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김제동이 가을 개편을 맞아 2년 8개월간 진행해 온 <연예가중계>에서 하차한다. 이번 MC 교체는 제작비 절감을 위해 외부 MC 기용을 자제하고 자체 인력을 활용하는 ‘KBS 가을 개편 특징’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일각에선 <연예가중계>의 프로그램 특성 때문이 아니냐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김제동의 진행상 능력을 떠나서 그가 MC석에 앉아 있다고 해서 <연예가중계>의 이미지나 안정감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나온 결정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그는 가슴 시린 11월을 보내고 있다.
KBS 측 “김제동 하차는 제작비 절감 위한 외부 MC 기용 자제 때문”
연예계 일각 “처음 기대감에 못 미쳐 하차시키는 것” 의심의 눈초리 보내
구조조정에 들어간 방송가에서 출연료 비싼 MC들을 대상으로 한 퇴출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MC를 해당 방송국 소속 아나운서로 바로 교체하는 비상시국을 맞이했다. 현재 지상파 3사 TV의 예능 프로그램은 몇몇 인기 MC들이 겹치기 출연을 하면서 사실상 독과점 체제를 구축한 상황이다.
유재석, 강호동 등 톱MC들은 방송국 구분 없이 간판 예능 프로를 맡아가며 자기 자신을 라이벌로 싸우는 아이러니까지 연출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MC 등급에 따라 출연료 격차는 회당 1천만원 가까이 벌어지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예능 프로 제작비는 한정된 가운데 회당 1천~1천5백만원 출연료를 챙기는 고소득 MC들이 늘어나면서 생기는 부작용인 셈이다.
‘입담’ 하나는 최고의 위치
그렇다면 KBS가 제작비 절감 차원에서 교체하는 김제동의 몸값은 얼마나 될까. 김제동의 몸값은 사실 상당한 금액이다. 지난달 7일 KBS가 국회 문화체육관광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한 ‘KBS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주요 출연자 회당 출연료’에 따르면 <해피투게더>의 MC 유재석이 회당 9백만원, <해피선데이>의 강호동은 회당 8백50만원, <상상플러스>의 탁재훈과 <샴페인>의 신동엽은 8백만원, <스타골든벨>의 김제동은 출연료로 6백만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KBS가 <연예가중계>의 MC를 한석준 아나운서로 교체한 것은 자사 아나운서가 MC를 맡으면 기존 월급에다 프로그램 진행수당 몇만원만 더 주면 되기 때문이다.
김제동의 <연예가중계> 하차가 제작비 절감을 위해 외부 MC를 자제하겠다는 취지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고는 하나 회당 출연료가 가장 많다는 유재석과 강호동이 잔류한 상태여서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일각에선 KBS측에서 김제동에게 마치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제동이 원해서가 아니라 출연료 문제 때문이라고 밝혀진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결정은 김제동의 진행상 능력을 떠나서 그가 MC석에 앉아 있다고 해서 프로그램의 이미지나 안정감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나온 결정일 가능성이 큰 것 같다”고 전했다.
<연예가중계>는 김제동이 아니어도 전혀 문제가 없을 만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예전의 전력만 봐도 아나운서라든지 심지어 PD를 남성 진행자로 내세웠던 경우가 더 많았다. 오히려 <연예가중계>는 전통적으로 남자쪽보다는 이영애, 전도연, 황현정, 윤손하, 한고은 등 여자MC에 더 신경을 써왔다.
그러나 <연예가중계>의 성격상 사실 메인에 누구를 앉혀 놓는다고 해도 담당할 수 있는 영역이 상대적으로 적다. 스타들을 취재하고 인터뷰하는 리포터들의 활약상이 외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지도 있는 MC를 기용한 것은 김제동이 프로그램 전체의 안정감을 책임지고 신뢰도를 높일 수 있으리라 기대했고, 더불어 김제동의 스타성을 인정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개편 때의 하차 결정은 김제동에게서 그런 것들을 기대하기 힘들어졌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듯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김제동의 <연예가중계> 하차는 유재석이 맡고 있는 프로들이 유지하기로 결정된 마당에 상당히 의미가 큰 것이고 김제동의 프로그램들이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지 못하다는 뜻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제동이 초반의 주목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시청률을 견인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제동은 누가 뭐래도 ‘입담’ 하나는 인정해 줄 만한 방송인이다. 그의 입담과 재치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최고의 위치에 올라섰다고 할 수 있다. 그가 그동안 행사를 전전하면서 몸으로 익혔을 그 재치들은 그를 지금의 위치에 올려놓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김제동 하나로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것은 좀 힘겨운 일로 보인다.
김제동이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출연해서 ‘리플 달아 주세요’라는 프로를 진행하던 바로 그때뿐이었다. ‘리플 달아 주세요’가 그렇게 재미있었던 것은 방청객과의 피드백이 바로바로 전달된 것에 기인한다.
리플을 읽고 그 리플들에 달아주는 재치 있는 답변을 보는 시청자들에게 있어 그 순간만큼은 그 방청석에 앉아있는 관객이 됐다. 그리하여 다소간 독설스러운 이야기들도 농담이 되고 재미있게 웃어넘길 수가 있었다. 하지만 버라이어티라면 그 상황은 다르다.
유재석·강호동과 다른 점?
김제동은 모든 게스트들을 아우르면서도 배려하는 진행을 해야 한다. 게스트들은 갑자기 무대로 불려나온 방청객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제동은 게스트들의 단점이나 성격을 꼬집어내서 비틀어내는 ‘재치’는 있지만 그 재치를 웃음으로 연결시키고 게스트들을 아우르는 능력이 부족하다.
<스타골든벨>만 보더라도 이제 김제동이 억지로라도 웃길 수 있는 부분은 게임 내기에 져서 변장하는 부분 이외에 찾기가 힘들다. 그리고 이제 그마저도 웃긴다, 재미있다기보다는 쓴웃음을 짓게 한다.
토크쇼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김제동은 아마도 힘이 넘치고 유머러스한 수많은 진행자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차분하게 말하고 정리할 수 있는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서 출연한 듯하다.
그러나 <야심만만>의 김제동은 강호동 옆에 앉아있을 뿐, 사실 그다지 안정적인 기류를 형성해내지 못하고 있을 뿐더러 때로는 겉도는 단어들을 선택해서 오히려 분위기를 산만하게 하는 데 일조한다.
김제동의 말들은 이제 오히려 명언이라기보다는 밝은 분위기 속 지나치게 심각한 진지함이다. 또 지나친 정리는 오히려 웃음을 반감시킨다. 이럴 땐 차라리 입담이 아니라 크게 한방 터뜨릴 수 있는 한마디가 백 번 낫다.
유재석과 강호동의 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김제동과 무엇이 다른가를 알 수 있다. 두 사람은 단순히 진행자가 아니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의 주류로 자리잡은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선두 주자들이다. 두 사람은 프로그램을 이끌고 다수의 진행자나 출연자를 조율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조율자며 조력자다.
두 사람을 대체할 다른 사람이 없다는 것이 강점이다. 언어 구사력이 뛰어난 아나운서나 단순 입담꾼은 서서히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두 사람은 진행자 이상의, 다수의 진행자가 포진한 프로그램에서 중심축이며 구심점이다. 이 점이 바로 유재석과 강호동 전성시대를 이어가고 있다.
한 문화평론가는 “김제동식 말꼬리 잡기는 이미 지루함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그것은 김제동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무기가 점점 시들어 가고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르는 일이다”며 “물론 김제동은 인간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방송인이고 또 자신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프로다. 잘하지 못하는 프로는 아무리 착하고 노력해도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