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 미집행 20년> 사형수의 삶과 죽음 ‘풀스토리’

마지막 사형수를 아십니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사형제를 둘러싼 논쟁은 ‘해묵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그 역사가 오래됐다. 우리나라는 20년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실질적 사형 폐지국이지만 법률상으론 여전히 사형제 존치 국가다. 이 때문에 사형 집행과 폐지를 두고 ‘끝나지 않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0일 제15회 ‘세계 사형 폐지의 날’ 행사가 있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15개 단체로 구성된 ‘사형제 폐지 종교·인권·시민단체 연석회의’는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서 사형 폐지의 날 기념식을 열었다. 이들은 “사형집행 중단 20년을 앞둔 현재 우리나라가 실질적 사형 폐지국을 넘어 완전한 사형 폐지국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형 폐지의 날
특별법 나오나

연석회의는 성명을 통해 “제15대 국회를 시작으로 매 국회에 사형제도 폐지 특별법이 발의됐으나 단 한 차례도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사실은 매우 안타깝다”며 “이번 20대 국회서 많은 의원들이 특별법 공동발의에 동참해줄 것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유흑식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은 인사말서 “오늘 기념식은 우리나라가 사실상 사형 폐지국서 법률상 사형 폐지국으로 가는 자리로 생명의 가치가 존중될 때 인간의 잔인함도 치유된다”고 말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이날 축사에서 “일각에선 흉포해지는 범죄에 대응해 사형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견해를 제기하지만 국제적으로는 범죄 종류를 떠나 한 사람의 생명을 국가가 앗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우세하다”며 “국회는 헌법 개정과 법안 심의 과정서 사형제도 폐지에 힘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실질적 폐지국이지만 법률상 존치
김대중정부 이후 사형 집행 수 ‘0’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30일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올해 12월30일이면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지 꼭 20년이 된다. 일본이 2012년 아베 신조 2차 내각 출범 이후 19명의 사형을 집행한 것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일본은 지난 7월에도 사형수 2명에 대한 형을 집행했다.

국제사회에선 우리나라를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하지만 강력 사건이 터질 때마다 사형제 존치에 대한 여론은 치솟았다. 

2004년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이나 2010년 여중생을 납치·살인한 김길태 사건 이후 진행한 조사에서 사형제 유지 응답은 평소에 비해 높았다. 실제 여론은 사형제 폐지보다 존치 쪽으로 좀 더 기울어져 있다.

한국법제연구원이 발표한 2015년 국민 법의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5%는 사형제 폐지에 반대했다. 최근에도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된 사형제 관련 여론조사를 보면 대중의 사형제 폐지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부정적인 걸 알 수 있다.
 

<중앙일보>가 지난달 17∼18일 양일간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서 ‘사형제 폐지에 반대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66.1%에 달했다. 지난 9일 <세계일보>의 여론조사에서도 ‘사형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79.4%로, 80%에 육박했다.

헌법재판소는 사형제 위헌 여부 심판서 두 차례에 걸쳐 합헌 결정을 내렸다. 1996년 사형을 최고형으로 규정한 형법에 대한 위헌 소원 심판서 7(합헌)대 2(위헌)로 합헌 판결이 나왔다. 


당시 김용준 헌재 소장 등 7명의 재판관은 “인간의 생명을 부정하는 범죄행위 등 지극히 한정적 경우에만 부과되는 사형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공포와 범죄에 대한 응보욕구가 서로 맞물려 고안된 필요악”이라고 다수 의견을 냈다.

그로부터 14년 후인 2010년 헌재는 또 다시 사형제에 대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내용면에서 1996년과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먼저 7명이었던 다수 의견이 5명으로 줄었고 위헌 의견이 4명으로 늘었다. 또 일부 재판관들은 사형제 오·남용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혀 논란의 불씨를 살려뒀다.

당시 헌재는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도 없는 권리”라며 “비상계엄에 대한 재판에선 그렇지 않지만 우리 형법은 적어도 아직 간접적으로나마 사형제를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사형제는 생명권 제한에 있어 형법 제37조에 의한 한계를 일탈했다고 할 수 없으며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규정한 헌법 10조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1996년과 2010년 헌재가 합헌 결정을 내릴 당시 소수 의견을 냈던 재판관들은 인권의 토대인 생명은 어떠한 경우에도 침해할 수 없다는 헌법 정신을 강조했다. 또 형벌로서 사형제가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대선 후보 시절부터 사형제 폐지에 대한 소신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대선후보 TV토론회서 “사형이 흉악범죄 억제효과가 없다는 데 전 세계가 공감하기 때문에 160여 국가가 사형제를 폐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생존 사형수 65명
70대부터 20대까지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 198개국 중 104개국이 법률상 모든 범죄에 대해 사형을 폐지했다. 우리나라처럼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되는 나라는 37개국이다. 전 세계 국가 중 141개국(71%)이 법률상 또는 사실상 사형을 폐지한 셈이다.

사형 미집행 기간이 20년에 이르러 사형제 존폐 논란이 또 다시 불거지자 자연스럽게 사형수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현재 생존해 있는 사형수는 65명으로 알려져 있다. 민간인이 61명, 군인이 4명이다. 
 

20년간 사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다보니 사형수들의 고령화가 뚜렷해지는 추세다.

최고령 사형수는 2007년 8월 전남 보성군으로 여행 온 대학생들을 바다에 빠뜨려 살해한 오모씨로 추정된다. 이른바 ‘보성 어부 살인사건’이다. 그는 여행 온 남녀 두 사람을 자신의 배에 태운 뒤, 여성을 성추행하기 위해 남자를 먼저 바다로 밀어 살해하고 저항하는 여성까지 물에 빠뜨려 죽였다.

유영철·강호순
10명 이상 죽여


최연소 사형수는 2014년 총기난사 사건을 일으킨 임모(25) 병장으로 알려졌다. 범행 당시에는 21세의 어린 나이였다. 그는 동료병사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해 5명을 살해하고 7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범행 직후 무장한 채 탈영해 자살을 기도했으나 결국 체포됐다.

임 병장은 “부대 안에서 따돌림을 당했다”고 진술했지만 재판부는 1심과 2심서 모두 사형을 선고했다. 이후 2016년 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9대 4로 사형 확정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학창시절 따돌림을 당한 경험이 있고 인격 장애 증상이 있던 것도 사실이지만 부대 내 조직적 따돌림이나 폭행, 가혹행위 등 도저히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로 괴로움을 겪었다고 볼만한 사정은 찾아볼 수 없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최장기 사형수는 원모씨로 올해로 25년째 복역 중이다. 원씨는 지난 1992년 10월 강원 원주에 위치한 여호와의 증인 왕국회관에 불을 질러 15명을 사망케 했다. 중화상을 입은 사람도 36명에 달했다. 사망자 중에는 10세 이하(2명), 10대(4명) 등 어린아이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1993년 대법원서 사형이 확정됐다.

원씨처럼 10명 이상을 살해한 사형수는 희대의 연쇄살인범인 유영철과 강호순 등 두 명이다. 유영철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노인과 부녀자 등 21명을 살해했다. 유영철의 검거 이후 국내서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 장애)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강호순은 2004년부터 5년여에 걸쳐 10명의 부녀자를 납치해 성폭행·살해한 혐의로 2009년 사형이 확정됐다. 강호순이 살해한 사람 중에는 그의 아내와 장모도 있었다. ‘제2의 유영철’로 불렸던 정남규도 부녀자 13명을 연쇄 살인하는 등 10명 이상을 죽이고 사형이 확정됐지만 2009년 자살로 목숨을 끊었다.


사형제 폐지 반대여론 여전히 높아
강력범죄 발생할 때마다 급격히↑

현재 복역 중인 사형수에 대한 형 집행은 기약이 없다. 마지막 사형 집행은 1997년 김영삼정부시절이다. 정부 말기인 1997년 12월30일, 20여명의 사형수가 한꺼번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당시 형이 집행된 사형수는 살인 15명, 강도·살인 4명, 상습 강도·강간 2명 등 23명이다.

이중에는 법정에 증인으로 섰던 사람을 살해한 변모씨, 여의도 광장서 ‘묻지마 질주’를 벌여 20여명을 죽거나 다치게 한 김용제, 고소 취하를 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권총을 난사해 4명을 살해한 경찰관 김모씨 등이 포함됐다.
 

1997년 사형 집행은 김영삼정부 출범 이후에만 1994년 15명, 1995년 19명 이후 세 번째였다. 또 긴급조치 시대인 1976년 27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된 이후 최대 규모였다. 23명 가운데 4명은 사형 집행 이후 안구와 사체를 기증했다.

1997년 형이 집행된 이들 가운데 ‘마지막 사형수’로 알려진 인물은 시각장애인 김용제다. 그는 1991년 차를 몰고 여의도광장을 마구잡이로 질주했다. 이 과정서 초등학교 5학년 아이와 여섯 살 난 유치원생이 차에 치었고 그 둘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럼에도 차를 멈추지 않은 김용제는 질주를 거듭, 어린이와 노인을 포함, 20여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당시 그의 나이는 21세였다.

그의 삶은 불행했다. 어머니는 김용제가 초등학교 때 가난을 견디지 못해 가출한 뒤 소식이 끊겼고 몇 년 후에는 아버지가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다. 시각 장애를 앓아 눈이 잘 보이지 않고 체구도 작았던 그는 친구들로부터 잦은 따돌림을 당했다고 한다. 눈 때문에 책이나 칠판을 잘 볼 수 없어 성적도 좋지 않았다.

일자리를 구했지만 시력이 나쁜 탓에 실수가 잦았다. 실수로 인한 손실이 커지자 회사는 그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일자리를 찾아도 얼마 안 돼 해고 당하는 일이 반복되자 김용제는 체념했다. 

식당 일이나 막노동 자리에 기웃거렸지만 눈이 잘 안 보이는 그에겐 모두가 높은 벽이었다.

경제적·정신적으로 한계까지 몰린 그는 다니던 양말 공장 사장의 자동차 키를 훔쳤다. 김용제는 훔친 차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분노와 복수심으로 가득 찬 그는 1991년 10월19일 KBS 앞으로 차를 몰았고 광장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돌진했다. 여의도 광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그는 차가 멈추자 한 여중생을 잡아 인질극을 벌였다. 김용제는 몰려든 시민들과 여중생을 두고 대치했지만 금세 제압당했다.

‘사형수들의 대모’로 불리는 조성애 수녀는 그의 일기를 엮어 <마지막 사형수>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김용제는 사형 선고를 받은 날부터 일기를 썼다. 책은 그의 일기와 조성애 수녀의 편지로 완성됐다. 
 

<마지막 사형수>는 사형수가 남긴 최초의 기록 모음을 출간했다는 점에서 높은 관심을 받았다.

조성애 수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사형이란 가해자에겐 참회의 기회를, 피해자에겐 용서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며 “용서를 못 한 피해자들은 사형 집행 이후에도 행복하지 않더군요. 용서란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아름다운 사랑입니다”라고 말했다. 

김용제의 범행으로 손자를 잃은 서모 할머니는 그의 성장 배경을 알고 선처를 탄원하는 등 용서의 손길을 내밀기도 했다.

불우한 성장배경
책으로 나오기도

앞서 1995년 11월에는 전국을 경악에 빠뜨렸던 지존파 6명을 비롯, 19명의 사형이 집행됐다. 지존파는 두목 김기환을 중심으로 20대 청년과 10대 가출소년이 모여 만든 범죄 단체다. 

대부분 불우한 가정환경서 자란 이들은 부유층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을 갖고 범행을 저질렀다. 지존파는 1993년 7월 20대 여성을 성폭행한 후 살해한 것을 시작으로 1994년 9월까지 4차례에 걸쳐 사람을 납치, 토막 살해하는 엽기적인 범행으로 대중을 공포에 떨게 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정세균 “사형제 폐지는 이성적 판단해야”

정세균 국회의장은 ‘세계 사형 폐지의 날’ 축사에서 “사형제도 폐지 여부는 감성적 판단이 아니라 이성적 판단에 근거해야 한다”며 “사형제도는 반정부 인사에 대한 탄압 수단으로 악용되거나 오판의 위험도 있다”고 말했다.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법살인’으로 불리는 1975년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을 사례로 든다. 인혁당이라는 이름이 세상에 등장한 것은 1964년과 1975년 두 차례였다.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은 김형욱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북괴의 지령을 받고 대규모 지하조직으로 국가변란을 획책한 인민혁명당 사건을 적발했다”고 발표하면서 드러났다.

그로부터 10년 뒤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이 발생했다. 중앙정보부가 1974년 유신반대 투쟁을 벌였던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민청학련)을 수사하면서 배후·조종세력으로 인혁당 재건위를 지목, 이들이 북한의 지령을 받는 남한 내 지하조직이라고 규정한 사건이다.

주범으로 지목된 8명은 1975년 4월8일 사형을 선고 받았다. 그리고 확정 판결 후 불과 18시간 만인 4월9일 기습적으로 형이 집행됐다. 국제법학자회는 이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꼽기도 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2002년 9월 인혁당 사건은 중앙정보부가 고문 등을 통해 조작한 사건이라고 밝혔다. 이후 법원은 2005년 재심을 수용, 2007년 1월 사형 당한 8명의 전원 무죄가 확정됐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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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이후···4인 파워게임> 화려한 부활 조국

[4·10 이후···4인 파워게임] 화려한 부활 조국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두 자리 의석수를 확보하면서 원내 3당으로 자리 잡았다. 조국 대표는 비례순번 2번으로 단숨에 여의도행 티켓을 따냈다. 문재인정부 초대 민정수석비서관과 66대 법무부 장관 등 굵직한 이력을 지녔지만 초선인 만큼 처음부터 입지를 다져야 한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조 대표의 생존 전략은 무엇일까?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과반을 넘기면서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의 표정도 덩달아 밝아졌다. 지난 10일, 민주당의 압승에 가까운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서 상황을 지켜보던 조국당 지지자들도 감탄사를 내뱉었다. 조국당이 기대하던 ‘10석+알파(α)’가 확실해졌다. 주먹을 쥔 지지자들은 연신 “조국”을 외쳤다. 총선 뒤흔든 조국혁신당 조 대표는 이날 총선 출구조사 결과에 대해 “국민이 승리했다”고 소리 높였다. 그는 “국민께서 윤석열정권 심판이라는 뜻을 분명하게 밝히셨다”며 “윤석열 검찰 독재 정권의 퇴행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국민 여러분이 이번 총선 승리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밝혔다. 이어 “윤 대통령은 이번 총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라. 그리고 그간 수많은 실정과 비리에 대해 국민께 사과하라”며 “이를 바로잡을 대책을 국민께 보고하라”며 “총선은 끝났지만 조국당이 만들 우리 정치의 변화는 이제 시작이다. 개원 즉시 ‘한동훈 특검법’을 발의하겠다”고 강조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비례대표 개표 현황에 따르면, 조국당은 12석으로 집계됐다. 국민의힘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가 18석으로 가장 많은 당선자를 배출했다. 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이하 민주연합)이 14석을 얻었으며 개혁신당과 진보당은 각각 1석을 얻는 데 그쳤다. 조국당은 24.25%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신생정당이 20%가 넘는 지지율을 거두자 정치권에서는 이례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로써 조국당 비례대표 12번까지는 무난히 당선권에 들었다. 차례대로 ▲박은정 ▲조국 ▲이해민 ▲신장식 ▲김선민 ▲김준형 ▲김재원 ▲황운하 ▲정춘생 ▲차규근 ▲강경숙 ▲서왕진 등의 후보가 국회에 입성하게 됐다. 한때 여권서 “조국이 나오면 땡큐”인 ‘조나땡’이란 말까지 나왔지만 이를 상쇄시킬 정도로 조국당의 돌풍은 거셌다. 조 대표가 부산 민주공원서 신당 창당 선언문을 낭독했을 때만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한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기세 좋게 제3지대로서의 존재감을 키워가던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조국 열풍’ 또한 금세 식을 것이란 분석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조 대표는 지난 2월8일 자녀들의 입시 비리 및 청와대의 감찰무마 혐의 등으로 항소심서도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마찬가지로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힐 것이란 해석에 무게가 실렸다. 총선 한 달 앞두고 등장한 루키 정당 민주당과 정권 심판론 쌍끌이 전략 하지만 예상을 뒤엎고 조국당은 이번 총선서 가장 큰 변수로 자리 잡았다.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정권 심판론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특히 이종섭 전 주호주대사 사건과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회칼 테러’ 논란이 연이어 터지면서 이는 조국당의 동력으로 이어졌다. 조국당의 슬로건은 윤 대통령의 탄핵을 암시하는 “3년은 너무 길다”였다. 거대 야당인 민주당은 중도층 여론을 의식해 탄핵에는 조심스러운 입장일 수밖에 없다. 결국 ‘윤정부 무력화’를 거침없이 외치는 조국당에 심판을 벼르던 강성 유권자들이 동참한 것이다. 민주당을 지지하지만 다소 약한 목소리에 갈증을 느끼던 지지층의 표를 흡수한 셈이다. 22대 총선을 통해 조 대표는 완벽한 정치적 부활에 성공했다. 하지만 1·2심 모두 실형이 나온 만큼 조 대표가 22대 국회를 완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의 대표이자 간판인 조 대표가 대법원 판결을 통해 의원직을 상실한다면 사실상 조국당은 존폐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조 대표가 집어든 여의도 생존 전략은 ‘검찰 탄압 프레임’을 굳히는 것이다. 자신을 여의도로 이끈 ‘검찰 탄압’이라는 명분을 긴 호흡으로 유지하면서 원포인트 전략으로 내세우겠다는 설명이다. 이는 조 대표가 출소 후 여의도로 돌아오기 위한 명분으로도 내세울 수 있다. 국회에 입성한 조 대표는 그동안 강조해온 한동훈 특검법을 띄우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그동안 조 대표는 기자회견을 통해 “원내에 진입하면 한동훈 특별법을 1호 법안으로 발의하겠다”고 강조해 왔다. 한동훈 특검법은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징계 관련 의혹 ▲검찰 고발사주 의혹 ▲논문 대필 등 자녀 입시 비리 의혹 등을 수사 대상으로 삼는 걸 골자로 한다. 이 밖에도 조 대표는 ‘윤석열정권 관권선거운동 의혹 국정조사’를 실시하거나 ‘검찰의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 국정조사’를 추진해 윤 대통령을 국회에 출석시키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12석 확보 완벽한 성공 당선권에 진입하자 조 대표는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지난 11일 조국당은 총선 당선자들과 함께 첫 공식 일정으로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찾았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에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김건희를 수사하라”고 외쳤다. 조 대표는 “이번 총선서 확인된 ‘윤석열 검찰 독재 정권 심판’이라는 거대한 민심을 있는 그대로 검찰에 전하려 한다”며 “검찰은 즉각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를 소환해 조사하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도 거론했다. 그는 “검찰은 ‘몰카 공작’이라는 대통령실의 해명에 설득력이 있다고 보느냐”며 “몰카 공작이라면 관련자들을 소환해 조사하고 처벌하라. 그것과 별개로 김 여사도 당장 소환하라”고 주장했다. 끝으로 조 대표는 “조국당은 검찰이 국민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22대 국회 개원 즉시 ‘김 여사 종합 특검법’을 민주당과 협의해 신속하게 추진할 것”이라며 “검찰이 수사에 나서지 않는다면 김 여사는 특검의 소환조사를 받게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조국당이 검찰만 정조준하는 이유는 조 대표가 ‘정치적 죽임’을 당했다는 여론 때문이다. 따라서 조 대표를 향한 동정론도 조국당이 꺼내들 수 있는 카드 중 하나로 여겨진다. 검찰에게 탄압받았다는 이미지를 가진 조 대표가 법정에 모습을 드러낼수록 오히려 지지자의 결집력이 높아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지난 몇 년 동안 조 대표 본인은 물론 그의 가족까지 수사 대상에 올랐다. 이를 시작으로 조 대표와 그의 일가족이 잘못한 부분은 있지만 죄명에 비해 과도하게 탄압받았다는 동정론이 형성됐다. 동정론은 조국당 지지자를 결집시키는 강한 무기다. 오래전부터 조 대표를 지지해 왔다는 A씨는 기자회견 현장에서 <일요시사> 취재진과의 만나 “조 대표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참 짠하다”고 말했다. 함께 온 B씨도 “온 가족이 풍비박산이 나지 않았나. 힘든 일이 많았을 텐데 역경을 딛고 나선 것을 보면 마음이 이쪽(조국당)으로 간다”고 말했다. 이 VS 조 동상이몽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미 이 대표의 재판에 익숙해져 있기 떄문에 조 대표의 범죄 혐의가 비교적 희석됐다는 평도 나온다. 조국당이 총선 직전까지 지지율을 견인하자 여권에서는 급하게 견제에 나섰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은 총선 기간 동안 조 대표를 ‘범죄자’로 규정하며 “범죄자들에게 미래를, 아이의 미래를 맡길 수 없지 않냐”고 강조했다. 이에 조 대표는 “‘한동훈 특검법’에 동의부터 하라”며 맞불을 놨다. 조국당은 한동훈 특검법에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동의할 것이란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중도층을 포섭해야 하는 입장이다. 또한 차기 대권주자로 부상한 조 대표의 존재가 부담스럽기도 하다. 정치권에서는 여의도 신입인 조 대표와 이재명 대표를 동일선상서 바라보는 모양새다. 총선 다음 날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이번 선거를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던 (윤석열)대통령에게 보낸 마지막 경고”라고 평가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은)하루빨리 이재명·조국 대표를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제1야당 대표인 이 대표뿐만이 아니라 조 대표까지 함께 언급된 만큼 조 대표의 몸값이 크게 뛰었다고 해석했다. 조 대표는 대권주자로서의 가능성은 닫아뒀지만 민주당에서는 견제하는 분위기가 이어진다. 이 같은 흐름을 두고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현해 “야권의 분열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이재명 대표와 조국 대표의 속도 차이가 있을 것”이라며 “(야권이) 윤정부에 대한 심판론을 갖고 거대 의석을 이뤘지만 조 대표와 이재명 대표의 시간표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녀 입시 비리’ 사법 리스크 여전 대법 판결 정치생명 마침표될 수도 현재 조 대표는 대법원 판결만 남은 만큼 모든 일정을 빠르게 해치워야 한다. 총선을 한 달 앞두고 정치판에 뛰어든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대법원과 견줄 만큼 몸집을 키우거나 진보 진영서 대권을 잡아 스스로의 힘으로 사면해야 한다는 게 이준석 대표의 시나리오다. 반면 이재명 대표는 급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이준석 대표는 “이재명 대표는 많은 의석을 가진 정당의 대표기 때문에 서서히 조여 들어가려고 할 것”이라며 “그 속도 차이가 역설적으로 두 세력의 분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현재 조 대표의 생존 전략은 조국당의 원동력을 유지하거나 추후 여의도 복귀를 위한 명분을 쌓는 데 그칠 뿐이다. 조국당의 정치 공간을 넓히고 다른 당과 손을 잡기 위해 매력적인 묘수를 꾀어내는 게 조 대표의 숙제로 남아 있다. 조국당 의석은 12석으로 교섭단체를 충족시키는 20석을 채우기 위해서는 8석이 더 필요하다. 1석씩 얻은 새로운 미래와 진보당, 혹은 소수 야당과 손을 잡고 공동 교섭단체를 꾸리는 것도 방법 중 하나로 제시된다. 이제까지 민주당과 조국당 모두 합당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다. 조국당이 내세운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조국)’ 슬로건에 민주당은 ‘몰빵론’을 내세우기도 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얻은 지금으로서는 조국당이 거대야당에 협력하는 관계를 유지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의외의 성적을 거둔 조국당이 22대 총선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쥐면서 꼬리가 몸통을 흔들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민주당·민주연합·조국당 등 범야권이 힘을 합치면 의석수가 국회의원 전체의 5분의 3인 180을 넘기게 된다. 이 경우 신속처리안건인 패스트트랙 지정을 통해 법안을 강행할 수 있다. 아울러 패스트트랙에 저항할 수 있는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도 강제 종료시킬 수 있다. 혼자일 때 더 강하다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조국 대표가 민주당과 합칠 가능성은 매우 적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추후 민주당서 탈당할 의원이나 제3지대 의원이 합류한다면 원내교섭단체인 20석이 충분한 만큼 조 대표가 숙이고 들어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전적으로 조 대표의 판단에 달렸지만 민주당과 손을 잡으면 지금과 같은 선명성이 묻히고 특유의 아이덴티티를 잃게 된다”며 “조 대표는 이번 총선의 캐스팅보트다. 살아남는 방법은 지금과 같은 목소리를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다급해진 대법원? 대법원이 업무방해·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를 받는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상고심 사건의 재판부를 결정했다. <뉴스1>에 따르면 주심은 엄상필 대법관으로 2021년 조 대표의 배우자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항소심서 징역 4년을 선고한 이력이 있다. 현재 대법원은 엄 대법관이 상고심 재판을 맡더라도 형사소송법상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이번 조 대표 사건의 하급심 판결에 엄 대법관이 직접 관여한 것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다만 엄 대법관에게 유죄의 심증이 있으므로 조 대표 측은 재판부를 교체해달라는 기피 신청을 낼 수는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