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73)제안

사로잡힌 백제의 비장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장군, 그런데 저 산의 이름이 무엇이오?”

의직이 산을 주시하다 이내 주변에 늘어선 병사를 바라보았다. 한 병사가 우물쭈물 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백화산이라고 산 중에 옥문곡이 유명합니다.”

“지금 옥문곡이라 하였는가?”

“그렇습니다, 대감.”


중상이 옥문곡을 되뇌며 의혹의 시선을 보냈다.

“왜 그러시오, 대감.”

“옥문곡이면 적의 함정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럽니다.”

“도대체 옥문곡이 뭐기에?”

원망의 눈빛

옥문곡, 십여 년 전 일이었다. 백제의 장군 우소가 신라를 침공하기 위해 매복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 신라의 궁궐 서쪽에 있는 옥문지에 두꺼비들이 떼로 모인 일이 발생했었다.

그를 살핀 선덕여왕이 백화산에 있는 옥문곡에 백제의 병사들이 매복하고 있을 터이니 그를 파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당시 신라의 장군이던 알천과 필탄이 반신반의하며 그곳에 이르자 백제의 군사들이 매복하고 있었다.

사전에 발각된 백제 군사들이 신라군에 의해 참몰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 그와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한다는 이야기입니까?”

중상을 바라보는 의직의 표정이 마뜩치 않게 변했다.

“반드시 그런 건 아니고 이 지점이 매복 장소로 그만이라는 말입니다. 여하튼 수색병이 나갔으니 잠시 그들을 기다려 봅시다.”

의직이 신라군이 사라진 방향을 주시하며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 사이 수색나갔던 병사들이 돌아왔다.

“어떤가?”

“대감께서 속으신 듯합니다.”

“뭐라!”

“신라군의 깃발은 보였으나 군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중상이 막 뭐라 말하려는 순간 의직이 고개를 돌려 병사들에게 서둘러 신라군을 쫓으라 명을 내렸다. 

명에 따라 비장들이 앞을 다투어 산으로 내달렸다.


의직이 중상을 원망스런 눈치로 바라보며 저도 군사들의 뒤를 따라 숲으로 들어갔다. 

백제의 주력군이 숲에 들어서기 무섭게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신라군이 응전했다. 

그러나 이미 상황을 간파한 백제군이 온 힘을 다해 신라군을 치며 뒤를 쫓았다. 

백제군이 막 신라군의 후미를 잡았을 시점에 북소리가 숲 전체에 울려 퍼졌다.

“백제의 의직은 어서 목을 내놓지 않고 뭐하는 게냐!”

우렁찬 고함이 들려온 곳을 바라보자 ‘상장군 김유신’이라는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그 옆에 칼을 든 유신이 신라 병사들을 독전하고 있었다.


순간 당황한 의직이 급히 주변을 살펴보았다. 

세 갈래로 난 숲에서 화살과 커다란 그물이 거세게 쏟아져 나왔다.  

함정임을 깨달은 의직이 급히 퇴각 명령을 내렸으나 이미 앞서 나간 백제 군사들은 화살에 그리고 그물에 걸려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시작했다.  

순간적인 전세의 역전으로 백제군이 정신없이 퇴각하여 요거성에 들어 성문을 닫았다. 

중상이 잠시 한숨을 돌리고 인원을 살피자 태반이 돌아오지 못했다.

“나 신라의 김유신이오. 의직 장군은 얼굴을 내미시오.” 

포로들과 성주 가족의 유골 교환
기세를 몰아 백제 국경 공략하다

중상이 혀를 차며 의직을 원망스럽게 바라보는 중에 성 밖에서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중상이 다시 의직을 바라보았다. 

사색으로 변한 그의 모습을 흘낏 살피고는 대신 성루로 올라갔다. 

성 아래 저만치에 김유신 기를 들고 있는 병사 옆으로 김유신과 사로잡힌 백제의 비장 여덟 명이 죽을상을 짓고 서 있었다.

“김유신 장군. 나는 백제의 좌평인 중상이오. 내게 대신 말하시오.”

“누구라도 좋소. 내 긴히 제안하고자 왔소.”

중상이 가만히 상황을 살펴보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말하시오.”

“지금 백제의 비장들이 내 포로로 잡혀 있소. 아울러 이 포로들과 지난 대야성 전투에서 희생당한 성주 가족들의 유골을 교환했으면 하오.” 

“김품석 성주 가족이라 하였소?”

“그러하오. 그들의 유골과 살아 있는 백제의 비장 여덟 명과의 맞교환을 원하오.”

중상이 생각을 위해 잠시 사이를 두고는 비장들의 몰골을 살폈다. 

살려달라는 표정이 간절하게 비쳐졌다.

“좋소. 내 궁궐로 돌아가면 반드시 그들의 유골을 관에 넣어 돌려보내도록 하겠소. 그러나 유골을 돌려주었는데 장군이 반드시 포로를 돌려 보내주리라 어떻게 확신하겠소. 그러니 지금 포로를 풀어주시오.”

“지금 한창 전쟁 중인 마당에 풀어줄 수는 없소. 아울러 유골을 받은 연후에 보낼 테니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시오. 나뭇잎 하나 떨어진다 해도 무성한 숲에는 손실 없고, 먼지 하나가 모인다 해도 큰 산에는 아무런 보탬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신다 하지는 않겠지요.”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함은 신라군이 바로 물러서지 않음을 아울러 백제 비장 정도는 전세에 아무런 지장을 미치지 못함을 의미했다.

“하면, 왜 이 성은 취하지 않는다는 말이오?”

“어차피 거의 전멸상태인 백제군이 돌아가면 자연스럽게 우리 수중에 떨어질 터인데 무엇하러 수고하겠소. 그러니 어서 사비성으로 돌아가 맞교환을 서둘러 주시오.”

유신의 핵을 지르는 말에 가벼운 신음을 토해냈다. 

결국 백제군은 성을 내어주다시피 하고 사비성으로 돌아갔다. 

아울러 중상은 의자왕에게 보고하여 김품석 일족의 유골을 관에 담아 신라로, 이어 신라는 약속대로 포로로 잡힌 백제의 비장들을 돌려보냈다. 

그러나 유신은 곧바로 철수하지 않고 승전의 기세를 타서 백제 국경을 공략하여 악성 등 이십여 성을 쳐서 빼앗고서야 경주로 돌아갔다.

진덕여왕이 김춘추와 그의 둘째 아들인 인문을 당나라에 사절로 보냈다. 

당태종이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당한 부상을 위문하고 그간 신라를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은 부분에 대한 사은의 사절이었다.

춘추 일행이 당나라에 도착하자 당태종은 광록시경(光祿寺卿, 외빈 접대를 받는 부서의 장)인 유형교로 하여금 중도에서 김춘추를 접대하여 함께 수도에 이르게 하는 등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또한 유형교로부터 김춘추의 외모와 됨됨이를 전해들은 당태종이 여타의 다른 사절들과는 다른 파격적인 선처를 베풀었다.

외형상으로는 춘추 개인을 들먹였지만 실상은 달랐다. 

아직도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취해진 특별한 배려에는 그만큼 커다란 보따리를 가져간 때문이었다.

사절단의 규모도 그렇거니와 가져간 신라의 진귀품이며 특산품이 배를 두 척이나 띄울 정도로 역대 최고를 기록하였으니 이세민으로서도 소홀히 대접할 수는 없었던 때문이었다.

파격적인 선처

당태종은 춘추를 위해 국학에서 석전(釋奠, 공자를 제사하는 의식)을 거행하면서 당고조가 여산(廬山)온천에 가서 지은 ‘온탕비(溫湯碑)’와 자신이 태원의 사당에 가서 지은 ‘진사비(晋祠碑)’의 비문 탁본과 새로 제작한 진서(晋書)를 주는 파격의 조처를 취했다.

또한 사사로이 춘추를 불러 연회를 베풀어 춘추에 대한, 아니 신라 조정의 대대적인 사은 행위에 나름의 예를 다했다. 

“폐하, 황은에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연회를 베푼 이세민이 금과 비단을 하사하자 춘추가 머리를 조아렸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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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