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개 켜는 이수그룹의 이면

소리 소문 없이…이유 있는 승승장구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이수그룹이 대표 계열사인 이수화학을 앞세워 기지개를 켜고 있다. 2015년까지만 해도 부진을 면치 못하던 석유화학 부문의 이익이 시황 호전에 힘입어 급증하고 있고, 골칫거리였던 건설부문과 바이오사업이 흑자로 전환했다. 
 

1996년 4월 지주사 형태의 그룹 체제를 본격화한 이수그룹은 2000년 1월 현 김상범 회장 체제로 들어섰다. 올해로 창립 21주년을 맞은 이수그룹은 이수화학과 PCB 부품 제조 판매사 이수페타시스 등을 포함해 11개 계열사를 휘하에 거느린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줄줄이 실적↑
연이은 낭보

최근 이수그룹은 연이은 낭보에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계열사 실적개선이 순조롭게 이뤄지는 데다 사업다각화 작업도 점차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는 까닭이다. 계열사에서 들려오는 희소식은 이수그룹에 대한 세간의 시선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물론 이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도록 하는 데 가장 공헌한 건 이수그룹의 모체인 이수화학이다. 

이수화학은 최근 2015년까지 LAB(합성세제원료, 연성알킬벤젠) 수급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실적 하향세가 뚜렷했다. 2011∼2013년 사이 LAB가 호황을 보이자 경쟁업체들이 대거 증설에 나섰고 이 때문에 수급 균형이 깨졌다. 


공급량이 늘면서 LAB의 가격이 떨어졌고 자연스레 마진폭이 좁아지기 시작했다. 2014년 말부터 시작된 저유가도 수익성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유가가 급락하면서 LAB 판가는 크게 떨어졌다. 반면 원재료 하락 폭은 이에 미치지 못했고 마진폭은 급격하게 축소됐다.

결국 이수화학은 2013년 연결기준 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면서 적자 전환했다. 전년대비 600억원 이상 영업이익이 줄어든 셈이다. 이후에도 좀처럼 부진서 벗어나지 못했다. 2014년에는 영업손실 357억원을 기록했고, 2015년에는 1억원도 채 안 되는 영업이익을 내는 데 그쳤다. 

더욱이 이 기간 누적 당기순손실 규모는 자그마치 2000억원에 이르렀다. 

반등의 조짐은 지난해부터 본격화됐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이수화학의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은 1조5100억원, 영업이익은 600억원 수준이다. 매출액은 2015년과 비슷하지만 영업이익은 1000% 이상 늘었다. 2015년 이수화학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조4712억원, 5400만원이었다. 

이수화학의 순항은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수화학은 2분기에 연결기준 영업이익 152억8600만원, 순이익 88억6900만원을 기록했다. 이는 각각 전기 대비  144.74%, 247.45% 증가한 수준이다. 매출은 4122억 8000만원으로 전기대비 1.78% 늘었다.

이수화학의 수익성이 대폭 개선된 건 주력 제품인 LAB에 대한 공급과잉 문제가 해소된 덕분이다. 2분기 평균 국제유가가 배럴당 50.4달러로 전분기 대비 7.8% 하락한 가운데, 2019년까지 증설 공백으로 인해 LAB 공급 증가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수화학의 고공행진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눈에 밟히는
수상한 흔적
 


이처럼 잘 나가는 이수화학이지만 일감 몰아주기 논란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중심에는 매출의 상당부분을 이수화학에 의존하는 이수엑사켐이 위치한다.  

이수엑사켐은 이수화학서 제품을 매입한 뒤 이를 판매해 수익을 내는 유통 회사다. 2015년 기준 이수엑사켐은 이수화학으로부터 990억원 어치의 제품을 매입해 판매하면서 매출 1340억원, 영업이익 108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이수화학 제품 861억원 어치를 사들여 매출 1344억원, 매출총이익 204억원, 영업이익 110억원의 실적을 거뒀다. 

심지어 이수엑사켐에 대한 그룹사 차원의 봐주기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1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이수화학의 별도기준 1분기 매출채권은 1235억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78억원 감소했다. 
 

전체 매출채권서 이수엑사켐의 몫이 절반을 차지한다. 지난 1분기 이수엑사켐이 갚아야 할 매출채권은 약 570억원이다. 

이 같은 기조는 수년 째 이어지고 있다. 2014년 전체 매출채권이 41%, 지난해엔 역대 최고인 56%가 이수엑사켐의 몫이었다. 이수화학의 전체 매출서 이수엑사켐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9%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많은 액수다. 

이수엑사켐의 매출액 비중은 2013년 8.1%, 2014년 8.9%로 8%대를 유지하다 2015년 9.5%, 2016년 9.6%로 소폭 상승했다. 

연이은 계열사 호실적 함박웃음
조직적인 이수엑사켐 밀어주기

전체 매출채권서 이수엑사켐의 몫이 많은 이유는 매출채권 회전기일(receivable turn over period)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지난해와 올 1분기 이수화학의 매출채권 회전기일은 40∼50일이다.  

반면 이수엑사켐을 대상으로 한 매출채권 회전기일은 무려 256일로 다른 고객사와 편차가 컸다. 이수엑사켐을 제외한 나머지 고객사들의 경우 1∼2개월이면 제품 판매 대금을 회수하는 데 반해 이수엑사켐의 경우엔 판매 대금을 회수하는 데 9개월가량이 소요된다는 얘기다. 

‘매출채권회전율(기말 매출채권잔액이 1년간 영업활동을 통해 현금인 매출액으로 회전되는 속도)’을 기준으로 봐도 이수엑사켐이 매출채권 상환을 더디게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수화학의 전체 매출채권 회전율은 2015년 7.8회, 2016년 7.3회, 지난 1분기 9회다. 이수엑사켐으로 한정할 경우 매출채권회전율은 2015년 1.9회, 2016년 1.4회, 지난 1분기 1.4회에 그친다. 


스스럼없는
오너 회사 지원 

공교롭게도 이수엑사켐은 이수그룹 지배구조의 최정점에 있다. 이수엑사켐은 김상범 회장의 100% 개인회사다. 김 회장과 이수엑사켐은 그룹 지주회사인 ㈜이수 지분을 각각 67.4%, 32.5%씩 들고 있다. 

사실상 김 회장이 ㈜이수 지분을 100% 들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김상범 회장→이수엑사켐→㈜이수→이수화학→이수건설’로 이어지는 단단한 지배구조가 구축됐다는 뜻이다. 

2000년 들어 3남이었던 김 회장이 적통 후계자로 낙점되자 곧바로 1인 지배체제 구축을 위한 전방위적인 사업 재편 작업이 진행된다. 그 즈음 김 회장 개인회사 2곳이 설립된다. 석유화학제품 판매업체 엑사켐과 자동차 부품·윤활유 판매업체 아이엠에스가 그 주인공이다. 

양 사는 2005년 합병되면서 현재의 '이수엑사켐'으로 재탄생했다. 

공통적으로 두 회사는 모두 계열사 지분을 대거 보유하고 있었다. 아이엠에스는 이수화학(3.46%)과 이수건설(4.49%), 이수세라믹(3.87%), 이수전자(3.09%) 지분을 갖고 있었고, 엑사켐은 이수화학과 이수세라믹의 주요 주주였다. 


이수그룹이 2003년 지주사 체제로 전환되는 과정서 두 회사는 그룹 지배구조 꼭대기로 올라서게 된다. 당시 이수그룹은 이수건설을 사업회사(이수건설)와 투자회사(㈜이수)로 나눈 후 투자회사를 지주회사로 삼았다.
 

엑사켐과 아이엠에스가 보유하고 있던 지분들은 지주회사 ㈜이수 지분 확보를 위한 재원이 됐다.

실제 엑사켐은 보유하고 있는 이수화학 주식 44만 9830주와 이수세라믹 주식 37만 9830주를 현물출자해 ㈜이수 주식 559만7219주(8.9%)를 취득했다. 아이엠에스도 이수세라믹 주식 12만6908주를 현물출자한 대가로 ㈜이수 지분 717만5931주(11.39%)를 확보한다.

김 회장도 직접 나서서 ㈜이수 지분을 늘린다. ㈜이수 경영권 지분을 확보하면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이수건설 주주들 가운데 유일하게 이수건설-㈜이수 간 지분 맞교환에 응하면서 ㈜이수 지분을 크게 늘린다. 

당시 그는 보유 중이던 이수건설 지분 24만 5618주(24.73%)를 모두 내주고 대신 ㈜이수 지분 502만 2871주(79.7%)를 확보한다.

다른 이수건설 주주들은 지분 맞교환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 지분율 만큼 지주사인 ㈜이수 지분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계열사 간 상호 보유 해소를 위해 실시한 유상감자에 참여해 지분을 모두 현금화한다. 

그 결과 이수그룹 지주사 주주는 김 회장과 김 회장의 개인회사만 남게 됐다. 완벽한 1인 지배체제가 완성된 순간이다. 

이후 이수건설 부실 뇌관이 터지면서 이수그룹 지배구조는 다시 한 번 요동친다. 이수건설 자금 지원 부담 탓에 ㈜이수의 재무구조가 크게 악화되자 2009년 들어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감자와 증자, 출자전환 등이 이뤄진다. 당시 이수엑사켐이 자금 지원 총대를 멘다. 
 

이수엑사켐은 ㈜이수에 빌려준 차입금 317억원과 미지급이자 33억원에 대해 출자전환하기로 결정한다. 350억원을 받는 대신 ㈜이수 주식 350만주를 취득하는 조건이다. 또 유상증자를 통해 현금 15억원을 지원했다. 

출자전환과 증자 단독 참여로 이수엑사켐 지분 67.4%를 보유한 ㈜이수 최대주주로 등극한다. 김 회장 개인 지분율은 기존 79%에서 32%로 희석된다. 이 지분구조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수화학의 이수엑사켐에 대한 채권 회수가 더딘 이유를 이수그룹 지배구조와 연결시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이수화학의 다른 고객사와 달리 이수엑사켐은 상대적으로 채권 상환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이수엑사켐은 안정적인 수익성을 토대로 김 회장의 돈줄 역할 역시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수엑사켐은 지난해 20억8000만원을 배당했으며 이는 고스란히 김 회장에게 돌아갔다. 

최근 6년으로 범위를 넒히면 김 회장이 이수엑사켐을 통해 확보한 배당금의 총합은 51억2000만원에 달한다. 이수엑사켐서 주주들에게 지급한 모든 배당금은 이 회사 지분 100%를 보유한 김 회장 몫이었다. 

일감 몰아주고
배당도 척척

배당재원이 되는 이익잉여금도 꾸준히 증가하면서 지속적인 배당이 이뤄질 가능성도 충분하다. 2008년 89억원 수준이었던 이익잉여금은 매년 순이익이 쌓이면서 수백억대로 불어났고 추가 배당 여력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이수엑사켐이 수직계열화 주축 계열사로서 탄탄한 수익구조를 갖췄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에도 김 회장의 현금창고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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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