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집> ④진화하는 세뱃돈

아직도 현금으로 주십니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민족대명절 설이 다가왔다. 설에는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한 해의 무사안녕을 기원한다. 웃어른께 세배로 문안인사도 드린다. 어른들은 아랫사람에게 세뱃돈과 함께 덕담을 건넨다. 경기불황과 취업난이 사회를 덮치고 있지만 세뱃돈 인심만큼은 아직 훈훈함이 남아있다.
 

경기 불황이 지속되고 실업률이 치솟으면서 해가 거듭될수록 명절 분위기는 잦아드는 추세다. 명절에는 고향을 찾아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가족끼리 떡국 한 그릇을 함께 먹어야 한다는 생각 역시 조금씩 옅어지고 있다.

특히 아직 취업을 못한 취업준비생들은 명절에 고향을 찾기 보다는 혼자 보내는 쪽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설을 혼자 보내는 혼설족, 추석을 혼자 보내는 혼추족 같은 명절에 아무 데도 가지 않고 홀로 시간을 보내는 혼명족이 늘고 있다.

달라진 풍속도

그럼에도 설이 다가오면 은행부터 각종 쇼핑몰까지 정신없이 바빠진다. 부모나 친척에게 새해 선물로 무엇이 좋을지 묻는 질문도 줄을 잇는다. 백화점 등은 명절 특수를 누리기 위해 각종 선물세트로 소비자의 관심을 끈다. 덩달아 세뱃돈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다.

설날 아침 차례를 지내고 나면 가족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웃어른들이 나란히 앉으면 설빔을 곱게 차려 입은 아이들도 늘어서서 세배를 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과 함께 절을 하면 웃어른들은 덕담을 건네며 품에서 봉투를 꺼낸다.


국어사전 속 세뱃돈의 뜻은 세뱃값으로 주는 돈이다. 세배는 웃어른께 섣달그믐이나 정초에 절로 하는 문안인사이니, 세뱃돈은 이른바 절값이다. 

역사학자들은 세뱃돈의 유래를 중국서 찾고 있다. 중국은 송나라 때부터 정월 초하루, 즉 음력 1월1일이 되면 결혼하지 않은 자녀에게 ‘나쁜 일을 물리치는 돈’이라는 의미로 덕담과 함께 붉은 봉투에 돈을 넣어줬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 말기 문신 최영년이 1925년 낸 시집 <해동죽지>에 ‘세배갑’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옛 풍속에 설날 아침이면 어린아이들이 새 옷을 입고 새 주머니를 차고 친척과 어른들께 세배를 드린다. 그러면 어른들이 각각 돈을 주니 이를 ‘세배갑’이라 한다.” 

옛 풍속이라 표현한 것을 보면 적어도 1925년 이전부터 세뱃돈 문화가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처음 세뱃돈 풍습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땐 돈 대신 음식이나 떡을 싸줬었다고 한다. 18세기 정조 때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경도잡지>에 따르면 조선시대 양반가 여성들은 설날에 어린 여자 노비를 대신 일가친척에게 보냈다. 

문안을 받은 집에선 반드시 어린 노비에게 세배상을 차려주거나 차비로 돈을 주는 문안비 풍속을 따랐다.


중국서 유래…떡·음식 주다가 돈으로
떠오르는 모바일 상품권·기프트카드

경제가 발전하고 점차 삶이 풍족해지면서 현금으로 세뱃돈을 주는 풍습이 널리 퍼졌다. 그러면서 설 언저리가 되면 은행서 신권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세뱃돈은 새 돈으로 줘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 때문에 명절이 되면 은행은 신권을 준비하느라, 사람들은 신권을 찾느라 한바탕 전쟁이 벌어진다.

매년 설마다 신권을 찾는 사람들로 은행 창구 앞이 북적이자 한국은행은 ‘신권 안 쓰기 캠페인’까지 벌이고 있다. 불필요한 화폐 제조비용을 줄이기 위해 세뱃돈을 위한 신권 수요분을 줄이자는 취지다. 

그만큼 세뱃돈은 ‘새 돈’으로 줘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 셈이다.

하지만 세대가 바뀌고 사회 분위기가 변화하면서 굳이 세뱃돈으로 현금을 고집하지 않는 수요가 조금씩 생기고 있다. 도서상품권이나 문화상품권 같은 현물은 모바일로 대체되는 추세다. 

모바일 상품권은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버튼 몇 번만 조작하면 상대방에게 전달된다. 현금을 직접 주는 것보다 부담이 덜하면서도 간편하다.

현금을 주더라도 어플을 이용해 ‘쏴주는’ 모바일 송금도 방식도 인기가 높다. 은행서 내놓은 특정 어플을 활용해 계좌번호 없이 휴대전화 번호만으로 세뱃돈을 송금할 수 있다. 연하장 기능도 있어 덕담도 함께 전달 가능하다.

외화 세뱃돈 세트도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행운의 상징인 2달러 미화를 포함, 유로화·중국 위안화·캐나다 달러·호주 달러 등 5개국 통화를 신권으로 구성했다.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각국의 다양한 화폐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도록 하는 취지로 제작됐다. 당시 선착순 한정 판매로 내놓은 1만5000세트는 순식간에 매진됐다.

아이 앞으로 펀드나 예금 계좌를 만들어 세뱃돈으로 주는 일도 심심찮다. 세뱃돈으로 많은 현금을 받은 아이들이 당장 군것질에 돈을 소비하지 않게 펀드 계좌 등을 만들어 대학등록금이나 결혼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이 때문에 설이 되면 은행마다 펀드 상품을 내놓고 홍보에 돌입한다.

현금을 충전해 체크카드처럼 사용하는 기프트카드 역시 꾸준하게 인기가 높은 세뱃돈이다. 커피를 자주 마시는 사람에게는 카페서 만든 기프트카드를, 생필품 등 소매용품 구매가 많은 사람에게는 마트서 내놓은 기프트카드 등 사용하는 사람에 맞게 선물할 수 있다. 


기프트카드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디자인도 다양화돼 받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평이다.

최근 광풍이라 할 만큼 인기를 누린 가상화폐가 새로운 세뱃돈으로 등장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실제 베트남에서는 ‘뗏’이라 불리는 베트남 최대 명절인 설을 앞두고 비트코인 기념주화를 판매하고 있다. 기념주화는 새로운 세뱃돈으로 주목받아 판매량이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비트코인도?

2014년 홍콩에서는 비트코인 7000만원 상당을 거리서 세뱃돈으로 나눠주는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지금과 같은 가상화폐 광풍이 불기 전 이야기다. 당시 홍콩 최대 비트코인 거래소인 에이엔엑스는 국제금융센터와 센트럴 등 주요 명소서 10홍콩달러(약 1400원) 상당의 비트코인 쿠폰이 든 빨간색 봉투 3만장을 행인들에게 나눠줬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설’ 직장인 지갑 사정


구인구직 사이트 사람인에 따르면 직장인들은 설 명절 기간 1인당 평균 44만원을 지출할 계획인 것으로 조사됐다. 지출 액수는 결혼 여부에 따라 달라졌다. 

기혼은 평균 62만원, 미혼은 35만원으로 기혼자의 지출 액수가 1.8배가량 더 많았다.

가장 많이 지출하는 항목으로는 부모님 용돈 및 선물이 66.9%로 1위를 차지했고, 식비(8.3%), 세뱃돈(5.5%), 친척 선물(3.4%) 등의 순이었다. 

세뱃돈을 주겠다고 답한 응답자는 71.2%에 달했고, 이들은 평균 19만원을 세뱃돈으로 지출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적정하다고 생각하는 1인당 세뱃돈 액수는 5만원으로 집계됐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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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