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3세시대 개막 효성 조현준 회장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07.24 10:27:21
  • 호수 11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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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끌고 동생은 밀고 ‘재도약’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조석래 전 효성그룹 회장이 고령과 건강상의 이유로 경영일선서 하차했다. 1981년 그룹 회장에 취임한 조 전 회장이 36년 만에 물러난 것. 효성그룹은 조 전 회장의 장남인 조현준 회장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게 됐다. 
 

지난 14일 조석래 전 회장이 대표이사직서 사임했다. 조 전 회장은 지난해 조현준 사장을 회장으로 승진시킨 뒤 회장직서 물러나면서도 대표이사직을 유지해왔다.

아버지 사임
큰아들 선임

효성 관계자는 “조 전 회장이 장남 조현준 회장 중심의 경영체제가 안정적으로 구축됐다고 판단하고 경영 일선서 물러나기로 결정했다”며 “향후 경영 전반에 대한 자문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조 전 회장은 그룹 경영 일선에선 물러나지만 건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봉사활동이나 사회공헌활동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효성은 본격적인 3세 경영에 닻을 올리게 됐다. 그동안 효성은 조홍제 창업주와 그의 아들인 조석래 전 회장, 손자 조현준 회장이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조 창업주는 1906년 5월20일 경남 함안군 군북면 동촌리 신창부락서 출생했다. 조부의 훈도로 소년 시절을 보냈다. 17세까지 5년 동안 종조부인 서천 선생을 스승으로 섬겼다. 이후 1922년 4월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는데, 재학 중이던 1926년 6·10 만세운동 주모자의 한 사람으로 기소돼 옥고를 치렀다.


그 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1929년 호세이 대학의 독일경제학과에 입학한 뒤, 1935년에 졸업하여 귀국했다. 1948년,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과 공동 출자로 삼성물산공사를 창립했다. 1962년 9월, 15년간에 걸친 이 회장과 동업 관계를 청산하고, 효성물산 주식회사로 독자사업을 시작했다. 

1966년 한국타이어, 대전피혁 등을 인수했다. 이 때부터 장남 조 전 회장이 사실상 효성그룹을 이어받는다. 

조 전 회장은 1935년 11월 19일 경상남도 함안군서 출생했다. 이후 군북국민학교를 다니다 5학년때 서울 재동국민학교로 전학했다. 경기중학교를 거쳐 경기고등학교에 진학했다. 1학년을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55년 일본 히비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와세다 대학에 진학한다. 

조석래 36년 잡았던 지휘봉 내려놔
두 아들 장남·3남 형제경영 탄력

이후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학교에 입학, 화학공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66년 박사 위 과정을 준비 중이던 조 전 회장은 아버지 부름을 받고 귀국, 기업 경영에 참여하게 된다. 이후, 귀국한 그해부터 동양나이론 울산공장 건설을 추진하며, 1973년에 동양폴리에스터를 설립했다.

1970년대에 들어 대한민국의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에 부응하며, 민간기업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기술 개발에 많은 신경을 썼다. 특히 섬유화학 분야서 신소재와 응용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면서 종합 신소재 기업을 탄생시켰다.

1975년 한영중공업을 인수, 효성중공업으로 새롭게 출범시켜 중전기기와 산업기계를 국산화하고 양산하도록 했다. 1980년대에는 화섬산업서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석유화학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하게 된다. 


이와 함께 금융자동화기기와 중대형 컴퓨터를 비롯한 하드웨어 사업과 소프트웨어 개발 사업에 참여하여, 정보통신 분야에 진출하였다.

1997년 12월 효성그룹의 전 조직을 퍼포먼스 유니트(Performance Unit) 체제로 바꾸고 PU별 책임 경영체제를 구축했다. 한편, 1998년 11월에는 효성T&C, 효성생활산업, 효성중공업, 효성물산 등 주력 4사를 합병하고 비핵심 계열사 및 사업부문을 매각하는 등 혁신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조 전 회장은 효성을 국내 5대 그룹으로까지 끌어올린다. 하지만 주력 사업인 섬유 산업 자체가 사양 산업화 되면서 효성의 사세는 기울기 시작했다. 이후 외환위기가 닥치며 그룹의 생존을 위해 계열사들을 분리해 내면서 한 때 40대 그룹 밖으로 밀려났다. 현재는 타이어코드, 방탄섬유, 스판덱스 등 특수목적 섬유 방면서의 절치부심으로 다시 23위 수준까지 부상해, 20대 그룹 재진입을 목전에 둔 상황이다.

기업인 51년
전경련 회장도  

조 전 회장은 재계 활동에도 적극 나섰다. 2002년 5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서 개최된 태평양경제협의회 총회서 회장에 선임돼 활동했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을 지냈고, 한미재계회의 위원장(2000∼2009년)과 한일경제협회장(2005∼2014년)을 역임했다. 

전경련 회장을 지낼 땐 정부에 규제개혁을 요구하며 기업들의 일자리 창출과 투자활성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 전 회장이 대표이사직에 내려놓은 이유로는 우선 고령과 건강문제가 꼽힌다. 1935년 생으로 올해로 만 82세의 나이인 데다, 수년 전 담낭암과 전립선암 발병으로 최근까지 병원 치료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조 전 회장이 사임한 뒤 조현준 회장이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효성은 기존 김규영 대표이사 체제서 조현준·김규영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변경했다고 지난 20일 공시했다. 그간 효성 대표이사는 조 회장·이상운 부회장 체제를 유지하다가 지난 4월 이상운 부회장이 대표이사직서 사임했다. 

이후 김규영 사장이 이 부회장을 대신해 각자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이번 선임으로 효성은 기존 조석래·이상운 체제서 조현준·김규영 체제로 세대교체를 완료했다. 

효성 관계자는 “조 회장의 대표이사 선임은 효성이 최근 2년 간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는 성과를 거두는 등 체제가 안정화된 상황서 책임경영을 강화하겠다는 차원서 이뤄진 것”이라며 “조 회장은 성과중심의 조직체계 개편, 경영시스템 개선, 스판덱스·타이어코드·중공업·정보통신 등 주력사업 부문의 글로벌 시장지배력을 확대하는 등 회사를 성장시켜 왔다”고 설명했다.

앞서 조 회장은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면서 경영권 강화에 나섰다. 조 회장이 지난 7일과 10일 각각 효성 주식을 1878주, 9182주를 장내 매수했다. 지분율은 지난 3월30일 14.20%(498만6629주)서 7월 13일 14.23%(499만7689주)로 0.03%포인트(1만1060주) 늘었다. 조 전 회장도 같은 기간 1만1811주를 장내매수하면서 지분율을 10.15%서 10.18%로 0.03%포인트 늘렸다.
 


재계 안팎에서는 효성이 지난해 창사 이후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원을 돌파하면서 조 회장의 경영 기반이 안정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 회장은 최근 인도의 경제 정책 수장인 아룬 자이틀리(Arun Jaitley) 인도 재무장관 겸 국방부 장관과 만나는 등 인도 시장 진출에도 속도를 높이고 있다.

앞서 지난 1월 조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조 전 회장의 기술중심 경영철학을 이어받고 소통과 경청을 통해 항상 승리하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조 회장은 1968년 1월16일 경남 함안군서 태어났다. 조 창업주 손자이자 조 전 회장의 장남이다. 송광자 경운박물관장이 모친이다. 동생으로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과 조현상 효성 부사장이 있다.

1980년 경기초등학교, 1983년 보성중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예일대학교 정치학과와 게이오대학교 법학대학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2년 일본 도쿄의 미쓰비시 상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에너지부와 원유수입부 등에서 근무했다.

1995년부터 모건스탠리 도쿄지점서 일했다. 1997년 효성T&C(현 효성) 경영기획팀 부장으로 입사해 효성T&C와 효성물산, 효성생활산업, 효성중공업을 합병하는 작업에 관여했다. 1998년 효성 전략본부 경영혁신팀 이사로 승진했다. 2000년 상무, 2001년 전무를 거쳤다. 

이때 이희상 동아원그룹 회장의 삼녀 이미경씨와 혼인했다. 이씨와 사이에 2002년 장녀 조인영, 2006년 차녀 조인서가 태어났다.


2003년 부사장에 올랐다. 당시 전략본부장으로서 중공업 사업을 육성하기 위해 대우종합기계와 대우정밀 인수를 추진했으나 실패했다. 대우종기(현 두산인프라코어)는 두산중공업에 밀렸고 대우정밀은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으나 채권단과 뜻이 맞지 않아 결렬됐다.

2005년 신사업을 발굴하는 역할을 조현상 부사장(당시 전무)에게 넘겨주고 무역PG장으로 옮겨 효성의 의사결정기구인 ‘경영회의’에 참여하게 됐다. 2007년에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섬유PG장을 겸했다. 이후 2011년부터 전략본부장을, 2012년부터 정보통신PG장으로 근무했다.

2008년 대주주로 있는 갤럭시아커뮤니케이션즈, 효성ITX, 갤럭시아일렉트로닉스 등을 통해 제이슨골프, 럭스맥스, 럭스맥스네트워크, 인포허브, 크레스트인베스트먼트, 바로비전 등을 공격적으로 인수합병하며 효성그룹 내 갤럭시아소그룹을 만들었다. 트리니티에셋매니지먼트를 통해 IB스포츠(현 갤럭시아SM)에도 투자했다.

2009년 효성 계열사인 에피플러스(현 갤럭시아포토닉스)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지분율 확대 
본격적 행보 

재계에선 조 회장에 대해 탁월한 글로벌 감각을 지닌 준비된 경영인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폭넓은 해외경험과 창의적인 마인드를 갖춘 재계의 대표적인 글로벌인재로 인정받았다. 특히 능통한 3개 국어에 능통해 다양한 국가의 인사들과 네트워크 구축했으며 미국과 일본 등 기업서 근무하며 글로벌 감각을 쌓았다. 

또한 조 회장이 다양한 인맥과 경험 덕분에 전경련 회장을 지낸 아버지만큼이나 글로벌 감각과 경험, 인맥을 갖춘 차세대 리더로 꼽히고 있다. 조 회장은 2014년 첫 외부활동으로 한일경제협회 회장을 역임한 아버지에 이어 한일경제협회 회장으로 나서기도 했다. 

2015년 5월에는 한일 주요경제인들의 모임인 ‘한일경제인회의’에 패널로 나서 ‘미래세대가 바라본 한일 미래상과 협력방안’을 발표한 바 있는데, ICT산업 분야서의 협력과 한국의 창조경제에 대한 투자 등을 제안하기도 했다. 
 

근래에는 효성의 성장을 이끌며 경영능력도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효성은 지난해 매출 12조4585억원, 영업이익 9502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가운데 올해 영업이익은 1조원을 달성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는 섬유, 중공업, 정보통신, 건설 등 핵심사업서 지속적인 수익 창출을 위해 시장 발굴 및 신규고객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는 조 회장의 효과가 긍정적으로 나타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조 회장은 재계서도 유명한 스포츠 마니아로 대학시절까지는 야구, 미식축구, 스키 대표선수를 지냈을 정도다. 조 회장은 야구와 경영이 비슷한 점이 많다며 야구경영론을 앞세우기도 했다. 

경영체제 안정적으로 구축
그룹 내부도 개편될 전망

조 회장과 형제경영을 함께 할 조 전 회장의 3남 조현상 효성 사장에 대해서도 시선이 쏠리고 있다. 조 사장은 올해 정기임원 인사를 통해 산업자재PG장 겸 전략본부장을 맡아 형 조 회장을 보좌하며 회사를 이끌고 있다.

조 사장은 경복고와 연세대를 거쳐 미국 브라운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지난 1996년 베인 앤 컴퍼니 서울 지사, 동경 지사서 컨설턴트로 근무, 실무경험을 쌓았다. 조 사장은 1998년 조 전 회장의 부름으로 사내컨설턴트 역할을 맡아 구조조정에 대한 자문 역할로 경영에 첫 참여했다. 이후 일본 NTT 커뮤니케이션사의 요청으로 NTT에 합류, NTT 유무선 관련 전략 프로젝트, 법인 영업 등을 수행했다.

효성에 2000년 재입사한 조 사장은 산업자재PG장 겸 전략본부의 임원으로 효성을 폴리에스터 타이어코드, 시트벨트용 원사, 에어백용 원단부문 세계 시장점유율 1위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조 사장은 효성의 세계 1위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2000년대부터 글로벌 타이어업체들과의 M&A를 본격화 했다. '협상의 달인'이라 불리며 그룹의 신사업 및 대형 M&A를 주도해 나감으로써 산업자재PG의 성장을 이끌어 왔다. 

조 사장은 2002년 세계 최대 타이어 업체인 미국 미쉐린과 총 3억5000만달러 규모의 타이어코드 장기공급 계약과 미국 버지니아 주 타이어코드 공장을 인수하는 계약을 동시에 체결했다. 이후 미쉐린, 굿이어 등과 연이은 M&A를 성사시키며 생산거점 확대 및 판매확대 기반을 마련했다. 2005년에는 미쉐린과 10년간 총 6억5000만달러 규모의 스틸코드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조 사장은 주요 M&A를 통해 주주, 고객, 임직원 등 이해관계자의 비즈니스 가치 극대화 추구를 이끈 역량을 인정받아 2007년 세계경제포럼이 선정하는 '차세대 글로벌리더(YGL)'로 선정됐다. 2009년에는 세계경제포럼 글로벌 아젠다위원회 멤버로서 아젠다 선정 작업에 참여하는 등 세계경제포럼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긍정적인 평가
사상 최대 실적

 
또한 미국과 아시아의 이해증진을 목적으로 창설된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대표적 포럼인 아시아 소사이어티의 '아시아 21 글로벌 영리더'에 선정됐다. 한·중·일 3국 외교부가 선정한 ‘한·중·일 차세대지도자’로 뽑히는 등 차세대 리더로 인정받으며 주목 받고 있다. 조 사장의 활약으로 굿이어와의 M&A를 성사시킬 수 있었고, 장기공급 계약으로 타이어보강재PU가 세계 1위의 위치를 공고히 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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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윤석열로 연결되는 SM그룹 수상한 동업 추적

[단독] 윤석열로 연결되는 SM그룹 수상한 동업 추적

홀로 다 먹으려다 계획 변경 사전작업 끝나자 숟가락 얹기 ‘알박기’ 핑계로 어쩔 수 없었다지만… 뒤편에서 아른거리는 거물급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SM그룹과 윤석열 조력자의 동생이 운영하는 회사가 진행한 수상한 동업이 뒤늦게 드러났다. 단독으로 처리해도 될 법한 프로젝트를 손보면서까지 제3자를 끌어들인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 풀리지 않고 있다. ‘알박기’ 때문이라는 해명보다 유력 인사에게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송정KTX우방아이유쉘아파트’ 개발 사업은 ‘광주 광산구 도산동 989-21번지 일원(대지면적 3만5114.6㎡)’에 591세대 규모의 주거 단지를 조성하는 프로젝트였다. SM그룹 산하 건설 계열사인 ‘우방건설(현 동아건설산업)’은 2016년 10월7일 사업계획 승인을 받고 시행·시공 전 과정을 도맡는 방식으로 진행을 예고했다. 재주 부리니 이득은 따로 삽을 뜨는 일만 남았던 프로젝트는 사업계획이 통과된 지 48일 만인 당해 11월24일에 생각지 못한 변곡점을 맞았다. 이 무렵 광주 광산구청은 ‘주택건설사업계획 변경승인 고시’를 통해 사업주체에 ‘도림티앤씨’가 추가됐음을 알렸다. 우방건설이 단독 진행 계획을 접고, 뒤늦게 제3자를 끌어들인 모양새였다. 사실 SM그룹 입장에서는 공동 시행을 반길 만한 이유가 전혀 없었다. 도림티앤씨를 사업주체에 추가시키면 개발에 따른 차익이 당초 예상보다 훨씬 작아진다는 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송정KTX우방아이유쉘아파트 개발 사업은 민간개발이라는 특성상 지주작업부터 인·허가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사업자가 책임지는 구조였다.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요구하는 대신 사업 종료 시 차익 극대화를 기대해 봄 직했다. 도림티앤씨가 신뢰할 만한 업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도 우방건설의 결정을 쉽사리 납득할 수 없게 만들었다. 김동호씨가 1999년 설립한 도림티앤씨는 송정KTX우방아이유쉘아파트 개발 사업이 추진될 당시만 해도 관련 분야에서 별다른 존재감이 없던 곳이다. 이전까지는 정보통신공사업에 주력했고, 2016년 초 부동산 개발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우방건설은 송정KTX우방아이유쉘아파트 개발 사업 관련 지분을 70% 대 30%로 분할하는 데 동의했다. 100%를 얻고자 했던 밑그림을 접고, 30%를 내놓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방건설은 엄청난 번거로움을 무릅썼다. 도산동 989-21번지 일원을 대상으로 폐쇄 부동산 등기를 확인한 결과, 우방건설은 사업계획 승인(2016년 10월7일) 이전까지 필지 30곳 이상을 단독으로 확보한 상태였다.그러나 우방건설이 선점한 필지들은 변경승인 고시(2016년 11월24일)를 목전에 둔 시점에 우방건설 ‘7’, 도림티앤씨 ‘3’으로 소유권 비율이 일제히 분할 조정됐다. 한번에 끝날 일을 두 번에 걸쳐 급하게 처리한 양상이었다. 여기저기 이상한 흔적 SM그룹은 지주작업에 써야 할 비용을 대여하는 불필요함마저 감내했다. 도림티앤씨가 개발 사업에 필요한 필지를 사들이는 데 투입했던 금액은 100억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이는 우방건설의 2016년 감사보고서 기재된 건설용지 241억원을 지분율 70%로 반영해 도출한 값이다. 정작 도림티앤씨는 무자본에 가까운 상태에서 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볼 법한 상황이었다. 도림티앤씨의 2016년 감사보고서에는 제1금융에서 차입한 77억3900만원과 우방건설에서 빌린 56억원이 ‘토지분양대금’으로 기재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SM그룹 측은 사업 지연을 우려해 자금을 대여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SM그룹 관계자는 “공동 사업자의 자금 부족으로 토지 매입이 지연돼 일부 자금을 단기 대여한 것”이라며 “분양 후 원금과 이자를 모두 받았다”고 밝혔다. 의문점을 남긴 것과 별개로 송정KTX우방아이유쉘아파트 개발 사업은 별 탈 없이 끝맺음했다. 우방건설이 2017년 6월 동아건설산업과 합병하면서 사업주체가 기존 ‘우방건설·도림티앤씨’에서 ‘동아건설산업·도림티앤씨’로 변경됐지만, 프로젝트는 당초 계획했던 2019년 2월에 맞춰 완료됐다. 물론 동아건설산업 역시 SM그룹의 건설 계열사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개발 사업으로 양측이 거둔 분양매출은 총 1674억원으로 추산된다. 도림티앤씨는 2019년 감사보고서에 송정KTX우방아이유쉘아파트 개발 사업에 의한 누적분양매출을 502억원으로 기재했다. 해당 사업에서 도림티앤씨의 지분율이 30%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동아건설산업이 거둔 분양매출이 1171억원임을 유추할 수 있다. 특히 도림티앤씨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유입된 분양매출에 힘입어 매출 규모를 비약적으로 끌어올렸다. 2016년 140억원이었던 도림티앤씨 매출은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이듬해 257억원으로 껑충 뛴 데 이어, 2018년에는 433억원으로 치솟았다. 실질적으로 남긴 금액을 의미하는 분양수익 역시 꽤나 쏠쏠했다. 동아건설산업의 2019년 감사보고서를 보면 분양매출에서 분양원가(859억원)를 제외한 총 분양이익은 312억원으로 기재돼 있다. 해당 금액은 동아건설산업의 지분율 70%가 적용된 값이다. 이를 토대로 계산한 동아건설산업과 도림티앤씨의 합산 분양수익은 446억원, 도림티앤씨 몫으로 남겨진 분양수익은 134억원으로 추산된다. 결국 SM그룹은 단독으로 진행했다면 450억원 가까이 남길 수 있었던 사업에 도림티앤씨를 참여시킴으로써 130억원가량을 날린 모습이다. 달리 말하면 도림티앤씨는 돈을 빌려주고, 지주작업을 주도적으로 처리해 준 SM그룹 덕분에 2년여 만에 130억원대 이익을 남겼다는 뜻이다. 어렴풋하게 드러난 배경 공교롭게도 SM그룹이 도림티앤씨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속내는 최근에서야 어렴풋하게 드러난 상황이다. 도림티앤씨 설립자와 핏줄로 이어진 유력 인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림티앤씨는 김동호씨의 친인척이 운영하는 가족회사의 형상을 띠고 있다. 주주 구성을 보면 배찬호 도림티앤씨 대표가 지분 25%를 보유한 최대주주, 배영이씨는 지분 20%로 2대 주주다. 배찬호 대표와 배영이씨는 각각 도림티앤씨 설립자인 김동호씨의 처남, 부인이다. 김동호씨의 이력에서 눈에 띄는 특징은 과거 SM그룹에 몸담았다는 점이다. 법인 등기 확인 결과 김동호씨는 SM그룹 계열사인 한통엔지니어링 이사진 명단에 등재됐던 기록이 존재한다. 1969년 설립된 한통엔지니어링은 전기통신공사업을 영위해 온 법인으로, 2007년 6월 SM그룹 계열에 편입됐다. 김동호씨는 우오현 SM그룹 회장의 100% 개인회사였던 한통엔지니어링에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대표이사를 맡았다. 한때나마 SM그룹 오너의 측근이었다고 해석해도 무리는 아니다. 또 다른 SM그룹 계열사인 우방산업에서도 비슷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우방산업은 ㈜삼라에서 지분 99.4%를 보유했던 건설 계열사로, 김동호씨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사내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SM그룹 측은 송정KTX우방아이유쉘아파트 개발 사업에 도림티앤씨가 참여하기에 앞서 김동호씨와 도림티앤씨의 연관성을 파악했다고 인정했다. 다만 도림티앤씨의 ‘알박기’를 사업에 참여시킨 이유라고 해명했다. SM그룹 관계자는 “사업부지 내 도림티앤씨 소유의 필지가 섞여 있었고, 사업 추진을 위해 필지 매입을 시도했지만 도림티앤씨가 끝내 거절했다”며 “부득이하게 사업 진행을 위해 공동 사업으로 추진한 것”이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점은 김동호씨가 단순히 SM그룹과의 접점만 있던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취재 결과 김동호씨는 한국전력 역대 수장 중 최초의 정치인 출신인 김동철 현 한국전력 사장의 친동생으로 확인됐다. 김동철 사장은 2023년 9월 한국전력 부임 전까지만 해도 거물급 정치인으로 호명되는 일이 더 많았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그는 20대까지 내리 4선에 성공했으며, 20대 대선이 끝난 직후인 2022년 3월에는 윤석열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당선인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눈여겨볼 부분은 송정KTX우방아이유쉘아파트가 자리 잡은 광주 도산동은 김동철 사장이 4선 국회의원으로 활동할 당시 지역구였던 ‘광주 광산구 갑’에 포함된다는 점이다. 김동철 사장은 개발 사업에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구청 및 지방의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상을 지녔던 셈이다. 게다가 김동철 사장은 2015년 11월부터 2016년 5월까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또한 2016년 국토교통부가 광주 광산구 송정역 일대를 ‘지역경제 거점형 투자선도 지구’로 선정하는 과정에서 일익을 담당했다는 평가는 받는 등 지역 사회에서 개발 정책 및 투자 유치 활동을 주도한 공로를 인정받기도 했다. 만약 SM그룹이 김동철 사장의 정치적 영향력을 활용한다는 취지로 도림티앤씨를 끌어들였다면 심각성은 배가 될 수 있다. 해당 행위가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에 저촉될 여지를 따져 볼 필요성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SM그룹은 김동철 사장과 김동호씨의 관계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SM그룹 관계자는 “김동호씨와 김동철 사장이 형제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며 “김동호씨는 SM그룹 계열사 대표를 퇴사한 이후 개인 사업을 운영했고, 그의 개인 가족관계에 대해서는 별도로 언급할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가려진 딴 생각 SM그룹이 송정KTX우방아이유쉘아파트에서 700m 남짓 떨어진 광주 광산구 도산동 소재 ‘도산우방아이유쉘아파트’와 관련해 광주지방검찰청 반부패수사부의 표적이 된 전례도 찜찜한 구석이다. SM우방이 시공한 해당 아파트는 2016년 12월 준공해 2022년 말 분양 전환했는데, 검찰은 분양 전환 과정에서 돈의 흐름에 주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계기로 검찰은 지난해 10월 SM그룹 본사, SM우방 대구 본사, 광주 광산구청 등을 대상으로 전방위 수사를 진행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