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사춘기’ 직장인 우울증 실태

“회사 출근하기 싫어요”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제2의 사춘기를 겪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최근 직장인들은 “회사 가기 싫어”라는 말을 습관처럼 한다. 마치 학생일 때 “학교 가기 싫어”를 외치던 모습과 닮았다. 문제는 그 강도가 “싫다” “좋다” 수준을 넘어 몸과 마음이 상하는 우울증으로 번지고 있다는 데 있다. <일요시사>가 직장인의 신종 질환으로 떠오른 회사 우울증을 들여다봤다.
 

일요일 저녁이 되면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 다가오는 월요일을 고통스러워하는 이용자들의 글이 우후죽순처럼 올라온다. 주말이 왜 이렇게 짧은지에 대한 푸념, 다음날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두려움, 주말에 제대로 쉬지 못한 아쉬움 등 온갖 감정이 버무려진 글의 향연은 매주 반복된다.

학생은 ‘학교 가기 싫다’, 직장인은 ‘회사 가기 싫다’고 입을 모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말을 습관처럼 내뱉으면서도 막상 한 주가 시작되면 학교나 회사에 적응해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그러나 최근에는 직장 우울증, 회사 우울증이라고 불리는 신종 질환을 앓는 사람이 늘었다. 회사에 가기 싫어 우울증까지 겪는 직장인이 많아지고 있는 것.

자살 충동도?

#1. 인천 남동구 모 통신사의 텔레마케터로 근무 중인 박모씨는 일요일 저녁이 되면 자살충동에 시달린다고 고백했다. 월요일 아침 회사에 가야하는 현실이 끔찍하게 싫기 때문이다. 박씨의 충동은 출근길까지 이어진다. 출근을 하다가 지하철에 뛰어들거나 차도에 눕는 상상이 끝없이 박씨를 덮친다. 박씨는 결국 심리상담센터를 찾았다.


#2. 경기도 파주의 한 출판사에서 일하는 윤모씨는 취업준비생 시절 스트레스로 인해 빠졌던 살이 회사에 입사하면서 10㎏ 넘게 쪘다. 퇴근하면 집에서 야식을 시켜먹는 게 습관이 됐기 때문이다. 윤씨는 “회사에서 나가는 순간 축 쳐졌던 몸 상태가 회복된다”며 “퇴근 이후에야 진짜 하루가 시작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10명 중 7명 ‘출근 기피’
10명 중 1명 그대로 방치

취업포털 ‘잡코리아’는 남녀 직장인 910명을 대상으로 회사 우울증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직장인 10명 중 7명이 회사 우울증에 시달린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 우울증은 밖에서는 활기차지만 출근만 하면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지는 증상을 말한다.

회사 우울증을 느끼는 비율은 여성이 76.9%로 남성(63.8%)보다 높게 나타났다. 직급별로는 주임·대리급 직장인들이 76.6%로 가장 높았고, 사원(67.8%), 차장(65.6%), 부장·임원급(60.6%) 순으로, 대체적으로 직급이 낮을수록 회사 우울증을 앓는 경향이 많았다.

직무별로는 마케팅·홍보에 종사하는 직장인들이 82.9%로 가장 높았다. 디자인(80.6%), 고객 상담·서비스(74.5%), 재무·회계(74.15), 영업·영업 관리(71.6%), 인사·총무(70.9%) 등의 직업서 평균(68.8%)을 웃도는 비율을 보였다.

회사 우울증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은 그 이유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비전’을 1순위로 꼽았다. ‘회사에 대한 불확실한 비전’ ‘과도한 업무량’ ‘업적 성과에 따라 이뤄지지 않는 급여 인상’ ‘상사와의 관계’ 등이 뒤를 이었다.

회사 일로 인해 우울감을 느끼는 직장인의 숫자가 늘어난 것은 SNS서도 손쉽게 확인이 가능하다. 


다음소프트가 분석한 직장인 사춘기 관련 빅데이터 자료를 보면 2016년 우울증 연관어로 회사나 직장이 언급된 게시글은 1만2652건으로 집계됐다. 그리고 불과 1년 새 3.1배인 3만8972건으로 늘었다. 

야근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경우는 196건서 1416건으로 7.2배나 폭증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 따르면 국민 가운데 73.4%는 직장서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연령별로는 30대(80.9%)와 40대(78.7%)에서 가장 높은 스트레스 체감도를 보였다. 그 다음이 20대(73.4%)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최근 5년 새 불안장애를 호소하는 환자는 10만명 이상 증가했다고 전했다. 역시 40대 직장인서 특히 높은 발병률을 보였다.

정부는 2013년부터 업무상 재해의 범위를 정신적 스트레스로까지 확대했다. 업무와 연관된 스트레스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까지 산업재해에 포함한 것.

지난해 서울행정법원은 부하 직원의 사망 사고를 처리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상사의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이를 업무상 재해로 판단하지 않았지만 법원은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또 “회사 측의 무리한 업무지시와 징계해고 등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을 정도로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합리적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해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회사 우울증을 앓는 직장인들은 번아웃 증후군, 범불안장애 등의 증상을 호소한다. ‘불태워 없어진다’는 뜻의 번아웃 증후군은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정신적 피로감을 느끼면서 무기력해지는 증상을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사회초년생인 1∼5년차 직장인들이 많이 겪는다. 스트레스와 과도한 압박을 느끼는 경우 나타날 수 있다.

정신장애의 일종인 범불안장애는 다양한 주제와 일상에 대해 특별한 원인 없이 만성적으로 불안을 경험하고, 신체적 각성을 비롯한 증상을 6개월 이상 경험할 때 진단된다. 불안을 직접적으로 유발한 만한 사건이나 대상이 없는 경우에도 지속적으로 나타난다는 특징이 있다. 

실제 예상보다 부정적 결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상황임에도 최악의 결과를 상상해 불안이 더욱 심화되는 경우도 있다.

퇴근하고 나가면 ‘펄펄∼’
취미생활 만들어 해소해야


회사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늘어나다보니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 ‘와이미(Why me) 증후군’ ‘샌드위치 증후군’ 등의 신조어도 쏟아지고 있다.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은 ‘항상 밝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화가 나거나 슬플 때도 무조건 웃는 것을 말한다. 겉으로 보기엔 밝은 표정을 유지하지만 속으로는 늘 우울해하고 식욕·성욕 등이 떨어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억누른 채 고객을 응대해야 하는 감정노동자들에게 많이 발견된다.

와이미 증후군은 직장에서 자신의 편이 하나도 없고 자신만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말 그대로 “왜 나한테만 그래?”라는 생각을 자꾸 떠올리는 증후군이다. 부정적 상황의 원인을 외부서 찾기 때문에 자신을 희생양으로 생각하거나 피해의식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샌드위치 증후군은 밑으로는 부하 직원에게, 위로는 경영층의 압박을 받는 중간 관리자의 고통을 가리킨다.

방치했다 큰일


회사 우울증은 일단 회사를 벗어나면 줄어들기 때문에 일반 우울증과는 다르다. 그렇기에 당사자조차 회사 우울증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실제 회사 우울증을 앓고 있는 직장인 10명 중 1명 정도는 술, 담배, 운동 등의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보다는 그대로 방치하는 방법을 택한다.

전문가들은 회사 우울증 극복을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확실히 파악하고, 취미생활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규칙적인 운동과 적절한 수면시간, 가족이나 친구와 대화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추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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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