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이 쥔 ‘21개의 카드’

검찰만? 사법부도 물갈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난 17일 문재인정부가 출범 100일 맞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직후부터 적폐 청산과 개혁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국민으로부터 개혁 요구가 높았던 검찰과 방송은 이미 개혁 드라이브가 걸린 상태다. 문 대통령의 칼끝은 이제 사법부로 향하고 있다. 무기는 법관 지명 카드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산이 필요한 적폐 분야의 개혁을 시행할 때마다 인적 쇄신을 첫 번째 단추로 채웠다.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를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 후임으로 앉힌 게 대표적이다. 문 대통령의 인사가 검찰개혁의 신호탄이 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에 이효성 성균관대 명예교수를 앉힌 것도 언론 개혁의 의지를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이효성 위원장은 후보자로 지명되자마자 “방송의 비정상 상태를 정상화하겠다”고 말했다.

사법개혁 시작
사람부터 바꿔

사법개혁 역시 같은 코스를 밟고 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우리나라 사법부 기조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손에 쥔 법관 지명 카드는 문재인정부의 사법개혁에 큰 무기가 될 전망이다. 이미 사용한 5개의 카드 역시 사법개혁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분석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 21일 김명수 현 춘천지방법원장을 신임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했다. 대법관을 거치지 않은 점이나 강한 개혁 성향, 양승태 현 대법원장보다 연수원 기수가 13기나 낮은 점까지 김명수 후보자의 지명은 파격의 연속이다. 이 때문에 김명수 후보자 인선은 문 대통령이 드러낸 강력한 사법개혁의 의지로 읽힌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서 “김명수 후보자는 춘천지방법원장으로 재직하면서 법관 독립에 대한 확고한 소신을 가지고 사법 행정의 민주화를 선도해 실행했다”며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법부를 구현함으로써 국민에 대한 봉사와 신뢰를 증진할 적임자”라고 인선 배경을 밝혔다.

문재인정부의 사법개혁 성공 가능성은 여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신임 대법원장에 김명수 후보자를 선택한 것처럼 문 대통령이 임기 중 꺼내들 수 있는 법관 지명 카드가 아직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관 9명 중 8명,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4명 중 13명이 문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교체된다.

조국 민정수석은 지난 3월10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안을 인용했을 당시 “법학자로서 박근혜 탄핵 관련 추가로 기쁜 점이 있다”고 SNS에 글을 올렸다. 
 

그는 “오는 9월26일 양승태 대법원장의 임기가 끝난다. 탄핵이 없었다면 박근혜가 지난 1월 퇴임한 박한철 헌재소장 후임자는 물론 후임 대법원장을 임명하게 돼있었다”며 “그러나 이제 새 대통령이 후임 대법원장을 임명한다. 물론 공석인 헌재소장도 새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적었다.

실제 19대 대통령선거가 예정대로 올해 12월에 치러졌다면 2018년 1월까지 퇴임하는 대법관 5명과 헌법재판관 2명은 박 전 대통령이 후임자를 임명하도록 돼있었다. 헌재소장과 대법원장 역시 박 전 대통령의 몫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 당하면서 두 기관의 수장을 포함, 고위 법관 7명의 임명 기회는 고스란히 문 대통령에게 넘어왔다.

헌법재판관 8명, 대법관 13명
임기내 21명 인사 직간접 관여

문 대통령은 지난 5월19일 신임 헌재소장으로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을 지명했다. 


이날 김이수 후보자 지명 소식을 직접 발표한 문 대통령은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는 헌법수호와 인권수호 의지가 확고할 뿐 아니라 공권력 견제나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소수 의견을 지속적으로 내는 등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왔다”며 “다양한 목소리에 관심을 가져 달라는 국민들의 열망에 부응할 적임자라고 판단한다”고 인선 배경을 전했다.

2012년 9월 국회 야당 몫으로 헌법재판관에 임명된 김이수 후보자는 헌법재판관들 가운데 가장 진보적인 인사로 분류된다. 소수의견을 가장 많이 내 ‘미스터 소수의견’이라는 별명도 있다. 

특히 2013년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에서는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내 주목을 받았다.

당시 8명의 헌법재판관들이 “통합진보당 주도 세력이 북한을 추종하고, 진보당 강령상 ‘진보적 민주주의’는 최종적으로 사회주의 실현 목적을 갖고 있다”고 한 반면 김이수 후보자는 “진보당 강령 내용인 진보적 민주주의에는 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배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고 소수의견을 냈다.
 

2015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법외노조로 만든 법률 조항 합헌 여부를 결정할 때도 “해직교사 등의 단결권을 지나치게 제한할 수 있다”며 홀로 위헌의견을 냈다. 

올해 3월 탄핵 심판 선고에선 이진성 재판관과 함께 세월호 관련 보충 의견을 덧붙였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후에도 집무실에 정상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 머문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통령의 불성실함을 드러낸 징표”라고 일침을 가했다.

취임 100일 동안
5명 법관 지명

김이수 후보자의 지명은 이번 대법원장 인선과 맞물려 문 대통령의 향후 법관 인선 방향을 가늠케 하는 초석이었다는 설명이 나오고 있다. 사법부 양대 기관에 진보적 색채가 강한 인사를 앉히면서 개혁의 주춧돌을 깔았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아직도 김이수 후보자가 ‘후보자’ 딱지를 떼지 못했다는 점이다.

현재 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는 장기간 표류 중에 있다. 헌법재판소법 12조 2항에 따르면 “헌법재판소장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정하고 있다. 

지난 6월8일 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까지 완료됐지만 국회 동의라는 산을 넘지 못해 헌재소장 자리는 여전히 공석으로 남아있다. 야당은 김 후보자가 소수 의견을 낸 사건을 문제 삼고 있다.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과 전교조 법외노조 합헌 등이다.

문 대통령은 국회가 김 후보자에 대한 동의안을 방치하는 동안 이유정 변호사를 신임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지난 1월 퇴임한 박한철 재판관의 후임이다. 이로써 1월 이후 줄곧 8명이었던 헌법재판관 구성은 9명으로 완성됐다.

이유정 후보자는 사법연수원 23기로 서울북부지방검찰청 검사를 지냈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여성인권위원회 위원장,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 서울시 인권침해구제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낸 이력이 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이유정 후보자는 호주제 폐지, 인터넷 실명제, 휴대전화 위치 추적 등 다수의 헌법 소송을 대리하며 공권력 견제와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해왔다”며 “헌법 및 성 평등 문제에 대한 풍부한 이론과 실무 경험을 갖춘 여성 법학자로서 헌법 수호와 기본권 보장이라는 헌법재판관의 임무를 가장 수행할 적임자”라고 인선 배경을 밝혔다.

사법부 무게 중심
보수서 진보로

하지만 이유정 후보자의 앞날도 험난하긴 마찬가지다. 야당이 이유정 후보자의 정치적 편향성을 짚고 나섰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 등 야 3당은 이유정 후보자가 과거 노무현·문재인 대선후보와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에 대한 지지선언, 민주노동당·진보신당 지지선언 등의 이력을 갖고 있다며 부적격 인사로 규정하고 있다.

김이수 후보 임명동의안과 이유정 후보자 임명 철회를 연계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전략을 수정하면서 오는 28일 이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릴 예정이다. 

국회 일정에 가까스로 숨통이 트인 셈이다. 야당은 이유정 후보자에 대한 혹독한 검증을 통해 여론전을 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문재인정부의 사법부 지형 바꾸기는 헌법재판소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6월에 임명된 조재연·박정화 대법관 역시 진보적 색채를 띤 법관으로 평가받는다. 두 대법관은 이상훈·박병대 전 대법관 자리에 임명 제청됐다. 먼저 대법관 추천위원회가 각계각층에서 추천받은 36명을 심사해 8명을 골랐다. 이후 양승태 대법원장이 8명 가운데 조재연 변호사와 박정화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의 대법관 임명을 문 대통령에게 제청했다.

앞서 대법관 추천위원회가 고른 8명의 후보군도 진보 인사와 여성이 대거 포함돼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조재연 대법관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보호, 인권신장 등 헌법적 가치 수호에 힘써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풍부한 실무경험과 능력, 균형 있는 시각을 갖췄다고 인정받는다.

조재연 대법관은 한국은행서 은행원 생활을 하면서 성균관대 법대에 진학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1980년 22회 사법시험에 수석 합격, 전두환 정권 때 판사로 근무하며 시국 사건서 소신 판결을 내려 주목 받았다. 
 

특히 1985년 저항의식이 담긴 ‘민중달력’을 만들어 배포한 피의자들에 대해 국가보안법상 이적행위 혐의로 압수수색 영장이 청구된 사건서 표현의 자유를 중시해 영장을 기각했다.

헌재소장·대법원장 ‘진보 색채’
자유한국당 ‘정치적 편향성’ 반발

박정화 대법관은 서울행정법원 개원 이래 첫 여성 부장판사를 지내는 등 사법부 ‘유리천장’을 깬 법관이다.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징계해고 당한 쌍용자동차 직원에게 해고가 부당하다고 처음 판결했다. 

직업이 없는 구직자가 포함된 노동조합 설립이 적법하다고 인정한 판결도 있다. 노동관계 법률의 해석 기준을 명확하게 하고 사회적 약자의 법익 보호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이다.

이외에도 아내상속 관습에 따라 재혼을 강요당하고 재산까지 빼앗긴 케냐 여성,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아 우리나라로 도피한 나이지리아 남성을 난민으로 인정하는 등 기본권 보호에 힘써왔다.

두 대법관은 인사청문회를 거쳐 지난 7월19일 취임식을 가졌다. 이날 취임식서 박정화 대법관은 “소수의 작지만 정당한 목소리가 다수의 큰 목소리에 가려 묻히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와 배려를 다하겠다”며 “공정한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는 일에 헌신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조재연 대법관 역시 “전국 법관들의 판결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며 그 판단을 최대한 존중하겠다”며 “사회의 여러 목소리와 가치를 대법원 판결에 반영하고 사법부의 신뢰 회복에 힘써달라는 국민의 요로를 무겁게 받아들여 주어진 책무를 충실히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헌법재판관과 대법관은 임기가 각각 6년이다. 대통령(5년)이나 국회의원(4년) 임기보다 길기 때문에 진용을 갖추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야 한다. 사법권력 교체는 대통령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으로 5년 혹은 4년 만에 한 번씩 바뀌는 정치권력보다 훨씬 변화가 어렵다.

이런 상황서 문 대통령은 취임 100일 동안 5명의 고위 법관 인선을 통해 사법부의 무게 중심을 이동시키고 있다. 일각에선 문 대통령이 앞으로도 고위 법관 자리에 파격적인 인사를 연이어 단행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당장 내년에만 대법관 6명, 헌법재판관 5명 등 총 11명이 퇴임한다. 대법원에선 김용덕·박보영 대법관이 내년 1월에, 고영한·김창석·김신 대법관이 8월에 한꺼번에 임기 만료로 물러난다. 

11월에는 법원행정처장을 맡고 있는 김소영 대법관이 교체될 예정이다.

9명으로 구성된 헌법재판소는 내년 9월 5명의 재판관이 한꺼번에 바뀔 예정이다. 김이수·이진성·김창종·강일원·안창호 재판관이 임기 만료로 교체되면 헌법재판소는 사실상 재편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들에 대한 지명권은 문 대통령이 선택한 김명수 신임 대법원장 후보자에게 있다. 대법관 전원과 이진성·김창종 재판관의 후임이다. 김명수 후보자가 기수 등 서열에 얽매이지 않는 인사를 이어갈 경우 진보적 색채를 띤 법관들이 중용될 가능성도 높다.

2019년 4월에는 대통령 몫인 조용호·서기석 재판관이 퇴임한다. 이 두 재판관의 후임은 문 대통령이 지명한다. 박 전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 가운데 김재형 대법관을 제외한 조희대·권순일·박상옥·이기택 대법관은 문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22년 5월 전에 임기가 끝난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이 임명 제청하지만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뜻이 크게 반영된다.

야당은 강력 반발
임명까지 가시밭길

자유한국당은 문 대통령의 사법부 인선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진보 색채가 강한 인사가 연이어 고위 법관직에 임명되는 것을 경계하는 모양새다.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우리법연구회 활동을 한 점, 이유정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정치적 성향 등을 들어 “지금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을 정치재판소로 만들고 정치 대법원화 될까 우려의 시각이 높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사법개혁 어디서부터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재조사?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재점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 3월 법원 내 학술단체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권한 축소 필요성을 주제로 하는 학술대회를 열었다. 문제는 법원행정처 고위 법관이 이 대회를 축소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이다.

또 문제가 불거지는 과정서 법관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별도의 진상조사위원회가 조사를 진행했지만 결과는 ‘블랙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였다. 현직 판사들은 충분한 조사 없이 내려진 결론이라며 전국법관회의를 열어 추가 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등 반발했다. 그러나 양승태 대법원장은 추가 조사 요구를 거부했다.

판사들 사표내고 단식하고

양 대법원장의 거부에 항의해 현직 부장판사가 법원에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사태는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또 인천지법의 한 판사는 지난 10일부터 물과 소금만 섭취하며 단식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는 법원행정처 권한 남용 추가 조사와 인적 쇄신 등을 요구했다.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는 신임 대법원장이 임명되면 가장 먼저 추진해야 할 사법개혁 과제로 블랙리스트 재조사를 꼽았다. 

노 원내대표는 “현재 대법원이 ‘탁하고 쳤더니 억하고 죽었다’ 식으로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는 걸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양 대법원장이 덮고 있는 사법부 블랙리스트를 재조사하는 것부터 사법개혁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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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성수3지구 재개발 조합 복마전

[단독] 성수3지구 재개발 조합 복마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재개발·재건축 현장은 ‘내 집 마련’이라는 욕망의 집합체다. 사려는 사람, 팔려는 사람, 그리고 짓는 사람까지 집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촘촘하게 얽혀 있다. 조합은 사방팔방 뻗어있는 이권을 조율하고 사업을 끝까지 이끌어야 하는 책무를 지닌다. 문제는 이 과정서 발생하는 유착과 비리 의혹이다. 주택 재개발사업은 권력의 이동에 영향을 받는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은 2007년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 성수전략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 53만㎡ 면적의 땅을 4개 지구로 나눠 재개발을 진행하다가 박원순 서울시장이 당선되면서 사업이 지체됐다. 그러다 오 시장의 취임으로 다시 궤도에 오르는 모양새다. 3조 사업 14년째 성수전략정비구역은 압구정 아파트 지구 특별계획구역을 마주 보면서 한강 조망이 가능해 재개발 수혜 단지로 주목받고 있다. 그중 성수전략정비구역 제3지구는 성동구 성수동2가 572-7번지 일대로 기존 계획안에 따르면, 부지 11만4193㎡에 1852가구 규모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전체 사업비는 3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성수전략정비구역 제3지구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이하 제3지구 조합)이 내홍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 11월 조합장이 지위를 상실한 데 이어 각종 의혹이 불거져 복마전이 따로 없는 상황이다. 특히 조합장과 정비사업관리전문업자(이하 정비업체) 간의 유착 의혹이 화두로 떠올랐다. 정비업체는 정비사업 과정서 조합의 비전문성을 보완하기 위한 전문지식을 갖춘 사업자를 말한다. 대통령령이 정한 자본‧기술인력 등의 기준을 갖춰 시·도지사에게 등록한다.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정법)은 제정 당시부터 ‘정비사업전문관리업 제도’를 도입했다. 조합원의 권익을 보호하고 사업추진의 효율성을 도모한다는 취지다. 정비업체는 ▲조합 설립 및 정비사업의 동의 ▲조합 설립 인가 신청 ▲사업성 검토 및 정비사업 시행계획서 작성 ▲설계자 및 시공자 선정 ▲사업 시행 인가 신청 ▲관리처분계획 수립 등의 업무를 지원하고 대행한다. 정비사업의 A부터 Z까지 모든 업무에 관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3지구 조합은 2009년 10월 추진위원회의 승인, 2010년 5월 주민총회를 거쳐 N사를 정비업체로 선정했다. 이후 2018년 2월 조합 설립 인가를 받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제3지구 조합 내부서 문제가 제기된 부분은 14년에 걸쳐 조합 업무를 대행해 온 N사와 역시 10년 넘게 조합서 일한 전 조합장 김모씨의 유착 의혹이다. 뉴타운 후보지 정비구역으로 오세훈 시장 취임에 재시동 김 전 조합장은 2010년 추진위 총무로 선출된 후 2016년 주민총회를 통해 추진위원장으로 뽑혔다. 2018년 창립총회서 조합장으로 선출됐지만 지난해 11월 도정법 위반 혐의로 벌금 100만원이 확정돼 자격을 상실했다. 그사이 재신임 투표, 주민총회 등의 과정이 있었고 수차례에 걸쳐 법정 공방에도 휘말렸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김 전 조합장은 2016년 추진위원장으로 선출된 이후부터 지난해 말까지 ‘불사조’에 가까운 면모를 보이며 자리를 지켰다. 김 전 조합장은 창립총회(2018년)와 동시에 진행된 조합장 선거서 학력을 허위로 기재한 혐의가 인정돼 2021년 조합장 지위를 상실했다. 제3지구 조합 선거관리 규정은 ‘후보자 등록 시 제출 서류의 허위·변조·위조 등이 발견된 경우 당선을 무효로 한다’고 명시했다. 김 전 조합장은 후보자 등록 신청서에 지방 소재 ‘Y대학 졸업’이라고 기재해 제출했다. 또 Y대학 총장 명의로 된 졸업증명서를 3부 만들어 추진위원장과 조합장 후보 등록 등에 사용했다. 앞서 서울동부지검은 업무방해죄와 사문서위조죄·위조사문서행사죄 등으로 김 전 조합장에 각각 벌금 100만원과 700만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이후 2021년 1심 법원은 해당 약식명령 등을 근거로 ‘조합장 지위 부존재 확인’ 소송서 김 전 조합장이 조합장의 지위에 있지 않다고 판시했다. 서울시가 진행한 조합 실태점검 결과도 조합장 지위에 영향을 미쳤다. 성동구서 2022년 2월28일부터 3월11일까지 열흘간 진행한 ‘성수전략정비구역 제3지구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 운영실태 시·구 합동 기동점검’서 총 22건의 지적사항이 나왔다. 자금 차입 결국 사임 특히 성동구는 김 전 조합장이 총회 의결 없이 자금을 차입한 부분에 대해서는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밝혔다. 도정법 제45조(총회의 의결) 2항에 따르면 자금의 차입과 그 방법, 이자율과 상환방법은 총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성동구의 실태점검 결과에도 김 전 조합장은 2022년 10월 주민총회서 또다시 조합장으로 선출됐다. 하지만 총회 의결 없이 자금을 빌린 부분이 문제가 되면서 결국 조합장 자격을 잃었다. 김 전 조합장은 2022년 ▲총회 의결 없이 자금을 차입한 점 ▲자료 공개 거부 등 도정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1심 재판부는 두 혐의 모두를 인정해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지만 항소심서 자료 공개 거부 혐의가 무죄로 바뀌면서 벌금 100만원으로 줄었다.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눈여겨볼만한 부분은 돈을 빌려준 주체가 정비업체인 N사였다는 사실이다. N사는 2019년 6월과 8월, 그리고 10월 각각 2000만원, 2000만원, 1000만원 등 총 5000만원을 제3지구 조합에 무이자로 빌려 줬다. 앞서 김 전 조합장은 2019년 2월에 5000만원, 4월에 3000만원 등 8000만원을 총회 의결 없이 N사로부터 차입한 사실이 확인돼 벌금 7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제3지구 조합이 총회 의결 없이 N사로부터 빌린 돈의 액수는 총 1억3000만원에 이른다. 김 전 조합장의 가족 일가가 제3지구 재개발 지역의 아파트 등을 구입하는 과정서도 N사의 흔적이 등장한다. 재산 증식 내부 정보? 문제를 제기한 제3지구 조합원은 “김 전 조합장이 추진위원장, 조합장을 하던 시기에 아들과 딸, 사위 등이 재개발 지역의 아파트를 사거나 도로를 증여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김 전 조합장의 재산이 늘어나는 과정에 조합의 내부 정보가 사용된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016년 전후로 김 전 조합장을 비롯한 가족 일가의 부동산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덧붙였다. 김 전 조합장이 추진위원장으로 선출된 시기와 맞물린다. 김 전 조합장의 남편으로 추정되는 이모씨는 2018년 7월 성수동의 빌라 한 채를 1억9500만원에 매입했다. 등기부등본상 이씨의 주소는 김 전 조합장의 주소와 같았다. 흥미로운 대목은 2019년 1월 이 빌라가 송모씨에게 2억원에 팔렸는데 해당 인물이 정비업체 N사의 관계자라는 의혹이 제기된 점이다. 송씨는 한 달 뒤 해당 빌라를 2억1000만원에 팔았다. 김 전 조합장의 아들로 추정되는 이모씨는 2015년 1월 제3지구 재개발 지역에 위치한 아파트 한 채를 4억5750만원에 매입했다. 김 전 조합장의 아들은 현재 제3지구 조합의 대의원으로 이름이 올라있다. 김 전 조합장의 딸로 추정되는 이모씨는 2018년 11월 특정 인물로부터 성수동2가의 도로 일부를 증여받았다. 딸 이씨의 남편이자 김 전 조합장의 사위로 추정되는 김모씨는 2017년 1월 성수동2가의 한 상가 1층을 매입했다. 김씨도 제3지구 조합의 대의원 명단에 존재한다. 2018년 해당 건물에 근저당을 설정한 업체는 세입자 조사업 등을 하는 W사였다. W사의 과거 등기부등본상 주소는 제3지구 조합서 업무를 하는 법무사 사무소의 주소와 일치했다. 송사 휘말려도 계속 부활해 가족 일가 부동산 구입 의혹 제3지구 조합의 한 조합원은 “지금 드러난 것은 등기부등본을 뒤져 찾아낸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총회의 결의 없이 정비업체로부터 금전을 차입해 자신의 급여를 챙기고 가족 일가의 부동산 축재에 사용했다는 의심을 거둘 수가 없다”며 “김 전 조합장은 대법원 확정 판결로 사임하면서도 조합원에게 단 한 마디의 사과도 없이 뻔뻔함의 극치를 보였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1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온 직후 김 전 조합장은 “2009년부터 지금까지 14년간 성수3지구를 위해 노력해 왔고 14년간 조합 운영을 투명하고 절약하였기에 조합장 자리서 내려오며 부끄럽지 않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에는 사무실을 얻어 ‘김○○ 사랑방’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주민과 부동산 관련 정보를 주고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3지구 조합의 또 다른 조합원은 “김 전 조합장의 나이가 70대다. 컴퓨터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고 들었다. 그러다 보니 정비업체가 조합장을 바지사장으로 세우고 뒤에서 조합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말이 내부에 많다”며 “N사는 한남4구역재개발조합서도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계약이 해지된 업체”라고 주장했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한남재정비촉진구역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이하 한남4구역 조합)은 지난해 정기총회서 N사와의 계약 해지 안건을 통과시켰다. 조합 설립 과정서 발생한 비위, 허위 견적서 제출, 금전 편취 혐의로 사기죄 확정 등이 이유였다. 한남4구역 조합은 2011년 N사와 용역 계약을 맺고 지난해까지 조합 업무를 함께 해 왔던 것으로 파악됐다. 한남4구역 계약 해지 제3지구 조합서 불거진 의혹은 현재 성동세무서, 성동경찰서 등에서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문제를 제기한 조합원은 “전 조합장과 N사는 조합을 장악하고 감시 체계가 허술한 틈을 타 끊임없이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며 “이들의 비리는 민생침해 범죄인만큼 철저한 수사로 조합원의 피해를 막아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전 조합장의 해명 “떳떳하다” 김모 전 조합장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울분을 쏟아냈다. 14년간 조합을 위해 일했는데 근거 없는 모함으로 자신을 괴롭히려 든다는 것이다. 김 전 조합장은 자녀를 비롯해 사위 등 가족 일가가 재개발 지역에 아파트나 건물을 산 것은 인정하면서도 결혼을 할 무렵 본인들이 구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비업체 N사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정비업체는 재개발 사업서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곳이다. 조합장이 됐지만 업무에 서툰 부분이 있어 정비업체 대표(송모씨)에게 도와 달라고 했다”면서도 “정비업체 직원을 따로 만난 적도 없고 부정적인 일을 한 것도 없다. 나는 떳떳하다. 떳떳하기에 아직 이 동네에 살고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젊고 똑똑한 사람이 조합장 선거에 나와야 한다. 그런 분이 있다면 언제든 도울 것”이라며 “2010년 조합 총무로 시작해 14년 동안 조합 일을 보면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 법원 판결로 사임하게 됐지만 조합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은 여전하다”고 강조했다. <기사 속 기사> N사 대표의 해명 “우리는 을이다” N사의 송모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정비업체는 조합이 시키는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정비업체가 조합장을 내세워 조합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내부의 의견에 강한 불쾌감을 표하면서 한 말이다. 조합이 갑, 정비업체가 을이라고 강조했다. 송 대표는 총회의 의결 없이 제3지구 조합에 돈을 빌려준 이유에 대해 “(김 전 조합장이) 조합 재정 상태가 너무 열악하다고 간곡히 부탁해서 무이자로 빌려준 것인데 그게 문제가 돼서 조합장님이 지위를 잃게 된 점은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조합에 차입한 1억3000만원은 한 푼도 돌려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조합장이 사임하는 등 조합 내부가 뒤숭숭한 것 같다는 말에는 “직무대행이 조합 업무를 보고 있고 우리도 정비업체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사업은 표류하지 않고 계속 진행되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 업체가 맡고있는 재개발 지역이 20여군데 정도다. 한 군데서 문제가 생기면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불법을 저지를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한남4구역 조합과의 계약 해지에 대해서는 “(한남4구역 조합) 조합장이 내가 불법적인 요구를 했다. 그걸 거절했더니 계약 해지를 한 것”이라며 “현재 민·형사상의 조치를 취한 상태다. 법으로 가려질 일”이라고 주장했다.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