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59) 진군

  • 황천우 작가 shs@ilyosisa.co.kr
  • 등록 2017.11.20 10:49:00
  • 호수 11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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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태종을 잡아라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기어코 유신의 소리가 올라갔다. 그제야 신라군들이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며 활을 내렸다.

“성충 장군, 제 수하의 결례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유신이 차분한 말투로 말을 건네자 성충이 계백에게 눈짓을 보냈다.

의미를 헤아린 계백이 앞으로 나섰다.

“소장 계백이오. 군인으로서 귀 병사의 무례를 용서할 수 없었소.”


말을 마친 계백이 유신을 향해 가볍게 고개 숙였다.

이어 성충과 함께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장군, 어찌할까요?”

백제 진영으로 돌아오자 계백이 진지를 구축하고 있는 병사들을 바라보다 성충을 주시했다.

“일단 말미를 주겠다고 했으니 동태를 살펴보세.”

“과연 저들이 고구려에서 철수할까요?”

동태를 살피다


“당연히 그리할 일이야.”

“소장은 이해되지…….”

“우리가 신라로 하여금 고구려에서 손을 뗄 수 있는 명분을 주었네. 신라는 우리의 침공을 사유로 퇴각할 수 있는 명분을 얻은 게지.”

그 말을 되새기던 계백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우리는 고구려에게 면을 세운 거구요.”

“그러이. 그리고 자네 저 김유신이란 자를 염두에 두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아마도 언젠가는 우리와 특히 자네와 한번 숙명적으로 마주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러네.”

“그야 지금도 마주치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그저 상견례로 간주해야지. 어차피 피차간에 전쟁을 치룰 명분이 없으니 말이야.”

계백이 방금 전 일어났던 상황을 되새기며 김유신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

당나라의 이세적이 이끄는 병사들이 요수(난하로 중국 하북성 북동부를 흐르는 강)를 건너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연개소문이 즉각 고정의를 군사로 고연수와 고혜진을 장군으로 하여 오만의 병사를 거느리고 안시성으로 가도록 조처했다.


고구려 군사가 안시성으로 가는 사이 사이 당나라 군사들의 이동 소식이 계속 전해졌다.

당의 선발대인 영주도독 장검이 호병(胡兵, 북방 오랑캐)을 거느리고 요수를 건너 건안성으로 진격하였으나 사전에 연개소문의 지시를 받은 건안성은 수성에 오로지하며 그들의 발을 묶어 놓고 있었다.

또한 수군을 거느린 장량은 동래(東萊, 발해 동쪽 지역)로부터 바다를 건너서는 후속부대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육군을 이끌고 있는 이세적과 도종은 신성에 이르자 견고한 수성 체계를 갖추고 항거하는 성을 압박해서 고립시켜 놓고 곧바로 개모성 이어 백암성으로 진군했다.

이어 당나라군이 연개소문의 지시로 이미 소개된 개모성과 백암성을 거치고 요동성에 이르자 난관에 봉착했다.

당군이 지나친 신성은 물론 이미 소개시켰었던 개모성과 백암성의 군사들이 요동성으로 합류했던 탓이었다. 


거기에 더하여 국내성(만주 길림성)에 있던 병사들까지 합세하자 당군의 여러 차례에 걸친 공략이 처절하게 실패하고 만다.

결국 이세적은 당태종이 이끄는 주력군을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그 시점 당태종은 요택(遼澤, 요하 강가의 소택지로 요하는 중국 동북 지방 남부 평원을 관류하는 강)에 이르렀으나 이백여 리나 진흙으로 덮여 있어 사람과 말이 통과할 수 없었다.

결국 그곳에 흙을 덮어 다리를 만든 연후 그곳을 지나 요동성에 이르렀다. 

요동성에 도착한 당태종은 성을 여러 겹으로 포위하고 북소리와 고함으로 심리전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당의 치열한 공격에 결사항전의 정신으로 응하던 고구려 군사들이 사전에 취해진 연개소문의 지시에 따라 서서히 안시성으로 이동했다.

뒤이어 요동성을 점령한 당태종은 그곳을 요주(遼州)로 삼았다. 

이세적·도종… 앞마당까지 전진
승기 잡은 고구려…도망친 당나라 

고연수의 지원군이 안시성 가까이 이르자 연개소문의 지시대로 안시성에 들르지 않고 내처 앞으로 나아갔다.

안시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멈추어 진을 치고 전열을 가다듬으면서 휴식을 취하는 중에 당군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한창 기세등등하게 진군해오던 당태종이 일순간 진군을 멈추고는 주변에 있는 높은 곳으로 올라 고구려 군사들의 진용을 살피며 싸움을 자제하는 듯한 양상을 보였다. 

진지 앞에서 당나라 군사들의 동정을 살피던 고연수가 당나라 군사들이 자신들의 위용에 머뭇거리는 것이라 판단하고 고혜진에게 다가섰다.

“당나라 오랑캐들이 우리의 위용을 바라보고 겁을 먹은 듯 보이는데, 이참에 우리도 공을 세워봅시다.”

“공이라.”

공을 세워보자는 말에 고혜진 역시 귀가 솔깃해지는 모양으로 눈동자를 반짝였다.

그 모습에 곁에 있던 고정의가 가볍게 혀를 찼다.

“군사께서 왜 그러시오?”

“이러니 막리지 대감이 나를 보낸 거 아니오?”

“무슨 의미요?”

“두 사람 다 경거망동 마시오. 명색이 당나라 태종이 진두지휘하는 군사들이오.”

“우리를 어떻게 보기에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게요!”

고정의가 목소리를 높이자 고연수가 핏대를 세웠다.

“어떤 식으로 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의 전력 역시 세심하게 살피고 임해야 할 일 아니오.”

고정의가 다소 부드럽게 말투를 바꾸자 고연수가 고혜진을 바라보며 크게 헛기침했다. 

“당태종 역시 인물이오. 단지 당나라의 왕이라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뭔가 범상치 않은 사람이란 걸 왜 모르시오. 그 사람이 지금 당나라의 주력군을 모두 데리고 왔으니 함부로 대적할 수 없소. 그러니 우리는 군사를 정돈하여 싸우지 않고 시간을 보내며, 오랫동안 버티면서 기습병을 나누어 보내 당나라 군사들의 군량 길을 끊는 것이 옳소. 양식이 떨어지면 싸우려 해도 할 수 없고 돌아가려 해도 길이 없으니 그때 공격하면 우리는 백전백승할거요. 그러니 잠시 참았다 그때 공을 세우도록 하시오.” 

고정의의 말이 지속적으로 이어지자 어느 순간 고연수가 퉁명스럽게 그나마 답을 하고 자신의 군막으로 가겠다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고혜진 역시 고연수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적의 계략

다음날 동이 트기 시작할 무렵 어지러운 기척에 고정의가 눈을 떴다.

급히 군막에서 나오자 고연수와 고혜진이 대군을 이끌고 적진으로 향하고 있었다.

급히 달려가 진군을 만류하나 두 사람은 들은 척 만 척하며 속도를 더하기 시작했다.

순간 고구려군을 맞기라도 하듯 당나라 군사들이 내처 앞으로 달려 나오기 시작했다.

고정의가 두 사람을 자제시키려던 행동을 멈추고 당군을 주시했다.

당나라 군사 중에 일부만, 기병들이 앞으로 나오고 있었다.

적의 계략임을 눈치 챈 고정의가 애써 진군을 만류했으나 오히려 그게 신호라도 된 듯 고구려 군사들이 속도를 더하며 기세 좋게 당나라 군사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양군 사이에 거리가 좁혀지자 달려 나오던 당나라 군사들이 전투하는 시늉만 내고는 고개를 돌려 자신들의 본진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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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