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④부산 산복도로

부산의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

부산의 독특함을 만나고 싶다면 산복도로에 가야 한다. 산복도로서 내려다보는 시원한 풍광도 좋지만 그곳에 부산의 어제와 오늘이 있기 때문이다. 산복(山腹)은 산허리를 뜻하며 산복도로는 경사지를 개발하면서 맨 위쪽에 자리한 도로다.
 

부산은 평지가 좁고 산이 많아 땅이 부족했다. 일제강점기에 일자리를 찾아 전국에서 온 사람들이 살 곳이 마땅치 않아 산으로 올라갔다. 광복 당시 28만명이던 부산 인구는 한국전쟁을 거치며 100만명이 훌쩍 넘었다. 

그러지 않아도 비좁은 산비탈이 판잣집으로 뒤덮였다. 사람들은 산에 움막을 짓고, 깡통을 펴 지붕을 올렸다. 힘겨운 시절이었다. 아이들은 몸집만 한 물통을 이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 물을 길었고, 마을 사람들은 공동 화장실을 사용했다. 팍팍한 삶이지만 산동네는 피란민에게 안식처이자 희망의 터전이었다.

부산의 얼개 산복도로 재조명

산동네에도 길이 필요했다. 1964년 10월 산동네를 연결하는 첫 산복도로가 열렸다. 중구 대청동 메리놀병원 앞에서 동구 초량동 입구까지 1820m 구간에 걸친 망양로다. 이후 구봉산과 천마산을 비롯해, 부산 곳곳에 산복도로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부산은 ‘산복도로의 도시’가 됐다. 
 


최근 산복도로 재생 사업을 통해 부산의 애틋한 역사를 품은 산복도로가 새롭게 조명된다. 산비탈에 숨은 이야기를 만나고,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부산의 보석 같은 경치를 볼 수 있도록 구석구석 정비했다. 먼저 망양로(望洋路)에 가보자. 부산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길로, 발길 멈추는 곳이 모두 전망대다. 황홀한 풍광에 걸음이 저절로 느려진다. 


망양로의 랜드마크는 ‘유치환우체통’이다. 파란 바다와 대결이라도 하듯, 빨간 우체통이 바다를 등지고 섰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로 시작하는 시 ‘행복’이 머릿속에서 흐른다. 유치환우체통은 부산과 인연이 깊은 유치환 선생을 기리기 위해 만든 것으로, 편지를 넣으면 1년 뒤에 배달된다.

유치환우체통서 민주공원 방향으로 걷다 보면 ‘이바구공작소’를 만난다. 이바구는 ‘이야기’의 경상도 사투리. 이곳에선 풍경만으로 알기 힘든 산복도로의 속 이야기를 볼 수 있다. 산복도로 사람들이 펼쳐놓은 ‘요강 이바구뎐’을 비롯해, 산복도로의 풍경을 펜으로 그린 작품이 전시된다. 
 

이바구공작소 근처에는 국내 의료보험의 시초인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만든 장기려 박사를 기념하는 ‘더나눔’ 센터가 있다. 돈이 없는 환자에게 ‘닭 두 마리 값을 내주시오’라는 처방전을 썼다는 장기려 박사의 일화를 비롯해 가슴 뜨겁게 하는 이야기가 고스란히 남았다. 
 

바다를 향해 뻗은 ‘168계단’은 산복도로 서민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이 계단은 산복도로에서 부산항까지 이어주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누군가는 아이를 업고 장바구니를 든 채 계단을 올랐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계단에 앉아 부산항에 배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다가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뛰어 내려갔을 것이다. 

타임머신을 탄 듯 계단 위에 멍하니 서서 당시 모습을 상상해본다. 숨을 고르며 오르내렸을 가파른 계단, 지금은 모노레일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2016년 5월부터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모노레일이 가동돼, 동네 주민과 여행자의 수고를 덜어준다. 
 

168계단 아래는 산복도로 사람들이 목을 축인 우물이 있다. 우물을 뒤로하고 내려가면 골목을 따라 초량이바구길이 이어진다. 담장갤러리에 걸린 ‘산복도로의 시인’ 강영환의 시와 옛 초량동 사진을 보며 추억에 빠져든다. 부산역 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면 남선창고 터와 옛 백제병원이 보인다. 

부산에 처음 생긴 창고인 남선창고는 ‘부산 토박이 치고 남선창고 명태 눈알 안 빼 먹은 사람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지금은 명태도, 남선창고도 사라지고 이야기만 남았다. 


피란민의 애환 산비탈 따라 숨어있어
아미동 비석마을, 묘비 주춧돌 묘지 위 집

백제병원은 1920년대에 문을 연 부산 최초 근대식 종합병원으로, 중국집과 예식장을 거쳐 ‘브라운핸즈백제’라는 카페가 됐다. 내부 장식도 옛 모습을 간직해 100년 전 시간을 만나볼 수 있다. 

산복도로를 이야기할 때 빠뜨리면 안 되는 곳이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리는 감천문화마을이다. 한동안 낙후된 시설로 주민이 빠져나갔지만, 지금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공공 미술 프로젝트로 썰렁한 담장에 그림을 그리고, 골목 곳곳에 재미를 입힌 덕분이다. 
 

감천문화마을서 고개를 넘으면, 산복도로 주민의 삶을 보여주는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이 나온다.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공동묘지가 있던 마을이다. 집 지을 자리와 자재가 필요한 피란민은 묘지도 상관없었다. 묘지 위에 집을 짓고, 묘비를 주춧돌로 활용했다. 

마을을 걷다 보면 담장으로 사용된 묘비가 자주 눈에 띈다. 지금까지 남은 묘비가 가슴을 아릿하게 만든다.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서 멀지 않은 곳에 아미문화학습관이 있다. 이곳에는 부산을 사랑한 사진가 최민식갤러리가 마련됐다. 산복도로의 옛 모습을 담은 사진에 자꾸 눈이 간다. 인간의 진솔한 모습을 담은 사진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산복도로 어디서나 황홀한 풍광을 볼 수 있지만, ‘누리바라기’는 꼭 가볼 만한 곳이다. 우뚝 선 부산타워부터 코모도호텔, 영도의 봉래산과 빌딩 숲, 산복도로 주변에 빼곡한 집이 한눈에 들어온다. 밤이 되면 또 다른 모습을 선물한다. 부산항대교의 화려한 조명과 정감 넘치는 산복도로의 가로등 불빛이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산복도로를 둘러본 뒤에는 과거 부산 시민의 삶을 더듬어볼 수 있는 자갈치시장과 국제시장으로 향한다. 자갈치시장은 한국전쟁 후 살길이 막막해진 사람들이 모여 수산물을 팔기 시작한 곳이다.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라는 슬로건 아래 리드미컬한 부산 사투리가 오간다. 현대식 건물과 함께 생기 넘치는 노점도 운영된다. 
 

자갈치시장서 길을 건너면 국제시장이다. 국제시장은 무역을 통해 신문물을 접하는 통로이자, 문화 교류의 장이었다. 영화 〈국제시장〉 덕분에 ‘꽃분이네’도 명소가 됐다. 국제시장은 예나 지금이나 꿈과 청춘을 품은 곳이다. 

국제시장 6공구 B동 2층에 부산의 향을 담은 향초, 감성적인 흑백사진을 찍어주는 사진관 등 청년들의 아이디어로 만든 복합 문화 공간 ‘국제시장 609몰’이 문 열어 젊은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부산 시민의 삶 ‘자갈치시장’

끊임없이 변하는 부산의 새로움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발길이 뜸하던 송도해수욕장에 사람들이 다시 몰린다. 송도해상케이블카가 29년 만에 화려하게 부활했기 때문이다. 송림공원에서 암남공원까지 1.62km를 짜릿하게 즐긴다. 할아버지 손잡고 케이블카를 타러 온 아이들의 모습이 따듯하다. 넘실거리는 바다 위 높이 86m에 매달려 산복도로를 보니, 문득 부산의 내일이 궁금해진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 망양로 산복도로 여행 / 유치환우체통→더나눔→이바구공작소→168계단과 모노레일→담장갤러리→옛 백제병원→자갈치시장→국제시장
- 감천문화마을 산복도로 여행 / 감천문화마을→아미동 비석문화마을→아미문화학습관(최민식갤러리)→누리바라기→송도해수욕장(송도해상케이블카)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유치환우체통→더나눔→이바구공작소→168계단과 모노레일→담장갤러리→옛 백제병원→자갈치시장→국제시장 
[둘째 날] 감천문화마을→아미동 비석문화마을→아미문화학습관(최민식갤러리)→누리바라기→송도해수욕장(송도해상케이블카)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부산문화관광(부산광역시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http://tour.busan.go.kr
- 부산관광공사 http://bto.or.kr
- 이바구공작소 http://www.ebagu.or.kr
- 감천문화마을 http://www.gamcheon.or.kr 
- 자갈치시장 
http://jagalchimarket.bisco.or.kr
- 국제시장 http://gukjemarket6.modoo.at
- 송도해상케이블카 http://www.busanaircruise.co.kr

문의 전화
- 부산관광공사 051)780-2111(평일) 051)780-2116(주말)
- 유치환우체통(부산광역시 동구청 문화체육과) 051)440-4062
- 이바구공작소 051)468-0289
- 감천문화마을 051)204-1444
- 자갈치시장사업소 051)713-8000
- 국제시장 051)245-7389
- 송도해상케이블카 051)247-9900

대중교통 정보
[기차] 서울-부산, KTX 하루 50~60회(05:15~22:50) 운행, 약 2시간40분~3시간 소요. 
*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http://www.letskorail.com 
[버스] 서서울-부산, 서울고속버스터미널서 20~40분 간격(06:00〜다음 날 02:00) 운행, 약 4시간20분 소요. 
* 문의: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88-4700 고속버스통합예매 http://www.kobus.co.kr 


자가운전
경부고속도로 신갈 JC→영동고속도로 여주 JC→중부내륙고속도로 김천 JC→경부고속도로 동대구 JC→중앙고속도로→좌천삼거리→중앙대로349번길→고관로→수정남로→망양로 

숙박 정보
- 까꼬막게스트하우스: 동구 망양로596번길, 070-7333-9195
- 이바구캠프: 동구 망양로525번길, 051)467-0289http://www.2bagu.co.kr
- 코모도호텔: 중구 중구로, 051)466-9101, http://www.commodore.co.kr
- 천마산에코하우스: 서구 천마산로, 070-8917-1503
- 베이하운드호텔: 영도구 태종로35번길, 051)413-1114, 
http://www.bayhoundhotel.com 

식당 정보
- 할매집회국수(회국수): 중구 남포길, 051)246-4741
- 원조부산족발(냉채족발): 중구 광복로, 051)245-5359, http://www.부산족발.kr
- 18번완당집(완당): 중구 비프광장로, 051)245-0018 
- 할매가야밀면(밀면): 중구 광복로, 051)246-3314 
- 신발원중국요리(중국요리): 동구 대영로243번길, 051)467-0177

주변 볼거리
역사의디오라마, 부산타워, BIFF광장, 보수동책방골목, 민주공원, 임시수도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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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