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면 더 볼만한 풍경·소리 ⑤창덕궁 후원서 수성동계곡

도심 우중 산책의 완벽한 코스

차분하게 깊어진 궁궐의 색다른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비가 오면 줄어드는 발길 덕분에 궁궐의 고즈넉함이 더해지기도 한다. 도심에 자리한 궁궐을 홀로 거니는 것, 상상 이상의 즐거움이다.
 

비는 산수풍경을 그리는 붓이다. 장대비로 계곡물을 그리고, 궁궐 낙숫물은 단단한 돌에 홈을 파낸다. 빗물은 초목의 갈증을 해소하고, 차갑게 열린 하늘 아래 포근한 흙냄새를 풍긴다. 

도심에 내리는 비는 빼곡한 공간에 여백을 만들어 청량한 빗소리로 그 풍경을 채운다. 34만490㎡(10만3000여평)에 달하는 창덕궁 후원의 자연은 그렇게 깨어난다. 비 오는 날 창덕궁을 걷고 싶은 것도 그 때문이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창덕궁은 주변 지형과 어우러진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다. 정문인 돈화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꺾으면 이내 금천교와 만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금천교는 1411년(태종 11) 박자청이 축조했는데 궁궐에 남은 돌다리 중 가장 오래됐다. 궁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흐르는 물에 씻어 바르게 하길 바라는 뜻으로 세웠다. 요즘 금천교 아래 물길에는 초여름이 흐른다.
 


창덕궁서 정치의 중심이 된 곳이 인정전과 선정전, 희정당이다. 인정문을 통과하면 ‘어진 정치를 펼치다’라는 뜻의 인정전(仁政殿)이 모습을 드러낸다. 중앙에 우뚝 솟은 중층 건물이다. 비 오는 날 인정전 앞 넓은 마당에 깔린 박석은 물을 머금어 세월의 흔적을 드러낸다. 인정전을 향해 일렬로 세운 품계석에 서면 조선 시대 양반이 된 기분이다.
 

헌종의 사랑 이야기가 스며들었고, 마지막 황실 가족의 생활공간으로 쓰인 낙선재 일원의 아름다움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단청하지 않은 소박한 모습, 경사진 터와 계단에 심은 꽃나무, 돌로 쌓은 단아한 굴뚝이 눈길을 끈다. 

‘창덕궁 달빛기행’ 프로그램에 참가하면 낮에 공개되지 않은 낙선재 후원에도 가볼 수 있다. 상량정의 대금 연주가 빗소리와 함께 궁궐에 울려 퍼진다.

비 오는 날 창덕궁의 매력은 후원을 거닐며 배가된다. 조선 왕실의 정원인 창덕궁 후원은 중국의 이허위안(頤和園), 일본의 가쓰라리큐(桂離宮)와 함께 아시아 3대 정원으로 꼽힌다. 후원이 조성되기 시작한 1406년부터 600년 이상 나무에 전지가위 한 번 대지 않고, 제 속성대로 자라게 두었다.
 

도심서 300년 넘은 고목이 70그루 이상 숨 쉴 수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단비가 내리는 날, 후원으로 걸어갔다. 갈참나무와 때죽나무, 단풍나무, 팥배나무, 소나무, 산벚나무가 일제히 비를 반긴다. 톡톡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좋다. 도심 온도와 평균 7℃ 차이가 난다니 원시림에 들어선 것 같다.
 

제일 먼저 닿는 곳이 부용지다. 부용정이 물 위에 반쯤 뜬 채로 있고, 맞은편에 주합루가 연못을 지키 듯 섰다. 동쪽의 영화당에 앉아서 부용지를 바라본다. 왕의 휴식처이자 과거를 치른 이곳은 이제 누구나 쉴 수 있는 공간이 됐다. 

비가 내리면 흙내가 코끝을 자극한다. 존덕정 일원도 감탄을 자아낸다. 존덕정에서 옥류천으로 가는 산마루턱을 열심히 걸으면 소요암을 만난다. 후원의 마지막 영역이자 가장 깊숙한 곳이다. 소요암 아래 너럭바위에 홈을 파서 물길을 돌려 작은 폭포를 만들었는데 비가 오면 더 운치 있다.
 


조선시대에 왕이 농업을 장려하기 위해 농사짓는 것을 ‘친경’이라 하는데 창덕궁서 해마다 이를 재현한다. 옥류천 일원의 청의정 주변에 작은 논을 만들어 모내기하고, 가을에 수확한 곡식을 나눠준다.

주변과 어우러진 가장 한국적인 궁궐
조선 선비들이 시를 읊조리던 계곡

비가 많이 온 다음 날이면 인왕산 수성동 계곡으로 발길을 옮기자. 수성동 계곡은 흐르는 물소리가 경복궁까지 들릴 정도로 크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도심 우중 산책의 완벽한 코스다. 

안평대군과 조선 시대 선비들은 계곡의 우렁찬 물소리를 장단 삼아 시를 읊조렸다. 추사 김정희는 ‘수성동 우중에 폭포를 구경하다(水聲洞雨中觀瀑)’라는 시를 남겼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요즘, 계곡은 물이 말라 텅 비었다. 한여름 장맛비가 내리면 인왕산 자락 수성동 계곡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바위 틈을 비집고 콸콸 흘러내리는 풍광이 오래도록 기억된다. 겸재 정선은 이곳 장동(壯洞) 일대를 여덟 폭 진경산수로 담아 ‘장동팔경첩’을 그렸는데 수성동 풍경이 그중 한 폭이다.

이 아름다운 풍경은 한때 아파트 콘크리트 아래 있었다. 1971년 옥인시범아파트를 지었기 때문. 2008년 아파트 철거가 시작되고 2012년 지금의 모습을 되찾았다. 

냇가에 돌덩이를 들추고 숨은 생명을 찾아내듯이 비는 멈춘 듯한 풍경을 움직인다. 가랑비에도 수성동 계곡과 기린교 아래에서 버들치가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계곡에 오르는 길은 볼거리가 있어 힘들지 않다. 걷다 보면 파스텔톤 우산에 쓴 시가 눈에 들어온다. 종로구 누상동 9번지, ‘윤동주 하숙집 터’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윤동주 시인은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했는데, 이곳 수성동 계곡 바로 아래다. 

‘별 헤는 밤’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등을 이 시기에 썼다. 집 담벼락엔 1970년대 누상동 풍경을 담은 그림이 걸렸다. 현재 하숙집의 원형은 없지만, 계곡을 따라 인왕산에 오르면 윤동주문학관에서 시인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1938년 조선 후기 문신 윤덕영이 딸을 위해 지은 2층 벽돌집도 눈에 띈다. 화가 박노수가 1973년 이 집을 인수해 살다가 2011년 종로구에 자신의 작품과 함께 기증해 종로구립박노수미술관이 됐다.
 

수성동 계곡이 있는 서촌은 골목마다 남은 옛 정취와 감각이 돋보이는 갤러리와 카페가 공존한다. 그래서인지 서촌은 단골 데이트 코스이자 주말 나들이 장소가 됐다. 통의동 골목에 위치한 대림미술관은 서촌의 대표 미술관이다. 

1997년 대전서 한국 최초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 출발해 지금은 현대미술 전반으로 전시 영역을 확대했다. 미술관의 공간도 전시와 일맥상통한다. 1967년에 지은 주택을 건축가 뱅상 코르뉴가 리모델링, 대림미술관 간판을 달았다. 


코르뉴의 이력을 살피지 않아도 대림미술관이 바로미터다. 특히 비 오는 날 미술관 산책과 카페 ‘미술관옆집’서 마시는 커피 한잔은 더할 나위 없는 낭만이다.
 

경복궁 서문 영추문을 지나 건너편으로 여관 하나가 있다. 1930년대에 문 열어 80여 년간 수많은 사람이 밤을 보낸 통의동 보안여관이다. 이곳은 무작정 상경해 장기 투숙하던 예술가들의 보금자리였다. 지금은 전시를 겸한 복합 문화 공간으로 운영된다. 

다양한 볼거리

이밖에도 서울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으로 알려진 대오서점은 60여년 세월을 털고 카페로 변모했다. 근처에 엽전 도시락으로 유명한 통인시장은 저렴한 값으로 한 끼를 책임진다. 우산을 쓰고 숨바꼭질하듯 서촌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창덕궁→창덕궁 후원→대림미술관과 인근 갤러리→통의동 보안여관→통인시장→대오서점→종로구립박노수미술관→수성동 계곡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인사동→종묘→창덕궁→창덕궁 후원→창경궁 
[둘째 날] 경복궁역→경복궁→대림미술관과 인근 갤러리→통의동 보안여관→통인시장→대오서점→종로구립박노수미술관→수성동 계곡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종로엔 다 있다(종로구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http://tour.jongno.go.kr
- 창덕궁 http://www.cdg.go.kr
- 통의동 보안여관 http://www.boan1942.com
- 통인시장 http://tonginmarket.modoo.at
- 종로구립박노수미술관(종로문화재단) http://www.jfac.or.kr

문의 전화
- 종로구청 관광체육과 02)2148-1852
- 통인시장 02)722-0911
- 창덕궁 02)3668-2300
- 창덕궁 달빛기행(한국문화재재단) 02)2270-1233
- 종로구립박노수미술관 02)2148-4171

대중교통 정보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서 도보 5분. 1·3·5호선 종로3가역 6번 출구서 도보 10분. 
* 문의: 서울메트로 1577-1234, 
http://www. seoulmetro.co.kr 
[버스] 109·151·162·171번 간선버스나 702번 지선버스, 창덕궁·서울돈화문국악당 정류장 하차. 
* 문의: 서울시교통정보센터 
http://topis. seoul.go.kr

자가운전
경부고속도로 한남 IC→한남대교→남산1호터널→삼일대로→안국역서 창덕궁 방면 우회전→율곡로→창덕궁삼거리

숙박 정보
- 노블호텔: 종로구 율곡로6길, 02)742-4025
- 호텔더디자이너스 종로: 종로구 수표로, 02)2267-7474
- 센터마크호텔: 종로구 인사동5길, 02)731-1000
- 이비스앰배서더 인사동: 종로구 삼일대로30길, 02)6730-1101 

식당 정보
- 밥+(곤드레밥·소고기부추덮밥): 종로구 옥인길, 02)725-1253
- 메밀꽃필무렵(메밀칼국수·메밀부침): 종로구 효자로, 02)734-0367
- 엘라디(프랑스 가정식): 종로구 필운대로, 02)6677-0434 

주변 볼거리
경복궁, 종묘, 대림미술관, 종로구립박노수미술관, 통인시장, 보안여관, 대오서점, 통의동 백송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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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가족의 당원 게시판 연루 의혹 가능성을 사실로 확정 짓고 있다. 같은 당 장동혁 대표도 한 전 대표 축출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한 전 대표는 점점 광야로 내몰리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2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사실상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축출 의지를 드러냈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었으나 ‘걸림돌’이라고 호칭했다. “제거돼야 통합 가능” 장 대표는 이날 “당내 통합에 걸림돌이 있다면 제거돼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표는 개인적 감정에 따라 움직이거나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며 “당원과의 관계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인 어떤 걸림돌은 그걸 해결하지 않고는 연대·통합을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민의힘의 주요 화제 중 하나는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됐다”는 당원 게시판 의혹이다. “한 전 대표 가족들의 명의를 이용한 아이디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비난 글을 다수 작성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무감사위는 이날 “비난 글을 작성한 문제 계정들은 한 전 대표 가족 5인의 명의와 같고, 전체 87.6%는 2개의 IP로 작성된 여론조작 정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언론 보도 후 연루자들의 탈당·대규모 게시글 삭제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도 별도의 자료를 발표했다. 그는 “해당 IP를 사용한 계정 10개 중 4개는 같은 휴대전화 뒷번호·같은 선거구(서울 강남병)을 공유한다”며 “동명이인이 이 모든 조건을 우연히 공유할 확률은 사실상 0%고, 탈당 시점도 4일 이내로 집중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제는 당 대표 본인·가족 명의 계정을 이용해 다수 당원이 지지하는 것처럼 위장한 것”이라며, “당심을 왜곡한 후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해서 일반 여론까지 움직이려 했다면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한 범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을 드루킹 사건과 비교했던 사람은 장예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이다. 장 부원장은 지난달 15일 임명된 후 장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는 지난 2024년 11월 이 사건을 일컬어 ‘온가족 드루킹’ 혹은 ‘한가족 드루킹’ 등 표현을 사용하면서 한 전 대표를 비난했다. 장에 한은 당내 통합 걸림돌 취급 “게시글,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 한 전 대표와 가족을 강하게 비판한 장 부원장이 사용하는 표현을 위원장 발표 자료에 담은 것을 봐선, 이날 당무감사위의 발표는 “국민의힘에서 한 전 대표를 확실하게 내보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당무감사위에 따르면, 한 전 대표에게 소명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한 전 대표는 방송 출연으로써 하루 격차를 두고 상반된 의견을 냈다. 그는 지난달 30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당시엔 저와 제 가족에 대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 게시물이 당원 게시판을 뒤덮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 가족이 익명 보장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비판적 사설·칼럼을 올렸단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말했다. 한 전 대표는 이날 “가족이 게시물을 올렸다”고 처음 인정하면서도 “저는 글을 쓴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족 명의로 게시물을 올리는 게 비난받을 일이라면 가족이 아닌 저를 비난하라고 말하고 싶다”면서도 “제가 제 이름으로 글을 쓴 게 있는 것처럼 발표한 것은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한 전 대표는 다음 날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위원장이 ‘동명이인 한동훈’ 게시물을 제 가족 게시물인 것처럼 조작해서 발표했다”면서 이 위원장에 대한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이어 “게시물 작성 시기는 제가 정치를 시작하기 전·최근 등 무관한 것을 대표 사례라고 조작해 발표했는데, 저는 당원 게시판에 아예 가입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가운데 장 대표는 지난 7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진행된 ‘이기는 변화’ 기자회견에서 윤 전 대통령이 자행한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장 대표는 이날 “12·3 비상계엄은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으로써, 국민께 큰 혼란·불편을 끼쳤고, 당원께 큰 상처가 됐다”며 “국정 운영의 한 축이었던 여당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그 책임을 무겁게 통감하고,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 국민의힘이 부족했으니, 잘못·책임은 국민의힘 안에서 찾겠다”면서 “국민의힘은 오직 국민 눈높이에서 새롭게 시작하겠으니, 과거의 일은 사법부의 공정한 판단·역사의 평가에 맡겨놓고, 계엄과 탄핵의 강을 건너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당명 개정 추진 의사도 밝혔다. 장 대표의 이날 기자회견을 놓고, 일각에선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을 강하게 지지하는 강경 보수 유튜버 고성국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 ‘고성국 TV’에 출연한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에게 입당 원서를 직접 전달하는 형식으로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이에 대해선 “장 대표가 국민의힘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끌어들여 세력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이어 “고씨를 입당시킨 것과 장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대국민 사과는 모순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고씨는 평소 한 전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이날 김 최고위원도 고씨의 입당 원서 작성을 지켜보면서 “혹시 당원 게시판에 글 올리시면 들통난다”는 등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거를 타선 없는 국힘? 정의당 박원석 전 의원은 지난 6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 하이킥>에 출연해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 세력을 축출하고, 완전히 윤 어게인 세력의 당으로 만들어 훨씬 더 극우화된 정당으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미 고씨와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입당했고, 윤 전 대통령 변호인 김계리 변호사도 곧 입당 심사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의힘은 거를 타선이 없는 정당이 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내보낼 것”이라는 예측은 “한 전 대표에겐 뚜렷한 정치적 기반이 없는 것 아니냐”는 평가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핵심 기반은 팬클럽 ‘위드후니’다. 위드후니는 40대 이상 여성 중심으로 구성돼있고, 활동하는 노년 여성도 다수다. 하지만 선거는 결국 지역 기반으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가장 큰 정치적 약점으로는 지역 기반이 없다는 것이 주로 거론된다. 한 전 대표의 정치 기반에 대해선 ‘중도층·수도권 화이트칼라 계층에서 일정한 지지를 얻고 있다’는 분석이 많았다. 여론조사기관 미디어토마토가 지난 4일 <뉴스토마토> 의뢰로 지난 1일부터 이틀 동안 만 18세 이상 중도 성향을 지닌 전국 18세 이상 남녀 51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15%는 보수 진영을 이끌면 가장 두려운 상대로 한 전 대표를 지목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가 중도층을 국민의힘으로 유도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그 객관적 지표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총선을 지휘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108석만 겨우 건지는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를 묶어 ‘이조심판론’을 주장하면서 “야당이 2/3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일각에선 “선거에서 이기려면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을 잡아야 하는데, 왜 안 하느냐”며 비판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서울 전체 48석 중 11석을 차지했고, 인천·경기 60석 중 6석만을 차지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한 전 대표가 수도권·중도층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총선 결과”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중도층 영향력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일각에서 주장했던 ‘장·한·석(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성립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 이유도 한 전 대표였다. 장 대표는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대한 표현에 특별히 문제 삼지 않겠다”면서도 “당내 인사와 어떻게 정치를 풀어가느냐는 문제에 왜 연대란 이름을 붙이는 건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당내 인사’도 한 전 대표를 뜻한다. 따라서 장 대표의 지난 2일 발언한 “당내 통합 걸림돌을 제거해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에서 ‘걸림돌’이 한 대표라면, ‘통합’ 범위엔 개혁신당과의 연대가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지난달부터 통일교 특검법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장 대표도 “자강을 논하는 단계에서 연대를 논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면서도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개혁신당은 이준석 대표가 국민의힘 소속이었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때문에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은 후 탈당해 창당됐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당시 과정에서 쌓인 앙금을 잊지 않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이후 자멸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축출한 후 강경 보수 세력을 당내 세력화해 ‘자강’을 이룬 후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나설 가능성을 제기한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6월 대선에서 ▲서울 41.55% ▲경기 37.95% ▲인천 38.44% 등을 득표했다. 약 12% 이상의 부족분을 중도층으로부터 얻어와야 한단 사실을 모를 가능성은 낮다. 당시 이 대표는 ▲서울 9.67% ▲경기 8.84% ▲인천 8.74% 등 득표했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개혁보수·중도 제3지대에 두텁게 포진해 있다. 국민의힘으로선 개혁신당이 확보한 8~9%의 지지가 필요하다. 중도층의 지지를 얻는 게 확실한지 아직 선거에서 검증되지 않은 한 전 대표와 달리 이 대표는 대통령선거에서 거둔 실적이 뚜렷하다. 장 대표는 “국민의힘 최대 아킬레스건인 중도·수도권 공략을 개혁신당과 이 대표의 힘을 빌려 해결하겠다”고 생각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수도권 영향력 의문…이준석으로 대체? 지방선거 앞두고 신당 창당 가능할지 의문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중징계하거나 한 전 대표가 탈당하면, 한 전 대표의 운신 폭은 매우 좁아질 수도 있다. 정치의 중심은 국회라서 총선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둬야 정치적 영향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는 6월 지방선거는 말 그대로 ‘지방선거’다. 함께 진행되는 재보궐선거는 현시점에선 ▲인천 계양을 ▲충남 아산을 ▲경기 평택을 ▲전북 군산·김제·부안갑 등 4곳이 확정됐다. 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의 지역구도 가능성이 있지만, 후보로 확정된 의원만 사퇴해 재보선을 치른다. 그 외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이 진행 중이라서 재보선을 치를 가능성이 있는 지역구로는 3곳이 거론된다. 이 정도 규모의 선거에서의 선전을 바라보고 창당하는 것은 모험에 가까우며, 동력이 얼마나 될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의원들이 모두 한 전 대표의 정치 행보에 무조건 동참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지역 구도가 특히 큰 힘을 발휘하는 한국 선거에서 각각 호남·영남을 지역 기반으로 둔 민주당·국민의힘과 달리 한 전 대표는 독자적인 지역 기반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그와 비슷한 이 대표도 젊은 유권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데다 민주당·국민의힘에서도 모두 후보를 공천한 경기 화성을에서 3자 구도를 만들어 승리했다. 특히 지방선거·재보선은 대선·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은 만큼 보수성이 강하며 그만큼 바람을 일으키기도 어렵다.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설 가능성이 크지만, 신당 창당은 동사·벼랑 끝에 서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한 전 대표의 절정은 12·3 비상계엄 사태였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계파 소속 의원들과 함께 국회에 진입해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이 숙청을 시도하던 반대파 중 1명이 됐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절정은 여기서 끝이었다. “한 전 대표가 가족 관리에 실패했다”는 취지의 당원 게시판 의혹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전 한 전 대표를 서서히 옥죄고 있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발생 이후 한 전 대표는 비상할 수 있었다. 그는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와 ‘총리·여당 당정 협력 담화’ 형식의 일명 ‘한덕수·한동훈 체제’ 성립을 시도했다. 한덕수·한동훈 체제는 각계각층의 강한 비난 때문에 실제로 성립되진 못했다. 이후 한 전 대표는 친한계 일원이란 평가를 받는 진종오 의원을 포함한 최고위원 4명이 전원 사퇴해 지도부가 붕괴하는 상황을 겪었다. 한때 핵심 측근이었던 장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로서 한 전 대표 퇴출을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현 상황으로 이어진 한 전 대표 최대의 패착은 2024년 12월11일 장 의원이 입을 굳게 다물고 당 대표실을 나갈 때, 문을 잡고 미소 지었던 순간이다. 폭발까지 도화선은? 폭발이 일어날 때 트리거는 하나다. 하지만 폭탄까지 가는 도화선은 여러개일 수도 있다. 트리거가 터져 폭발이 일어나면, 폭발까지 가는 도화선도 모두 다 터진다. 장 대표는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재보선을 앞두고 그 트리거를 만지고 있다. 트리거가 당겨지면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선다. 한 전 대표는 과연 광야에 서게 될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