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72)포위

당군의 조바심을 자극하다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무슨 표정이 그럽니까?”

“고 장군 이 사람. 동작 한번 빠르네.”

선도해가 마치 빈정대듯이 한마디 하자 연정토가 자신의 뒷덜미를 긁적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모두가 박장대소를 터트리자 급기야 연정토의 눈이 동그랗게 변해갔다. 

선도해가 더 이상 놀려서는 안 된다는 판단을 했는지 세세하게 설명을 곁들였다.


“아니 설부터 형님은.”

“그건 그렇고 고문 장군은 내 말을 반드시 명심하도록 하시게.”

연개소문이 연정토의 말을 무시하고 고문에게 지시하기 시작하자 연정토가 다시 한 번 머쓱한 표정을 지었고 모두가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박작성 전투

“마저 말씀주시지요, 막리지 대감.”

“저놈들이 아마도 우리가 펼쳤던 전술을 역으로 이용하려는 모양인데, 그를 우리가 이용하도록 해야겠소.”

연개소문이 선도해에게 눈짓을 주었다.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입한 이래 지속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고 그러니 소규모 병력으로 우리의 변죽을 올려 당나라 영토로 침입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술책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장군은 박작성 근처에 있는 안지성과 오골성에서 각기 일만 오천 씩 도합 삼만의 군사를 징발해서 박작성을 후원하되 저들의 의도를 역으로 이용해 주시오.”

“하면, 어떻게?”    

“박작성에 전령을 보내 저들을 우리 영토 깊숙이 끌어들이라 할 터이니 당나라 놈들 모두  압록수에 쓸어 넣으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놈들, 이 추운 날씨에 정신 번쩍 들겠군.”

연정토의 걸쭉한 말투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고문이 연개소문의 지시에 따라 오골성과 안지성에서 병사를 징발하여 진용을 갖추고 박작성으로 향할 즈음 당군은 압록수 하구를 따라 올라와 박작성에서 불과 육십여 리 떨어진 곳에 군영을 설치했다.

이미 전령을 통해 연개소문의 지시사항을 전달받은 소부손 성주 역시 그들의 움직임에 행보를 같이하여 성내의 보병과 기병 일만 명을 이끌고 성에서 나와 저지선을 구축했다. 

이어 고구려군의 움직임을 살핀 설만철은 수적 우세를 믿고 강하게 고구려 군사를 밀어붙였다.

양 진영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전개되던 어느 순간 고구려 군사들이 열세에 몰리게 되자 소부손이 진지를 파하고 급히 성으로 퇴각할 것을 명했다. 

이에 고무된 당나라 군사들이 박작성 가까이 진을 치고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부손은 당의 독전에도 불구하고 수성으로 오로지하며 당나라 군사들의 조바심을 자극했고 이 무렵 현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고문이 이끄는 증원군이 도착했다. 

고문이 진격에 앞서 당군의 배치를 살피고 박작성으로 전령을 보냈다.


고문의 전령이 박작성에 들기를 잠시 후 성문이 열리고 고구려 군사들이 당군을 향해 달려 나갔다. 

고구려군의 거센 기습공격에 일시적으로 당황했던 당군이 전세를 가다듬고 총공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를 틈타 고문이 증원군을 두 개의 부대로 나누어 이동시켜 당나라의 측면과 배후에 자리 잡았다. 배치가 끝날 즈음 박작성 군사들이 다시 성으로 퇴각했다. 

결국 당나라 군사는 압록수를 옆으로 두고 고문의 증원군과 박작성 군사들로 포위당하는 형국에 처했다.  

성루에서 그를 확인한 소부손이 다시 성문을 열고 당나라 군사들을 향해 재공격을 감행하자 진의를 알지 못하는 당나라 군사들이 박작성에 집중했다. 

이어 당군과 박작성의 고구려군이 막 부딪칠 무렵 뒤와 옆에서 북소리와 함성이 천지를 가르기 시작했다.


“당나라 오랑캐 놈들, 한 놈도 빠트리지 말고 모두 압록수에 수장시키도록 하라!”

고문의 우렁찬 소리마냥 고구려 군사들의 함성이 높아갔고 그와 반대로 당군은 혼비백산하기 시작했다. 

북소리와 함성이 천지를 가르다
설욕전…다시 신라 함정에 빠지다

“전하, 이번에는 소장을 보내주십시오!”

“아니오. 의직 장군에게 지난번 패배를 설욕할 기회를 주는 게 타당하오.”

의자왕이 완강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성충에게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장군, 소장이 다시 나서 이번에는 확실하게 신라를 공격하여 승전보를 바치도록 할 터이니 기회를 주십시오!”

성충이 간절하게 이야기하는 의직과 의자왕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반드시 설욕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장군. 신이 함께 출정하여 도움을 주도록 하겠습니다.”

의직에 이어 좌평인 중상이 나서자 성충이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주시했다.

“다만 승리를 바랄뿐이오. 그러나 만약에 신라군의 장수로 김유신이 등장하면 신중에 신중을 기하시오.”

“그 말씀은?”

의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받았다.

“김유신은 꼼수의 달인이오. 즉 자력으로 당당하게 전투를 치르기보다는 항상 주변 여건을 활용하고 있소. 그 과정에서 사람이건 지형지물이건 가리지 않는 인물이오. 그러니 이 점 유념하고 전투에 임하시오.”

의직이 성충의 말을 헤아리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중상을 군사로 백제의 정예병 삼천을 거느린 의직이 다시 신라의 서쪽 국경지역을 공략하기 시작하여 요거성(腰車城, 상주의 옛 요제원 일대) 등 십여 성을 빼앗았다. 

그 소식을 접한 신라는 급히 김유신으로 하여금 압량주의 정예병을 이끌고 맞이하게 하였다.

요거성에 다다른 김유신이 멀찌감치 떨어져 성을 바라보았다. 

성루에 의직의 장군기가 나부끼는 모습을 살피며 잠시 생각에 잠겨들었다. 

비록 수적으로 우세하지만 백제군의 용맹성, 아울러 지난 전투에 패한 의직의 각오를 헤아리며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유신이 뒤를 바라보았다. 백화산이 시선에 들어왔다. 

그를 살피며 급히 수하 장수들을 불러 작전에 관해 지시 내리고 말머리를 돌려 다수의 병사들을 이끌고 백화산의 옥문곡으로 이동했다.

김유신이 떠나고 잠시 후 오백여 명의 신라 군사들이 고함과 함께 요거성으로 진격을 감행했다. 

성루에서 미처 김유신의 대군이 슬그머니 꼬리를 튼 사실을 알지 못한 백제의 의직이 성문을 열고 접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접전을 벌이기를 잠시 수적으로 열세인 신라군이 슬금슬금 후퇴하기 시작했다. 

사기가 충전된 백제군이 그야말로 저돌적으로 추격을 감행했다. 

순간 성루에서 그를 살피던 중상의 시선에 멀리서 보이는 깃발이 들어왔다.

급히 북을 쳐서 회군하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함성에 묻혀 들리지 않는지 백제군이 공격을 지속했다. 

중상이 급하게 성루에서 내려와 말에 박차를 가하여 백화산 초입에서 백제군의 후미를 따라잡았다.

“장군은 멈추시오!”

“왜 그러시오, 대감.”

옥문곡 전투

막 신라군을 잡았다고 생각하던 시점에 갑자기 나타난 중상의 멈추라는 소리에 의직이 의아한 표정으로 주시했다.  

“신라군의 함정 같소!”

“함정이라!”

“성루에서 가만히 살피니 저 산 안쪽에서 신라의 깃발이 언뜻언뜻 비치더이다.”

순간적으로 성충이 했던 말이 떠올랐는지 의직이 즉각 백제군의 공격을 멈추도록 지시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아울러 신라군의 후미가 사라진 지점으로 수색병을 내보냈다.

“정녕 함정이란 말입니까?”

“확실하지는 않으나 산속에서 펄럭이는 깃발을 보았소.”

“혹시 잘못 보신 거 아니오?”

“그렇지 않을 거요.”

확실하게 답을 하지 못하는 중상을 의직이 의심스런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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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