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먹는’ 토익의 이면

깜깜이 시험에 취준생 허리 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요즘 청년들은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가졌다는 말을 듣는다. 그들은 잠 줄이고 돈 쏟아가며 스펙을 쌓는다. 기업들은 스펙보다는 업무능력이라며 ‘탈 스펙’을 외치지만 취업준비생들은 쉽게 그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토익은 그중에서도 가장 기본에 해당하는 시험이다. ‘스펙탑’의 시작점으로 불리는 토익의 이면을 <일요시사>가 들여다봤다.
 

기온이 영하 10도를 밑도는 최강 한파가 몰려왔다. 체감온도는 영하 20도에 달한다. 사람들은 갑자기 떨어진 기온에 몸을 움츠리고 있다. 취업준비생(이하 취준생)에겐 이번 한파가 더욱 뼈아프다. 차가운 바람과 함께 꽁꽁 얼어붙은 취업시장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취준생의 겨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스펙 높은데
취업은 안 돼

지난해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역대 최악 수준으로 떨어졌다. 정부가 일자리 정책을 추진 중이지만 청년들이 느끼는 체감 수준은 아직 낮은 모양새다. 

지난 10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12월 및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층 실업률이 2000년 이래 가장 높은 9.9%로 집계됐다. 2013년 8.0%, 2014년 9.0%, 2015년 9.2%로 해마다 악화되고 있다.

여기에 체감실업률을 나타내는 ‘고용보조지표3’은 22.7%로 전년보다 0.7% 포인트 높아졌다. 체감실업률은 근로시간이 주당 36시간 미만이면서 추가로 취업을 원하는 근로자와 비경제활동인구 중 지난 4주간 구직활동을 했지만 취업이 불가능한 경우를 모두 실업자로 보고 계산한 수치다. 


공식 실업자의 경우 경제활동인구 중 지난 4주간 일자리를 찾았지만 1시간 이상 일하지 못한 사람의 수로 따진다.

반현준 통계청 고용통계과장은 “최근 청년 고용상황이 안 좋다”면서도 “11월은 공무원 추가 채용 시험 원서 접수가 있었고 12월은 조사 대상 기간에 지방직 공무원 시험이 있었다. 그래서 20대와 청년층 중심으로 기존 구직단념자 취업준비생이 실업자로 옮겨온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분석했다. 

구직 단념자는 취업의사와 능력이 있음에도 아예 구직에 나서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청년실업률 역대 최악
스펙에 돈쓰는 청춘들

시간이 갈수록 높아지는 취업 장벽에 취준생은 갈팡질팡 감을 못 잡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공공일자리 증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근로시간 단축, 블라인드 채용 등 노동 관련 이슈를 쏟아내고 있지만 취업시장의 미래는 불투명하기만 하다. 취업절벽에 몰린 취준생은 결국 스펙 시장으로 내몰린다.

스펙은 영어 ‘Specification’서 유래한 말로 2004년 국립국어원 신어 자료집에 수록된 단어다.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 사이서 학력·학점·토익 점수 따위를 합한 것을 이르는 말이다. 

스펙은 취준생의 무기로 작용한다. 그들은 남들과는 차별화된 스펙을 쌓기 위해 숱한 도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20∼30대에만 겪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를 채우기 위한 도구로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꾸준히 제기돼왔다.


스펙에 대한 취준생의 압박감은 이미 한계수준에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아르바이트포털 ‘알바몬’이 지난 8월 4년제 대학교에 재학 중인 대학생 772명을 대상으로 8월 졸업식을 뜻하는 ‘코스모스 졸업’에 관해 물었다. 그 결과 대학생 10명 중 3명은 코스모스 졸업을 하겠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졸업을 유예해 취업 스펙을 쌓기 위해’라는 답변이 37.9%로 가장 많았다.

너도 나도 스펙 쌓기에 돌입하면서 경쟁이 심화됐다. 과잉 경쟁은 잉여 스펙, 과잉 스펙 등의 문제점을 낳았다. 스펙을 많이 쌓아도 취업을 못하고 백수로 전전하며 빈곤층으로 빠져드는 취준생을 뜻하는 스펙푸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그만큼 요즘 청년층은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가졌다고 평가 받으면서도 취업 문턱에서 좌절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일부 기업 등 사회 한편에서는 탈 스펙의 움직임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지만 정착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점수나 자격증 유무 등으로 지원자를 가릴 수 있는 스펙을 배제한 채 직무 능력으로만 직원을 선발하는 건 공공기관은 물론 중견·중소기업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또 일각에서는 스펙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처럼 사회 분위기상 취준생들은 아직 스펙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원하는 단체나 기업에 맞는 역량은 따로 쌓더라도 기본 스펙은 어느 정도 유지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점수 상향 평준화
그래도 토익 시험

그중에서도 토익은 ‘스펙탑’의 가장 아랫부분에 있는 시험이다. 점수가 높든 낮든 취준생이라면 토익 성적표 하나쯤은 갖고 있다는 뜻이다. 예전만 못하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취업시장에서 토익의 위상은 여전히 절대적이다. 

2016년 기준으로 한 해 동안 200만명이 토익 시험을 봤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는 수험생이 매년 60만여명인 것을 감안하면 가히 어마어마한 숫자다.

토익 문제의 출제와 개발을 맡은 미국의 미국교육평가원(ETS)은 지난 2011년 전 세계 토익 응시 인원이 600만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그 해 우리나라의 토익 응시 인원은 210만명으로 전 세계 응시자의 무려 40%를 차지했다. 

만점(990점)을 받은 응시자도 회화 등 실전서 부족함을 드러낸다는 토익무용론이 수년째 불거지고 있다. 그러나 국내서 토익의 독점적 지위는 공고하다.

2015년 채용공고 1000여건 중 94%가 토익 점수를 채용에 활용했고, 25%는 일정 점수 이상을 지원 자격으로 삼았다. 일부 대학은 졸업 조건으로 특정 기준 이상의 토익 점수를 요구한다. 


졸업과 취업에 있어 가장 밀접한 시험인 셈이다. 최근에는 공무원시험에도 토익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국가공무원 7급 영어시험이 자체 시험이 아닌 토익이나 토플, 텝스 등 영어능력검증시험 제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공무원 시험에도
민간·공적 독점

지난해 10월30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인사혁신처로부터 받은 국가공무원 7급 응시자 영어성적 제출 현황에 따르면 토익 성적을 낸 응시자가 전체(2만4437명)의 91.2%인 2만2287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7급 공무원 응시자 10명 가운데 9명이 토익으로 영어 성적을 대체한 셈이다.

지난해 7급 응시자는 4만8361명으로 전년 대비 27.5%나 감소했다. 국가공무원 9급 응시자수가 매년 사상 최대 규모를 갱신하는 것과는 대비되는 대목이다. 인사혁신처는 지난해 국가공무원 7급 응시자가 2만명 가까이 줄어든 것이 영어 때문이라고 말했다. 

초기 단계서 일정 점수 이상의 공인 영어 성적을 받지 못한 응시자들이 걸러졌다는 것이다.


국가직 7급 국가검정능력시험 통과 기준 점수는 토익 700점 이상, 텝스 625점 이상, 지텔프 65점 이상(레벨2), 플렉스 625점 이상, 토플 PBT 530점 이상, CBT 197점 이상, IBT 71점 이상이다. 

토익은 다른 시험에 비해 준비 과정이나 방법이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에 응시자들의 선호도가 높다.

그러면서 토익무용론은 토익 독점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구직과 사내 평가 등 민간 영역은 물론 공무원 채용의 공적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국내서 우월적 지위를 노리고 있는 시험이 아예 독점적 지위를 얻어 그에 따른 폐해가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너도 나도 고득점이라 스펙으로서 큰 매력이 없고”(대학생) “오로지 점수만을 위한 시험”(공무원 시험 준비생)인데도 불구하고 매달 혹은 2주에 한 번씩 토익을 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는 것.

한 해 200만명 시험 보는데
정답·배점조차 공개 안 돼

이 과정서 YBM한국토익위원회(이하 토익위원회)의 자의적 운영은 여전히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토익은 미국 민간재단인 ETS가 출제하고 국내에서는 역시 민간기업인 YBM이 대행을 맡는다. 

토익위원회는 토익 시험 전반을 실제 운영하는 곳이다. 토익 시험이 워낙 광범위한 분야서 이용되고 있기 때문에 정부 관계자 등 공적 인사가 참여한 위원회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지만 토익위원회는 실제로 한 기업의 사내기구로 운영되고 있다.

토익은 응시 횟수나 응시료, 유형, 접수, 성적 발표 등과 관련해 응시자들에게 많은 정보를 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 운영 내용이 응시자들에게 불리한 부분이 많아 불만이 나오고 있지만 독점적 지위를 누리 있는 현 상황서 시험을 아예 외면하긴 힘들다.

토익위원회는 홈페이지 공지 방식을 통해 시행 두 달 전 응시료 인상과 추가 시험에 대해 전달한다. 지난해에는 11월7일 ‘2018년 토익 정기시험 일정’을 발표했다. 

올해(2018년) 토익 정기시험은 총 24회 시행되며, 개인 사정으로 인해 일요일 응시가 어려운 수험생을 위해 1·3·6·7·9·12월에 한 번씩 모두 6회는 토요일에 치르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한 달에 한 번 꼴이던 응시횟수는 매년 꾸준히 늘어 한 달에 두 번 꼴로 늘어났다.

응시료 역시 명확한 설명 없이 통보 형식으로 오르고 있다. 2006년 3만4000원이던 응시료는 2016년 3월21일 4만4500원까지 올랐다. 우리나라 토익 응시료는 30%가량 오른 데 반해 일본은 꾸준히 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2016년 토익 유형을 바꾼 이른바 ‘신토익’ 원서접수 개시일을 불과 1주일 앞두고 기습적으로 응시료 인상을 공지한 것은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당시 토익위원회는 안내문을 통해 “현행 응시료는 2012년 1월 조정된 후 4년간 동일하게 적용돼왔으나 물가 상승과 시험시행 관련 제반 비용 증가로 부득이하게 인상됐다”고 설명했다. 

반면 우리나라와 같은 시기에 신토익을 도입한 일본은 응시료를 인상하지 않았다. 이에 토익위원회 측은 “(응시료는) 시행 국가 상황에 따라 조정하고 있어 인상 시점은 국가마다 상이할 수 있다”며 “국내 응시료는 저렴한 편”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토익 응시료 인상은 고스란히 응시자들의 부담으로 작용한다. 지난 2014년 청년 유니온의 발표에 따르면 4년제 대학생의 평균 토익 응시횟수는 9회에 달한다. 현재 응시료 기준으로 평균 40만500원에 이르는 돈을 토익에 쏟아 부었다는 뜻이다. 

토익위원회가 응시자들의 성적을 분석한 내용을 보면 응시횟수와 성적은 비례했다. 많이 볼수록 높은 점수를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유명 토익 강사들은 ‘문제 중심’의 공부를 권유한다. 모의고사나 실제 시험을 많이 접할수록 유형에 익숙해지면서 고득점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조언한다. 

듣기(LC)와 독해(RC) 각각 100문제로 구성된 토익 시험은 파트별로 유형이 존재한다. 그림을 정확히 묘사한 것을 찾는 유형(파트1), 질문에 대한 답을 고르는 유형(파트2), 문법(파트5), 장문 독해(파트7) 등이다.

신촌이나 강남 등 토익 학원이 즐비한 학원가에 가보면 유명 토익 강사들은 이른바 ‘정답 고르는 법’을 알려준다. 첫 두 단어를 듣고 답을 파악하거나 긴 지문의 경우 어디서 답을 찾아야 하는지 등의 기술이 반복 학습을 통해 수험생들에게 전달된다. 

다시 말해 유형을 파악하고 문제를 많이 풀수록 시험을 정복할 확률이 높아진다.

이 때문에 2016년 토익 유형이 바뀌어 신토익이 등장했을 때 시장은 큰 부침을 겪었다. 문제는 한정된 응시횟수 말고도 접수 과정서 수험생들에게 불리한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이전 회차 시험 점수를 확인한 후 다음 회차 도전 여부를 정한다. 하지만 토익의 경우 성적 발표일보다 시험일이 앞서 있다. 예를 들어 346회차 시험의 경우 1월16일에 성적이 발표되는데 347회차 시험은 1월13일에 치러지는 식이다.

그렇다고 점수를 미리 파악할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토익은 정답이 공개되지 않는다. 토익 시험이 끝난 직후 관련 사이트에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문항을 외워온 응시자가 게시글을 올리면 그 아래 정답이 댓글로 달리는 현상이 하루 종일 반복된다. 그리고 반나절 정도 지나면 유명 토익 강사들은 듣기와 독해 문항 200개를 전부 복원해 정답을 공유한다. 시험 다음 날 복원된 해당 회차 시험을 가지고 강의를 하는 강사도 많다.

또 정답을 전부 알았다 해도 각 문항마다 배점이 다르기 때문에 정확한 점수를 산출하는 게 힘들다. 배점에 대한 정보 역시 제대로 알려진 바는 없다. 토익 문제집에 배점표가 기재돼있긴 하지만 비슷한 점수로 환산할 수 있을 뿐 딱 떨어지는 수치는 아니다. 

보통 난이도가 높을수록 상대적으로 정답률이 낮을수록 배점이 높다는 풍문만 있을 뿐이다.

정책상 공개 어려워
수험생이 선택해야

토익위원회는 “시험 문제와 정답은 ETS 정책에 의해 공개하지 않는다”며 “이는 토플, GRE, SAT 등 ETS에서 주관하는 모든 시험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글로벌 정책”이라고 답했다. 

이어 “한 회차의 토익 시행을 위해서 약 8주간의 접수 기간과 성적 발표 약 2주까지 총 10주가 소요된다”며 “국내서 연간 24회의 시험이 시행되고 있어 회차별 접수기간이 서로 겹치게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토익위원회는 수험자의 시험 일정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 시행일, 접수 기간, 성적 발표일을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안내하고 있다”며 “응시자는 공개된 연간 일정을 통해 시험 응시 일정을 임의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서점도 먹여 살리는 토익’ 방학 때 되면 판매량 급증

방학이 되면 서점가도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방학 동안 부족한 과목을 보완하거나 외국어 공부를 하려는 수요가 증가하면서 관련 책의 판매량이 수직 상승하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여름방학 직후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외국어 학습서의 순위가 큰 폭으로 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서점들 다양한 기획행사도

교보문고에서는 토익으로 유명한 출판사의 단어장 순위가 6월 대비 10계단이나 올랐고, 독해(RC) 문제집과 종합서 등도 순위가 급등했다. 

yes24 역시 베스트셀러 30위권 안에 토익 단어장 등 외국어 학습서가 5권이 포함됐다. 방학 시즌에 학습서 판매량이 늘어나면서 온라인 서점들은 다양한 기획 도서행사를 선보이기도 한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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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