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홍등가’ 대구자갈마당을 아십니까?

108년 성매매 역사 ‘드디어 끝나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대구 도원동 일대의 성매매집결지 ‘자갈마당’을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폐쇄를 미루던 대구시가 칼을 뽑았기 때문. 대구시는 성매매 피해여성에게 수천만원의 자활비용을 지원하는 등 폐쇄 수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종사자들의 거센 반발에 실제 완전 폐쇄까지는 상당한 갈등이 예상된다.
 

대구시가 자갈마당 폐쇄를 위한 본격적인 작전에 돌입했다. 그 동안 수차례 폐쇄 압박에도 100년 이상 끈질기게 자리를 지켰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대구시는 자갈마당 정비를 추진하는 것과 동시에 성매매집결지서 생계를 유지하는 성매매 피해여성에 대한 자활대책 마련을 위해 지난해 12월 전국서 광역자치단체 최초로 ‘대구시 성매매피해자 등의 자활지원조례’를 제정했다.

대규모 집창촌
역사의 뒤안길로?

현재 자갈마당은 ‘성매매특별법’ 이후 규모가 줄어 37개소 100여명의 종사자들이 영업 중에 있다. 성매매특별법은 지난 2000년과 2002년 군산 성매매 집결지의 화재로 19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자 성매매를 근절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2004년 3월22일 제정됐다. 

또 헌법재판소가 자발적 성매매 여성에 대한 처벌을 합헌이라고 결정하면서 각 지자체서 성매매 처벌과 단속을 강화하고 도시환경정비 등 다양한 방법으로 성매매 집결지 폐쇄에 나서고 있다. 

집장촌은 성매매 산업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으로 성매매특별법의 주요 단속 대상이 됐다. 2004년 자갈마당 여성 종사자 등 200여 명은 단속 유예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여성 종사자들의 성노동권 존중과 생존권 보장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성매매특별법 단속으로 여성 종사자들을 범죄자 또는 성매매 피해 여성으로 규정 짓고 당사자 의지와 상관없이 삶의 터전을 빼앗긴다는 이유였다. 

일본인 자본가 가와이 아사오(河井朝雄)가 1930년 쓴 <대구물어(大邱物語)>를 1998년 번역한 <대구이야기>에 따르면 자갈마당은 1908년 일제에 의해 성매매업소 집결지로 조성된 이후 108년 간 성매매가 이뤄지고 있다. 

조선 후기 대구는 서문시장, 약령시, 남문시장 등 큰 시장이 상권을 이루고 있었다.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서울은 이미 일본 상인의 유입이 많고 지대가 비싸졌고 부산 개항으로 부산 역시 마찬가지였다. 1900년대 초 큰돈을 벌고자 하는 일본 상인들은 내륙도시인 대구에 점차 진출했다. 
 

1903년 경부선 철도 부설을 시작하면서 대구에는 그 이전의 두 배나 되는 일본인들이 거주하게 된다. 대부분 역을 중심으로 읍성 북쪽에 모여 살면서 주변 지역에 철도용 부지를 매입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매입한 땅을 개발해 일본인 중심의 상권을 확장해 나갔다. 

일본인 거류민단은 철도용 부지뿐 아니라 읍성 북서쪽 일대(지금의 도원동 일대)에 유곽용 부지를 매입해 유곽을 조성한다. 상인, 철도 노동자 등 대부분이 남성이었던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집장촌을 만들면 막대한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었다. 

1908년 일제 의해 조성 후 지속
내년 아파트단지…폐쇄수순 가속

1908년 ‘야에가키조(八重垣町)’라는 유곽이 들어서는데 이것이 지금의 자갈마당이다. 야에가키조(八重垣町)란 일본 ‘수진전(秀眞傳)’ 화가(和歌)에 나오는 지명이다. 초고대왕이 신궁에 쳐들어가 일본 여왕 히미코를 굴복시키고, 천조대신의 왕비 12명 중 8명을 후비로 삼아 가둬 둔 곳이 이즈모(出雲)의 야에가키(八重垣)다. 


야에카키조(八重垣町)는 당시에도 주변에 자갈이 많아 자갈마당이라고 불렸다. 

자갈마당은 1916년 일본 공창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던 해에 유곽으로서 모습을 갖추게 된다. 권상구 시간과연구소 소장은 “야에가키조란 마초적 남성 정복자들이 여성을 가둬 대상화시키던 일본 전설에 나오는 것”이라며 “이 이름이 훗날 ‘도원동(桃園洞)’으로 여전히 여성을 대상화시키는 지명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업주에 의한 여성 종사자의 성매매 피해는 당시에도 존재했다. 1929년 6월19일 조선일보 기사를 보면, 야에카키조(八重垣町)의 창기 6명이 학대를 당하고 화장품과 의복값을 주지 않고 시치미를 떼는 포주 때문에 집단 파업을 벌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해방 이후 일본인들이 떠나면서 일본인 상인을 상대로 영업하던 자갈마당은 침체기를 맞았다. 그러나 1946년 공창제가 폐지된 이후에도 자갈마당은 꾸준히 영업을 한다. 1950년대 이승만 정부는 자갈마당 근처의 큰 연못을 메우고 시장으로 바꾸려 했지만 이내 실패했다. 
 

1961년 박정희정부는 ‘윤락행위 등 방지법’을 제정, 성매매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법 시행령이 8년이나 지난 1969년서 제정되는 등 성매매 피해 근절 노력보다 윤락행위 특정 지역을 설치하고 관광특구를 지정해 집장촌을 관리하면서 오히려 특정 지역의 성매매업이 가능하도록 했다.

거듭된 실패
이번엔 성공?

자갈마당이 지금과 같은 유리방 형태가 된 것은 88서울올림픽을 앞둔 1986년이었다. 당시 자갈마당뿐 아니라 부산 완월동, 인천 옐로하우스, 서울 미아리 등 각 지역의 집장촌은 환경개선작업을 실시한다. 

좁은 길 대신 차가 다닐 수 있는 넓은 길이 뚫리고, 넓은 유리창안에 여성들이 나란히 앉아 있는 유리방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붉은색이나 노란색의 조명을 단 것도 이 시기부터다. 이러한 윤락가 정비사업으로 집장촌은 대형화되고 유리방으로 정비하지 못한 소규모 업소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된다. 

1991년 정부는 미성년자보호법에 따라 ‘청소년출입제한구역’을 발표한다. 사창가, 유흥가 등에 청소년의 출입을 제한시키는 것으로 자갈마당 역시 청소년출입제한구역에 포함됐다. 

현재 자갈마당 인근은 대구예술발전소 등 문화시설이 들어섰고 순종황제어가길 등 중구 도심재생사업도 진행 중이지만 성매매업소 처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각종 민원이 폭증하는 등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런 상황서 대구시의회의 성매매 피해 여성 자활 지원을 위한 조례 제정이 유명 성매매 집결지인 자갈마당 폐쇄 여부에 어떤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 조례에는 자갈마당 성매매 종사자들의 자활을 위한 생계유지비·주거이전비·직업훈련비 등의 지원과 성매매 실태 조사, 자립 지원 시설 운영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 등의 지원이 확인되면 환수조치 등의 안전 장치도 마련했다. 


대구시 여성가족정책관에 따르면 성매매 피해 여성에게 지원하는 기간은 10개월이며 생계유지비 월 100만원, 훈련비 300만원, 주거이전비 700만원 등 1인당 2000만원을 지원한다. 

하지만 일각에선 수조원을 투입하고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출산정책처럼 성매매 피해 여성에게 제도적 정치 마련없이 예산만 투입해서는 예산만 낭비하고 타지역으로의 성매매 유입 등 부작용을 불러올 것이란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우리도 주민”
커지는 저항

또 대구시는 자갈마당 출입구 5곳에 CCTV와 LED 경고시설을 설치한다. LED 경고시설에는 성매매가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문구가 한글, 외국어 등으로 나올 예정이다. 또 자갈마당 주변 보안등을 교체하거나 추가 설치한다. 집결지 안 빈집 실태를 조사해 주차장, 쌈지공원 등으로 조성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경찰과 함께 성매매 영업 단속도 강화한다. 경찰은 현재 주 1회 이상 수시 단속을 벌이고 있으며 오는 7∼9월 집중단속에 나설 예정이다. 이밖에 시는 올해 연말까지 성매매 집결지 개발을 위한 연구용역을 추진하고 비자발적 성매매 종사 여성 지원을 위해 상담소 설치 등도 추진한다.

대구시가 올 연말까지 자갈마당을 폐쇄하겠다고 공언한 가운데 자갈마당 지주와 포주들의 반발도 거세다. 무료 급식소 설치, 재개발추진위원회 구성을 통해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도원동 일대를 게토(ghetto, 노숙인 등 빈곤층이 모여 사는 거주지구)로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는 포주·지주들은 골목에 100여개의 좌석을 마련했다. 이들은 갹출한 돈으로 대형 냉장고, 밥솥, 식기세척기까지 갖추고 매월 둘째, 넷째 수요일마다 급식소를 운영할 예정이다.

지주와 포주들은 최근 ‘도원동 2-3번지 재개발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를 출범시키는 등 이른바 ‘고사작전’을 피하기 위한 다양한 자구책도 준비 중이다. 성매매 수익보다는 주택 개발에 따른 수익이 더 많다고 보는 지주들이 중심이 돼 자갈마당을 대규모 아파트단지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것이다. 

1만4000여㎡ 규모인 자갈마당에는 70명 남짓의 지주가 있고 세를 주거나 본인이 직접 영업하는 곳은 절반가량이다.

종사자들의 거세지는 반발
최대 2000만원 지원 논란

하지만 지주들의 이런 움직임이 단속을 피하려는 속셈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이들은 대구시 고위 관계자와의 면담서 “본격적 민간 개발을 추진할 테니 단속을 유예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집회를 열기도 했다. 자갈마당 종사자들은 대구시청 앞에서 “대책 없는 고사작전 웬 말이냐. 생존권 보장하라”며 집회를 열었다. 

대구시는 내년 10월께 자갈마당 인근에 대규모 주상복합아파트단지 들어섬에 따라 입주 예정자들이 자갈마당 폐쇄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어 도심 재정비 추진의 불가피성을 밝혔다. 

이에 대해 한터전국연합회 관계자는 “우리가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들 돈을 빼앗았느냐. 남의 물건을 훔쳤느냐”며 “당신들이 만들어 놓은 어두운 사회 한 구석서 먹고 살기 위해 배운 것이 없어 서럽게 이슬 맞고 돈벌이하면서 산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며 “끝까지 대구시와 중구청에 맞서 싸우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성노동자 대표로 나선 한 여성은 “우리도 인생에 가고자 하던 길이 이 길은 아니다”며 “대구시와 중구청은 우리와 간담회 한 번 하지 않았다. 우리도 대구시민”이라고 항의했다. 그는 “우리는 이대로 물러날 수 없다”며 “아파트가 들어서면 정문 앞에 누워 우리의 생존권을 요구하고 죽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조건 폐쇄”
상당한 진통

대구시와 중구는 올해 연말까지 무조건 자갈마당을 폐쇄한다는 입장이다. 성매매 집결지 개발을 위한 연구용역을 추진하고 비자발적 성매매 종사 여성 지원을 위해 상담소 설치 등도 추진할 계획이지만 성매매업소 종사자들의 강력한 반발로 실제 폐쇄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따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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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