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준호 칼럼> 야구선수의 재질(Tal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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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17.10.23 11:22:00
  • 호수 11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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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한양대학교의 야구부 감독이었던 김한근 전 한양대 감독과 야구선수들의 재질에 대해 오랜 시간 동안 의견을 나눈 적이 있었다. 

김한근 감독은 대구상고(현 대구상원고)와 한양대학교를 거쳐 1982년 한국프로야구 출범 시 삼성라이언즈의 원년 선수로 활동했고, 1985년 빙그레이글스(현 한화 이글스)로 이적해 빙그레 이글스의 창단 원년 선수로 활약했다.

후로 다시 1989년 태평양 돌핀스로 이적한 후 1990년 시즌이 끝난 후 현역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대구상고와 한양대, 그리고 삼성 라이언즈를 거치는 동안 국내 야구의 역사상 불세출의 타격천재라 일컬어지는 고 장효조와 함께 현역 시절의 대부분을 같은 팀에서 활약했었고, 김 감독 본인 또한 장타력을 동반했던 타격의 재질이 뛰어났던, 수비의 보직으로는 주로 3루수를 맡아 보았던, 명 내야수였다.

그러했던 김한근 감독은, 가장 가까이서 오랜 세월 동안 지켜보았던 ‘타격의 달인’ 장효조의 예를 들어가며 야구선수의 재질과 그 원천이 되는 ‘야구선수의 신체적 힘’에 관해 이야기를 들려줬다.

원래 부산 태생인 장효조는 어린 시절 대구 이주 후 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고, 대구중학교를 거쳐 대구상고에 진학하면서 전국적인 인지도를 갖게 되는 선수로 발돋움했다. 


고교 2학년 재학 시절, 대통령배와 봉황대기, 그리고 황금사자기 등의 메이저급 고교야구대회를 대구상고가 연달아 석권하는 데 주역으로 활약하면서 두 개 대회의 타격왕에 5할이 가까운 타율로 올랐고, 고교 재학 시절을 통틀어 다섯 번의 타격왕을 거머쥐었다.

1975년 한양대 진학 이후 거의 모든 대회의 타격상을 휩쓸었는데 특히 1976년 국내 성인 야구팀들이 모두 출전하며 프로야구 출범 이전의 가장 큰 권위를 자랑했던 ‘백호기’대회에산 7할이 넘는 경이로운 타율로 타격왕을 차지했고, 그해 최연소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해에는 그해 국내서 개최됐던 ‘세계야구선수권대회’의 출전으로 아마추어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당시의 다른 국가대표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원년 참가를 못하고 1983년 시즌에 삼성 라이언즈의 프로선수로 데뷔 시즌을 치른 후 0.369의 타율로 데뷔 시즌 타격왕이 됐다.

1992년의 시즌이 끝난 후 은퇴하기까지 10시즌을 거치며 그가 세운 국내 프로야구의 통산타율(0.331)과 3년 연속의 타격왕 등극(1985∼1987)은 아직도 역대 최고의 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그 밖에도 통산 네 번의 타격왕과 6번의 출루율 1위, 그리고 통산 1009개의 안타를 기록했다.

야구선수로는 상대적으로 작은 체격(170cm, 70kg)을 지녔지만, 수비의 보직이었던 외야수로서 보살에 능했던 강견의 소유자였고, 그에 따른 힘과 스피드, 정확성, 수비력과 근성까지 갖췄던, 흔히 말하는 ‘야구의 5툴(Five Tools)’을 모두 가지고 있던 선수로 회자된다. 

수치상의 기록은 없지만 장효조의 배트 스피드는 아직도 우리나라의 모든 야구선수들 중 가장 빨랐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장효조가 치지 않는 공은 모두 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탁월한 선구안까지 가지고 있었다.

천부적인 자질을 가지고 타격시 상대하는 투수들의 공을 자신의 몸에 가장 가까이 붙여 놓고 빠른 배트 스피드로 휘둘러 야구장의 좌 우측 어디든 자유자재로 타구를 보내는 그의 ‘부챗살 타법’은 그에게 ‘안타 제조기’ 혹은 ‘타격 기계’라는 별명까지 안겨줬다.


그날의 대화서 김한근 감독은 야구선수의 최고 재질로, 바로 선수 자신이 가진 ‘신체의 힘’을 꼽았다. 
 

투수로서 빠르고 강한 공을 던질 수 있는 것도, 타자로서 빠른 배트 스피드를 이용해 공을 쳐낼 수 있는 것도, 주루 시나 수비 시에 활용되는 빠른 주력과 스피드도 모두 신체적인 힘의 우위서 나온다는 지론이었다.

그의 오랜 친구였던 장효조는 체구가 작은 선수였지만 자신보다 체구가 훨씬 큰 다른 선수들을 모두 압도하는 신체의 힘을 소유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고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장효조는 이미 고교 시절이었던 1970년대 초반부터 개인훈련의 과정에 지금의 웨이트 트레이닝을 도입했었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고등학교 엘리트 야구서 조차 필수적이고 당연시 되는 훈련 프로그램의 개념이지만 국내 야구계에 훈련과정의 일환으로 웨이트 트레이닝이 도입되었던 시기는, 1990년 대 초반 무렵, 당시 LG트윈스의 감독으로 이른바 ‘자율야구’ 혹은 ‘신바람 야구’를 이끌었던 이광환 감독이 미국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서의 코치 연수 경험을 바탕으로 도입해 야구선수들의 피지컬 트레이닝에 대한 개념을 한 단계 진전 시키면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전혀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개념이었지만, 그 이전,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우리나라 야구계는 물론이고 축구계까지 선수들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 절대 안 된다 라는 비과학적인 개념이 지배했던 시기가 있었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단지 전문적인 보디빌더들이 근육을 키우는 개념만으로 이해해 야구나 축구 선수들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 근육이 굳어져서 유연성을 잃고 경기력에 해가 된다는 미신적인 속설이 있었다. 

그런데 장효조는 이미 고교시절부터 ‘역기’를 활용해 자신의 힘을 키우는 것에 주력했었다는 사실은 그가 얼마나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자신의 자질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던 선수들의 예는 비단 장효조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에게서도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나이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미국의 메이저리그에서 현역 선수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일본의 전설적인 야구선수 스즈키 이치로가 동체시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평소 지나가는 자동차들의 번호판을 보며 외우려 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자신의 시력을 보호하기 위해 TV 시청은 물론, 게임이나 휴대폰의 사용조차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야구선수에게 눈이란 생명과도 같은 신체 기능의 요소이다.

비슷한 예는 축구에도 있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일본을 3위로 입상 시키며 7골로 대회 득점왕이 되었던 가마모토 구니시케라는 선수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차범근보다 한 세대 정도 위의 선수인데 아직도 일본 축구대표팀 A매치 역사상 80골로 최다 골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 최고의 축구 스타플레이어 중 한 명이었다.

어린 시절의 가마모토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그의 ‘왼발’에 의한 킥과 기술의 구사였다. 


오른발잡이였던 그는 언제나 자신의 왼발이 오른발만큼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았고, 그러한 왼발을 좀 더 잘 사용하기 위해 평소의 훈련 때도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해 왼발의 킥과 기술을 연마했으나 노력만큼 왼발의 기술이 늘지 않아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의학 관련 서적을 읽던 중 우연히도 사람의 인체 중 오른쪽은 왼편의 뇌가 그 활동을 지배하고 왼쪽의 신체는 오른편 뇌의 활동으로 지배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날 이후 가마모토는 밥을 먹을 때도, 글씨를 쓸 때도 모두 왼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왼쪽의 신체를 조정하는 오른 뇌의 기능을 향상 시키면 왼발의 기능 또한 자연스럽게 향상될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과학적 근거로부터 출발한 행동이었다.

가마모토는 또한 평소 버스나 전철을 이용할 때도 절대로 자리에 앉거나 손잡이를 잡지 않았다고 한다. 오로지 양쪽 발로 중심을 잡으며 신체의 밸런스를 잡는 감각을 훈련 시간에서 뿐만 아니라 평소의 생활에서도 향상시키려 했었던 노력의 일환이었다.

시대와 종목을 막론하고 최고의 수준에 도달했던 선수들은 몇 가지 공통된 개념들을 가지고 있다. 

한 가지는 기존의 상식과 통념에 얽매여 자신의 훈련 방식과 한계를 설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한 가지는 훈련의 시간뿐만 아니라 모든 일상의 시간서 이뤄지는 행동들조차도 훈련의 일종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LA 다저스 시절의 박찬호가 마이너리그로 강등된 후 취했던 대표적인 행동은 숙소와 야구장을 오갈 때 차량을 전혀 이용하지 않고 오로지 런닝으로 오가며 하체의 힘을 강화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는 흔히, 스포츠 선수들에게 요구되는 신체적인 재질, 스피드와 민첩성, 힘과 유연성 등의 모든 신체적 행동의 요소들을 태어날 때부터 부모에게서 부여 받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맞는 말이지만 달리 보면 틀린 말이기도 하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스포츠 종목의 선수들이, 자신의 훈련과 그 프로그램의 실행에 있어, 단지 기술을 배양하는 데에만 할애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위에서 예를 들었던 최고 수준까지 도달했던 선수들처럼 일상서조차도 자신의 신체적 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를 권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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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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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C 빛고을 설립 초기 한양이 30%로 최대주주, 우빈산업(25%), 케이앤지스틸(24%), 파크엠(21%) 등이 주주로 참여했다. 한양이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의 SPC 빛고을 참여를 위한 초기자본 49억원을 댔다. 한양이 우빈산업에 49억원을 빌려주고 우빈산업이 다시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대여해 지분을 분배했다. 이때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콜옵션’ 계약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 콜옵션은 특정한 기초자산을 만기일이나 만기일 이전에 미리 정한 행사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다시 말해 우빈산업은 언제든지 원할 때 케이앤지스틸의 지분을 회수할 수 있는 조건을 걸어둔 것이다. ‘초대형’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이면 한양-케이앤지스틸 모종의 관계 의혹 SPC 빛고을 주주구성에 변화가 생긴 시점은 컨소시엄 구성 당시 한양이 맡기로 한 시공권이 롯데건설로 넘어가면서부터다.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의 지분 24%를 위임받아 주주권을 행사해 롯데건설과 중앙공원 1지구 아파트 신축 도급 약정을 체결했다. 이 과정서 30% 지분의 한양은 배제됐다. 롯데건설을 시공자로 선정할 당시 우빈산업에 지분을 위임했던 케이앤지스틸의 태도가 변한 시기는 2022년 5월경으로 추정된다. SPC 빛고을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25억3000만원(대여금 24억원+이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빌린 돈을 갚았으니 24% 지분만큼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맺었던 콜옵션을 행사하고 49%의 지분을 확보해 SPC 빛고을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후 우빈산업 내부 사정이 변하면서 한 차례 더 지분구조에 변화가 생겼다. 우빈산업은 대출금 100억원에 대해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고 부도 처리됐다. 지급보증을 섰던 롯데건설은 우빈산업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넘겨 받으면서 49%를 확보했다. 지분양도는 롯데건설이 근질권(담보물에 대한 권리)을 행사해 채무를 대신 갚아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우빈산업이 빠진 자리에 롯데건설이 들어오면서 현재 기준 빛고을 SPC 지분구조는 한양 30%, 롯데건설 29.5%, ㈜파크엠 21%, 허브자산운용 19.5%로 재편된 상태다. 허브자산운용이 보유한 19.5%는 롯데건설로부터 양도받은 것이다. SPC 빛고을 내에서 롯데건설의 발언권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뉜 지분 콜옵션으로? 사업시행권과 시공권을 두고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이 궤를 같이 하면서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쟁점은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이 가진 지분이 최종적으로 누구의 소유냐는 것이다. 두 회사의 지분이 어느 쪽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바뀔 수 있다.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을 갚았으니 24%에 대한 주주권이 자사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양은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우빈산업에 49억원의 출자금을 대여하면서 맺은 특별약정을 내세웠다. 해당 약정에 한양이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비공원시설 시공권을 전부 갖는데 우빈산업이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항목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우빈산업이 주도해 롯데건설로 시공사를 바꾼 것은 특별약정에 어긋난다는 설명이다. 광주지방법원은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이 각각 우빈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서 모두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주주권 확인 소송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우리가 SPC 주식을 실제로 소유한 주주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한양 관계자도 “1심 법원은 우빈산업이 한양에게 49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고 보유 주식 25% 전량을 양도하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말했다. 반면 롯데건설은 소송 판결 한 달 전, 우빈산업의 지분을 인수했다고 설명했다. 우빈산업이 한양에 양도할 주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과정서 한양은 우빈산업의 ‘고의 부도’를 의심하고 있다. 한양은 1심 법원 판결을 근거로 자사가 지분 55%(한양 30%+우빈산업 25%)의 SPC 빛고을 최대주주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대법원서 한양에 ‘시공권이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으면서 시공자 지위는 잃게 됐다. 소송 이겨도 지위 잃었다 최근 SPC 빛고을 지분 갈등서 케이앤지스틸의 역할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케이앤지스틸은 상하수도 설비공사 업체로 2003년에 설립됐다. SPC 빛고을에 우빈산업과 함께 참여했다가 현재는 빠진 상태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전 대표가 우빈산업과 친분이 있어서 (SPC 빛고을에)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 사태서 롯데건설과 우빈산업은 이른바 ‘비한양파’로 묶여있다. 두 업체의 지분 이동도 비교적 명확히 드러나 있는 상황이다. 반면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은 두 업체 모두 우빈산업과 소송을 진행하면서도 서로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적(우빈산업)이 같을 뿐 특별히 관계가 있는 업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양의 모기업인 보성그룹 계열사에 속한 ‘앤유’라는 업체가 케이앤지스틸에 2022년 4월, 2억원을 빌려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앤유는 이기승 보성그룹 회장의 동생인 이점식씨가 지분 83.6%를 가지고 있는 친족회사다. 전기 조명장치 제조업체로 2007년에 설립됐다. 2022년 기준 매출은 28억2900만원, 영업이익은 3억300만원으로 확인된다. 한양과의 거래를 통해 27억79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앤유는 케이지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주는 과정서 1주일짜리 주식근질권을 설정했다.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이 2억원을 갚지 못하면서 케이앤지스틸의 주식이 전부 앤유로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또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의 대표이사를 비롯해 사내이사 3명 등 4명이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1명은 앤유 대표인 정모씨의 아내로 추정된다. 케이앤지스틸 수뇌부가 물갈이된 것이다. 당시 케이앤지스틸의 채무가 수십억원에 이를 정도로 적자가 누적된 상태였다고 해도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배권을 넘겨준 것을 두고 석연찮은 의문이 일었다. 1주일이라는 짧은 주식 근질권 설정도 의문으로 떠올랐다. 보성그룹에 기생하는 ‘앤유’ 푼돈 주고 1주 만 회사 꿀꺽? 더 흥미로운 대목은 같은 해 5월 케이앤지스틸이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 25억3000만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의혹이 동시에 불거진 점이다. 다시 말해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분 100%를 앤유에 넘겨주고 한 달 만에 20억원이 넘는 돈을 융통해 SPC 빛고을 지분을 확보하려 했다는 의혹이다. 여기에 우빈산업을 상대로 한 주주권 확인 소송 등에 김앤장을 변호인으로 선임하면서 수임료에 대한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케이앤지스틸이 지분확보를 위해 사용한 자금 출처가 한양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한양 입장서 케이앤지스틸이 가지고 있는 지분을 확보하면 54%로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대법원 판결로 시공자 지위는 상실했지만 롯데건설에 넘어가 있는 시공권을 흔들 수 있는 상황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분 갈등 구조가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로 정리되는 셈이다. 하지만 한양과 케이앤지스틸 모두 두 업체 간 모종의 관계 의혹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앤유라는 계열사가 있는지도 잘 몰랐다. 앤유서 케이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줬다거나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무근이다. 우빈산업서 (1심)소송에 져서 계속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듯하다. 대응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보다 광주시가 우빈산업과 결탁해 여러 가지로 유리하게 상황을 봐주고 있다고 판단해 광주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광주시는 사업시행자이자 감독관청으로서 해야 할 일이 참 많은데 그런 일을 하지 않아 공모 제도가 다 무너졌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광주시의 행정행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석연찮은 자금 출처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한양이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에 대해 “우빈산업서 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주주가 들어와 투자가 이뤄지면서 주금 대여금을 갚은 것이다. 우빈산업에서는 (우리가)한양의 위장계열사 아니냐, 대표이사 선임 과정이 의심스럽다, 자금 출처가 어디냐 같은 의혹을 제기하는데 그건 주주권 확인 소송서 져서 그러는 것이다. 한양이랑 우리랑은 큰 관계가 없는데 자꾸 엮어서 흠집을 내려 한다”고 주장했다. 2022년 4월 회사가 어려운 시기에 케이앤지스틸 대표로 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 사업이 잘 마무리되면 우리 회사에 300억원 정도의 수익이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행이익을 1100억원으로 계산했을 때 우리 회사 지분이 24% 정도니까 그렇게 계산한 것이다. 수익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회사를 맡게 됐고, 새로운 주주들도 그 사업성을 보고 투자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