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비로 드러난 레진코믹스의 민낯

작가 쥐어짜는 ‘웹툰 공장’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유료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는 지체상금, 이른바 지각비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작가가 계약서에 명시된 마감 기한을 어길 경우 수익의 일정 부분을 위약금으로 물리는 제도다. 2015년 8월부터 본격 시행된 이 제도는 2년4개월 동안 숱한 논란을 낳았다. 논란이 지속되자 레진코믹스는 제도의 필요성을 말하면서도 내년 2월부터 지각비를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과정서 드러난 레진코믹스의 민낯을 <일요시사>가 들여다봤다.
 

‘레진(Lezhin)’을 필명으로 쓰던 블로거 한희성씨와 개발자 권정혁씨가 설립한 레진엔터테인먼트는 2013년 유료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이하 레진) 서비스를 시작했다. 사업 초기부터 도입한 부분 유료화 모델은 ‘웹툰은 공짜’라는 세간의 인식을 뒤엎고 성공을 거뒀다. 레진은 서비스 첫 달 매출 1억원을 돌파한 후 월 20∼30%의 고속 성장을 거듭하며 양적으로 빠르게 팽창했다.

유료서비스 도입
양적으로 급성장

네이버, 다음과 함께 3대 웹툰 사이트로 자리매김한 레진이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 5년간 누적된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레진에 연재 중인 혹은 연재했던 작가들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레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레진은 입장문 발표 등으로 대처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반박이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등 오히려 기름을 붓는 모양새다.

급기야 지난 7일에는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 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에 대한 세무조사를 부탁드립니다’는 청원이 제기됐다.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작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청원자는 ▲정산CMS 오류 ▲지체상금(지각비) ▲해외 서비스 정산 미지급 등의 문제가 레진에서 발생하고 있다며 세무조사를 요구했다. 해당 청원에는 지난 14일 기준 4만8000여명이 참여했다.


청원 내용 중 지체상금 이른바 지각비 제도는 2015년 8월 본격적으로 도입된 이후 2년4개월여 동안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된 사안이다. 

작가들의 계약서에 따르면 레진은 논의 없이 콘텐츠가 제공되지 않거나 지연될 경우 작가에게 벌칙금을 청구할 수 있다. 벌칙금은 지연이나 무단 휴재가 발생하는 건마다 콘텐츠 제공 대가, 즉 수익의 3%씩 차감하며 최대 9%를 초과할 수 없다고 돼있다.

예를 들어 일요일에 웹툰이 공개되는 작가는 서비스 2일 전인 금요일 오후 3시까지 작품을 보내야 한다. 만약 이 기한을 초과할 경우 첫 번째는 벌칙금이 없지만 두 번째부터는 월 수익의 3%, 세 번째는 6%, 네 번째는 9%를 지각비로 물린다. 

월 수익이 200만원이라면 최대 18만원까지 지각비로 책정될 수 있다는 뜻이다. 레진은 정산 시 지각비를 차감한 돈을 작가에게 지급한다. 

서비스 지장 없어도 마감 늦으면 지각
최대 9%까지 징수 1000만원 낸 작가도

문제는 지각비가 발생하는 시점과 상한선이다. 작가는 자신의 서비스 요일에 정상적으로 작품을 업로드할 수 있는 상황이라 해도 레진서 정한 마감 기한에 늦으면 지각비를 물어야 한다. 

다시 말해 매출상의 손해가 전혀 발생하지 않음에도 작가는 정산상의 불이익을 받는 셈이다. 만화계 한 관계자는 “레진의 지각비 제도는 출근시간이 9시로 정해진 아르바이트생에게 왜 7시까지 오지 않느냐고 따지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지각비의 최대 액수가 정해지지 않은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레진은 지각한 주가 아닌 작가가 벌어들인 해당 월 전체 수익에서 최대 9%까지 지각비를 제하고 있다. 월 수익에 따라 지각비가 결정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수익이 많으면 차감액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실제 최근 한국만화가협회(이하 만화가협회)에 접수된 지각비 관련 제보 중에는 레진서 위약금으로 물린 지각비 액수가 1000만원에 이른다는 신고도 있다.

레진의 지각비 제도 관련 만화가협회의 법률 자문을 맡고 있는 법무법인 덕수의 김성주 변호사는 “작가의 지각으로 연재가 늦춰졌다면 그에 대한 페널티는 사후에 설정할 일”이라며 “작가 스타일이나 작품에 대한 고려 없이 일률적으로 특정 시점을 적용해 이중의 제어장치를 둔 것은 작가들 입장에서는 부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속적으로 부당성이 제기되자 레진은 지난달 9일 입장문을 통해 내년 2월1일부터 지각비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만화가협회와 한국웹툰작가협회(이하 웹툰작가협회)는 레진의 지각비 폐지 결정을 반기면서도 지난달 30일 ▲부당하게 지각비를 징수당한 작가들에 대한 보상 방법 ▲레진코믹스 운영상 과실 또는 서비스의 오류 발생으로 인해 작가들이 피해를 입었을 경우 보상정책 유무와 위 보상정책을 계약서에 명시할 의사가 있는지 여부 ▲지각비 폐지 시점을 2월1일로 설정한 경위 등 3가지 사항에 대한 추가 답변을 요구했다.

웹툰작가협회의 공개 질의에 레진은 2주 만인 지난 12일 답변을 전해왔다. 가장 논란이 되는 사안은 지각비 폐지 시점이다. 

레진은 11월에 낸 입장문서 내년 2월1일을 지각비 폐지 예정일로 잡은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지각비 관련 부분은 계약서에 명시돼있기 때문에 작가들과 별도 서면으로 합의서를 작성해야 한다’ ‘지각비가 운영되지 않는 상황서 오류를 막기 위해 제도를 보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등이다. 웹툰작가협회에 보낸 답변도 동일하다.

월 20∼30%
성장의 이면

하지만 지난 14일 레진 관계자에게 나온 답변은 입장문과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레진 관계자는 지각비 폐지와 관련 “내년 2월1일부터 작가님들과 변경합의서 체결합니다. 관련해 보다 상세한 내용은 추후 작가님들께 전체 공지 드릴 예정입니다”라는 입장을 전해왔다. 

내년 2월1일에 일괄적으로 지각비가 폐지되는 게 아니라 그날부터 작가들과 개별적인 합의가 이뤄진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작가와의 합의 과정서 발생할 수 있는 지각비에 대해 묻자 “세부 사항은 협의 중에 있다”는 말만 돌아왔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레진이 지각비 폐지를 결정한 것은 사측도 어느 정도 문제를 인지했다는 뜻”이라며 “그런데 그 조항을 폐지하는 데 3개월, 그 이상 소요된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별도의 합의서를 통해 ‘기존 계약의 효력은 그대로 유지하되 지각비 조항에 대해서는 특정 시점부터 효력을 없애기로 한다’ 등의 취지로 충분히 진행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계약대로 진행”
양측 얘기 달라

레진이 작가들의 지각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정작 자신의 실수에는 관대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레진은 웹툰작가협회가 질의한 보상정책 유무와 계약서 명시에 대해 “올해 2월부터 서비스 운영상 과실에 대해 작가들에게 개별적으로 연락을 취하고 상호 합의하에 만족할만한 보상을 진행 중에 있다”면서도 “보상 정책은 계약서에 전부 명시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웹툰작가협회의 첫 번째 질의에 대한 레진의 답변도 논란이 될 전망이다. 레진은 “계약 진행 과정서 작가들에게 지각비에 대해 설명했고 그들도 인지한 상태서 계약이 이뤄졌기 때문에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작가가 레진과의 계약 조항에 동의해 서명했기 때문에 지각비 징수가 잘못된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일요시사> 취재 결과 레진이 계약을 맺은 웹툰 에이전시와 계약서 변경 없이 작가에게 지각비를 징수했다는 의혹이 드러났다. 즉 작가와 레진, 에이전시 간의 계약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서 지각비 차감이 진행됐다는 것.

레진은 2015년 8월 이후 에이전시에 지각비 제도 도입과 시행을 알렸다. 그러자 에이전시는 2015년 10월 ‘[작가님 전체 공지 메일] 레진코믹스 원고 마감 시점 관련 페널티 관련...’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작가들에게 보냈다. 

이메일에는 11월1일부터 ‘이틀 전 오후 3시 마감 규정이 엄수돼 진행’ ‘페널티는 최대 9%’ ‘월 1회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 등의 내용이 포함돼있다. 레진과 직접 계약을 맺은 작가들의 지각비 조항과 동일하다.

논란 계속되자 폐지 결정
합의 시작은 3개월 뒤부터

이 문제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해당 에이전시를 통해 레진에 작품을 연재한 A작가를 통해 알려졌다. 

실제 A작가는 2016년 지각비 조항에 따라 정산액을 차감당한 경험이 있다. 그는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 물어볼 생각을 못했는데 최근 논란이 불거진 걸 보고 그때 지각비 조항이 포함된 계약서를 받지 못한 게 떠올랐다”고 전했다.

에이전시는 A작가의 문의에 “페널티에 대한 공지 그 자체(2015년 10월에 보낸 메일)가 계약의 효과로 진행됐던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며 “자사도 레진 측으로부터 페널티에 대한 내용을 공지로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A작가가 에이전시의 답변에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자 추가 이메일이 이어졌다. 

에이전시는 “지각비 적용과 관련해 레진과 자사, 자사와 작가님 사이에 문서화된 계약서를 주고받은 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작가가) 별도의 이견을 피력한 적이 없었기에 최근 문제 제기에 당황스럽다”고 덧붙였다.

작가들의 계약서에 따르면 계약의 변경은 서면 합의로만 이뤄질 수 있다. 

김성주 변호사는 “계약서를 꼼꼼히 확인해봐야 하지만 이메일을 통한 공지는 ‘통보’에 가깝다”며 “통보 자체가 계약 내용의 변경에 대한 합의로 보긴 어렵다. 작가들이 문제 제기할 수 있는 부분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레진 관계자는 (에이전시서)우리와 동일하게 지각비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며 “해당 조항이 계약서에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는 입장이다. 반면 에이전시는 계약서에 지각비 조항이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주지 못한 상황이다.

지난 2일 SNS에는 레진에 작품을 연재 중인 B작가의 어머니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B작가는 “지각을 할지도 모른다는 논리에 경영진이 행한 이 얼토당토않은 일에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내가 당신들과의 약속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 내 엄마에게 했던 그 모진 말을 용서하기 힘들어요”라고 적었다. 

중증 우울증을 앓고 있던 B작가의 어머니는 지각비 증빙 자료와 관련해 B작가와 말다툼을 벌이고 아파트서 뛰어내려 사망했다.

B작가는 “당시 그 달(10월)의 첫 번째 지각이어서 지각비 차감대상도 아니었다. 레진은 엄마가 아프다는 증거를 해당 주도 아닌 그다음 주에야 요구했다”며 “나중에 확인해보니 레진은 작가들에게 증빙서류를 요구하는 명확한 기준조차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엄마의 죽음과 레진의 지각비 제도가 무슨 상관이냐고 질타하는 목소리가 많았다”며 “그렇지만 나는 이번 일이 지각비 제도의 ‘부작용’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명확한 기준 없어
“면제하려 했다”

레진 관계자는 “저희 PD가 (B작가의) 지각비를 면제해 드리려고 증빙서류를 요청한 것 같다”면서도 “매번 지각비에 대한 증빙서류를 요구하는 건 아니다”라고 답했다. 

만화계 한 관계자는 “레진은 유료 플랫폼 중에서도 선두주자였고 친작가주의라는 좋은 이미지로 시작했는데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는지 납득할 수 없다”며 “개선 의지야 레진에 달렸지만 지금까지 내놓은 입장문이나 대처 등을 보면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지 않을까”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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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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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