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먹는’ 토익의 이면

깜깜이 시험에 취준생 허리 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요즘 청년들은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가졌다는 말을 듣는다. 그들은 잠 줄이고 돈 쏟아가며 스펙을 쌓는다. 기업들은 스펙보다는 업무능력이라며 ‘탈 스펙’을 외치지만 취업준비생들은 쉽게 그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토익은 그중에서도 가장 기본에 해당하는 시험이다. ‘스펙탑’의 시작점으로 불리는 토익의 이면을 <일요시사>가 들여다봤다.
 

기온이 영하 10도를 밑도는 최강 한파가 몰려왔다. 체감온도는 영하 20도에 달한다. 사람들은 갑자기 떨어진 기온에 몸을 움츠리고 있다. 취업준비생(이하 취준생)에겐 이번 한파가 더욱 뼈아프다. 차가운 바람과 함께 꽁꽁 얼어붙은 취업시장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취준생의 겨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스펙 높은데
취업은 안 돼

지난해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역대 최악 수준으로 떨어졌다. 정부가 일자리 정책을 추진 중이지만 청년들이 느끼는 체감 수준은 아직 낮은 모양새다. 

지난 10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12월 및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층 실업률이 2000년 이래 가장 높은 9.9%로 집계됐다. 2013년 8.0%, 2014년 9.0%, 2015년 9.2%로 해마다 악화되고 있다.

여기에 체감실업률을 나타내는 ‘고용보조지표3’은 22.7%로 전년보다 0.7% 포인트 높아졌다. 체감실업률은 근로시간이 주당 36시간 미만이면서 추가로 취업을 원하는 근로자와 비경제활동인구 중 지난 4주간 구직활동을 했지만 취업이 불가능한 경우를 모두 실업자로 보고 계산한 수치다. 


공식 실업자의 경우 경제활동인구 중 지난 4주간 일자리를 찾았지만 1시간 이상 일하지 못한 사람의 수로 따진다.

반현준 통계청 고용통계과장은 “최근 청년 고용상황이 안 좋다”면서도 “11월은 공무원 추가 채용 시험 원서 접수가 있었고 12월은 조사 대상 기간에 지방직 공무원 시험이 있었다. 그래서 20대와 청년층 중심으로 기존 구직단념자 취업준비생이 실업자로 옮겨온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분석했다. 

구직 단념자는 취업의사와 능력이 있음에도 아예 구직에 나서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청년실업률 역대 최악
스펙에 돈쓰는 청춘들

시간이 갈수록 높아지는 취업 장벽에 취준생은 갈팡질팡 감을 못 잡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공공일자리 증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근로시간 단축, 블라인드 채용 등 노동 관련 이슈를 쏟아내고 있지만 취업시장의 미래는 불투명하기만 하다. 취업절벽에 몰린 취준생은 결국 스펙 시장으로 내몰린다.

스펙은 영어 ‘Specification’서 유래한 말로 2004년 국립국어원 신어 자료집에 수록된 단어다.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 사이서 학력·학점·토익 점수 따위를 합한 것을 이르는 말이다. 

스펙은 취준생의 무기로 작용한다. 그들은 남들과는 차별화된 스펙을 쌓기 위해 숱한 도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20∼30대에만 겪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를 채우기 위한 도구로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꾸준히 제기돼왔다.


스펙에 대한 취준생의 압박감은 이미 한계수준에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아르바이트포털 ‘알바몬’이 지난 8월 4년제 대학교에 재학 중인 대학생 772명을 대상으로 8월 졸업식을 뜻하는 ‘코스모스 졸업’에 관해 물었다. 그 결과 대학생 10명 중 3명은 코스모스 졸업을 하겠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졸업을 유예해 취업 스펙을 쌓기 위해’라는 답변이 37.9%로 가장 많았다.

너도 나도 스펙 쌓기에 돌입하면서 경쟁이 심화됐다. 과잉 경쟁은 잉여 스펙, 과잉 스펙 등의 문제점을 낳았다. 스펙을 많이 쌓아도 취업을 못하고 백수로 전전하며 빈곤층으로 빠져드는 취준생을 뜻하는 스펙푸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그만큼 요즘 청년층은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가졌다고 평가 받으면서도 취업 문턱에서 좌절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일부 기업 등 사회 한편에서는 탈 스펙의 움직임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지만 정착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점수나 자격증 유무 등으로 지원자를 가릴 수 있는 스펙을 배제한 채 직무 능력으로만 직원을 선발하는 건 공공기관은 물론 중견·중소기업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또 일각에서는 스펙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처럼 사회 분위기상 취준생들은 아직 스펙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원하는 단체나 기업에 맞는 역량은 따로 쌓더라도 기본 스펙은 어느 정도 유지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점수 상향 평준화
그래도 토익 시험

그중에서도 토익은 ‘스펙탑’의 가장 아랫부분에 있는 시험이다. 점수가 높든 낮든 취준생이라면 토익 성적표 하나쯤은 갖고 있다는 뜻이다. 예전만 못하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취업시장에서 토익의 위상은 여전히 절대적이다. 

2016년 기준으로 한 해 동안 200만명이 토익 시험을 봤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는 수험생이 매년 60만여명인 것을 감안하면 가히 어마어마한 숫자다.

토익 문제의 출제와 개발을 맡은 미국의 미국교육평가원(ETS)은 지난 2011년 전 세계 토익 응시 인원이 600만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그 해 우리나라의 토익 응시 인원은 210만명으로 전 세계 응시자의 무려 40%를 차지했다. 

만점(990점)을 받은 응시자도 회화 등 실전서 부족함을 드러낸다는 토익무용론이 수년째 불거지고 있다. 그러나 국내서 토익의 독점적 지위는 공고하다.

2015년 채용공고 1000여건 중 94%가 토익 점수를 채용에 활용했고, 25%는 일정 점수 이상을 지원 자격으로 삼았다. 일부 대학은 졸업 조건으로 특정 기준 이상의 토익 점수를 요구한다. 


졸업과 취업에 있어 가장 밀접한 시험인 셈이다. 최근에는 공무원시험에도 토익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국가공무원 7급 영어시험이 자체 시험이 아닌 토익이나 토플, 텝스 등 영어능력검증시험 제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공무원 시험에도
민간·공적 독점

지난해 10월30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인사혁신처로부터 받은 국가공무원 7급 응시자 영어성적 제출 현황에 따르면 토익 성적을 낸 응시자가 전체(2만4437명)의 91.2%인 2만2287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7급 공무원 응시자 10명 가운데 9명이 토익으로 영어 성적을 대체한 셈이다.

지난해 7급 응시자는 4만8361명으로 전년 대비 27.5%나 감소했다. 국가공무원 9급 응시자수가 매년 사상 최대 규모를 갱신하는 것과는 대비되는 대목이다. 인사혁신처는 지난해 국가공무원 7급 응시자가 2만명 가까이 줄어든 것이 영어 때문이라고 말했다. 

초기 단계서 일정 점수 이상의 공인 영어 성적을 받지 못한 응시자들이 걸러졌다는 것이다.


국가직 7급 국가검정능력시험 통과 기준 점수는 토익 700점 이상, 텝스 625점 이상, 지텔프 65점 이상(레벨2), 플렉스 625점 이상, 토플 PBT 530점 이상, CBT 197점 이상, IBT 71점 이상이다. 

토익은 다른 시험에 비해 준비 과정이나 방법이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에 응시자들의 선호도가 높다.

그러면서 토익무용론은 토익 독점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구직과 사내 평가 등 민간 영역은 물론 공무원 채용의 공적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국내서 우월적 지위를 노리고 있는 시험이 아예 독점적 지위를 얻어 그에 따른 폐해가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너도 나도 고득점이라 스펙으로서 큰 매력이 없고”(대학생) “오로지 점수만을 위한 시험”(공무원 시험 준비생)인데도 불구하고 매달 혹은 2주에 한 번씩 토익을 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는 것.

한 해 200만명 시험 보는데
정답·배점조차 공개 안 돼

이 과정서 YBM한국토익위원회(이하 토익위원회)의 자의적 운영은 여전히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토익은 미국 민간재단인 ETS가 출제하고 국내에서는 역시 민간기업인 YBM이 대행을 맡는다. 

토익위원회는 토익 시험 전반을 실제 운영하는 곳이다. 토익 시험이 워낙 광범위한 분야서 이용되고 있기 때문에 정부 관계자 등 공적 인사가 참여한 위원회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지만 토익위원회는 실제로 한 기업의 사내기구로 운영되고 있다.

토익은 응시 횟수나 응시료, 유형, 접수, 성적 발표 등과 관련해 응시자들에게 많은 정보를 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 운영 내용이 응시자들에게 불리한 부분이 많아 불만이 나오고 있지만 독점적 지위를 누리 있는 현 상황서 시험을 아예 외면하긴 힘들다.

토익위원회는 홈페이지 공지 방식을 통해 시행 두 달 전 응시료 인상과 추가 시험에 대해 전달한다. 지난해에는 11월7일 ‘2018년 토익 정기시험 일정’을 발표했다. 

올해(2018년) 토익 정기시험은 총 24회 시행되며, 개인 사정으로 인해 일요일 응시가 어려운 수험생을 위해 1·3·6·7·9·12월에 한 번씩 모두 6회는 토요일에 치르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한 달에 한 번 꼴이던 응시횟수는 매년 꾸준히 늘어 한 달에 두 번 꼴로 늘어났다.

응시료 역시 명확한 설명 없이 통보 형식으로 오르고 있다. 2006년 3만4000원이던 응시료는 2016년 3월21일 4만4500원까지 올랐다. 우리나라 토익 응시료는 30%가량 오른 데 반해 일본은 꾸준히 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2016년 토익 유형을 바꾼 이른바 ‘신토익’ 원서접수 개시일을 불과 1주일 앞두고 기습적으로 응시료 인상을 공지한 것은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당시 토익위원회는 안내문을 통해 “현행 응시료는 2012년 1월 조정된 후 4년간 동일하게 적용돼왔으나 물가 상승과 시험시행 관련 제반 비용 증가로 부득이하게 인상됐다”고 설명했다. 

반면 우리나라와 같은 시기에 신토익을 도입한 일본은 응시료를 인상하지 않았다. 이에 토익위원회 측은 “(응시료는) 시행 국가 상황에 따라 조정하고 있어 인상 시점은 국가마다 상이할 수 있다”며 “국내 응시료는 저렴한 편”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토익 응시료 인상은 고스란히 응시자들의 부담으로 작용한다. 지난 2014년 청년 유니온의 발표에 따르면 4년제 대학생의 평균 토익 응시횟수는 9회에 달한다. 현재 응시료 기준으로 평균 40만500원에 이르는 돈을 토익에 쏟아 부었다는 뜻이다. 

토익위원회가 응시자들의 성적을 분석한 내용을 보면 응시횟수와 성적은 비례했다. 많이 볼수록 높은 점수를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유명 토익 강사들은 ‘문제 중심’의 공부를 권유한다. 모의고사나 실제 시험을 많이 접할수록 유형에 익숙해지면서 고득점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조언한다. 

듣기(LC)와 독해(RC) 각각 100문제로 구성된 토익 시험은 파트별로 유형이 존재한다. 그림을 정확히 묘사한 것을 찾는 유형(파트1), 질문에 대한 답을 고르는 유형(파트2), 문법(파트5), 장문 독해(파트7) 등이다.

신촌이나 강남 등 토익 학원이 즐비한 학원가에 가보면 유명 토익 강사들은 이른바 ‘정답 고르는 법’을 알려준다. 첫 두 단어를 듣고 답을 파악하거나 긴 지문의 경우 어디서 답을 찾아야 하는지 등의 기술이 반복 학습을 통해 수험생들에게 전달된다. 

다시 말해 유형을 파악하고 문제를 많이 풀수록 시험을 정복할 확률이 높아진다.

이 때문에 2016년 토익 유형이 바뀌어 신토익이 등장했을 때 시장은 큰 부침을 겪었다. 문제는 한정된 응시횟수 말고도 접수 과정서 수험생들에게 불리한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이전 회차 시험 점수를 확인한 후 다음 회차 도전 여부를 정한다. 하지만 토익의 경우 성적 발표일보다 시험일이 앞서 있다. 예를 들어 346회차 시험의 경우 1월16일에 성적이 발표되는데 347회차 시험은 1월13일에 치러지는 식이다.

그렇다고 점수를 미리 파악할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토익은 정답이 공개되지 않는다. 토익 시험이 끝난 직후 관련 사이트에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문항을 외워온 응시자가 게시글을 올리면 그 아래 정답이 댓글로 달리는 현상이 하루 종일 반복된다. 그리고 반나절 정도 지나면 유명 토익 강사들은 듣기와 독해 문항 200개를 전부 복원해 정답을 공유한다. 시험 다음 날 복원된 해당 회차 시험을 가지고 강의를 하는 강사도 많다.

또 정답을 전부 알았다 해도 각 문항마다 배점이 다르기 때문에 정확한 점수를 산출하는 게 힘들다. 배점에 대한 정보 역시 제대로 알려진 바는 없다. 토익 문제집에 배점표가 기재돼있긴 하지만 비슷한 점수로 환산할 수 있을 뿐 딱 떨어지는 수치는 아니다. 

보통 난이도가 높을수록 상대적으로 정답률이 낮을수록 배점이 높다는 풍문만 있을 뿐이다.

정책상 공개 어려워
수험생이 선택해야

토익위원회는 “시험 문제와 정답은 ETS 정책에 의해 공개하지 않는다”며 “이는 토플, GRE, SAT 등 ETS에서 주관하는 모든 시험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글로벌 정책”이라고 답했다. 

이어 “한 회차의 토익 시행을 위해서 약 8주간의 접수 기간과 성적 발표 약 2주까지 총 10주가 소요된다”며 “국내서 연간 24회의 시험이 시행되고 있어 회차별 접수기간이 서로 겹치게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토익위원회는 수험자의 시험 일정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 시행일, 접수 기간, 성적 발표일을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안내하고 있다”며 “응시자는 공개된 연간 일정을 통해 시험 응시 일정을 임의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서점도 먹여 살리는 토익’ 방학 때 되면 판매량 급증

방학이 되면 서점가도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방학 동안 부족한 과목을 보완하거나 외국어 공부를 하려는 수요가 증가하면서 관련 책의 판매량이 수직 상승하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여름방학 직후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외국어 학습서의 순위가 큰 폭으로 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서점들 다양한 기획행사도

교보문고에서는 토익으로 유명한 출판사의 단어장 순위가 6월 대비 10계단이나 올랐고, 독해(RC) 문제집과 종합서 등도 순위가 급등했다. 

yes24 역시 베스트셀러 30위권 안에 토익 단어장 등 외국어 학습서가 5권이 포함됐다. 방학 시즌에 학습서 판매량이 늘어나면서 온라인 서점들은 다양한 기획 도서행사를 선보이기도 한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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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특검’ 꼬이는 수사, 왜?

‘김건희 특검’ 꼬이는 수사,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김건희 특검팀의 수사 속도가 빨라졌다. 전방위적 압수수색에 나서면서 피의자에 대한 잇단 소환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특검팀이 수사해야 하는 의혹만 16개라는 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 특검팀은 수사 과정에서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되기도 했다. 어떤 사건을 먼저 수사할지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이 수사하는 김건희씨의 의혹은 총 16개다. 사전 자료 제출 요구나 실무진 조사 없이 참고인 조사를 진행 중이다. 특히 최근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집사 게이트’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처리해야 하는 사건이 늘고 있는 셈이다. 특검팀의 시간은 6개월도 남지 않았다. 발걸음이 조급해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남은 5개월 부족한 시간 특검팀은 이른바 ‘집사 게이트’와 관련, 김범수 카카오 창업주, 조현상 HS효성 부회장, 김익래 전 다우키움 그룹 회장, 윤창호 전 한국증권금융 사장에게 지난 17일 오전 10시까지 특검 사무실에 출석해 조사를 받으라고 통보했다. 조 부회장은 베트남 출장을 이유로 7월21일 오전 10시로 출석 일정을 조율했다. 특검팀은 이들 1차 참고인 조사 이후 IMS에 투자한 나머지 기업 관계자들을 포함해 2차 소환을 예고했다. IMS 투자에 참여한 기업·기관은 모두 12곳으로, 신한은행·제이비우리캐피탈·한컴밸류인베스트먼트·경남스틸 등도 포함돼있다. ‘집사 게이트’는 김씨의 측근으로 지목된 김예성씨가 2023년 자신이 설립에 관여한 렌터카 업체 ‘IMS모빌리티’가 부실기업이었음에도 김씨와의 친분을 토대로 여러 기업 등으로부터 180억여원을 석연치 않게 투자받은 사건이다. 순자산(556억원)보다 부채(1414억원)가 많은 상태에서 거액의 투자금을 모을 수 있었던 배경에 김씨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핵심이다. 특검팀은 당시 참여 기업들이 내부적으로 해결해야 할 각종 경영상 리스크를 안고 있었던 점에 주목하고 있다. IMS 투자가 단순 재무적 투자라기보다는 정권 실세와의 친분을 활용한 보험성, 또는 대가성 성격이었다는 게 특검팀의 판단이다. 김씨는 지난 4월 베트남으로 출국 후 잠적했다. 특검팀은 김씨가 출석 요구에 거듭 불응하자 법원에 체포영장을 청구해 발부받았다. 특검팀은 김씨의 최종 목적지가 태국이 아닌 싱가포르일 가능성도 살펴보고 있다. 출입국 기록을 확인한 결과 김씨와 자녀들이 올해 여러 차례 싱가포르에 다녀온 기록이 나왔기 때문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소추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지난 1월, 김씨와 아내, 자녀 2명 모두 싱가포르를 다녀왔다. 특검법이 통과된 직후에도 김씨의 자녀들은 다시 싱가포르에 다녀왔다. 이후 아내 정모씨는 한국에 머문 채 김씨와 자녀들은 차례로 베트남으로 출국했다. 특검팀은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등과 공조해 김씨 소재를 파악하고 신병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특검팀은 카카오모빌리티 등 기업들이 해결해야 할 여러 경영상 현안을 안고 있어 일종의 보험성이나 대가성 자금을 제공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집사 게이트 핵심 인물 제3국으로 도피 위치 파악 안 돼…검거 가능성은 미지수 통상 수사기관은 사건에 연루된 기업 총수를 부르기 전 압수수색 단계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나온 증거를 토대로 실무자들을 조사하면서 사실관계를 정리하는 게 기본적인 수사의 순서다. 문홍주 특검보는 이에 대해 “수사 기법은 다양하다”며 “톱 다운 방식도 있고 바텀업 방식도 있는데, 수사팀에서 편리한 방식을 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검팀의 최대 걸림돌은 시간이다. 준비 기간 20일을 포함해 총 110일에, 30일씩 두 번 연장할 수 있다. 지난 2일 현판식을 갖고 수사를 개시했기 때문에 늦어도 오는 12월까지는 모든 게 정리돼야 한다. 사실상 6개월도 되지 않는 시간이 부여된 셈인데, 특검팀이 수사해야 할 의혹만 인지 사건 포함 16개에 달한다. 최근 관련 의혹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된 것도 특검팀을 다소 조급하게 만들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현 상황만 보면 ‘집사 게이트’부터 정리하려는 것 같다. 금품을 준 기업과 관련자들에게서 최대한 협조적인 진술을 얻어내고 김건희씨를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특검팀은 집사 게이트를 수사하기 이전에 명태균씨, 건진법사 전성배씨 등에 대한 강제수사에 돌입했으나 유의미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었다. 명씨 사건 같은 경우 검찰에서 수개월간 수사해 법리 적용만 검토하면 문제가 없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전씨 사건의 경우 그렇지 않다. 먼저 특검팀은 지난 16일 오전 10시 명씨 사건을 폭로한 강혜경씨에 대한 소환 조사를 진행했다. 강씨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명씨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을 위해 불법 여론조사를 해준 대가로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이 2022년 6월 재보궐선거 공천을 받았으며, 해당 공천 과정에 김씨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인물이다. 끌려가는 기업 수사 명씨는 윤 전 대통령 부부 공천 개입 의혹의 핵심 인물로, 그가 실질적으로 운영하던 여론조사 업체 미래한국연구소를 이용해 다수의 불법 여론조사를 주도한 의혹을 받는다. 특검팀은 같은 날 오전 10시30분 ‘서울-양평고속도로 의혹’ 관련해 당시 업무를 담당했던 국토교통부 서기관 A씨 소환 조사도 병행했다. A씨는 당초 이상화 동해종합기술공사 부사장 등 5명과 전날 소환 통보를 받았으나 불출석했다. 지난 14일 국토부와 A씨 주거지, 양평고속도로 타당성 조사를 맡았던 용역사 경동엔지니어링과 동해종합기술공사, 용역사 임원 주거지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양평고속도로 의혹은 윤석열정부 출범 이듬해인 2023년 5월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 종점이 기존 양평군 양서면에서 김씨 일가가 보유한 땅 28필지(2만 2663㎡)가 있는 강상면으로 돌연 변경됐다는 내용이다. 특검팀은 전씨 법당과 서초구 양재동 주거지, 전씨가 속한 종파의 거점으로 알려진 충북 충주 일광사 등 10여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청탁 대상으로 알려진 박창욱 경북도의원과 박현국 봉화군수, 박 군수 공천을 청탁한 사업가 B씨, 윤석열 대선 후보 당시 선거대책본부 네트워크위원장을 맡았던 오을섭씨, 전씨 변호인 김모씨의 서초구 사무실 등도 포함됐다. 특검팀은 박 군수의 휴대전화, 변호인 사무실에 보관 중이던 전씨 명의 휴대전화 2대, ‘찰리’로 알려진 전씨 처남의 휴대전화 2대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압수물 분석을 마치는 대로 이르면 이달부터 관련자 소환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특검팀은 지난 15일부터 연이틀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전씨의 법당을 압수수색해 법당 내 CCTV 등을 확보했는데 CCTV가 최신 기종이 아니라 복제(이미징)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한다. 법당 내 CCTV는 앞서 서울남부지검에서 한 차례 진행한 압수수색 대상물에는 포함돼있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CCTV 저장 보관 기간이 길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관련 증거가 얼마나 남아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검팀은 남부지검에서 압수수색했던 곳 중 법당 내 지하창고도 다시 살펴 관련 증거를 압수했다고 한다. 사라진 피의자들 수사를 마친 뒤 관련자를 재판에 넘겨 공소 유지까지 맡는 특검은 핵심 물증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향후 재판 과정에서 유죄의 증거로 제출하는 측면과 더불어 수사 단계에서도 관련자들에 대한 진술을 끌어내는 데 용이하기 때문이다. 특검팀은 지난 14일 법원에 낸 이일준 삼부토건 회장, 조성옥 전 회장, 이응근 전 대표, 이기훈 부회장의 구속영장 청구서에 이들이 챙긴 부당이득이 369억원에 달한다고 적시했다. 특검팀이 산출한 조 전 회장 측 부당이득은 200억원, 이 회장 측은 170억원가량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장 등은 2023년 5∼6월쯤에 삼부토건이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을 본격 추진할 것처럼 속여 주가를 띄운 뒤 보유 주식을 매도해 부당이득을 취득한 혐의를 받는다. 특검팀은 이들이 2023년 5월 폴란드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재건 포럼을 계기로 현지 지방자치단체와 각종 업무협약을 맺는 등 재건 사업을 추진할 것처럼 투자자를 속였다고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 재건주로 분류된 삼부토건은 그해 1000원대였던 주가가 2개월 뒤 장중 5500원까지 급등했다. 이 시기 회장이 교체됐는데, 특검팀은 조 전 회장이 주가가 급등한 주식을 팔아 거액의 수익을 내자 이 회장도 우크라 재건 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남아있던 시기에 주식 매매로 차익을 봤다는 혐의도 영장에 적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대표가 우크라이나 관련 사업을 총괄한 인사로 꼽히는 가운데 이 부회장은 삼부토건 전·현직 회장의 지분 승계 실무를 맡고, 포럼 참석 과정을 주도한 ‘그림자 실세’로 지목된다. 이들 4명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17일 서울중앙지법 이정재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열렸다. 이는 지난 3일 수사를 개시한 특검팀의 첫 구속영장 청구 사례다. 건진법사 그라프 목걸이도 행방불명 삼부토건 ‘그림자 실세’ 잇단 도주 그러나 그림자 실세인 이 부회장의 신병 확보에 차질이 생기면서 특검팀 수사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난 17일 삼부토건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받는 이 부회장은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았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이가 영장실질심사 절차에 출석하지 않았다고 알리며 “현재 도주한 걸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검팀 관계자는 “법원에 출석한 이씨의 변호인 또한 이씨의 소재를 모른다고 말했다”며 이 같은 사정을 종합해 도주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고 전했다. 특검팀은 이들의 신병을 확보하기 이전에 삼부토건이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을 추진할 만한 여건을 갖추지 못한 여러 정황들을 확보해 놓은 상황이다. 특검팀이 확보한 삼부토건의 ‘해외사업 수주 내역’을 보면, 2017년 파키스탄 도로공사 사업 수주를 마지막으로 해외사업을 수주하지 못했다. 이는 삼부토건의 낮은 신용도와 자금 여력 때문인 것으로 조사됐다. 삼부토건은 신용도가 낮아 해외공사 입찰 시 국내 은행으로부터 입찰 보증서를 발급받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공사 수주 금액의 10% 수준인 이행 보증금을 현금으로 납부할 능력이나, 해외사업을 위해 사용할 자금을 확보할 여력도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해외사업에 사실상 실패한 삼부토건은 2022년 초부터 정기보고서에 해외사업 부문을 철수하겠다고 공시하기도 했다. 특검팀은 또 이 같은 정황을 뒷받침하는 삼부토건 내부자의 진술도 확보했다.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 추진 당시 삼부토건 재건 관련 해외 사업 담당자는 고작 1명에 불과했는데, “삼부토건은 현실적으로 해외사업 진출이 불가능한 상태”였다고 해당 직원이 진술한 것이다. 핵심 물증 중요 과제 이 직원은 또 조사에서 “해외사업을 제대로 하려면 여러 곳과 MOU 체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수주할 수 있는 거래 상대방과 MOU를 체결하고 더 많은 연락과 출장을 다녀오는 것이 맞다”며 “그러나 정말로 (삼부토건이) 우크라 사업을 하려는 의사가 있는지 당시에 의문스러웠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