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곽창희 구세군 사무총장

“뜨거운 마음으로 냄비에 온정을”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매년 12월이 다가오면 거리를 가득 메우는 소리가 있다. 구세군의 종소리다. 어린 아이의 고사리 손부터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주름진 손까지 각양각색의 손이 자선냄비에 온정을 더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절로 마음이 훈훈해진다. 구세군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12월을 맞이해 곽창희 구세군 사무총장을 만나 ‘이웃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지난 2016년 자선냄비 모금액이 130억원을 돌파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자선기관으로 성장한 한국 구세군은 ‘세상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웃과 함께’라는 타이틀 아래 사회 소외계층을 위해 다양한 지원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90년 동안 이어온 행보

이에 한국 구세군이 전파하고자 하는 ‘이웃사랑’의 정신을 더욱 자세히 들어보기 위해 곽창희 구세군 사무총장을 만나봤다.

-구세군의 시작은?

▲자선냄비가 대한민국 땅을 밟고 사회의 소외된 이웃을 섬기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본 지도 어느덧 90년이 흘렀다. 국내서 모금활동을 시작한 것은 1928년. 당시 박준섭 사령관은 어느 날 서대문과 종로거리를 오가면서 길거리서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보게 됐다. 


이들을 더 이상 방치해 둘 수 없었던 그는 흉년과 가뭄 그리고 뒤늦은 홍수피해가 심각했던 때인 1928년에 정부의 승인을 받아 12월 성탄절을 중심으로 15일부터 31일까지 20개소서 한국 최초의 자선냄비를 시작했다.

그해에 모금된 금액으로 급식소를 차렸고 이곳에서는 매일 약 130명의 걸인들에게 따뜻한 국과 밥을 제공했다. 소녀원과 소년원에서는 헐벗은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출 때까지 돌봐줬다. 

-구세군으로 첫발을 내딛게 된 계기는?

▲어렸을 때부터 구세군교회를 출석하게 됐고, 사관님들과 부모님들이 이웃을 향해 늘 베푸는 모습을 봐왔다. 경제적으로 부유할 수는 없겠지만 남을 돕는다는 것이 가장 귀함을 깨닫고 구세군 사관이 되고자 결심하게 됐다. 그분들이 그러셨던 것처럼 이웃을 위해 조금 더 희생하고,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일에 기쁨으로 동참할 것이다.

-사무총장으로서의 책임감은?

▲자선냄비 사무총장으로서 이웃사랑의 대명사인 자선냄비본부를 맡아 90년 역사의 한국 나눔운동의 대표로 최선을 다해 운영할 것이다. 또 온 국민이 참여하는 나눔의 축제로 즐거움을 전하는 게 목표다. 마지막으로 자선냄비 모금액의 철저한 관리 및 나눔 사업의 감사로 투명성 있는 운영을 약속한다. 90년 동안 이어온 한결같은 사랑의 행보를 위해 노력 중이다. 

-우리 사회서 구세군 자선냄비의 의미는?


▲90년 동안 한결 같이 지켜온 자선냄비는 이웃을 돌보며 더불어 살자는 ‘사랑실천 운동’이다. 자선냄비는 적은 것일지라도 이웃과 함께 나누자는 ‘나눔운동’이다. 자선냄비는 행복한 세상을 다 함께 가꿔 나가는 ‘국민운동’이다. 구세군 자선냄비는 국민과 함께 지키고 가꾸어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자리잡고 있다. 

세상 가장 낮은 곳 있는 이웃과 함께
사회 소외계층 위해 다양한 지원사업

-올해 목표액과 달성 계획은?

▲장기적인 경기 침체와 혼란스러운 정치상황 속에서도 90년의 역사이며 한국 나눔 운동의 대표하며 온 국민이 참여하는 나눔의 축제로 자리 잡은 자선냄비에 국민들께서 꾸준히 참여해 주고 계심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올해 목표액은 140억을 예상하고 있는데 국민들의 이웃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있는 한 충분히 달성 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기부자는?

▲오랫동안 진행 된 자선냄비에는 해마다 다양한 사연이 함께한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연 하나를 소개하자면, 2012년에 중곡동 할머니로 알려진 이야기로 “날씨도 추운데 고생하시네요. 3년 동안 매일 파지 모아서 판 돈, 참 친구도 도와줬어요. 적지만 보태세요. 저는 중곡동 할미”라고 쓴 편지지 한 장과 함께 중곡동지점 자기앞수표 100만원권 3장과 1만원권 한 장, 그리고 2000원이 들어 있었다.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폐지를 팔아 어렵게 모은 돈을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내놓은 마음에 구세군 모두가 큰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2015년에도, 2016년에도 그리고 올해에도 상자, 헌 옷, 캔 등을 모아 팔았고 자신보다 더 힘든 사람들에게 보탬이 될까하고 왔다 가신 올해로 82세를 맞으신 중곡동 할머니가 가장 기억에 남고 어르신이 건강하시기를 소망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가짜’ 구세군 자선냄비를 구별하는 방법은?

▲구세군 자선냄비는 윗면보다 바닥이 조금 더 넓은 빨간 원통 모양이며 방패 모양 구세군 마크가 있다. 양편으로는 위로 뻗은 손잡이가 달려 있고 냄비 윗면에 구세군자선냄비 본부라고 쓰인 확인증이 부착돼있는 것이 특징이다.

-자선냄비 모금액은 어떤 곳에 쓰이나?

▲자선냄비를 통해 모아진 성금은 지역 사회를 위해 사용된다. 자선냄비는 지속적인 돌봄을 통한 자립을 지향한다. 자선냄비는 우리 사회의 생존과 건강한 삶을 이루는 데 어려움을 겪는 가장 취약한 계층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자선냄비가 배분사업에 집중하고 있는 일곱 가지 사업영역은 사회의 주요 취약·소외 계층 이웃들이 삶에서 소중한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자선냄비가 지향하는 7대 사업은 생계, 역량, 환경, 건강, 안전이라는 5가지 커다란 원칙과 방향성 안에서 이뤄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구세군의 미션은 ‘세상 가장 낮은 곳과 함께 하는 따뜻한 나눔’이다. 나눔 운동의 효시인 자선냄비는 세상의 가장 낮은 곳의 내일을 위해 사랑의 불을 지피는 희망찬 자선냄비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국민들의 사랑으로 모아진 성금은 세상의 희망의 빛을 지피도록 투명하게 사용할 것이다. 소중한 마음으로 자선냄비 모금 운동에 동참해 주신 국민들께 마음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나보다 이웃을 돌아볼 수 있는 연말과 연시가 되시기를 소망한다. 

성금은 지역사회를 위해

최근 한국사회서 기독교가 자기 정체성을 잃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이때, 구세군은 늘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며 ‘이웃사랑’의 가치를 전달했다. 세상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상하고, 찢기고, 고통 받는 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돌보는 것이 구세군의 사명이라고 밝힌 곽창희 사무총장은 앞으로 세상을 선하게 만드는 일에 발 벗고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ktikt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구세군의 주요사업

▲아동, 청소년= 아동, 청소년의 공부방을 꾸며주는 ‘희망공간만들기’, 도서, 벽지 초등학교와 아동보육지설에 IT 교육공간과 교육기자재, 강사를 파견하는 ‘꿈이 자라는 ICT교실’ 등.

▲노인, 장애인 = 퇴행성 무릎관절염을 앓고 있는 어르신들을 위한 의료지원 사업 ‘활기찬 인생’, 시각장애인 아동 청소년의 공부방을 꾸며주고, 안전한 욕실 환경을 만들어주는 ‘드림하우스’, 청각장애인 위한 ‘인공 와우’지원 사업.

▲여성, 다문화 = 미혼모 자립양육 프로그램과 따뜻한 보금자리 프로젝트.

▲긴급구호. 위기가정 = 찾아가는 봉사 서비스 ‘희망릴레이’, 소년소녀가장 장학지원 사업 등.

▲사회적 소수자자 = 약물 중독자를 위한 작업 재활 프로그램 ‘ARC(Adult Rehabilitation Center)'운영, 감염인을 위한 쉼터 운영.

▲지역사회 역량강화 = 사회복지시설에 이용자 및 생활인에게 필요한 공간을 만들어 주는 ‘꿈꾸는 자리’프로젝트, 지역민 누구나 이용 할 수 있는 문턱 ‘낮은 도서관’프로젝트 등을 운영.

▲해외 및 북한 = 몽골과 캄보디아에 국제대표부를 두고 있으며, 몽골 울란바토르에 방과후 학교와 유치원, 야구교실 등은 운영하고 터브아이막에 노인복지시설을 운영. 캄보디아 프롬팬엔 시골에서 대학진학을 위해 올라온 학생들의 주거와 생활을 돕는 청학관과 아동, 청소년 쉼터를 운영. 1995년부터 몽골, 캄보디아, 중국 연길, 심양, 키르키즈스탄, 베트남 등에 선천성심장 질환을 앓고 있는 아동, 청소년을 국내로 초청해 치료하는 의료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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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