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57) 전쟁

려-당 일촉즉발…과연 승자는?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또 태자 첨사좌위솔(詹事左衛率, 태자의 스승 정도로 추정) 이세적을 요동도 행군대총관으로 강하왕(江夏王) 도종을 부대총관(副大摠管)으로 삼아 보병과 기병 육만 명과 오랑캐들을 거느리고 신성을 통과하여 요동으로 가서 자신의 주력군을 기다리도록 했다.
 
“전하, 심려 마십시오.”

연개소문이 한숨을 내쉬며 근심스럽게 바라보는 보장왕에게 은근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건넸다.

“무슨 복안이라도 있습니까?”

“소신이 바라던 대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바라던 대로라니요?”


연개소문이 답을 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선도해를 바라보았다.

“전하, 당태종이 직접 출정에 나섰다고 하니 이번이 기회입니다.”

“기회라! 물론 위기가 기회라는 말을 알고 있소. 그런데 어떻게 그 위기를 기회로 만들 것이냐 이 말입니다.”

출정나선 당태종

선도해가 답에 앞서 고구려의 각 성이 위치해 있는 지도를 펼쳤다.

“먼저 이세적이 이끄는 육군의 진로를 살펴보겠습니다. 이세적의 육군은 신성(新城, 지금의 만주 푸순 부근), 개모성(盖牟城, 만주의 개현), 백암성(白巖城, 지금의 태자하 북쪽 기슭에 있는 연주산성으로 추정)을 거쳐 요동성으로 향할 것입니다. 아울러 요동성에서 당태종인 이세민의 주력군과 합칠 것입니다.”

말을 하다 말고 선도해가 연개소문을 주시했다.


“전하, 이차로 이곳에서 당나라 군사들과 격전을 치르고자 합니다.”

“이차라니요. 그러면 일차는?”

“일차는 물론 신성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신성은 저들에게 당한다는 이야기입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런 연유로 신성의 병력을 보강하여 수성에 오로지할 것입니다.”

“병력이라 함은, 지원군을 의미합니까?”

“물론 지원군입니다만, 중앙군이 아닌 개모성과 백암성의 병사를 의미합니다.”

“그러면?”

“일단 개모성과 백암성은 소개시킬 작정입니다.”

“두 성을 말입니까?”

“그리하여 신성으로 병사를 집결시켜 당나라 군사에 호응하도록 할 것입니다.”

보장왕이 무슨 의미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신성에서 수성으로 일관하여 당나라 군사들이 요동성으로 향하도록 만들고 요동성에서 본격적인 격전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요동성이 패하면 어떻게 됩니까?”

“당연히 패할 것입니다.”

연개소문의 확신에 찬 소리에 보장왕이 이상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요동성에서 저들의 진을 뽑아버리고 안시성으로 유인할 것입니다.”

“안시성 말입니까?”


연개소문의 말에 보장왕이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당태종을 고구려 깊숙이 끌어 들이는 전략이라 보시면 무방합니다.”  

“안시성이라.”

“전에 말씀 드린 바 있듯이 저들을 반드시 고구려 영토 깊숙이 끌어들여 우리의 전쟁을 할 것입니다.”

“우리의 전쟁이라면?”

“그곳에서 당태종을 잡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저들이 안시성을 그냥 지나치고 평양성으로 진격할 수 있지 않습니까?”

당태종을 되뇌던 보장왕이 아직도 불안한 기운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안시성을 점령하지 못하고 평양성으로 진군한다면 그는 뒤에 가장 강력한 고구려 군사를 두는 꼴이 될 터이니 말입니다.”

보장왕의 얼굴에 서서히 미소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세민, 육만 오랑캐 끌고 남하 
안시성 버리고…평양성 지킨다?

“막리지께서 안시성에서 결판내려는 모양입니다.”

“국경 근처에 있는 신성에서 결판낼 수 있으나 그런 경우 자칫하면 우리는 지난 희생을 헛되이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보장왕이 희생을 되뇌며 연개소문을 주시했다.

“신성에서 타격하면 저들은 그저 선선히 물러갈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 이세민 이 놈도 진군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라도 당나라 오랑캐 놈들이 반드시 안시성으로 들어오도록 유인해야 합니다. 우리 영토 깊숙이 끌어들여 퇴각조차 함부로 못하도록 상황을 조성하고 반드시 당태종의 목을 베어야 합니다.”

힘주어 말하는 연개소문의 얼굴로 묘한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당태종이 이끄는 주력군이야 그렇다 하고 바다를 건너온 장량의 군대는 어찌합니까?”

“장량이란 놈이 주력군에 합세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평양성으로 진군할 수 없습니다. 행여나 그런 경우 평양성을 수비하는 우리의 중앙군이 박살내도록 하겠습니다.”

“여하튼 우리 측도 상당한 희생이 있겠구려.”

“이번이 기회입니다.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하고 반드시 당태종 이 놈의 목을 베어야 저들의 기세를 꺾고 우리가 지향하는 바를 완수할 수 있습니다.”

“짐은 오로지 막리지 대감만 믿겠소.”

“소신은 지금 바로 안시성으로 가서 양만춘 성주를 만나 사후의 일에 대해 전하의 의지를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연개소문이 곁에 있던 고죽리에게 주의를 주고 후하게 대접하고는 다시 당나라로 보내고 선도해와 급히 길을 떠났다.

백암성과 신성 등 여러 성을 거치며 향후 행동에 대해 세세하게 지침을 주고 안시성에 이르러 양만춘 성주와 마주했다.

선도해가 연개소문의 전략을 상세히 설명하자 양만춘의 표정이 굳어졌다. 

“안시성은 반드시 목숨을 바쳐 지켜낼 것입니다만 저들이 대감 의도대로 정확하게 움직여 줄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럴 수 있소. 그러나 저들이 평양성으로 진격한다면 여하한 경우라도 이곳을 지나치지 않을 수 없소.”

“당연히 그러겠지요.”

“그렇소, 성주. 여하튼 우리의 명운이 성주에게 달렸소. 아울러 돌아가는 대로 급히 지원병을 보낼 참이오.”

“지원병이라니요?”

“물론 안시성과는 별개요.”

“말씀주시지요.”

“고연수와 고혜진으로 하여금 독자적으로 적을 맞이하도록 할 계획이오. 아울러 안시성과 떨어진 지점에서 저들의 힘을 소진시킨 후에 안시성을 공략하도록 할 것이오.”

“그들이 당나라 군사에 제대로 대적할 수 있을까요?”

“물론 책사 고정의도 함께 보낼 터이지만 그들로서는 역부족이란 사실을 알고 있소.”

“그는 무슨 뜻입니까?”

침묵을 지키다

양만춘이 선도해를 바라보았다.

“그만큼 이번 기회를 헛되이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양만춘이 생각에 잠겼다는 듯 잠시 침묵을 지켰다.

“막리지 대감, 그건 그렇다 하고. 당나라의 수군이 곧바로 평양성으로 진격하도록 길을 잡았다고 하셨는데 만에 하나 그들이 평양성을 공격하면 어찌하시렵니까?” 

“그들이 독자적으로 평양성을 공격할 수도 없지만 설령 한다고 해도 연정토 장군이 이끄는 중앙군이 충분히 격파할 수 있을 거요.”

연개소문이 격파라는 말에 힘을 주었다.

“그러면 제게 더 말씀하실 내용은 없습니까?”

“성주는 그저 수성을 통해 저들의 진을 뽑아주시오.”

“안시성은 죽어도 저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을 터입니다!”

양만춘 역시 힘주어 답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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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