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가나아트서 정재규 <조형-일어서는 빛>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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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18.02.01 09:24:38
  • 호수 11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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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회화의 시녀’로 불렸던 사진은 20세기 전성기를 구가했다. 사진은 버라이어티하게 영역을 확장하며 위세를 보였다.

10여년전 국내서도 ‘그림같은 사진’ 열풍이 불었다.

배병우·민병헌 등 사진작가들의 존재감을 드높였고 작품도 유례없이 고가에 팔려나갔다. 하지만 ‘회화의 권력’은 뛰어넘지 못했다.

반짝 강등세를 보였던 사진 시장은 소강국면으로 접어들며 다시 회화의 부상을 알렸다. 구상에서 추상, 추상은 단색화로 인기몰이 하며 미술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사진이 주줌하고 있는 가운데 ‘조형 사진’이 등장 눈길을 끈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가 기획한 조형사진 작가 정재규의 개인전이 열린다. 2월2일부터 ‘조형 사진-일어서는 빛’을 주제로 사진과 설치 작품 100여점을 전시한다.

사진은 ‘회화의 시녀’가 아니라 ‘회화의 동반자’라는 의미다. 작품은 설치 조각까지 넘본다.


작가는 한국의 고건축이나 조형물, 예를 들어 경주 불국사의 극락전, 대웅전, 석가탑, 다보탑, 돌사자상 등을 찍은 사진들을 자르고 재배열해 화면을 만들어낸다.

가나아트 김나정 큐레이터는 “사진을 찍고 인화한 이미지들을 자르고 조합하는 행위는 화면 속 정해진 시공간의 이미지뿐만이 아닌, 작가의 사적인 기억과 역사적 사건이 개입된 ‘시간의 올짜기’”라고 소개했다.

사진을 자르고 엮은 조형사진의 시작은 24년 전 경주를 방문하면서 시작됐다.

국립 경주 박물관 뜰에서 머리가 없는 불상(佛像/無頭石佛)들 약 50여구가 일렬로 배치돼있는 모습을 접하면서다.

“예기치 못한 이 끔찍한 장면 앞에서 나도 모르게 얼른 사진 촬영을 하기 시작했다. 지난날의 끔찍한 불두 참수의 사건을 기록한다거나 다른 이에게 보이고자 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 그것은 순간적인 나의 반사 작용 같은 것으로서 참혹한 모습이지만 여전히 조화롭고 완전한 조형미를 갖춘 불상들을 또 다르게 볼 수 있는 한 방식 혹은 또 다른 시선의 한 선택이기도 했다.”

카메라의 앵글을 통해서 보이는 머리 없는 불상들은 여전히 부동(不動)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 셔터의 소리와 함께 나는 불상의 그 참수 현장에 있는 듯한 인상을 순간적으로 느끼게 됐다.”

작가는 “과거의 한 순간과 현재의 한 순간이 사진 촬영의 한 순간에서 서로 겹쳐지고 교차되는 듯 했다”며 “한여름 고요한 경주 박물관 뜰에서 동시성(同時性)에 대한 기이한 사진적 체험을 했다”고 밝혔다.


1978년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는 당시프랑스, 이씨-레-물리노의 아뜰리에로 되돌아와 머리 없는 불상들의 사진 이미지 절단 작업을 시작했다.

그 이미지들을 자르면서 자르는 순간순간들이 이번에는 경주 박물관 뜰에서의 그 촬영 순간과 겹쳐지고 교차되는 듯한 인상을 느끼게 됐다. 잘려져서 다시 배열된 머리 없는 불상 이미지의 표면은 사진적 사건을 위한 또 다른 장소(또 다른 정원)로 여겨졌다는 것.

1974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한 작가는 1977년 제10회 파리비엔날레 참여를 계기로, 1978년부터 파리서 살고 있다.

1980년대에 파리 1대학서 수학하며 러시아 전위 미술 운동가인 말레비치의 절대주의(Suprematism)와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추상화 등 서양 미술이론 연구에 전념했고, 1990년 초부터 이론 연구를 뒤로 하고 본격적인 조형사진 작업을 시작했다.

사진을 잘라 엮어낸 조형 사진은 복제가능성과 복수성을 부정하고 순간성과 기록성이라는 정체성도 해체됐다. 이미지가 가지는 시공간 구조에 집중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 포장용 크래프트지 위에 수묵작업과 함께 복제된 이미지를 자르고 붙여 다양한 기호들을 조합, 미술사를 재해석한 작품을 보여준다.

크래프트지 위에 동양의 수묵 기법으로 선을 그린 작업은 중국 명·청대의 화가 팔대산인(八大山人, 1626~1705)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됐다. 또한 폴 세잔, 파블로 피카소, 마르셀 뒤샹, 만 레이 등 서양 미술가들의 작품을 사진과 크래프트지를 5~10mm 폭의 띠로 잘라 올짜기 기법의 조형사진과 설치작품도 선보인다.

누구나 사진작가인 이 시대에 정재규의 조형 사진은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다. ‘찍기만 열중했지 왜 엮을 줄을 몰랐을까’ 라는 생각과 ‘별것 아닌데’라는 마음이 교차한다.

하지만 일반인들과 예술가들의 차이는 시간을 지배한다는 점이다. 소설가들이 글은 엉덩이로 쓴다는데, 미술가들도 마찬가지다.

그의 작품 평을 쓴 장-루이 푸아트뱅 미술평론가(소설가)는 “정재규의 작품은 느림에 대한 찬사”라고 했다.

“끝없는 인내는 조형작가 정재규의 일상적인 작업에서도 핵심”이라는 그는 “무한히 느린 시간으로서, 마치 맹점처럼 잊혀졌지만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이 ‘시간의 힘'을 정재규의 작품이 우리들에게 환기시켜 주는 것”이라고 평했다. 전시는 3월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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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모씨와 조직원 3명이 필리핀 현지 수용소서 탈옥한 것으로 확인됐다. 8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와 함께 보이스피싱 등의 범행을 함께한 조직원 포함 총 4명은 최근 필리핀 루손섬 남동부 지방 비콜 교도소로 이감됐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후 지난 4월 말, 현지서 열린 재판에 출석한 박씨와 일당은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 수사 당국 관계자는 “박씨와 일당 3명이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구체적인 탈출 방식 등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출신의 전직 경찰로 알려져 충격을 안겼던 바 있다. 2008년 수뢰 혐의로 해임된 그는 경찰 조직을 떠난 뒤 2011년부터 10년간 보이스피싱계의 정점으로 군림해왔다. 특히, 박씨는 조직원들에게 은행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로 구성된 대본을 작성하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경찰 출신인 만큼, 관련 범죄에선 전문가로 통했다는 후문이다. 박씨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지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 “박씨가 마닐라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필리핀 루손섬 비콜교도소 수감 보이스피싱 이어 마약 유통까지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했다. 2023년 초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범죄를 계획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또, 박씨는 새로운 마약왕으로 떠오르고 있는 송모씨와 함께 비콜 교도소로 이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비쿠탄 교도소에 수감돼있는 한 제보자에 따르면 “박씨의 텔레그램방에 있는 인원이 10명이 넘는다. 대부분 보이스피싱과 마약 전과가 있는 인물들로 한국인만 있는 것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씨는 본래 마약과는 거리가 멀었던 인물이다. 송씨와 안면을 트면서 보이스피싱보다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교도소 내에서 마약 사업을 이어왔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경찰 안팎에서는 “새로운 조직을 꾸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일각에서는 이들이 비콜 교도소서 탈옥을 계획 중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비쿠탄 교도소 관계자는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서 약 100만페소(한화 약 2330만원) 정도면 인도네시아로 밀항이 가능하다. 비콜 지역 교도소는 비쿠탄보다 탈옥이 쉬운 곳”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한편, 지난 7일 외교부와 주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 측은 정확한 탈출 방식이나 사건 발생 일자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일축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