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74)희생

온군해 김춘추와 옷을 바꾸고…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내 명색이 당나라 황제로서 그대 보기 민망하오.”

손사래를 치는 당태종의 얼굴에서 아직도 지난 전투의 상흔이 그대로 드러났다. 

비록 안대를 했으나 눈뿐 아니라 안면 신경체계에 적지 않은 이상이 보일정도로 심하게 경련을 일으키고는 했다.

“폐하, 저희 폐국(弊國, 폐습이 많아 어지러운 나라 혹은 자기 나라를 낮추어 이르는 말)의 불찰이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춘추가 다시 머리를 조아리자 이세민이 흡족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안대를 지그시 눌렀다.


“경에 대한 이야기는 전에 입조한 사람을 통해 이미 잘 알고 있네만, 황제의 나라를 방문한 느낌은 어떠하오?”

당태종의 환대

“황제 폐하를 알현할 수 있는 이 자체가 그저 커다란 광영이옵니다.”

“그 이야기는?”

“저희 폐국이 황제 폐하를 지극정성으로 섬기는 모습을 시기한 백제의 지속적인 침공이 황제 폐하의 명으로 중지되어 직접 뵐 수 있으니 그로 족합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오로지 폐하의 황은에 감읍할 따름입니다.”“요즈음 백제와의 사이는 어떠하오?”


“황제 폐하의 은총으로 소강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오나 워낙 변덕이 심한 자들이라 언제 다시 침공할지 불안하옵니다.”

“그런 사실은 내 이미 익히 알고 있거늘.”

“하여 황제 폐하께서 지속적으로 하늘과 같은 위엄으로써 다스려주지 않는다면 저들은 기필코 폐국을 침범하고 조공을 바칠 수 있는 기회조차 막고자 할 것입니다. 그것이 걱정스럽습니다.”

“고얀놈들이로고.”

“그런 경우 오로지 바닷길로만 상국에 들 수 있는 저희는 황제 폐하를 뵙는 일조차 불가능해 질 수 있습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을 수는 없소.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내 친히 대군을 이끌고 백제를 정벌할 것이오.”

말을 하는 이세민의 얼굴이 가볍게 떨렸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그건 그렇게 처리하기로 하고, 일전에 입조했던 사람이 경과 김유신이란 자에 대해 극구 칭찬하던데 그 자는 어떠하오?”

“폐하, 유신이 비록 약간의 재주를 가지고 있으나 그 모든 바탕에는 황제 폐하의 위엄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혹여 조금이라도 폐하의 위엄이 함께하지 않는다면 그 조그마한 재주 역시 무용지물에 불과하옵니다.”

“당연히 그러하겠지.”

이세민이 거들먹거리며 말을 받고는 턱을 가볍게 쓸었다.


“금번에 짐이 고구려를 친 이유도 그런 맥락이었소.”

“말씀 주십시오, 폐하.”

“짐은 항상 그대 나라에 대해 연민의 정을 지니고 있소. 그런 연유로 그대 나라가 고구려뿐만 아니라 백제에 끊임없이 침략 당하는 모습을 어여삐 여겨 그 본을 보이고자 한 것이오.”

“그 사실은 폐국의 산천초목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여주가 신으로 하여금 지극정성으로 사은하라는 엄명을 주었습니다.”

이세민이 거듭되는 춘추의 치사에 가벼이 밭은기침을 했다.

“고구려와 백제가 지속적으로 그대 나라에 위해를 가한다면 당나라의 모든 병력을 동원해서라도 반드시 정벌하고 평양성 이남의 땅은 모두 신라에게 주도록 하겠소.”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황제 폐하!”

춘추가 평양성 이남을 되뇌면서 다시 고개를 조아리자 이세민이 곁에 시립한 장수를 바라보았다.

“짐의 말을 소정방 장군은 항상 염두에 두고 즉각 출전할 차비를 갖추고 있도록 하라!”

“폐하를 위해서라면 목숨조차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전이 울릴 정도로 우렁차게 답하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한눈에 대단한 용력의 소유자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김춘추, 당태종 환대 속에 사신임무 완수
돌아가는 길 마주친 고구려 배 ‘일촉즉발’

“폐하, 소신에게 한 가지 청이 있사옵니다.”“청이라니, 기탄없이 말해보오.”

“저희 폐국이 황제 폐하를 섬겨온 지 여러 해가 흘렀는데 아직 미숙하여 상국의 복제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여 저희 폐국이 상국의 복제를 따를 수 있도록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허허, 그런 일이 있었소. 당연히 그리할 일이오.”

이세민이 바로 그 자리에서 당의 화려한 의복을 내려주고 김춘추와 아들 인문에게 당의 벼슬을 내려줄 정도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시간이 이어졌다.

나름대로 성공적으로 사절임무를 마친 춘추 일행이 바야흐로 신라로 돌아갈 시점이 다가왔다. 

소식을 접한 당태종의 파격적인 환대가 이어졌다. 

그 일환으로 당나라 조정의 3품 이상의 모든 관리들을 소집하여 전송하게 했다.

그에 감읍한 춘추가 다시 당태종에게 부복했다.

“황제 폐하의 하해와 같은 황은에 보답하기 위해 소신의 아들로 하여금 이곳에 남아 숙위(宿衛, 황제를 호위하던 의장대)할 수 있도록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아들로 하여금 숙위라.”

“신에게는 아들 일곱이 있사오니 금번에 함께 온 아들이 황제 폐하께 충성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옵소서.”

당태종이 흡족한 미소를 머금으며 기꺼이 허락했다.

춘추가 홀가분한 마음으로 배에 올라 당항성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서해 바다 한 가운데 이르자 저 멀리서 여러 척의 배가 모습을 드러냈다.

소식을 접한 춘추가 혹여나 자신을 환영하기 위해 나온 신라의 선박이 아닐까하는 호기심에 부풀어 한참을 주시했다. 

그러다 한 순간 흐릿하게 보이는 깃발을 보고 기겁했다.

정확하게 보이지는 않으나 깃발의 글씨 중에 ‘大高句麗’(대고구려)란 글자가 시선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순간 고개를 돌렸다. 

저만치 어디엔가 당나라 영토가 보이리라 생각했는데 그저 보이는 거라고는 망망대해뿐이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고구려의 배들을 주시했다. 

분명 고구려 병사들이 승선하고 있을 빠른 배를 자신이 타고 있는 배로 도망칠 수 없다는 판단이 섰다. 

시선을 주위로 돌렸다. 

뒤에서 작은 배가 따라오고 있었다.

순간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당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는 자신의 정체를 고구려 군사들이 알아챈다면 그야말로 답은 죽음밖에 없었다. 

이미 고구려에서 연개소문을 만났을 때 당나라와의 관계를 청산하겠다고 약속했던 터였다. 

그 생각이 일어나자 여하한 경우라도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절박감이 온몸으로 번져갔다.

한참 갈등에 사로잡혀 있을 즈음 인부들과 하인들이 승선하고 있는 작은 배가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감지하고 춘추의 배 옆으로 붙어 섰다. 

멀거니 그 배를 바라보는 중에 종사관인 온군해가 춘추의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다가섰다.

“대감, 저 배들은 고구려 배들이 확실하지요?”

“그러네, 바로 고구려 배라네.”

“그렇다면 무얼 그리 망설이십니까?”

“그게 무슨 소린가?”

“어서 옷을 벗으십시오.”

“옷이라니.”

“서둘러 제 옷과 바꾸어 입자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대감께서는 빨리 작은 배로 신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온군해의 말을 들으니 춘추의 가슴에 뭉클한 기운이 치솟았다.

“그럴 수는 없네.”

“이놈도 사람답게 살고 갔다는 이름을 남기고 싶습니다. 그동안 이 놈은 대감 덕분에 호의호식하였습니다. 그러니 대감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온군해가 말을 마치고는 그 자리에서 큰 절을 올렸다. 

순간 춘추가 고개를 돌려 배에 달린 깃발을 바라보았다.

온군해의 희생

‘新羅 角干 金春秋’(신라 각간 김춘추) 아뿔싸 하는 생각과 함께 춘추가 엎어져 있는 온군해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자네의 진정에 그저 고마울 따름이네.”

춘추의 눈동자가 붉게 충혈되었다.

“아니옵니다, 대감. 그저 이 몸이 조금이라도 소용될 수 있음에 그저 감읍할 따름입니다.” 

“이보게, 아니 대아찬!”

대아찬(大阿飡)이라는 소리에 온군해의 눈이 동그랗게 변해갔다. 

그도 그럴 것이 대아찬은 십칠 관등 중 다섯째로 진골만이 오를 수 있는 관등이었고 온군해는 결코 그 직급에 오를 수 없는 육두품의 신분이었다.

“내 자네의 희생을 결코 헛되이 하지 않겠네.”

“어찌 저 같은 놈이. 대아찬이라니 당치않으십니다.”

“그도 부족하이. 여하튼 자네 가족을 위해 죽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겠네.”


<다음 호에 계속>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박 터질’ 11월 국회 막전막후

‘박 터질’ 11월 국회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9월 정기국회 첫날부터 한복과 상복으로 기싸움을 벌이던 여의도 전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12월 정기국회 종료까지 겨우 한 달 남았지만 여야 간의 파열음은 여전하다. 더불어민주당은 개혁 추진 동력을 얻기 위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에 질세라 국민의힘은 야당으로서 거대 여당의 폭주에 맞서겠다며 맞불을 놨다. 고성과 퇴장이 난무하던 이재명정부 첫 국정감사(이하 국감)가 종합감사만 남긴 채 막바지에 돌입했다. 수많은 안건 속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언급된 건 김현지·조희대 두 사람의 이름이다. 여전히 베일에 싸인 김현지 제1대통령실 부속실장과 사퇴 압박에도 꼿꼿하게 버티는 조희대 대법원장을 둘러싼 국감 후폭풍이 이어질 전망이다. 김현지 조희대 오는 6일 열리는 국회 운영위원회가 대통령실을 대상으로 한 종합감사에 김 실장 이름을 증인으로 올렸지만 끝내 불발됐다. 그동안 국민의힘은 김 실장을 증인으로 불러 모든 의혹을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감사가 아닌 정치공세”라며 이를 거부했다. 민주당은 김 실장이 국감 당일 오전 또는 오후 1시까지만 출석할 수 있다고 밝혔고 ‘반반 출석’ 논란을 키웠다.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은 “김현지 증인 출석을 놓고 민주당이 내놓은 안은 오전 출석, 오후 불출석이라고 하는데 국감이 치킨인가? 반반 출석하게”라며 “김 실장 한 사람을 지키려고 하니 이런 코미디가 나오는 것”이라고 비꼬았다. 국민의힘이 ‘김현지 흔들기’에 나서자 민주당은 조 대법원장을 도마 위에 올렸다. 민주당은 “국감이 끝난 이후 사법개혁을 처리하겠다”며 조 대법원장이 스스로 거취를 정할 수 있는 데드라인을 그어줬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이번 사법개혁안은 제왕적 대법원장의 전횡을 막고 재판의 민주적 절차를 강화하기 위한 사법정상화법이다. 사법 독립성과 책임성을 두텁게 하고 국민의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며 사법부 장악 논란을 사전에 잠재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은 조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혁신당 조국 비상대책위원장은 “대법원이 조 대법원장의 사퇴 요구를 외면할 경우 탄핵을 포함한 모든 법적·정치적 수단을 강력히 추진하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두 사람의 이름은 오는 12월 정기국회를 마치고 해를 넘겨서도 호명될 것으로 보인다. 여야 모두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를 겨냥해 상대편의 아킬레스건을 물고 늘어지겠다는 전략이다. 한 야권 관계자는 “김건희 특검이 12월까지 갈 것으로 봤는데 조희대라는 새로운 공격 포인트가 생겼다. 민주당이 쉽게 놔주지 않을 것”이라며 “‘내란 세트’로 묶어서 지방선거까지 끌고 가겠다는 심산이다. 내란이라는 키워드만큼 국민의힘을 공격하기 좋은 소재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반면에 민주당은 부동산 실책이 뼈아프다. 그걸 덮기 위해 조 대법원장을 계속해서 끌어들일 것”이라며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과 추경호 의원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면 이제 그쪽을 노리지 않겠나? 여아가 머리채만 안 잡았지, 아마 역대급 국회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여야 ‘사이좋게’ 하나씩 쥔 약점 특검 앞 권성동·추경호 운명은? 추 의원은 지난달 30일 국회의 계엄해제 의결을 방해한 혐의로 첫 조사를 받았다. 특검은 당시 원내대표였던 추 의원을 비롯한 국민의힘 지도부가 의원총회 장소를 여러 차례 변경함으로써 고의로 표결을 방해했는지를 들여다볼 예정이다. 이날 추 의원은 조은석 내란특검에서 진행되는 1차 피의자 소환조사에 응해 “무도한 정치 탄압”이라며 “당당하게 특검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 수감 중인 권성동 전 원내대표의 첫 재판은 오는 3일로 예정돼있다. 권 전 원내대표는 불법 정치자금 1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아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처럼 각종 악재가 국민의힘을 단단히 휘감자 부동산으로 한차례 휘청한 민주당이 반사이익 효과를 볼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여기에 여론조사 대납 의혹을 받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의 대질이 오는 8일 예정돼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 판까지 흔들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오는 5일부터 시작되는 내년도 예산안 심사를 놓고 긴장감이 고조된다. 이정부 출범 후 첫 예산 심사로 국민의힘은 지역사랑 상품권 등 이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인 지역 화폐를 겨냥해 맹공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두 차례에 걸쳐 민주당 주도로 추경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국민의힘이 크게 반발했고, 지난 8월 정부 예산안이 공개되면서 본격적으로 ‘이재명식 포퓰리즘’ 프레임 굳히기에 나섰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오는 5일 있을 예산안 공청회를 시작으로 6∼7일 이틀간 종합정책질의를 실시할 예정이다. 10~11일에는 경제부처, 12∼13일에는 비경제부처 부별 심사가 진행되고 17일에는 소위원회 예산안의 감·증액을 심사하는 예산안조정소위가 가동된다. 각 소위의 논의를 거친 예산안은 전체회의 의결을 통해 본회의에 상정된다. 예산안 국회 본회의 처리 법정 시한은 매년 12월2일이지만 늘 그렇듯 여야의 예산 샅바싸움으로 해당 날짜를 넘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앞서 정부는 지난 8월 728조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올해 본예산에 견줬을 때 8.1% 늘어난 규모다. 이 대통령은 초혁신 경제 분야 등에 큰 폭으로 투자해 경제의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예산안이 의결되던 날 이 대통령은 “지금은 어느 때보다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씨앗을 빌려서라도 뿌려서 농사를 준비하는 게 상식이고 순리”라고 말했다. 역대급 규모 쩐의 전쟁 이어 “현재 우리 경제는 신기술 주도의 산업 경제 혁신, 그리고 외풍에 취약한 수출 의존형 경제의 개선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며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는 내년도 예산안은 이런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고 경제 대혁신을 통해 회복과 성장을 이끌어내기 위한 마중물”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AI 투자다. 그동안 이 대통령은 AI 3대 강국을 강조한 만큼 예산 역시 이에 맞춰 전년 대비 3배 이상 증가한 10조1000억원으로 책정했다. 자동차·조선, 반도체 등 주요 산업에 AI를 접목하고 휴머노이드 로봇용 AI 모델 등 ‘피지컬 AI’ 분야에도 집중 투자를 예고했다.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예산은 지난해보다 19.3% 증가한 35조3000억원이다. 역대 규모인 이번 예산 중 10조6000억원이 AI·바이오·콘텐츠·방산·에너지·제조 등 6대 첨단산업의 핵심 기술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투입된다. 이 중에서도 국민의힘은 26조2000억원으로 책정된 ‘민생경제 회복과 사회연대경제 기반 구축’ 부문을 눈여겨보고 있다. 정부는 24조원 규모로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을 지원하고 지역별 여건을 고려해 국비 보조율을 상향 조정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민주당은 24조원은 총 발행되는 상품권의 액면가이며 이 중 3~7%를 예산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디지털 온누리상품권 예산은 4000억원으로 도합 4조5000억원 규모로 책정됐다. 또 정부는 연 매출 1억400만원 미만인 소상공인 230만개 사에 경영안정 바우처 25만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예산안이 발표되자 국민의힘은 곧바로 ‘국민 부담 가중 청구서’라고 반박했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이정부 예산이 올해보다 8.1% 늘어난 728조원 규모로 편성됐다. 조세감면까지 포함하면 실질 지출은 무려 808조5000억원에 달한다”며 “내년도 국가채무는 1415조원, 2029년에는 무려 1789조 원으로 폭증할 전망이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올해 49.1%에서 내년 51.6%, 2029년에는 58%까지 치솟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난 문재인정부 5년 동안 국가채무 비율이 33.9%에서 46.8%로 뛰어올랐는데 이정부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나랏빚을 통제하기는커녕, 폭발 직전까지 끌어올릴 심산”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거짓 선동”이라며 민생 최우선에 초점을 맞췄다고 반박했다. ‘올려’ ‘내려’ 본회의 난타전 쟁점 법안 처리 여부도 관전 포인트다. 민주당은 사법개혁을 위한 법 왜곡죄를, 국민의힘은 이정부의 부동산을 겨냥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폐지를 밀어붙이고 있다. 앞서 민주당과 혁신당은 각각 법 왜곡죄를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판·검사가 증거를 조작하거나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등 잘못된 사실관계에 법을 적용해 기소나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경우 처벌토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현재 법 왜곡죄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소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지난달 28일 국정감사 대책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사법개혁안에 대해 “이번달 까지 (입법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백혜련 사법개혁특별위원장도 MBC 라디오를 통해 “특위에서 낸 5대 개혁안은 상당한 공감대가 이미 이뤄져 있다”며 “당내, 국민적으로 그리고 법원과도 대법관 증원 문제 빼고는 의사소통이 이뤄졌다. 법사위 논의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면 이번 정기국회 내 충분히 처리 가능하다”고 밝혔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역시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개혁 골든타임을 절대로 실기하지 않고 연내에 반드시 마무리 짓겠다”며 힘을 실었다. 헌법 제84조이자 형사소송법 개정안인 ‘대통령 재판중지법’에도 군불을 땠다. 법사위 국감에서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이 “이 대통령 파기환송심은 다시 기일을 잡아 (재개)할 수 있느냐” 고 물은 데 대해 김대웅 서울고등법원장이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답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외환죄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에 발생한 범죄로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당시 사법 리스크 족쇄를 풀지 못한 이재명 대표의 당선이 확실시되자 ‘대통령의 불소추특권’ 조항을 놓고 여러 갈래의 해석이 제기됐다. 민주당은 법안이 당론은 아니라면서도 향후 사법부의 행동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압박에 나섰다. 민주당 박상혁 의원은 YTN 라디오를 통해 “많은 국민이 지난 국감에서 서울고등법원장의 발언을 보고 깜짝 놀라셨을 것”이라며 “벌써 몇 달째 계류 중인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국민이 만들어주신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사법개혁? 부동산? 마음은 지선 노발대발 ‘쇼츠각’ 잡는 의원들 거대 여당인 민주당이 의석수로 법안을 통과시킨다면 국민의힘은 막아낼 도리가 없다. 대신 국민의힘은 부동산 규제를 파고들면서 이정부의 가장 아픈 곳을 찔렀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향해 이번 정기국회에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이하 재초환) 폐지 법안을 여야 합의로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재건축 활성화의 핵심인 재초환은 재건축으로 얻은 초과이익에 부담금을 부담하는 규제다. 앞서 민주당은 재초환 폐지 가능성을 언급했다가 “당 차원의 결정은 아니”라며 입장을 선회했다. 10·15 부동산 대책 발표 후 예상보다 후폭풍이 크자 신중론을 내세운 것이다. 여당의 갈지자 부동산 행보가 오히려 시장 혼란을 부추겼다는 비판이 나오는 지점이다. 국민의힘 김도읍 정책위의장은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이 10·15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국민적 비난과 여론의 뭇매로 궁지에 몰리자 이제야 국민의힘이 줄곧 주장해 온 재초환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한다”며 “이미 김은혜 의원이 법안을 발의해 놨다. 정기국회에서 재초환 폐지 법안을 여야 합의로 신속 처리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감에서 재초환 유지 방향에 공감한다는 뜻을 밝히면서 여야 간 이견만 커지는 모양새다. 민주당 이연희 의원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재초환 폐지는 투기 광풍을 불러올 조치기 때문에 결코 안 된다.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에 김 장관은 “공감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민주당은 재초환 폐지를 정기국회 내 처리하자는 국민의힙 요구에 대해 “원내 중심의 대화를 기대한다”며 협상의 여지를 열어뒀다. 다만 더 이상 부동산 문제로 자책골을 넣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강한 만큼 국민 여론을 충분히 반영하겠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여당인 민주당이 언제까지나 ‘신중하게’ 입장을 보류할 수 없다는 점이다. 부동산 시장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국민의힘 페이스에 말려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기류가 흐르는 만큼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 어느 각도에서 보더라도 여야의 강대강 대치는 불가피해 보인다. 지난달 26일 국회가 이례적으로 국감 도중 본회의를 열고 비쟁점 민생 법안 70여건을 일괄 처리하면서 협치의 물꼬가 트이나 싶었지만 또다시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는 형국이다. 앞서 민주당은 APEC 주간을 앞두고 국민의힘을 향해 “무정쟁 주간을 갖자”고 제안했으나 국민의힘은 “경제 참사·부동산 참사를 덮기 위한 침묵 강요이자 정치적 물타기”라고 오히려 비판 수위를 높였다. 김도읍 정책위의장은 “이정부와 민주당이 독선과 독재를 멈추고 정치를 회복시키면 정쟁은 없어진다”고 훈수했다. 손 내밀어도 고개만 팽 한 정치권 관계자는 “여당인 민주당은 정부의 외교 성과를 띄우고 야당인 국민의힘은 야당으로서 잘한 것과 아쉬운 것을 구분해 견제해야 하는데 지금 의원 한 명 한 명이 국회를 자기 정치의 장으로 쓰고 있다”며 “내년 지방선거 영향이 크다. 선거를 앞뒀는데 어떤 정당이든 서로 의견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회의감을 내비쳤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