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52)책봉

  • 황천우 작가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9.25 10:16:28
  • 호수 11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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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을 태자로 삼다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의자왕의 애절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어이 사택비가 운명의 끈을 놓았다.

사택비의 죽음을 바라보는 의자왕은 허망하다 못해 야속하기까지 했다.

아니 차마 믿기지 않는 모양으로 멍하니 그 상황을 바라만 보았다.

본격적으로 장례 절차가 진행되자 의자왕은 한사코 그녀의 시신이라도 곁에 두고자 했다.

그러나 사택비의 경우 정실부인도 아니었고, 공식적으로는 돌아가신 아버지 무왕의 아내였던 관계로 세상의 이목으로 인해 궁궐 가까이 묘를 쓸 수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택비의 시신을 금마저(전북 익산)에 안치하고 나자 또 다른 현상이 찾아들었다.

사택비가 더 이상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세상 모든 일에 의욕이 떨어졌다.

장례 절차

그렇다고 현실이 그를 용인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고구려는 당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 여파는 여하한 방식으로든 백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터였다.

특히 이웃한 신라의 보복은 단지 시간문제지 반드시 현실로 드러날 터였다.

스스로를 다잡지 못한 의자왕이 한날 저녁 수족들을 불러 모았다.


흥수를 비롯한 성충, 윤충 형제와 의직 등 의자왕의 최측근 신하들이었다.

그들이 자리 잡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술과 안주가 탁자를 가득 채웠다. 

“그동안 경들이 수고 많았소. 그런 연유로 그대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하였소.”

“전하께서 실로 상심이 크시리라 생각되옵니다.”

성충이 묵직하게 말을 받았다.

그 말을 되새기던 의자왕이 흥수에게 시선을 주었다.

“특히 군사에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오.”

사택비에게 부정적이던 흥수였다.

그러나 기왕의 사실을 인정하고 사택비의 장례를 선왕이었던 무왕에 견주어 소홀함 없이 진행시켰다.

“전하, 이미 지나간 일이옵니다. 그러니 이제는 향후의 일에 대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옵니다.”

“당연히 그리해야 하고 말고.”

힘없이 대답한 의자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술병을 들었다.


“전하, 아니 되옵니다. 옥체를 보존하소서.”

윤충이 급히 일어나 만류했으나 의자왕이 손을 저었다.

“오늘은 내가 죄인 된 심정이라오. 그러니 그대들은 가만히 있으시오.”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외쳐댔다.

“짐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해 준 경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워서 그런다오. 그러니 부디 가만히들 계시오.”


말을 마친 의자왕이 자리에서 움직이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왕이 그들 사이를 이동하며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차례로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모두의 잔이 채워지자 곁에 있던 흥수가 의자왕의 잔을 채웠다.

“이렇게 나약한 모습을 보여 경들에게 송구스럽소.”

말을 하는 의자왕의 눈가에 어리는 옅은 물기가 불빛에 반짝였다.

순간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

“경들은 내 이야기를 잘 새겨들으시오.”

말을 해놓고는 모두에게 잔 들 것을 권유했다. 

“짐이 이번에 아들 융으로 하여금 태자로 삼으려 하오.”

잔을 내려놓기 바쁘게 꺼낸 말에 모두가 서로의 얼굴을 살폈다.

무슨 의미인지 서로에게 묻듯이.

“큰 아들 융을 태자를 삼겠다 이 말이오.”

“전하!”

좁지 않은 공간이 갑자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보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은 의자왕이 벌써 태자를 거론하는 부분에 대해 쉬이 납득되지 않은 때문이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만 보위에서 물러나겠다는 의미로 해석 될 수 있는 문제였다.

“짐이 보위에서 물러나겠다는 이야기는 아니오.”

“전하, 아니 되옵니다!”

“통촉하여 주십시오, 전하!”

의자왕 사택비 잃고 시름에 잠겨
당-고구려 위협…중흥의 꿈 과연?

사택비가 숨을 놓을 시점 남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곁에서 함께했다.

그녀와 삶은 물론 죽음도 같이해야 한다는 알 수 없는 본능이 작용했다. 

자신도 모르게 함몰되어가는 그 기이한 현상을 살피며 그녀의 의미를 되새겼었다.

비록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또한 그다지 유쾌한 방식은 아니었지만 자신에게 그녀는 삶의 전부로 다가왔었다. 

그 시간까지 살아오면서 인간의 죽음에 대해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았었다.

가고 오고 또 가고 또 오는 생명체의 순환을 살피며 그저 현실에 충실 하는 길이 삶의 방편이라 생각했었는데 사택비의 죽음이 주는 의미는 기존의 생각을 뿌리부터 흔들어 놓았다.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 자신의 생 역시 마감된다는 착각에 빠져들었었다.

단지 착각이 아니었다.

그녀의 죽음에 자신 역시 동반하고 있었고 그녀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자신의 존재는 있을 수 없다는 확신까지 이르렀었다.

“짐을 너무 원망하지 마시오.”

거듭되는 신하들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의자왕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전하, 아니 되옵니다.”

흥수가 다시 피 끓는 듯한 소리로 말을 받았다.

“이보시게, 군사.”

“말씀 주십시오, 전하.”

“경이 가장 중시여기는 부분이 무엇이라 했는가?”

“당연히 우리 백제의 중흥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백제의 중흥을 위해 어떤 방식이 가장 합당하겠는가?”     

흥수가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모두 의자왕과 흥수의 얼굴을 살피며 가볍지 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오면 향후 행보는 어찌 하시렵니까?”

순간 성충이 치고 나섰다.

“아들 융을 태자로 삼고 경들에게 잠시 조정 일을 맡기고자 하오.”

그 다음 말은 이야기하지 않아도 훤했다.

의자왕으로서는 사택비와 연결의 끈을 어떻게든 잘라야 했다.

그래야만 홀가분하게 국정에 전념할 수 있을 터였다.

순행의 길

의자왕이 아들 융을 태자로 책봉하고 그를 기념하기 위해 더불어 세상을 달리한 사택비의 극락왕생을 빌며 여러 죄수를 석방하고 자신의 운명이 잠들어 있는 금마저로 순행의 길을 떠났다. 

사택비의 무덤 가까운 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사택비의 흔적을 지우려 애를 썼다.

그러나 지우려 하면 할수록 사택비의 환영은 현실이 되어 나타나 의자왕의 몸과 마음을 움직였다. 

그녀를 거부하고자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보았다.

아버지를 배신한 교활한 여인, 그러고도 사랑을 운운했던 파렴치한 여인.

잠시 동안 그 생각에 빠져 치를 떨고는 했으나 이내 그런 마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사택비의 체취가 온몸에 스며들었다.

혹여 다른 여인에 심취하면 치유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새롭게 궁녀를 들여 잠자리를 함께 하려 시도했었다.

그러나 그 방식이 치유는커녕 오히려 사택비의 환영을 더욱 끌어들이는 결과를 낳았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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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