면서 동시에 자기계발이 가능한 수단이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는 것. 일각에선 조금만 삐끗해도 도태되기 쉬운 상황서 불안한 미래에 대처하기 위한 수단으로 학습지를 신청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마음의 평화? 색칠공부 열풍

인천 남동구에 사는 조모씨는 최근 색칠공부에 푹 빠졌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난 빈 식탁에 그림 도구를 펼쳐 놓는 시간이 가장 좋다고 했다. 최근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명작 ‘해바라기’를 칠하고 있다. 

조씨는 “매일 저녁8시부터 색칠을 시작하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며 “아무 생각 없이 색을 칠하는 동안 직장에서 받았던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이 들어 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컬러링북은 직장인의 취미 생활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다양한 밑그림으로 구성된 두툼한 책과 색연필을 쥐고 색칠공부에 전념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컬러링북 동호회가 있을 정도다. 다양한 주제의 컬러링북은 인터넷 서점가를 강타했다. 컬러링북 <비밀의 정원>은 한때 인터넷 서점 베스트셀러에 오를 만큼 높은 인기를 기록했다.


위메프 등 소셜커머스에서는 명화 밑그림과 붓·물감 등 그림도구를 세트로 판매하기도 한다. 그림의 종류만 수백 가지에 이른다. 밑그림에 쓰여 있는 번호에 따라 매치되는 물감을 칠하면 된다. 

조씨는 “그림에 전혀 문외한이지만 따라하기 쉽고 완성되면 성취감도 크다”며 “가끔 지인에게 선물하기도 하는데 많이 좋아하더라”고 말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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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모씨와 조직원 3명이 필리핀 현지 수용소서 탈옥한 것으로 확인됐다. 8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와 함께 보이스피싱 등의 범행을 함께한 조직원 포함 총 4명은 최근 필리핀 루손섬 남동부 지방 비콜 교도소로 이감됐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후 지난 4월 말, 현지서 열린 재판에 출석한 박씨와 일당은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 수사 당국 관계자는 “박씨와 일당 3명이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구체적인 탈출 방식 등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출신의 전직 경찰로 알려져 충격을 안겼던 바 있다. 2008년 수뢰 혐의로 해임된 그는 경찰 조직을 떠난 뒤 2011년부터 10년간 보이스피싱계의 정점으로 군림해왔다. 특히, 박씨는 조직원들에게 은행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로 구성된 대본을 작성하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경찰 출신인 만큼, 관련 범죄에선 전문가로 통했다는 후문이다. 박씨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지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 “박씨가 마닐라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필리핀 루손섬 비콜교도소 수감 보이스피싱 이어 마약 유통까지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했다. 2023년 초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범죄를 계획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또, 박씨는 새로운 마약왕으로 떠오르고 있는 송모씨와 함께 비콜 교도소로 이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비쿠탄 교도소에 수감돼있는 한 제보자에 따르면 “박씨의 텔레그램방에 있는 인원이 10명이 넘는다. 대부분 보이스피싱과 마약 전과가 있는 인물들로 한국인만 있는 것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씨는 본래 마약과는 거리가 멀었던 인물이다. 송씨와 안면을 트면서 보이스피싱보다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교도소 내에서 마약 사업을 이어왔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경찰 안팎에서는 “새로운 조직을 꾸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일각에서는 이들이 비콜 교도소서 탈옥을 계획 중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비쿠탄 교도소 관계자는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서 약 100만페소(한화 약 2330만원) 정도면 인도네시아로 밀항이 가능하다. 비콜 지역 교도소는 비쿠탄보다 탈옥이 쉬운 곳”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한편, 지난 7일 외교부와 주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 측은 정확한 탈출 방식이나 사건 발생 일자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일축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