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고-억울한 사람들> (57)한국공인중개사협회와 맞선 서주원씨

“부당해고는 살인이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신문고’ 지면을 신설합니다. 매주 억울한 사람들을 찾아,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담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좋습니다. <일요시사>는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겁니다. 쉰일곱 번째 주인공은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홀로 맞서 분투 중인 서주원씨 이야기입니다.
 

지난해 12월2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63시티에선 한국공인중개사협회(이하 한공협) 창립 30주년 기념식이 있었다. 이날 행사에는 여야 유력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했다. 1986년 창립한 한공협은 전국 23개 시·도지부를 갖춘 회원수 10만명(개업 공인중개사)의 방대한 조직이다. 

3개월 만에 해고

2015년 2월 한공협 홍보실 실장으로 입사한 방송작가 서주원씨는 그해 5월 거대 조직을 상대로 싸움을 걸었다. 입사 3개월 만이다.

서주원 작가의 고향은 전북 부안군 위도다. 위도는 전래동화 <효녀 심청>의 인당수와 조선시대 문인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에 등장하는 이상향 율도국의 배경이 된 섬이다. 서 작가는 2남3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서 작가에 따르면 당시 위도에는 고등학교가 없었다. 그는 전북 전주 상산고에 진학하면서 섬을 벗어나 뭍으로 나왔다. 섬에서 뭍으로, 지방서 서울로. 서 작가의 삶은 떠돌이 생활의 연속이었다.


“욕심이 많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늘 현재보다 나은 삶을 꿈꿨고, 변화를 바랐고 도전해보고 싶은 욕망이 컸어요. 그런 제 성격이 굴곡진 삶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를 꿈꿨지만 실패했다. 이후 드라마 작가가 되기 위해 한국방송작가협회의 문을 두드렸지만 교육과정 이수 후 사무국 직원으로 2년 근무했을 뿐 결국 원하는 길로 가지 못했다. 글에 대한 욕망은 방송작가가 되면서 분출됐다. 

국악방송서 우리 고유 음악과 명창들의 인생을 조명하기도 했고, KBS에선 북한 전문 프로그램 <통일 열차>를 구성하는 등 많은 방송에 참여했다.

수습 3개월 끝나자마자 해고
23개월간 법정 투쟁 ‘승리’

글쟁이의 생활은 팍팍했다. 서 작가가 한국외식업중앙회를 거쳐 한공협까지 흘러간 것은 생계에 대한 압박 때문이었다. 2015년 2월 서 작가는 온라인 채용공고 홈페이지에 올라온 한공협의 홍보실장 공채에 지원했다.

“면접을 두 번 봤는데 그때 집행부서 저한테 물어본 건 협회보인 <한국부동산뉴스>를 잘 만들 수 있는지, 회장의 대내외 인사말을 잘 작성할 수 있는지, 보도자료를 잘 쓸 수 있는지 여부였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글을 썼고, 집행부서도 그 점을 높이 샀던 것 같습니다.”

2015년 2월10일부터 근무를 시작한 서 작가의 홍보실 체제는 수습 3개월이 끝나는 날, 정확히 5월8일에 끝났다. 한공협 중앙인사위원회는 당시 회장과 사무총장이 평가한 근무성적 평정을 들어 서 작가의 본 채용을 거절했다. 


입사 3개월 만에 해고된 서 작가는 즉시 반발했다. 

그는 자신이 협회의 희생양이 됐다고 주장했다. 정부서 협회에 불리한 정책을 발표했고, 그로 인한 회원들의 불만이 고조되자 자신을 방패로 일을 무마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가 말한 정부 정책은 부동산 중개수수료 조정, 이른바 ‘반값 복비’ 논란이었다.

2014년 11월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는 ‘부동산 중개수수료제도 개선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집을 사고팔거나 임대·임차할 때 공인중개사에게 지급하는 중개수수료를 조정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공인중개사법에 따르면 주택 중개에 대한 보수는 국토부령이 정하는 범위 내에서 지자체 조례로 정하게 돼있다. 권고안이 발표되자 반값 복비를 둘러싼 논쟁이 시작됐다.

공인중개사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한공협은 반값 복비 정책에 크게 반발했다. 한공협 회원만 이용 가능한 홈페이지 ‘회원광장’ 게시판에는 2015년 2∼4월 사이 국토부의 중개수수료 권고안에 대한 불만이 쏟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집행부의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고 한다.

“당장 생계에 영향을 미칠 정부 정책이 나왔는데 협회서 제대로 대응을 못하니 회원들의 불만이 컸습니다. 제가 해고당한 건 반값 복비 정책에 대한 대응 실패를 홍보실 책임으로 몰아가려는 집행부의 술수라고 생각합니다.”

서 작가는 맨 몸으로 한공협과의 싸움에 돌입했다. 변호사와 노무사도 없이 진행한 23개월간 다툼에서 지방노동위원회·중앙노동위원회·행정법원·고등법원은 모두 그의 손을 들어줬다. 

지방노동위는 “회장과 사무총장이 실시한 근무성적 평정은 중앙인사위원회의 평가 자료가 된다. 그런데 이 같은 평가에 이르게 된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한공협이)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공정성과 객관성이 의심된다”는 이유를 들어 그의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중앙노동위 역시 “근로자의 경력과 입사 당시의 근무환경 등에 비춰볼 때 그 업무 평가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가 부족하다. 부당해고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밝혔다. 

법원의 결정에 따라 서 작가는 올해 3월31일 한공협으로 복직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또 나타났다. 그의 직책이 홍보실장이 아니라 그보다 한 직급 낮은 홍보과장으로 결정된 것이다.

복직했지만 직급은 낮아져
휴가 돌아온 날 지부 발령


서 작가의 해고 기간 동안 홍보과장을 맡고 있던 J씨는 <한국부동산뉴스> 발행, 회장 인사말 작성, 언론 응대 등 홍보실의 실무를 맡고 있었다. 또 대내외 행사 촬영과 취재 역시 과장의 몫이었다. 

다시 말해 서 작가는 복직과 동시에 홍보실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업무 일부와 홍보실의 실무까지 도맡아 담당하게 됐다.

“글은 큰 부담이 아니었지만 카메라는 다뤄본 적이 없어 정말 어려웠습니다. 몇 번이나 홍보실장에게 사진 업무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했지만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과장급으로 강등된 서 작가는 행정과 경리 업무는 물론 협회 1층 게시판에 게시물을 붙이는 작업까지 맡아서 처리했다. 여기에 홍보실장은 서 작가에게 매일 업무일지를 요구했다. 팩스를 통해 들어온 문서를 늦게 확인했다는 이유로 경위서를 써서 낸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4개월이 끝이었다.

“7월31일 여름 휴가 마지막날 서울 서부지부로 발령이 났더라고요. 휴가 전에 어떤 언질도 없었습니다.”

그는 현재 서울 서부지부 정보망사업 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회원 관리와 전화 상담을 맡고 있다. 한공협서 최근 공들이고 있는 사업, 즉 한방에 대한 질문이 많아 공부도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로 홍보 일을 해왔던 그에게 전화 응대는 말 그대로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공협 총무부 관계자는 서 작가가 홍보과장으로 복직한 것에 대해 “서주원씨가 복직할 무렵 이미 2년 가까이 업무를 수행한 홍보실장이 있었다”며 “서씨가 복직하기 전 대법원 판례 등 검토를 마친 사항이고 지방노동위원회서도 정상 복직으로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또 “그가 서부지부로 간 것은 협회 순환보직에 의해 회장님이 인사 발령한 것”이라며 “현재 서씨가 이 사안과 관련해 지방노동위원회에 제소한 상황이기 때문에 다퉈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장서 과장으로

“다 뒤엎고 그만두고 싶지만 먹고 살 길이 막막해서 참고 또 참으면서 있습니다. 부당해고는 살인입니다. 저는 노동 인권 사각지대 한공협의 노동자에 대한 슈퍼 갑질은 하루 빨리 청산해야 할 적폐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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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