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탕주의’에 푹 빠진 대한민국 ① ‘한탕주의 공화국’ 자화상

‘권력’으로만 만족 못해?

어느 분야 못지않게 한탕주의가 판치는 곳이 바로 정치권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라는 것이 정치권력과 함께 교묘히 맞물려 가기 때문에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곳이 정치권이다. 최근 경제가 갈수록 어렵다 보니 정치권력을 이용해 부정적으로 돈을 모으는 정치인들이 하나 둘 경찰에 적발되면서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그동안 정계에 있었던 대표적인 정치인들의 한탕주의 사례를 들춰봤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불황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한탕주의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부도덕과 부조리가 만연하고 있다. 정치인과 경제인들이 정상적, 도덕적으로 나라 살림살이를 챙겨왔더라면 사회가 이렇게 혼란과 불균형으로 혼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재계 고위층들은 피땀 없이 부를 누리게 됨에 따라 국민경제가 곤두박질쳐 서민이나 노동계층의 불만, 불신이 팽배하면서 도박과 도둑이 난무하는 한탕주의가 판을 치게 되었다.


사례1 전두환 전 대통령 한탕주의
한국 정치에서 ‘비자금’에 대해 말할 때 대표적인 인물로 떠오르는 사람이 바로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특히 전 전 대통령 치하의 제5공화국은 대규모 권력형 금융 비리사건으로 시작됐다. 그 당시 어마어마한 검은 비자금들이 나돌면서 자신의 배만 채우겠다는  한탕주의에 빠진 전 전 대통령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지난 1982년 전두환 정부는 전화교환설비를 새 기종으로 교체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당시 기술 수준으로 봐도 충분히 기계식 교환기에서 전자식 교환기로 바로 교체가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일단 반전자식 교환기로 교체한 다음 전자식 교환기로 바꿨다. 그 결과 교환기는 실제 필요한 것보다 2배나 많이 공급돼야 했고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강한 의혹이 제기됐다. 이 의혹은 전 전 대통령이 퇴임하고 나서 지난 1988년 제6공화국인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 야당의원에 의해 밝혀졌다.
전두환 정부 당시 삼성과 금성 같은 대기업들로부터 전화 교환기를 구매하면서 기종에 따라 회선 당 1백40달러~69달러씩을 비싸게 지불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낭비된 국민 세금은 지난 1982~1988년 동안 무려 6천2백억원이 넘었고, 이중 상당한 금액의 돈이 당시 권력층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기계식 교환기에서 전자식 교환기로 곧바로 교체하지 않고 중간에 반전자식 교환기를 설치한 것은 전두환 비자금을 만들기 위한 수작이었던 것이다.

사례2 노태우 전 대통령 한탕주의
전직 대통령들의 이러한 비자금을 통한 한탕주의는 전두환 정권에 이어 노태우 정권에서도 똑같이 이어졌다.  제6공화국 시절이었던 지난 1990년 10월30일 대검 중앙수사부는 서울 강남구 수서ㆍ대치 택지개발지구 주택 건설을 맡은 한보가 택지 분양과 관련해 로비자금을 뿌리고 당시 여당인 민정당의 이태섭 의원과 장병조 청와대 문화체육담당비서관 등이 한보를 위해 서울시에 외압을 넣은 사실을 포착했다.
검찰 수사 결과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은 민정당 이태섭 의원과 평민당 이원배 의원에게 각각 2억원, 평민당 김태식 의원과 민정당 김동주 의원에게는 거액의 로비자금을 건넨 것으로 드러났다. 장 비서관에게도 9차례에 걸쳐 2억 6천만원이 건네진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정태수 회장은 수서 택지분양 특혜 의혹 사건이 터지면서 구속됐고, 구속된 지 5개월 만에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1995년 8월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당시 정 회장은 풀려난 지 석 달 뒤인 1995년 11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수사 과정에서 수서사건과 관련해 1백억원을 노 전 대통령에게 준 사실이 밝혀지면서 다시 구속됐다. 정 회장은 1997년 2월 한보특혜대출 사건과 관련해 업무상횡령 혐의로 구속됐다. 그러나 이 외에도 막대한 로비자금이 당시 권력층에 흘러 들어갔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당시 검찰 수사는 꼬리 자르기로 일관했다.

사례3 민주당 정대철 전 대표 한탕주의
한참 잘 나가던 시절, 돈을 만지거나 받은 혐의로 법의 심판대에 오른 정치인은 이외에도 많다. ‘떡을 만지면 떡고물이 손에 묻기 마련’이라는 이후락 전 안기부장의 말에서 보듯 각 정권의 실세 주변에는 늘 돈의 그림자가 떠나지 않았다. 민주당 정대철 전 대표도 예외는 아니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부정부패사범을 향한 검찰의 칼끝은 매서웠다. 2003년 굿모닝시티 분양비리 사건을 수사해 윤창열 대표 등 관련자 30여명을 기소했다.
조사 결과 윤 대표는 2001년 8월부터 지난 6월까지 자기 자본금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고리 사채나 금융기관 대출금 차입에 의존, 사업을 개시해 피해자 1천2백9명으로부터 분양대금 3천7백33억원을 받아 가로챘다.
윤 대표는 이 과정에서 회사자금 1백69억원을 개인 채무금 변제, 개인명의 투자, 가족 주택 구입 등의 명목으로 횡령했으며 (주)한양 인수 및 다단계판매회사 설립 등 쇼핑몰 사업 외에 수백억원을 임의로 유용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윤 대표는 당시 사업 추진을 위해 서울시와 중구청 등에 로비,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 탁병오, 서울시의정회 사무총장 김인동씨 등 고위 공무원에게 수천만원대의 금품을 뿌렸다. 또 이 과정에서 민주당 정대철 전 대표는 윤대표에게서 건축 인허가 명목으로 4억원의 뇌물을 받는 등 20억여원의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로 징역 6년에 추징금 4억원을 선고 받았다.

사례4‘6공의 황태자’박철언 한탕주의
한국 정치사에서 권력을 통한 한탕주의에 빠진 정치인사는 이뿐만이 아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YS)정권 시절 정치권 사정의 첫출발인 1993년 슬롯머신 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6공의 황태자’ 박철언 전 자민련 의원이 또 대표적인 인사다.
YS 정권 초기 당시 슬롯머신계의 대부인 정덕진, 정덕일 형제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는 홍준표 검사는 정씨 형제를 선처해주는 대가로 많은 단서를 얻어냈고(유죄거래협상, plea bargaining), 이를 근거로 박철언 전 의원과 당시 대전고검장이던 이건개 등 여러 고위인사를 체포하고 처벌했다.
정씨 형제는 1980년대 초부터 슬롯머신 사업에 뛰어들어 막대한 부를 쌓았고, 정계 권력 실세들과 법조계에 다각적 로비를 펼쳤다. 당시 수사 결과를 통해 이들이 제5공과 제6공화국 권력층의 정치자금원 중의 하나였음을 알 수 있었다. 3당합당으로 집권한 YS입장에서는 ‘5공, 6공 청산’이라는 이미지 메이킹도 하고 정치적 걸림돌인 박철언 전 의원을 제거할 수도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이다.
박 전 의원은 정씨 형제로부터 당시 6억원을 받은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아 의원직을 상실하고 1년 6개월 복역한 후 사면복권 됐다.
박 전의원은 구속 직전 “새벽이 왔다면서 닭의 목은 왜 비트는지 모르겠다”며 YS에게 불만을 터뜨렸지만 그가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 실세 중의 실세로 정치자금은 물론, 공천과 인사에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슬롯머신 업자인 정덕진 형제로부터 금품을 받은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는 게 당시 정치권의 일반적인 인식이기도했다.

전두환 정권 당시 전화교환설비 교체비 6천억 사건
한보그룹 특혜분양 사건과 굿모닝시티 분양비리 사건


사례5 이용재 전 대변인 한탕주의
최근에는 ㈜부산자원에 거액의 대출을 알선해 주고 20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이용재(56) 전 자유선진당 대변인이 ㅈ저축은행 회장과의 개인적 친분을 이용, 담보 능력을 넘어서는 무리한 대출을 성사시켜 돈을 챙긴 일이 벌어졌다.
이 전 대변인은 이 과정에서 박모(48ㆍ구속) 부산자원 대표의 변제능력을 부풀려 말하면서 저축은행 회장에게 대출을 종용하고, 대출 현장에서 알선 대가를 챙긴 것으로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졌다.
검찰 수사관 출신인 이 전 대변인은 청와대 사정 담당관으로 근무하던 1993년 ㅈ저축은행 유모 회장과 처음 만났다. 둘을 연결해 준 이는 동화은행 신모 전무로, 당시 안영모 행장이 비자금을 만들어 정치권 로비를 벌인 동화은행 사건으로 처벌받은 인물이다. 신 전무는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8백억원 가량을 관리해 준 의혹을 받아 다시 검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검찰은 또 2002년 당시 한나라당 김영일 사무총장이 이 전 대변인을 박 대표에게 소개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김 전 사무총장은 이듬해 대선자금 수사 때 6백억원대의 불법 자금을 모금한 혐의로 구속 기소돼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양쪽을 알게 된 이 전 대변인은 서울시 공무원교육원장으로 재직 중이던 2004년 3월 ㅈ저축은행 유모 회장에게 박 대표를 소개했다. 그 뒤 6월 유 회장을 찾아가 부산 녹산공단에 폐기물처리장을 건설 중이던 부산자원에 4백억원의 담보대출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
당시 부산자원이 토지공사에서 사들인 부지의 감정가는 240억원에 불과해 이를 담보로 4백억원을 빌리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씨는 유 회장과의 친분을 이용해 대출을 성사시켰다. 이씨는 이 과정에서 박 대표를 정ㆍ관계에 두루 인맥을 뻗치고 있는 자산가로 소개하며 대출을 신속히 집행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수감 중인 진승현씨가 석방되면 박 대표는 2천억원을 받을 사람”이라며 유 회장을 설득했고, 또 “박 대표가 DJ 정권 때 동교동계 실세들을 전부 주무른 사람”이라며 “노무현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의 아들”이라고 내세웠다. 박 대표는 DJ 정부 시절이던 2000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이른바 ‘진승현 게이트’에 연루돼 사법처리를 받은 바 있다.
이씨는 “박 대표가 경기도 포천에 땅 2백만평을 가지고 있고, 여의도와 강남에 빌딩이 한 채씩 있다”고 말한 뒤 대출에 문제가 없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그러나 이씨는 당시 박 대표의 사업내용이나 재산상황에 대한 정보를 거의 갖고 있지 않았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은 “이씨가 박 대표의 대출금 수령 현장에 동석해 대출금 일부를 곧바로 챙겼다”는 취지의 진술도 확보했다고 밝혔다. 같은 해 7월 박 대표가 ㅈ저축은행 사무실에서 대출금 2백70억원을 받을 때 함께 했던 이씨가 수표가 든 봉투에서 20억원을 꺼내 대출알선 대가로 자신의 윗옷 주머니에 넣고, 바로 20억원을 더 꺼내 유 회장에게 대출성사의 대가로 건넸다는 것이다. 이씨는 지난달 17일 소환조사를 받은 뒤 자유선진당 대변인직을 사임했다.

 ‘조동만 비자금’ 연루 정치인 줄줄이
김현철 20억원 받은 혐의로 구속

2004년 4월, 조동만 비자금 사건으로 사회가 시끄러웠다. 조동만 비자금 사건은 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이 이동통신 회사 지분을 매각한 뒤 받은 1천9백억원이 넘는 막대한 돈으로 전·현직 정치인들에게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건넨 사건으로 과거 황태자로 불렸던 김현철씨가 20억원을 받아 구속됐다. 이 사건으로 그는 그동안 정치활동을 포기하게 됐던 것이다.
그러나 검찰 수사는 조동만 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정치인들에게 대부분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끝났다. 공소시효를 이유로 불기소처분을 내린 것.
당시 김한길 열린우리당 의원과 김중권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돈을 받은 시점이 2000년 3월과 2001년 5월이다 보니 정치자금법 공소시효인 3년이 지났고, 수사무마청탁과 함께 1998년 2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유종근 전 전북도지사 역시 알선수재 공소시효 5년이 넘어 기소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이원형 전 국민고충처리위원장에 대해서는 2002년 공기업 관련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 결정을 내렸다.
당시 검찰 관계자는 조 씨가 이들에게 건넨 돈 이외에도 수억원의 비자금을 추가로 확인했지만 사용처는 사실상 밝혀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말 안타까운 것은 이 사건으로 우리 사회의 깊게 뿌리 박힌 정경유착의 고리가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 것이었다. 부채로 허덕이던 부실기업의 주식을 시세보다 두 배 가량 높은 가격에 팔아, 엄청난 차익이 챙긴 것도 그렇거니와, 그 돈을 정치권에 뿌리면서, 구조조정이라는 고비를 넘기며 살아남은 기업주의 모습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은 반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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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정보사, ‘북한 무인기’ 30대 남 수차례 접촉 확인

[단독] 정보사, ‘북한 무인기’ 30대 남 수차례 접촉 확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북한에 무인기를 보낸 당사자’라고 주장한 30대 오모씨의 행위와 이력을 두고 파장이 일고 있다. 그는 윤석열정부 대통령실 출신이자 ‘평양 무인기 작전’을 목적으로 설립된 무인기 설계·제작 업체 이사였다. 2년 전부터의 행적도 수상하다. 정보사령부 휴민트 요원들과 수차례 접촉해 사실상 대북 공작을 준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지난 17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오씨와 정보사의 직접적 연결고리가 형성된 건 2024년 5월 이후다. 정보사와 오씨와의 접촉은 A 대령의 승인하에 이뤄졌다. 그는 정보사 블랙요원 명단 유출 사건 이후 속초 HID 부대장을 마치고 돌아온 인물로 조직개편 TF(태스크포스) 팀장 및 기반조성단장을 맡았다. 수상한 접촉 앞서 윤석열정부 대통령실 출신인 오씨는 윤정부 시절 ‘북한 무인기 대통령실 상공 침투’에 대응할 목적에서 설립된 무인기 설계·제작 업체의 이사로 근무했다. 그는 지난 16일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공개한 무인기 외관과 위장 무늬, 색 등이 자신이 북한으로 보낸 무인기와 일치한다”며 북한에 무인기를 보낸 목적에 대해 “북한 우라늄 공장의 방사선과 중금속 오염도 측정”이라고 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무인기를 북한으로 보냈다는 취지로 읽힌다. A 대령은 ‘정보사 기능·역량 강화’를 위해 추가적인 수도권 안가 설립을 기획했다. A 대령의 계획대로 B 소령은 오씨와 C 상사는 김모씨를 접촉했다. B 소령은 휴민트(HUMINT·820·인간정보) 요원이다. 이들은 오씨와 김씨를 통해 북한으로 무인기를 날려 확보한 영상 증거를 확인했다. 이 시기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언급했던 정보사의 국방과학연구소(ADD) 접촉 및 무인기 개발 의혹이 시작되던 때와 겹친다. 당시 정보사는 ADD에 “드론에 전단통을 달 수 있느냐”고 문의한 바 있다. ADD 관계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고 내란 특별검사팀에 진술했다. 정보사 간부는 “누구의 지시로 국방과학연구소에 드론과 관련해 연락했냐”는 특검팀의 질문에 “문상호의 지시였고 문 전 사령관이 원천희 전 국방정보본부장에게도 관련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오씨의 영상 증거가 북한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A 대령은 이후에도 B 소령과 오씨의 접촉을 허가했다. ‘지속적 협력 관계’가 된 것으로 풀이된다. A 대령은 오씨에게 이른바 ‘협조비’를 제공한 의혹을 받는다. 사비가 아닌 ‘정보사 공작금’ 수십만원을 정기적으로 전달했다는 게 골자다. 이 같은 행위는 정보기관과 협조·정보원 간 이뤄지는 통상적 거래로 알려져 있다. 실제 정보기관은 국제범죄 및 마약 관련 첩보를 제공한 ‘야당’에게 많게는 수백만원의 금품을 제공하기도 한다. 정보사가 오씨의 행위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24년 여름 ‘대북 공작’ 의심 정보사와 지속적 접촉 정보사·ADD 연락 시기 겹쳐 ‘김태효 안보실’ 연루설도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A 대령과 오씨가 일반적 협력 관계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대북 공작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정보기관이라면 늘 하는 업무다. A 대령이 오씨에게 ‘무인기를 북으로 보내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고 그저 오씨가 회사를 설립하는 데 지원해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A 대령의 부하인 B 소령은 오씨가 북한 전문 매체를 설립하는 데 도움을 줬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언론사는 오씨가 발행인으로 있는 곳으로 2025년 3월 중순부터 첫 기사가 작성되기 시작했다. 지난 11일을 끝으로 기사가 작성되지 않은 걸 보면 오씨가 언론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회사 운영에도 차질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정보사 출신 한 소식통은 “오씨가 채널A 인터뷰에서 무인기를 세 번 날렸다고 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닌 걸로 보인다. 적어도 수십번은 날렸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으로 무인기를 날린 건 정보사 조직 차원의 지시가 아니라 오씨의 독단적 행동이다. 오씨와 접촉했던 담당자들도 그의 무리수 때문에 거리를 둬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군 안팎에서는 단순히 넘길 일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거세다. 오씨가 대통령실 출신임과 동시에 정보사와 접촉한 배경을 명확하게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정부 안보실 2차장 산하 정보현안대응팀에 파견됐던 HID 출신 오모 중령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오 중령은 2022년 8월 국정원장 비서실에 근무하다가 다음 해 3월 대통령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자신이 확보한 첩보를 인성한 전 2차장이 아닌 ‘안보실 실세’ 김태효 전 1차장에게 수차례 보고했다. 오 중령의 행위를 두고 대통령실 내부에서는 “비정상적 보고”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김 전 1차장은 국방이 아닌 외교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대북 문제에 어떤 군사적 방법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전략을 세우는 데는 신원식 전 안보실장보다 한 수 아래였다는 평가다. 사실상 ‘국방 문외한’인 김 전 1차장은 2023년 강원도 속초에 위치한 HID 부대를 방문했다. 그는 “2023년 6월 초 정보당국 관계자들과 HID 부대를 격려 방문한 바 있지만 1년7개월 전에 있었던 군 부대 격려 방문을 이번 계엄 선포와 연결 짓는 것은 터무니없는 비약”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평양 작전' 준비하려 일종의 테스트 아니었나 의심” "오씨 독단적 행동 무인기 날리라 지시한 적 없어” 정보사 고위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윤석열 전 대통령도 오려고 했다는 건 사실이다. 김태효가 그때 왜 왔는지 모르겠다. 와선 안 되는 건 아닌데 올 일이 없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 가지 않는 해명”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정보사 관계자도 “윤 전 대통령이 오고 싶어 했고 안보실이 그의 HID 방문이 검토된 바 없다고 하는데 (이건) 말도 안 된다. 당시에 대통령 방문 가능성 때문에 대비 회의까지 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오 중령이 2023년 12월 안보실 2차장 산하 국가위기관리센터 정보현안대응팀에 들어가게 된 건 김 전 1차장이 HID를 방문한 직후다. 오 중령은 인 전 2차장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인 전 2차장도 “공개된 자리서 말하기 어렵지만 제가 통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오 중령을 포함한 팀원들의 보고서는 인 전 2차장이 아닌 김 전 1차장이 검토했다. 안보실은 이 비밀 TF가 “규정화된 테두리 밖에서 대북 특수정보를 분석하는 팀”이라며 계엄과 관련해 정보사와 소통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또 “비밀 조직이 아니라 위기관리센터에 배치된 ‘정보융합팀’이다. 정보융합팀은 문재인정부의 정보융합비서관실을 대북 정보 분석에 특화시켜 슬림화한 조직으로, 2022년 5월1일 대통령직 인수위 브리핑서도 해당 조직의 신설 취지와 배경을 밝힌 바 있다”고 설명했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정보사 차원에서 북한으로 무인기를 보내는 건 부담이 크다. 그래서 민간과 협업해 일종의 테스트를 진행한 후 ‘나쁘지 않다’고 판단한 안보실이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적극적으로 기획 및 실행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대북 공작 준비? 그러나 이는 아직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다. 오 중령의 경우 내란 특검팀 소환 조사에서 김 전 1차장에게 정보 보고를 했던 사실은 인정했으나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기획하지는 않았다고 진술했다. 정부는 현재 군·경합동조사TF를 꾸려 무인기를 북한에 보낸 정확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등을 수사 중이다. 무인기를 보냈다고 주장한 사람의 과거 이력과 정보사와의 접촉이 확인된 만큼 숨겨진 목적에 대해 수사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