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개 켜는 이수그룹의 이면

소리 소문 없이…이유 있는 승승장구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이수그룹이 대표 계열사인 이수화학을 앞세워 기지개를 켜고 있다. 2015년까지만 해도 부진을 면치 못하던 석유화학 부문의 이익이 시황 호전에 힘입어 급증하고 있고, 골칫거리였던 건설부문과 바이오사업이 흑자로 전환했다. 
 

1996년 4월 지주사 형태의 그룹 체제를 본격화한 이수그룹은 2000년 1월 현 김상범 회장 체제로 들어섰다. 올해로 창립 21주년을 맞은 이수그룹은 이수화학과 PCB 부품 제조 판매사 이수페타시스 등을 포함해 11개 계열사를 휘하에 거느린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줄줄이 실적↑
연이은 낭보

최근 이수그룹은 연이은 낭보에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계열사 실적개선이 순조롭게 이뤄지는 데다 사업다각화 작업도 점차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는 까닭이다. 계열사에서 들려오는 희소식은 이수그룹에 대한 세간의 시선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물론 이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도록 하는 데 가장 공헌한 건 이수그룹의 모체인 이수화학이다. 

이수화학은 최근 2015년까지 LAB(합성세제원료, 연성알킬벤젠) 수급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실적 하향세가 뚜렷했다. 2011∼2013년 사이 LAB가 호황을 보이자 경쟁업체들이 대거 증설에 나섰고 이 때문에 수급 균형이 깨졌다. 


공급량이 늘면서 LAB의 가격이 떨어졌고 자연스레 마진폭이 좁아지기 시작했다. 2014년 말부터 시작된 저유가도 수익성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유가가 급락하면서 LAB 판가는 크게 떨어졌다. 반면 원재료 하락 폭은 이에 미치지 못했고 마진폭은 급격하게 축소됐다.

결국 이수화학은 2013년 연결기준 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면서 적자 전환했다. 전년대비 600억원 이상 영업이익이 줄어든 셈이다. 이후에도 좀처럼 부진서 벗어나지 못했다. 2014년에는 영업손실 357억원을 기록했고, 2015년에는 1억원도 채 안 되는 영업이익을 내는 데 그쳤다. 

더욱이 이 기간 누적 당기순손실 규모는 자그마치 2000억원에 이르렀다. 

반등의 조짐은 지난해부터 본격화됐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이수화학의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은 1조5100억원, 영업이익은 600억원 수준이다. 매출액은 2015년과 비슷하지만 영업이익은 1000% 이상 늘었다. 2015년 이수화학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조4712억원, 5400만원이었다. 

이수화학의 순항은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수화학은 2분기에 연결기준 영업이익 152억8600만원, 순이익 88억6900만원을 기록했다. 이는 각각 전기 대비  144.74%, 247.45% 증가한 수준이다. 매출은 4122억 8000만원으로 전기대비 1.78% 늘었다.

이수화학의 수익성이 대폭 개선된 건 주력 제품인 LAB에 대한 공급과잉 문제가 해소된 덕분이다. 2분기 평균 국제유가가 배럴당 50.4달러로 전분기 대비 7.8% 하락한 가운데, 2019년까지 증설 공백으로 인해 LAB 공급 증가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수화학의 고공행진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눈에 밟히는
수상한 흔적
 


이처럼 잘 나가는 이수화학이지만 일감 몰아주기 논란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중심에는 매출의 상당부분을 이수화학에 의존하는 이수엑사켐이 위치한다.  

이수엑사켐은 이수화학서 제품을 매입한 뒤 이를 판매해 수익을 내는 유통 회사다. 2015년 기준 이수엑사켐은 이수화학으로부터 990억원 어치의 제품을 매입해 판매하면서 매출 1340억원, 영업이익 108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이수화학 제품 861억원 어치를 사들여 매출 1344억원, 매출총이익 204억원, 영업이익 110억원의 실적을 거뒀다. 

심지어 이수엑사켐에 대한 그룹사 차원의 봐주기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1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이수화학의 별도기준 1분기 매출채권은 1235억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78억원 감소했다. 
 

전체 매출채권서 이수엑사켐의 몫이 절반을 차지한다. 지난 1분기 이수엑사켐이 갚아야 할 매출채권은 약 570억원이다. 

이 같은 기조는 수년 째 이어지고 있다. 2014년 전체 매출채권이 41%, 지난해엔 역대 최고인 56%가 이수엑사켐의 몫이었다. 이수화학의 전체 매출서 이수엑사켐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9%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많은 액수다. 

이수엑사켐의 매출액 비중은 2013년 8.1%, 2014년 8.9%로 8%대를 유지하다 2015년 9.5%, 2016년 9.6%로 소폭 상승했다. 

연이은 계열사 호실적 함박웃음
조직적인 이수엑사켐 밀어주기

전체 매출채권서 이수엑사켐의 몫이 많은 이유는 매출채권 회전기일(receivable turn over period)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지난해와 올 1분기 이수화학의 매출채권 회전기일은 40∼50일이다.  

반면 이수엑사켐을 대상으로 한 매출채권 회전기일은 무려 256일로 다른 고객사와 편차가 컸다. 이수엑사켐을 제외한 나머지 고객사들의 경우 1∼2개월이면 제품 판매 대금을 회수하는 데 반해 이수엑사켐의 경우엔 판매 대금을 회수하는 데 9개월가량이 소요된다는 얘기다. 

‘매출채권회전율(기말 매출채권잔액이 1년간 영업활동을 통해 현금인 매출액으로 회전되는 속도)’을 기준으로 봐도 이수엑사켐이 매출채권 상환을 더디게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수화학의 전체 매출채권 회전율은 2015년 7.8회, 2016년 7.3회, 지난 1분기 9회다. 이수엑사켐으로 한정할 경우 매출채권회전율은 2015년 1.9회, 2016년 1.4회, 지난 1분기 1.4회에 그친다. 


스스럼없는
오너 회사 지원 

공교롭게도 이수엑사켐은 이수그룹 지배구조의 최정점에 있다. 이수엑사켐은 김상범 회장의 100% 개인회사다. 김 회장과 이수엑사켐은 그룹 지주회사인 ㈜이수 지분을 각각 67.4%, 32.5%씩 들고 있다. 

사실상 김 회장이 ㈜이수 지분을 100% 들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김상범 회장→이수엑사켐→㈜이수→이수화학→이수건설’로 이어지는 단단한 지배구조가 구축됐다는 뜻이다. 

2000년 들어 3남이었던 김 회장이 적통 후계자로 낙점되자 곧바로 1인 지배체제 구축을 위한 전방위적인 사업 재편 작업이 진행된다. 그 즈음 김 회장 개인회사 2곳이 설립된다. 석유화학제품 판매업체 엑사켐과 자동차 부품·윤활유 판매업체 아이엠에스가 그 주인공이다. 

양 사는 2005년 합병되면서 현재의 '이수엑사켐'으로 재탄생했다. 

공통적으로 두 회사는 모두 계열사 지분을 대거 보유하고 있었다. 아이엠에스는 이수화학(3.46%)과 이수건설(4.49%), 이수세라믹(3.87%), 이수전자(3.09%) 지분을 갖고 있었고, 엑사켐은 이수화학과 이수세라믹의 주요 주주였다. 


이수그룹이 2003년 지주사 체제로 전환되는 과정서 두 회사는 그룹 지배구조 꼭대기로 올라서게 된다. 당시 이수그룹은 이수건설을 사업회사(이수건설)와 투자회사(㈜이수)로 나눈 후 투자회사를 지주회사로 삼았다.
 

엑사켐과 아이엠에스가 보유하고 있던 지분들은 지주회사 ㈜이수 지분 확보를 위한 재원이 됐다.

실제 엑사켐은 보유하고 있는 이수화학 주식 44만 9830주와 이수세라믹 주식 37만 9830주를 현물출자해 ㈜이수 주식 559만7219주(8.9%)를 취득했다. 아이엠에스도 이수세라믹 주식 12만6908주를 현물출자한 대가로 ㈜이수 지분 717만5931주(11.39%)를 확보한다.

김 회장도 직접 나서서 ㈜이수 지분을 늘린다. ㈜이수 경영권 지분을 확보하면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이수건설 주주들 가운데 유일하게 이수건설-㈜이수 간 지분 맞교환에 응하면서 ㈜이수 지분을 크게 늘린다. 

당시 그는 보유 중이던 이수건설 지분 24만 5618주(24.73%)를 모두 내주고 대신 ㈜이수 지분 502만 2871주(79.7%)를 확보한다.

다른 이수건설 주주들은 지분 맞교환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 지분율 만큼 지주사인 ㈜이수 지분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계열사 간 상호 보유 해소를 위해 실시한 유상감자에 참여해 지분을 모두 현금화한다. 

그 결과 이수그룹 지주사 주주는 김 회장과 김 회장의 개인회사만 남게 됐다. 완벽한 1인 지배체제가 완성된 순간이다. 

이후 이수건설 부실 뇌관이 터지면서 이수그룹 지배구조는 다시 한 번 요동친다. 이수건설 자금 지원 부담 탓에 ㈜이수의 재무구조가 크게 악화되자 2009년 들어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감자와 증자, 출자전환 등이 이뤄진다. 당시 이수엑사켐이 자금 지원 총대를 멘다. 
 

이수엑사켐은 ㈜이수에 빌려준 차입금 317억원과 미지급이자 33억원에 대해 출자전환하기로 결정한다. 350억원을 받는 대신 ㈜이수 주식 350만주를 취득하는 조건이다. 또 유상증자를 통해 현금 15억원을 지원했다. 

출자전환과 증자 단독 참여로 이수엑사켐 지분 67.4%를 보유한 ㈜이수 최대주주로 등극한다. 김 회장 개인 지분율은 기존 79%에서 32%로 희석된다. 이 지분구조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수화학의 이수엑사켐에 대한 채권 회수가 더딘 이유를 이수그룹 지배구조와 연결시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이수화학의 다른 고객사와 달리 이수엑사켐은 상대적으로 채권 상환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이수엑사켐은 안정적인 수익성을 토대로 김 회장의 돈줄 역할 역시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수엑사켐은 지난해 20억8000만원을 배당했으며 이는 고스란히 김 회장에게 돌아갔다. 

최근 6년으로 범위를 넒히면 김 회장이 이수엑사켐을 통해 확보한 배당금의 총합은 51억2000만원에 달한다. 이수엑사켐서 주주들에게 지급한 모든 배당금은 이 회사 지분 100%를 보유한 김 회장 몫이었다. 

일감 몰아주고
배당도 척척

배당재원이 되는 이익잉여금도 꾸준히 증가하면서 지속적인 배당이 이뤄질 가능성도 충분하다. 2008년 89억원 수준이었던 이익잉여금은 매년 순이익이 쌓이면서 수백억대로 불어났고 추가 배당 여력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이수엑사켐이 수직계열화 주축 계열사로서 탄탄한 수익구조를 갖췄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에도 김 회장의 현금창고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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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