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은행권 파워게임 막전막후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3.19 10:13:54
  • 호수 11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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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죽자” 속 보이는 논개 작전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그동안 연임 회장님들(하나금융구륩·KB금융지주)을 흔들었던 금융감독원장이 사라졌다. 웃어야 할 회장들은 더 울고만 싶다. 왜 그럴까. 
 

 하나은행 특혜 채용 의혹이 제기된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12일, 전격 사임 의사를 밝혔다. 최 전 원장은 2013년 하나금융지주 사장으로 당시 대학 동기 L씨의 부탁으로 그의 아들이 하나은행에 입사하는 데 관여했다. L씨는 최 원장이 졸업한 연세대 경영학과 71학번으로 중견 건설사를 운영하고 있는 기업인이다.

대규모 검사단
현장조사 착수

최 원장은 의혹 사흘 만에 사임했다. 금융권 채용비리 검사를 진두지휘해온 금융당국의 수장이 본인에 대한 의혹이 제기된 지 사흘 만에 자리서 물러난 셈이다. 그런데 최 전 원장의 빠른 사임으로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과 윤종규 KB금융 회장의 속내가 복잡해졌다. 

먼저 지난해부터 최 전 원장과 두 회장은 연임을 두고 갈등을 이어왔다. 이들은 지난해 ‘셀프 연임’ 논란을 빚으며 연임에 성공했다. 이에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최흥식 전 금감원장이 최근 잇따라 금융사 CEO ‘셀프 연임’ 관행을 비판했다. 

금융당국은 금융지주 경영권 승계 절차와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 구성 및 운영 등에 대한 조사와 금융사 최고경영자(CEO) 선임 절차 등 투명성을 강화하는 법률 개정도 추진 중이다. 
 


이와 함께 금감원은 하나·국민 은행 등 11개 시중은행의 특별검사를 통해 채용비리를 적발했다고 지난 1월26일 발표했다. 일각에선 금감원 채용비리 특별검사가 셀프 연임한 김 회장과 윤 회장을 겨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청와대 경제수석실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청와대는 원칙적으로 민간 기업 인사에 개입하지 않겠지만, 금감원을 통해 적폐로 찍힌 전 정권 회장들의 사퇴를 직간접적으로 압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임 회장들 흔든 금감원장 사임
웃어야 할 판에…노심초사 이유는?

이런 내막 때문에 지난해 말부터 최 전 원장과 김·윤 회장은 파워게임이 한창이었다. 특히나 최 전 원장과 김 회장의 갈등은 첨예했다. 이 와중 최 전 원장의 채용비리가 불거지고, 그가 전격 사임하면 파워게임에 밀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계에선 최 전 원장 채용비리 단서를 김 회장이 흘린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올해 초부터 김 회장이 최 전 원장이 하나금융지주 사장이던 시절 뒤를 캐고 있다는 말이 파다했다. 

복수의 은행권 관계자들은 “하나금융 내부에서 최 전 원장이 사장이던 시절 법인카드 사용 내역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얘기가 돌았다”고 입 모았다. 

사퇴를 압박하던 최 전 원장이 사라졌지만, 김·윤 회장은 웃지 못한다. 최 전 원장이 생각보다 빨리 사임을 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은행권 고위 인사는 “두 회장은 ‘셀프 연임’ 적폐 회장 등으로 찍히며, 이번 정권에서 같은 처지에 놓였다”며 “최 전 원장 채용비리 사건은 이들에게  ‘모’ 아니면 ‘도’ 전략이었는데, ‘도’가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두 회장 입장에선 최 전 원장이 최대한 오래 버티며, 비난의 화살을 맞길 바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최 전 원장이 금감원장 자리를 지킨다면 채용비리에 연루된 두 회장들도 사퇴하지 않을 명분이 생긴다. 

급물살 타는
검찰 수사는?

윤 회장은 조카를 특혜 채용한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국민은행의 경우 서류 전형과 1차 면접서 최하위권이었던 윤 회장의 종손녀에게 2차 면접에서 최고 등급을 부여해 채용한 정황이 포착됐다. 

2015년 신규 채용 당시 윤 회장의 종손녀는 서류 전형서 840명 중 813등, 1차 면접서 300명 중 273등에 머물렀다. 이후 2차 면접서 최고등급을 받아 120명 중 4등으로 최종 합격했다.

하나은행에선 사외이사와 관련된 지원자가 필기 및 1차 면접서 최하위 수준이었으나 전형공고에 없던 ‘글로벌 우대’로 전형을 통과한 뒤 임원면접 점수도 임의로 상향 조정돼 합격했다. 

또 불합격이었던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위스콘신대 등 특정 대학 출신 지원자 7명을 합격시키려고 이들의 점수를 임의로 올려주고, 합격권이었던 수도권 대학 지원자 점수를 내리는 방법으로 합격자를 바꿨다. 

더불어 김 회장의 조카의 하나은행 특혜 채용 의혹도 불거졌다. 

이광구 전 우리은행 행장은 지난해 10월 채용비리 의혹이 터지자 사퇴했다. 지난해 10월16일 국정감사에서는 우리은행이 지난해 하반기 신입사원 150명 공채 중 약 10%인 16명을 금융감독원이나 국가정보원, 은행 주요고객의 자녀와 친인척, 지인 등을 특혜 채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금감원이 채용비리 자체검사 결과를 검찰에 고발하면서 이 전 행장은 전격 사임했다. 

앞서 은행권 고위 관계자는 “두 회장은 최 전 원장이 양지를 지향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끝까지 버틸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최 전 원장이 의혹 제기 사흘 만에 사퇴하면서 계획이 ‘도로묵’이 돼 버렸다.


금융권에서는 최 전 원장 사임으로 현재 채용비리에 연루된 금융사 회장들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점쳤다. 먼저 이들 회장이 직을 유지할 도덕적 명분을 잃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안 걸리는 은행 
 한곳도 없을 것”

김·윤 회장도 현재 친인척을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금융사에 특혜 채용한 의혹이 있기 때문이다. 지인을 채용한 최 전 원장보다 가족을 채용한 의혹이 있는 이들 두 회장의 도의적 책임이 더 무겁다는 평가다.
 

더불어 칼날도 피할 수 없게 됐다. 먼저 금감원은 하나은행 채용비리와 관련, 현장조사에 착수했다. 이례적으로 대규모 검사단을 꾸리고 강도 높은 검사를 예고했다.

금감원은 지난 13일 최성일 전략감독담당 부원장보를 단장으로 3개 반, 20여명 규모의 검사단을 구성해 이날부터 하나은행에 대한 특별검사를 시작했다. 최 원장이 하나금융지주 사장으로 있을 때 지인의 아들을 추천하면서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 불거진 2013년 전체가 검사 대상이다.  

금융회사 1곳의 검사를 위해 이처럼 대규모 검사 조직이 꾸려진 만큼 ‘현미경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올해 초 진행된 은행권 채용 비리 검사 때 은행 1곳당 투입된 인력은 3, 4명 정도였다. 


금감원은 또 검사의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최종 검사 결과만 감사에게 보고하기로 했다. 

은행권 채용비리를 수사 중인 검찰도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은 각 금융그룹 회장과 은행장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실무책임자를 구속하는 등 수사에 고삐를 죄고 있었다.

하나은행 채용비리 의혹을 수사중인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정영학 부장검사)는 지난달 8일에 이어 지난 7일 또다시 하나은행 본사 은행장실과 인사부 사무실을 압수수색 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수장 잃은 금감원의 반격 시작
하나은행부터…강도 높은 검사

검찰은 하나은행 채용비리에 대한 기소 방침을 확정하고 기소시기를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김 회장까지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나 아직 소환 등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 검찰은 채용비리가 저질러지는 과정에 하나금융그룹 수뇌부가 관여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은행 사외이사와 계열사 사장과 관련된 55명 등이 포함된 ‘VIP 리스트’를 작성해 채용 과정에 특혜를 준 의혹을 사고 있다. 55명은 2016년 공채서 모두 서류 전형을 통과했고 이중 필기시험을 통과한 6명은 임원 면접 점수 조작으로 전원 합격한 의혹을 받고 있다.

국민은행에 대한 검찰의 수사도 빨라지고 있다. 최 전 원장 사퇴 직후 검찰은 지난 14일 국민은행의 채용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관련자들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윤 회장 자택도 압수수색 대상이었다. 

검찰은 지난달 6일 친척을 특혜 채용한 의혹을 받고 있는 윤 회장의 사무실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지난달 은행 본점을 압수수색한 데 이어 지난 6일에는 국민은행 인사팀장 A씨를 구속했다. 국민은행 채용비리 수사가 시작된 이래 첫 구속자다. 채용 비리 실무 책임자의 신병을 확보한 만큼 검찰 수사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윤 회장 소환에는 상대적으로 신중한 입장이다. 

남부지검 관계자는 “소환은 수사가 진행돼서 범죄 혐의점이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지난 번 압수수색 대상에 경영진 사무실을 포함하는 등 결국 수사 칼날이 경영진을 향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비리 정보를?
난타전 예고

지금 상황을 볼 때 김·윤 회장은 풍전등화다. 금감원에 이어 금융위원회까지 두 회장에 칼날을 빼들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은행권 채용비리를 발본색원하겠다고 표명했다. 최 위원장은 “금융권 채용비리가 재발되지 않도록 발본색원하고 감독기관의 권위를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정태 회장 연임 문제없나

국내 민간 의결권 자문사인 서스틴베스트는 15일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의 3연임 안건에 대해 부당한 영향력 행사 의혹을 이유로 반대할 것을 권고했다. 서스틴베스트는 하나금융 정기주주총회 의안 분석 보고서를 통해 “김 회장이 주주가치를 훼손한 행위에 연루된 것으로 판단해 재선임 안건에 반대를 권고한다”고 밝혔다.

서스틴베스트는 김 회장의 KEB하나은행에 대한 인사 개입 의혹과 김 회장 아들과 금융지주 계열사간 부당거래 의혹, 박근혜정부 ‘창조경제 1호’ 기업인 아이카이스트에 대한 부실대출 의혹 등을 구체적인 이유로 제시했다.

이 회사는 “관련 혐의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김정태 후보는 금융회사 임원 자격을 유지할 수 없다”며 “무죄 판결을 내린다고 해도 현 상황으로 볼 때 이미 김 후보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저하됐다고 판단하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어 “KEB하나은행을 비롯해 다수 금융계열사를 거느린 금융지주 수장의 신뢰 저하는 후보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김 후보의 부당한 영향력 행사 혐의 등은 기업 및 주주가치에 중대한 훼손을 입힌 것으로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후보 추천 과정도 문제로 삼았다. 회장후보추천위원회 구성원인 사외이사 7명 가운데 대다수가 김 회장으로부터 독립적 의사결정이 가능하지 않아 부적합하다는 지적이다. 

서스틴베스트는 “김 회장은 2012년 취임 후 사외이사추천위원회에 계속 포함된 상태서 윤성복·박원구 사외이사 등을 추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해 12월 사퇴한 박문규 전 사외이사의 아들과 김정태 회장의 아들이 파트너십을 맺어 사업을 영위하면서 하나금융지주 자회사의 지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며 “따라서 박 전 이사가 추천한 송기진·차은영 사외이사 역시 김 회장으로부터 독립적일 수 없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서스틴베스트는 2006년 설립된 컨설팅 업체로, 기업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성과 평가와 주주총회 안건 분석·의결권 자문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2014∼2015년에는 국민연금에 주총 안건 분석을 제공했으며 현재도 국내 주요 자산운용사와 연기금에 의결권 자문을 하고 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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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