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탕주의’에 푹 빠진 대한민국 ②재벌그룹 생존법

복불복 터지면 대박…‘돈맥경화’ 두드려야 뚫린다

재벌그룹에게 위기는 곧 기회다. 이대로 국가 경제가 무너지지 않는다면 지금과 같은 불황기만한 투자 시점이 없다는 얘기다. MB정부가 입이 닳도록 재계에 주문하는 내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아무리 금융위기 돌파 비책으로 ‘쥐어짜기 경영’이 급선무라지만, 언제까지 허리띠만 졸라 맬 순 없다. 현금창고를 채우려면 수익창구를 두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단기간에 고수익을 내는 이른바 ‘한방 사업’이 제격이다. 여기에 총수일가의 손까지 뻗치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재계가 내년 사업 구상에 들어갔다. 소비 위축이 가시화되는 등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어두운 전망이 벌써부터 쏟아지고 있다. 물론 투자 계획도 갈피를 못 잡고 있다.
그러나 각 그룹들이 저마다 꿰차고 있는 고수익 사업의 사정은 다르다. 투자는 물론 확대 경영까지 꾀하고 있다.
재벌그룹들이 주력사업 외에 가장 주목하고 있는 부문은 부동산 사업이다. 부동산만큼 단기간에 수익성이 높은 사업영역이 없는 이유에서다. 지금과 같은 부동산 값 폭락 때 매입했다가 경기회복을 틈타 매각하려는 요량이다.재계 관계자는 “부동산만한 확실한 성장동력은 없다”며 “유휴자산으로 분류되는 부동산은 담보로 활용되는 것은 물론 매각을 통한 든든한 실탄창고 역할을 톡톡히 한다”고 말했다.
사실 재벌그룹들은 오래 전부터 부동산 관련 사업을 직접 챙겨왔다. 총수일가는 대부분 부동산 사업을 진행하는 계열사의 지분을 갖고 있다. 이를 관장하던 계열사가 ‘숨은 효자’로 분류되는 이유다.
그러나 그 실체는 알 수 없었다. 지난해 말 부동산개발법 시행 전까지 그랬다. 이도 잠시. 부동산개발법이 발효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부동산개발업을 사업목적에 반드시 기재해야 하는 관련법에 따라 기업들은 속속 등록 수정을 서둘렀다.
SK그룹과 LG그룹의 부동산 사업을 관장하던 SK디앤디(전 SK아페론)와 서브원은 부동산 개발업을 올초 사업목록에 추가했다. 삼성그룹 계열사인 호텔신라도 지난 3월 부동산 개발업 등을 사업목적에 새로 추가했다. 이외에 신세계, GS리테일, 대우자동차판매, 한진, 현대건설, 제일모직, 삼성카드, 남광토건, STX조선 등도 부동산에 손을 뻗친 상태다.
이들 기업은 이미 사내에 부동산 전담팀까지 신설한 상황. 일각에선 총수일가의 직속 부서로 전담팀이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한 부동산업자는 “각 그룹의 부동산 팀원들의 임무는 토지나 건물을 매입해 막대한 차익을 거두는 것”이라며 “재벌그룹이 땅을 매입하면 중개업자, 복부인 등의 주변 줄매입이 이어져 땅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귀띔했다.
부동산과 더불어 주식은 재벌가에 군침 도는 군것질거리다. 주가가 바닥인 요즘을 매입 기회로 노리고 있다. 대내외 경제 악화 여파로 대부분 주식이 반토막이 나자 저가매입에 나서고 있는 것. 실제 증권가엔 재벌가 자녀들을 중심으로 ‘사자’열풍이 불고 있다.
최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숨겨진 부인인 서미경씨와 딸 신유미씨가 지난 3일 롯데쇼핑의 주식 2천1백89주와 2천2백주를 장내매수해 지분율이 각각 0.09%(2만6천8백59주), 0.09%(2만5천2백18주)로 확대됐다. 이들 모녀는 지난달 처음으로 롯데쇼핑 주요주주에 이름을 올린 이후 꾸준히 지분매집에 나서고 있다.

‘단기간 고수익’ 사업영역 확대 “안전빵에 올인”
부동산·주식·M&A 등 집중 투자…후유증 조심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수양아들인 광모씨도 지난달 27일 LG 주식 9만4천주를 장내매수했다. 이로써 광모씨의 지분율은 4.53%(7백82만3천7백15주)로 늘었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차남인 조현문 부사장과 3남인 조현상 전무도 지난달 28일 효성 지분을 각각 5만3천3백70주, 4만3천6주를 사더니 이틀 뒤인 30일 또 다시 3만주, 1만주를 추가로 사들였다. 지난달 말 현재 조 부사장의 지분율은 6.94%(2백43만6천9백57주), 조 전무의 지분율은 6.67%(2백34만3천7백16주)로 높아졌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조원태 대한항공 상무와 장녀 조현아 상무, 차녀 조현민 과장도 최근 대한항공 주식을 매입해 3명 모두 6만4천2백25주(0.09%)로 보유 지분이 상승했다.
증권가 관계자는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진 틈을 타 싼값에 주식을 사들이는 재벌가 자녀들이 늘고 있다”며 “이는 적은 비용으로 향후 경영권 승계는 물론 자사주 매입효과까지 가져올 것”이라고 진단했다.
반면 주식으로 패가망신한 사례도 적지 않다. 검찰에 적발된 한방을 노린 재벌가 자녀들의 주가 조작이 대표적이다. 재벌가 2·3세들을 내세운 이른바 ‘재벌 테마주’사건이 그것이다.

부동산-폭락 때 매입 경기회복까지 기다려
주식-주가 바닥칠 때 저가매입 ‘호시탐탐’
M&A-‘한방 게임’단숨에 재계서열 ‘쑤욱’


검찰은 지난달 28일 주가를 조작해 1백억원대 이득을 챙긴 재벌가 자제 등을 무더기로 증권거래법상 사기적 부정거래 혐의로 기소했다. LG가 3세 구본호씨에 이어 두산가 4세 박중원씨, 노신영 전 총리의 아들 노동수씨, 선병석 전 뉴월코프 회장 등을 구속한 것. 검찰은 이번 수사를 통해 재벌가 자제들이 주가조작 등으로 1백억원대의 부당이득을 취한 사실을 밝혀냈다. 또 6백억원대의 횡령 및 배임 등의 사실도 적발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들은 사채를 빌려 기업을 인수한 뒤 거액의 회삿돈을 빼돌리는가 하면 해외 펀드를 이용한 이른바 ‘검은 머리 외국인’까지 동원해 주가를 조작했다”며 “재벌가 자녀들이 연루된 의혹이 있는 다른 사건에 대해서도 수사를 계속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기업 인수·합병(M&A)도 빼놓을 수 없는 대박 상품 중 하나다. M&A는 단숨에 재계서열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6년 11월 대우건설(자산 5조9천억원)을 6조4천억원에 인수해 단숨에 재계 판도를 바꿔놨다. 재계 랭킹 11위에서 8위로 올라섰다. 두산그룹은 2000년 초부터 대우종합기계 등 굵직한 기업들을 인수하며 재계순위를 30위권에서 10위권으로 끌어올렸다.
STX그룹, 유진그룹 등도 굵직한 매물들을 손에 넣으며 재계서열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4월 현재 자산규모가 약 21조원으로 재계 12위인 한화그룹은 최근 대우조선해양 인수로 자산이 29조7천억원 가까이 늘어나 재계순위 10위에 올라설 것으로 전망된다.
M&A 관계자는 “현재 M&A시장에는 하이닉스반도체, 현대건설, 현대오일뱅크, 금호생명, SK증권, 유진투자증권 등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며 “삼성그룹, 롯데그룹, 포스코, GS그룹 등이 인수자로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다.
재벌그룹의 ‘한방’사업과는 다소 거리가 멀지만, 고수익을 내는 든든한 ‘안전빵 장사’도 눈길을 끈다. 우선 광고분야는 재벌그룹에 충분히 매력적인 사업이다. 최소의 자본금으로 안정적 고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탓이다. 타사 광고 물량은 물론 자사 광고회사가 자산증식에 적합하다는 판단이다. 이른바 ‘인하우스’광고대행사다.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체 광고비는 7조9천억원. 이중 대기업 자사 광고회사가 90%를 차지한다. 나머지 10%를 놓고 소규모의 독립 광고회사가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광고물량 수주도 보장된 편이다. 대기업의 자사 광고회사는 모기업과 계열사, 특수관계회사, 납품업체 등을 등에 업고 급성장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LG그룹(HS애드)을 비롯해 삼성그룹(제일기획),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이노션월드와이드), SK그룹(SK마케팅&컴퍼니), 롯데그룹(대홍기획), 보광그룹(휘닉스커뮤니케이션스), 두산그룹(오리콤), 한화그룹(한컴), 대상그룹(상암커뮤니케이션스) 등 주요 그룹은 하나같이 인하우스 광고회사를 곁에 두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 광고회사를 매각한 LG그룹, 현대·기아차그룹, SK그룹 등은 2005년 이후 다시 설립했다.
이들 광고사의 지난해 매출을 보면 제일기획이 2조6억원으로 국내 광고업계 부동의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으며 이어 ▲HS애드 6천96억원 ▲이노션월드와이드 5천68억원 ▲대홍기획 3천8백4억원 ▲휘닉스커뮤니케이션스 2천2백7억원 ▲오리콤 1천9백89억원 ▲한컴 1천6백12억원 ▲상암커뮤니케이션스 1천2백47억원 등으로 나타났다.
광고업계 관계자는 “모기업들이 자사 광고회사에 광고 물량을 밀어주면서 10대 광고회사 중 무려 7개사가 대기업 자사 광고사가 차지할 정도로 인하우스사들이 급성장하고 있다”며 “LG그룹, 현대·기아차그룹, SK그룹 등의 광고업 재진출로 주요 그룹 인하우스사들이 국내 광고업계를 장악하게 됐다”고 말했다.
수입차 장사도 꽤 안정적인 사업으로 분류된다. 재벌가 2∼4세들이 주 사업주. 너도나도 앞 다퉈 수입차 시장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수입차 사업은 거액의 초기 투자액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고수익의 매력이 있는 업종이다. 수입차의 국내 점유율이 4%대로 오른 데다 20∼30%의 높은 마진율이 이를 방증한다. 때문에 수입차 시장은 황금알을 낳는 사업 중 으뜸으로 꼽힌다.현재 수입차 시장에 진출한 대기업은 코오롱그룹(HBC코오롱·BMW), 두산그룹(두산모터스BU·볼보 등), 효성그룹(더클래식효성·벤츠), SK그룹(SK네트웍스·크라이슬러 등) 등이 있다.
골프장도 역시 마찬가지다. 골프장은 불황 여파로 다소 주춤하는 모습이지만, 재벌그룹들은 꾸준히 영역을 확장하는 형국이다.
현재 삼성그룹이 안양베네스트, 가평베네스트, 안성베네스트, 동래베네스트, 글렌로스 등 5개 골프장을 거느리고 있으며 ▲GS그룹(강촌, 엘리시안, 샌드파인) ▲한화그룹(용인프라자, 설악프라자, 제이드팰리스, 봉개프라자, 골든베이) ▲동양그룹(파인크리크, 파인밸리, 영랑호, 웨스트파인) ▲한솔그룹(오크밸리, 오크힐스) ▲현대·기아차그룹(해비치) ▲롯데그룹(스카이힐) 등도 골프장을 소유하고 있다. 이들 대기업들은 골프장 사업의 신설과 증설을 신중히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재벌그룹 ‘별별사업’백태 -‘돈만 된다면…’
대기업의 사업영역이 무너지고 있다. 총수일가의 개별적 추진은 물론 계열사 차원에서 이색사업을 추진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 주력사업에 혼신의 힘을 쏟던 과거와 사뭇 다른 모습이다.
화학·이동정보통신이 주력사업인 SK그룹은 ‘호두농사’도 짓고 있다. 호두농사를 담당하는 곳은 SK건설이다. 2004년 SK임업이 SK건설의 한 사업부로 편입된 이후 호두농사의 수확과 판매, 임야관리까지 도맡아 하고 있는 상태다. 호두수확량은 연간 13t정도로 판매를 통한 수익(5억원)보다 오히려 관리비용이 더 들어갈 정도라는 후문이다.
하지만 호두농사는 SK에게 중요사업이다. 최태원 회장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SK의 호두농사 사업은 1973년 시작됐다. 한국고등교육재단이 설립된 해로 고 최종현 회장이 재단설립 후 장학금으로 사용할 재원 마련을 위해 조림사업을 진행, 호두농사를 하게 됐다.
현대·기아차그룹도 주력사업인 자동차 관련 사업 외에 학원사업과 의료사업을 하고 있다. 학원사업은 입시연구사와 종로학평의 계열사가 맡아 입시와 학습참고서의 출판을 맡고 있다. 의료사업은 코렌텍이 맡아 인공관절 생산을 하고 있다.
대우건설 역시 주력인 건설 외에 맑은물지키미란 계열사를 통해 하수처리장 관리 사업도 하고 있다. LG전자는 주력사업인 IT·전자·통신 외에도 사업공시에 광업이 포함돼 있다.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의 이색사업은 총수 일가의 관심과 애정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며 “겉으론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기존 사업과 시너지 등 성장동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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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