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집> ②특별대담- 정세균 국회의장에 묻다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2.12 10:12:44
  • 호수 11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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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와 국민 좁혀졌다면 성공한 거죠”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2018년 2월은 대한민국의 이정표로 기억될 공산이 높다. 평창동계올림픽(이하 평창올림픽)이라는 국가적 행사가 지난 9일 개막식을 열고 본격적인 일정에 돌입, 우리 선수들을 응원하는 온 국민의 염원이 설 연휴 기간을 따뜻하게 데울 것으로 전망된다. 여의도에서는 개헌이라는 국가적 과제가 여야 합의를 기다리고 있다. 오는 5월 임기를 마치는 정세균 국회의장은 국회발 개헌안 발의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민족 최대 명절 설을 앞두고 국회의 보폭이 빨라지고 있다. 연휴 기간 지역 민심 다지기에 주력해야 하기에 쟁점 법안을 논의할 절대적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여야는 2월 임시국회 첫날 소방3법 개정안을 처리하며 산뜻하게 출발하는 듯했다. 

그러나 개헌을 비롯해 권력기관 개혁 등이 여야 쟁점법안으로 떠오르면서 순항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국회 지휘자’ 정세균 의장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각기 다른 5개 정당의 목소리를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따라 2월 임시국회가 불협화음으로 얼룩질지, 아니면 하모니를 만들어낼지 결정된다. <일요시사>는 정 의장을 만나 설 연휴 계획과 개헌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

다음은 정 의장과의 일문일답.

- 이번 설 명절에 어떤 일정을 소화하실 계획입니까?
▲재래시장 등 현장을 방문하여 국민들과 소통하려고 합니다. 특히 이번 설에는 지속되는 한파에 설 명절 특수 등 여러 요인들이 겹쳐 물가가 전반적으로 상당히 뛰었다고 들었습니다. 소비자 부담은 물론이고 상인들 소득도 늘지 않는다고 하니, 재래시장을 돌아보면서 설 물가도 점검하고 애로사항도 들으며 두루두루 인사를 드릴까 합니다.

- 국회의장으로서 맞는 마지막 설 명절입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만.
▲감회보다는 민족 최대 명절인 설을 앞두고 우리 국민들이 따뜻한 명절을 보내실 수 있도록 민생을 더욱 챙겨야겠다는 생각뿐입니다. 특히 국회 밖에서 평창올림픽이라는 세계인의 축제가 개최되고 있습니다만, 이와는 별도로 국회는 국회대로 해야 할 일들을 꼼꼼하게 챙길 필요가 있습니다.


개헌과 관련해서도 각 당이 합의를 시작할 수 있는 구체적 안들이 나와야 하고, 지방선거를 위한 법적 정비도 선거일정을 고려할 때 이번 임시회서 미룰 수 없는 숙제입니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지키는 사항에 대해서는 세밀하게 규제해서 제도적으로 시스템을 구축하되, 우리 청년들의 일자리를 늘리고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부담을 해소시킬 수 있는 민생법안 처리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 취업포털 ‘사람인’에 따르면 이번 설 명절에 가장 듣기 싫은 말 1위가 “취업은 했니?”라고 합니다.
▲3포(연애, 결혼, 출산) 세대에 이어 청년이라서 죄송하단 말이 나올 정도로 고용상황이 심각합니다. 통계청이 내놓은 2017년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층의 실업률은 9.9%, 체감실업률은 22.7%로 최악의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국회도 청년실업률 악화의 심각성을 엄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인데, 현실은 비정규직과 임시직 일자리가 대부분이고 사회진입을 위해 한시적으로 운용됐던 인턴과 같은 일자리가 정규노동력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민간기업이 고용을 확대하기 위한 여건 또한 희망적이지 않습니다. 

- 청년 취업 문제 해결을 위한 국회 차원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국회 역할은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도록 제도적인 길을 터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공일자리뿐 아니라 민간기업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개혁하고 혁신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공공일자리 창출과 관련해 아직 그 성과를 크게 기대하기 어렵습니다만, 지난해 국회서 추경예산안을 처리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청년 고용촉진특별회계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습니다. 청년고용촉진특별회계를 재원으로 공공부문에서 청년 미취업자 고용확대를 지원하는 내용인데, 조속히 통과돼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고 보탬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장기적으로는 민간주도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국회가 관련 입법을 적극적으로 심사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최근 4차 산업혁명이라는 큰 변화의 흐름에 맞추어 중소·중견기업이 혁신 성장을 거둘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주고 이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구축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개헌의 가장 큰 중심은 ‘국민’
국민-국회-정부 함께 만들어야


- 설 연휴 기간 국가적으로 큰 행사인 평창올림픽이 열립니다. 올림픽 선전을 기원하는 의미서 우리 대표팀에게 한 말씀 전한다면?
▲그동안 우리는 경제적 성과도 거두고 민주주의도 성숙해서 사회 각 방면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어렵고 힘든 난관의 시기에 스포츠가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큰 역할을 해왔습니다. 우리는 이제 명실상부한 스포츠 강국입니다. 이미 4개의 세계대회(동·하계올림픽, 세계육상선수권대회, FIFA월드컵)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나라가 됐습니다. 

이번 올림픽의 개최도 국민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며 선수들의 플레이는 우리 국민들의 큰 자부심입니다. 저를 포함한 국민들께서 우리 선수들에게 무한한 격려를 보낼 것이며, 한 장면 한 장면 놓치지 않고 지지할 것입니다. 그동안 땀 흘리며 노력한 우리 선수들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응원하겠습니다.

- 설 연휴 기간 국가적으로 “평창올림픽을 통해 남북대화는 물론 북미·국제사회와의 대화로 발전하길 바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기 위해 현 정부가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이번 평창올림픽에는 북한을 포함한 21개국 정상급 인사들의 방문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 및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남북간 대화가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 주길 바랍니다. 
 

또 한반도서 형성되고 있는 평화의 모멘텀을 잘 살려 남북대화와 비핵화 대화가 평화적인 해결원칙 하에 선순환으로 이어지도록 외교적 노력을 강화해 줄 것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저도 그동안 국회 차원에서 남북간 대화를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만, 남은 임기동안 결실을 볼 수 있도록 의회 외교 차원의 노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 이번 개헌정국서 각 정당이 유념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개헌의 가장 큰 중심은 ‘국민’이며, ‘국민과 국회와 정부가 함께 만드는 개헌’이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을 추진하는 것은 대다수 국민들의 요구사항이며 특히 각 당에서도 지난 대선 때 국민과 약속했던 사안입니다. 

정파적 이익에 따라 시기를 놓치고 정쟁만 벌인다면 헌법에 새로운 시대정신을 반영해야 할 국회의원들 본연의 책무를 져버리는 것입니다. 각 당이 개헌안을 내놓고 있는 만큼 남은 시간 동안 충분한 논의를 통해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협의할 것입니다.

- 여야의 정쟁이 이대로 이어질 경우 6월 지방선거·개헌 동시 투표를 장담할 수 없는데요. 3월 개헌안 발의를 위한 여야 대타협 가능성을 어떻게 내다보십니까?
▲대선 당시 각 당의 대표들이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르기 위해 3월 초까지 합의하기로 약속했으니, 그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믿습니다. 국민 대다수와 국회의원 대다수가 이번이 개헌의 적기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의 물결을 거스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개헌 필요성에는 모두들 동의하고 있기 때문에 각 쟁점들에 대한 결단과 합의만이 남아있는 것이고, 결국에는 국회 주도의 합의안이 도출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얼마 전 여당에서는 개헌에 대한 당론을 채택한 바 있고, 조만간 야당서도 개헌에 대한 당론을 정할 것입니다. 물리적으로 시간이 촉박하기는 하지만 최선을 다해 예정된 로드맵에 따라 개헌절차를 추진할 계획입니다.

재래시장 돌며 물가 점검
5월 퇴임 “끝까지 최선”

- 여야가 각자 개헌 당론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갈등만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이를 타협의 과정으로 봐야 할까요, 아니면 갈등의 신호로 봐야 할까요?
▲국회 개헌특위를 통해 권력구조, 기본권, 지방자치 등 각론에 대해 많이 논의해 왔고 다듬어 왔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개헌안을 효율적으로 논의하기 위해서는 각 정당별 입장을 제시되어야 합니다.

 각 당의 입장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개헌특위를 운영한들 현실적으로 타협을 이루기가 어렵고, 무엇을 어떻게 논의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뿐 만 아니라, 먼발치서 이견을 좁히기도 어려워 공전을 거듭할 뿐입니다. 

따라서 하루빨리 자신들이 생각하는 개헌안을 확정해주길 바라고, 이를 토대로 타협하는 장이 마련되길 바랍니다. 권력구조 개편과 같은 핵심적인 부분에 대해서 지도부 차원의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나머지는 양보와 타협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의장님께서 최근 주요간부회의에 참석해 국민투표법의 신속한 개정을 주문하셨습니다. 언제가 마지노선이 될까요?
▲이번 2월 임시국회에서 하루빨리 처리해야 합니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2014년 7월에 주민등록이나 국내 거소신고가 안 된 재외국민의 투표권 행사를 제한하는 국민투표법 관련조항에 대해서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2015년 말까지 법을 보완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개헌이라는 큰 과제가 아니더라도 국회는 개별 법률들이 헌법정신을 잘 반영하고 있는지, 위헌시비가 없는지 수시로 점검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위헌소지가 발견된 경우에는 지체 없이 이를 개정해서 굳이 헌법재판소의 훈수를 받기 전에 법률을 고치는 자정노력이 필요합니다. 

더욱이 개헌을 추진하기 위해 국민투표법 개정을 놓쳤다면 이것은 중대한 직무유기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조속히 관련 상임위에서 국민투표법을 심사해서 개헌이라는 국가적 대사를 추진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도록 처리해주길 바라겠습니다.

-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손봐야 한다고 보십니까?
▲아무래도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논의가 이번 개헌의 핵심 의제가 될 것입니다. 권력구조의 구체적인 형태에 관해서는 여야별, 의원 개인별, 일반 국민들과 전문가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모델이 서로 다른 것이 현실이나, 대통령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키자 하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대통령 권력을 그대로 두고 4년 중임제를 하면 그건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며, 분권이라고 하는 방향에만 합의를 한다면 4년 중임이든 단임이든 혼합형대통령제 든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작년, 의장실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결과,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자는 여론이 79.8%가 나왔고, 대통령임기는 4년 중임제가 72.3%로 압도적으로 나왔습니다. 저도 국민들의 뜻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뜻을 모아 임기는 ‘4년 중임’ 정부형태는 ‘분권형 대통령제’가 합리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청소근로자 직접고용’ ‘국회 미래연구원’ 등 의장님 임기 동안 달성한 성과가 상당합니다.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습니까?
▲국회가 해야 할 일은 국민의 뜻을 담아내고 국가의 미래를 밝혀주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그 원동력이 있다고 봐야겠습니다. 이러한 차원서 20대 국회가 시작할 때부터 저는 국회를 운영하는 주요원칙과 철학을 제시했고 국민에게 힘이 되는 국회, 미래를 준비하는 국회가 되자고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습니다.

그 결과 2016년 12월, 국회 청소근로자들을 직접 고용하는 방식으로 전환해 중앙 공공기관이 청소근로자를 직접 고용하는 첫 사례를 만들어냈고 지난해 12월에는 ‘국회 미래연구원법’을 통과시키기도 했습니다. 
 

특히 국회 미래연구원의 경우 그 필요성에 대해 꾸준히 생각해왔습니다. 정권교체 때마다 되풀이되는 정책번복에 부수되는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되는 실정입니다. 국가정책에 대한 국민들 신뢰가 훼손되어가고 국가성장에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젠 장기적인 안목서 특정정권의 영향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 오롯이 ‘국가 경쟁력’과 ‘국민 행복’만 바라볼 수 있는 중장기적인 국가전략이 절실히 요구될 때입니다. 입법부 산하에 설치되는 미래연구원이 정파를 뛰어 넘는 협치의 실천이자 산물이 될 수 있기를 늘 기원하고, 그 성과가 국민행복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싱크탱크가 되기를 바랍니다.

- 국회의장직이 정치인으로서 마지막 행선지인지 궁금합니다.
▲지금 맡은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최선의 목표입니다. 그 이후 국회와 국민의 거리가 저로 인해 조금이라도 좁혀졌다면 저는 성공한 의장이었다고 자부할 것 같습니다. 항상 그랬듯이 의장 퇴임 후에도 제게 맡겨진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 5월말 임기가 종료됩니다. 의원 신분으로 복귀하시면 어떤 점에 집중해 의정활동을 할 계획이십니까?
▲그동안 의장으로 있으면서 국회를 대표하고 여야를 아우르는 조정자 내지 중재자로서의 역할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의장이 끝나면 평의원으로서 남은 임기 2년을 마치게 될 텐데 그동안 부족했던 지역주민들과의 소통은 물론 원래 정당으로 돌아가 정당의 구성원, 의원들과 활발히 소통할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어디서든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 설 명절을 맞은 국민들께 덕담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넉넉해지는 설 명절입니다. 입춘도 지난 지금, 아직 겨울추위가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만, 우리기 처해있는 민생 현실 또한 녹록치 않은 때입니다. 그러나 국민 여러분 모두가 어려움을 떨쳐내고 고향의 따뜻한 정을 함께 나누시길 기원합니다. 평창올림픽을 지켜보시면서 모두 모여 서로를 격려하며 즐거운 민족 명절이 되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chm@ilyosisa.co.kr>


[정세균 의장은?]

▲전라북도 진안 출생
▲전 쌍용그룹 상무이사
▲제9대 산업자원부장관
▲전 민주당 대표
▲제15·16·17·18·19·20대 국회의원
▲제20대 국회 전반기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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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