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면 더 볼만한 풍경·소리 ④안동 농암종택

뒷모습이 아름다운 선비를 찾아서

 

7월 장마철에는 우리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안동 농암종택으로 떠나보면 어떨까. 구름이 내려앉은 청량산 줄기가 수묵화를 그려내고, 낙동강 물소리는 더욱 세차다. 농암 이현보 선생의 손때가 묻은 긍구당에서 하룻밤 묵어보자. 넓은 마루에 앉아 빗소리, 강물 소리, 새소리에 귀 기울이면 몸과 마음이 깨끗해진다. 

 

농암 이현보는 조선 중기 때 문신이자 시조 작가다. 1498년(연산군 4) 식년 문과에 급제하고, 32세에 벼슬길에 올라 예문관검열, 춘추관기사, 예문관봉고 등을 거쳐 38세에 사간원정언이 된다. 

그러나 서연관의 비행을 논하다가 안동에 유배되고, 나중에 중종반정으로 복직돼 30년 이상 조정을 위해 일한다. 1542년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시를 벗삼아 지낸다. 

전통이 살아 숨쉬는 곳

조선시대 자연을 노래한 대표적인 문인으로, 국문학 사상 강호 시조 작가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작품으로 전해오는 ‘어부가’를 장가 9장, 단가 5장으로 고쳐 지은 것과 ‘효빈가’ ‘농암가’ ‘생일가’ 등 시조 8수가 남았다. 
 

농암종택에 도착하니 비가 그쳤다. 단비를 뿌린 구름은 청량산으로 느릿느릿 걸어간다. 비 오는 날 한옥의 운치를 즐기려는 계획은 살짝 어긋났지만, 그래도 촉촉한 풍경이 반갑다. 무거운 구름이 내려앉은 청량산 줄기는 농암종택의 한옥과 어우러져 그윽한 풍경을 빚어낸다. 
 

농암 선생의 17대 종손 이성원씨가 긍구당으로 안내한다. 긍구당(肯構堂)은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농암종택의 별채로 당호는 ‘조상의 유업을 길이 잇다’라는 뜻이다. 고려 때 농암 선생의 고조부가 지은 소박한 건물이다. 

마루에 오르니 낙동강 물소리가 시원하다. 나무에 가려 낙동강은 보이지 않지만 소리 덕분에 유장하게 흐르는 강줄기가 떠오른다. 방에는 색이 고운 원앙금침이 깔렸다.
 

“여기서는 산과 강을 함께 봐야 해요. 건물만 보고 가는 분이 있는데, 그러면 농암종택을 모르는 거야. 산은 높지도 낮지도 않고, 강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아요.”
 

이씨를 따라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본다. 능선과 한옥의 지붕이 부드럽게 이어진다. 과연! 고개가 끄덕여진다. 농암종택이 본래 자리했던 도산서원 앞 분천마을은 1976년 안동댐 건설로 수몰됐다. 

1996년 이씨가 이곳에 터를 잡고, 10여년 동안 여기저기 흩어진 종택과 사당, 긍구당, 분강서원 등 문화재를 한데 모아 지금의 농암종택을 만들었다. 종택을 개방한 건 이씨의 결정이다. 안동의 어느 집안도 해본 적 없는 일이다. 
 

이씨가 애일당과 강각에 다녀오라며 열쇠를 건넨다. 긍구당서 나오면 농암 선생을 모신 분강서원이 있고, 좀 더 강변으로 가면 건물 두 채가 보인다. 앞에 있는 애일당은 구순이 넘은 부친을 위해 농암이 지은 건물이다. 

부친이 늙어가는 것을 아쉬워하며 ‘하루하루를 사랑한다’는 뜻에서 애일당(愛日堂)이라 이름 지었다. 선생은 부친을 포함한 노인 아홉 분을 모시고 어린아이처럼 색동옷을 입고 춤추며 즐겁게 해드렸다고 한다. 
 

애일당 뒤에 자리한 강각에 오르니 세찬 물소리와 함께 낙동강과 벽련암이 펼쳐진다. 강각(江閣) 앞에서 강물은 여울을 만나기에 물소리가 클 수밖에 없다. 물소리를 듣는 수성각(水聲閣)이란 이름이 더 어울려 보인다. 마루에 놓인 의자에 앉으면 시간이 느릿느릿 흘러가는 느낌이다. 
 

농암은 뒷모습이 아름다운 선비로 조선 시대 유일하게 은퇴식을 하고 정계서 물러났다. 임금은 금포와 금서대를 하사했고 퇴계 이황은 전별시를 지어 선물했다. 한강까지 이어진 행차를 보고 도성 백성들이 담장처럼 둘러섰다고 한다. 

농암이 고향으로 돌아와 강각서 읊은 시가 ‘어부가’다. 농암은 부모님을 공경하며 자연서 유유자적 지내고 싶어 임금의 계속되는 상경 명령에도 끝내 응하지 않았다. 나라에서는 종일품 숭정대부의 품계를 내려 예우했다. 명예를 포기해 더 큰 명예를 얻은 셈이다. 
 

강각서 강변으로 내려오면 퇴계오솔길(예던길)이 이어진다. 퇴계가 집에서 청량산 갈 때 걷던 길이다. 한동안 낙동강을 따라 조붓한 길이 이어진다. 15분쯤 지나 ‘공룡 발자국’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발길을 돌리는 게 적당하다. 

긍구당에 오니 저물 무렵이다. 마당을 서성이며 땅거미가 풍경을 집어삼키는 걸 바라본다. 산이 검게 변하고, 구름은 비명처럼 푸른빛을 토하며 서서히 블랙홀 같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긍구당 마루에 누워 어둠 저편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 개울물 소리가 공처럼 튄다. 소쩍새가 운다. 쏙독새는 어둠을 쫀다. 호랑지빠귀는 밤하늘에 구슬프게 휘파람을 분다. 
 

다음 날 아침, 새소리에 눈을 떴다. 강각 앞의 강변을 산책한다. 간밤에 비가 그치고 세수한 듯 맑은 하늘이 나왔다. 강가서 연방 물수제비를 떠본다. 이성원 씨가 식사하라고 부른다. 이성원 씨 부부와 오붓하게 담소하며 아침을 먹는 시간도 농암종택의 큰 매력이다. 

청량산·낙동강이 어우러진 농암종택
비 오는 날, 한옥 운치와 함께 금상첨화

농암종택서 나와 2km쯤 가면 강 건너편으로 작은 정자가 있다. 정자 앞으로 미끈한 소나무 한 그루가 강물에 비친 제 얼굴을 본다. 고산정은 퇴계의 제자 금난수가 1560년대에 지은 정자로 주변 경관이 빼어나 농암과 퇴계를 비롯한 선비들이 즐겨 찾았다. 
 

가송리서 남쪽으로 20분쯤 달리면 안동군자마을에 닿는다. 주차장에서 바라보면 산기슭 경사면에 고택이 옹기종기 모였고, 뒤로 미끈한 소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싼 풍경이 고풍스럽다. 농암종택과 더불어 하룻밤 묵어가기 좋은 고택이다. 
 

군자마을은 조선 초기부터 광산 김씨 예안파가 약 20대에 걸쳐 600여년 동안 살아온 외내에 있던 문화재와 고가를 옮겨다 세운 마을이다. 오천리가 군자마을이 된 것은 입향조인 김효로의 종손과 외손 일곱 명이 ‘오천 칠군자’라 불렸기 때문이다. 

대표적 인물이 퇴계의 수제자 후조당 김부필이다. 군자마을 가장 높은 곳에 후조당의 사랑채와 별당이 자리한다. 퇴계가 애제자를 위해 쓴 후조당 현판이 별당 대청에 걸렸다. 
 

사랑채와 별당을 구경했으면 탁청정을 둘러볼 차례다. 탁청정은 1541년 김유가 지은 가옥에 딸린 정자로, 영남 지방의 개인 정자 가운데 으뜸으로 꼽힌다. 정면 3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이고 명필 한석봉이 쓴 현판이 걸렸다. 탁청정 마루에 앉아 연못과 고택을 바라보는 맛이 일품이다. 
 

군자마을서 나와 안동호를 따라 7분쯤 가면 도산서원 주차장에 닿는다. 도산서원의 건축물은 민가처럼 검소하게 꾸민 것이 특징이다. 서원은 퇴계가 제자를 가르치고 기거한 도산서당 영역과 퇴계 사후에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지은 도산서원 영역으로 나뉜다. 

도산서당은 1561년 퇴계가 직접 설계하고 지은 삼간집이다. 가운데 온돌방은 퇴계가 기거한 완락재, 동쪽의 대청은 암서헌이다. 대청이 좁아 궁여지책으로 평상을 댄 것만 봐도 퇴계의 검소함을 알 수 있다. 

이육사의 삶 ‘이육사문학관’

마지막 여행지는 이육사문학관이다. 육사는 퇴계의 14세손으로 본명은 이원록이다. 육사의 저항성과 문학성은 퇴계의 학통서 이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육사문학관은 대대적 리모델링을 거쳐 올해 2월 재개관했다. 전시관과 영상실, 세미나실 등 복합 시설을 갖췄다. 

동선을 따라가면 이육사의 짧지만 강렬한 생애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육사가 생을 마감한 베이징 감옥을 재현한 방에서는 울컥했다. “내 고장 칠월은 /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그의 대표작 ‘청포도’를 읊조리며 안동 여행을 마무리한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농암종택→고산정→안동군자마을→도산서원→이육사문학관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안동군자마을→고산정→농암종택 
[둘째 날] 농암종택→이육사문학관→도산서원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농암종택 http://www.nongam.com
- 안동군자마을 http://www.gunjari.net
- 도산서원 http://www.dosanseowon.com
- 이육사문학관 http://www.264.or.kr
- 안동관광(안동시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http://www.tourandong.com

문의 전화
- 안동시청 체육관광과 054)840-6391
- 농암종택 054)843-1202
- 안동군자마을 054)852-5414
- 도산서원 054)856-1073
- 이육사문학관 054)852-7337

대중교통 정보
[기차] 청량리-안동, 무궁화호 하루 7회(06:40~21:13) 운행, 약 3시간30분 소요.
* 문의 : 레츠코레일 1544-7788, http://www.letskorail.com 
[버스] 서울-안동, 동서울종합터미널서 하루 32회(06:00~23:00) 운행, 약 2시간50분 소요. 
* 문의 :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http://www.ti21.co.kr

자가운전
중앙고속도로 풍기 IC→소백로→온천로→온혜교차로서 태백·봉화 방면 좌회전→퇴계로→가송길→농암종택

숙박 정보
- 농암종택 : 도산면 가송길, 054)843-1202, http://www.nongam.com(명품고택)
- 안동군자마을 : 와룡면 군자리길, 054)852-5414, 
http://www.gunjari.net(한옥스테이)
- 안동호반자연휴양림 : 도산면 퇴계로, 054)840-8265, 
http://huyang.gb.go.kr 

식당 정보
- 도산대가(안동찜닭·간고등어정식): 도산면 퇴계로, 054)852-6660, http://www.dosandaega.wo.to
- 뉴서울갈비(갈비): 안동시 음식의길, 054)843-1400
- 보문식당(약산채밥상·보리밥): 안동시 번영길, 054)854-6009 
- 까치구멍집(헛제삿밥·한정식): 안동시 석주로, 054)821-1056, http://andongrice.com 

주변 볼거리
경상북도산림과학박물관, 퇴계종택, 안동호반자연휴양림, 유교문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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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학의 교수 수준은 강의의 질과 비례한다. 학교는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상아탑’으로 불리는 대학의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인재 양성, 특히 초등학생을 가르칠 선생님을 배출하는 ‘교대’라면 그 본질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진주교육대학교(이하 진주교대)에서 2020년 시작된 교수 채용 논란이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32년 공립사범학교로 시작해 100여년 동안 초등교육 발전에 힘을 보태 온 학교로서는 불명예스러운 논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진주교대가 마치 ‘제3자’인 것처럼 멀찍이서 논란을 지켜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첫 단추 잘못 끼웠나 2020년 10월 진주교대는 미술교육과, 수학교육과 등에 각 1명씩 총 4명의 교수를 채용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2021년 1학기 임용을 목표로 같은 해 11월부터 채용 절차가 시작됐다. 교육공무원법에 명시된 결격사유가 없어야 한다는 일반 요건과 함께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자격 요건이 붙었다. 전형은 ▲자격 심사 ▲전공 적부 및 전공 심사 ▲경력 심사 ▲면접 심사(심화 과정) ▲면접 심사(최종) 등으로 이뤄졌다. 논란은 미술교육과 교수 채용 과정에서 불거졌다. 진주교대는 채용 계획에서 미술교육과 전공 분야를 ‘도자공예 또는 미술교육(도자공예)’으로 정했다. 도자공예 교수가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어 그 후임자를 뽑기 위한 채용이었다. 문제는 미술교육과에 최종 합격한 A 교수가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A 교수는 진주교대에서 초등교육을 전공(학사)했고, 석사 학위는 초등미술 교육(진주교대), 박사학위는 디자인학(광주대) 전공으로 받았다. 미술교육과 채용에 지원하려면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즉, 도자 관련 전공 박사학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가 자격 요건에 못 미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A 교수의 전공 적부 논란은 면접 심사 과정에서 언급됐다. 면접에 들어간 한 심사위원이 A 교수의 전공이 채용 분야와 맞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면접 심사(5배수) 대상자 명단’ 자료에 따르면 A 교수를 제외한 4명의 지원자는 학사, 석사, 박사 과정 등에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한 사실이 확인된다. 당시 면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미술교육과 B 교수는 “전공 적부와 관련해 다시 심사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재심사가 이뤄지긴 했다”며 “그런데 첫 번째 전공 적부 전형에 참여했던 위원들이 재심사를 담당했다. 결과가 바뀔 리가 있겠나”라고 한탄했다. A 교수는 2021년 2월 최종 임용됐다. A 교수를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쓴 <프리미티비즘의 조형 표현 요소 및 특성을 통한 현대 도자 작품 연구> 논문이 표절 시비에 휘말린 것이다. 광주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밟은 A 교수의 학위 논문이다. 2020년 6월경 논문 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진주교대 교수 채용공고가 뜨기 3~4개월 전이다. 채용 과정에서 전공 적부 논란 임용 이후 추가 문제 제기됐다 2021년 3월, B 교수는 A 교수의 연구 부정행위(표절)를 광주대에 제보했다. A 교수가 해당 논문으로 광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기에 검증도 광주대에서 진행해야 했다. 교육부 훈령 제449호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18조(연구부정행위 검증 절차)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를 검증하려면 예비조사와 본조사, 판정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절차를 총괄하는 게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위한 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대한 심의, 의결 권한을 갖는다. 또 예비조사와 본조사에서 나온 결과를 승인한다. 제보를 받은 광주대는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를 소집했다. 황당한 지점은 광주대에서 A 교수의 논문을 두고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수차례 반복했다는 사실이다. B 교수가 마지막에 나온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결과를 두고 민사소송을 제기한 시점은 2024년 8월로, 처음 제보했던 2021년 3월 이후 무려 3년5개월이나 걸렸다. 그나마도 표절 여부는 여전히 판명 나지 않았다. 교육부의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25조(판정)에 따르면 예비조사 착수 이후 판정까지의 모든 조사는 6개월 이내에 종료해야 한다고 돼있다. 물론 이 기간 안에 조사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연장도 가능하다. 하지만 광주대의 경우는 ‘절차상 하자’가 연이어 발생했다. 제보자나 피조사자 양측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재조사하는 일이 반복됐다. 2021년 8월 광주대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에 대해 만장일치로 표절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 교수에게 의견 진술권을 부여하지 않은 점이 문제로 떠올랐다. 다시 말해 A 교수가 자신의 논문이 표절이 아니라고 반론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다. 결국 모든 조사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2022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재구성됐는데 5월 예비조사와 8월 본조사에서 정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 논문의 총 1234개 문장 중 425개(34.4%)가 표절로 의심되며 ▲특정인의 논문을 몇 페이지에 걸쳐 연속적으로 사용했고 ▲독창적인 부분을 적시해 달라는 요청에 피조사자가 답변을 회피하며 적극적 방어를 하지 않아 비교 대조표를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점 등을 근거로 표절로 판정했다. 거듭된 하자 조사만 4번 반면 본조사위원회는 “이 사건 논문은 ‘작품 논문’이라는 특성상 다른 분야와 같은 기준으로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며 “작품 논문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논문의 핵심 부분인 작품 그 자체에는 독창성이 인정되므로 논문 자체를 표절이라고 판정할 수 없다”고 했다. 두 번째 조사에서도 또다시 ‘하자’가 발견되면서 판정이 무효로 돌아갔다. B 교수는 피조사자인 A 교수가 심사위원 제척 여부를 이유로 외부위원 명단을 요청했고 실제 공개된 점, 제보자에게 의견 진술의 기회를 주지 않은 점 등의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본조사위원회 보고서에 각 당사자의 진술 요지와 조사 결과 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데도 이 부분을 빠뜨리면서 실체상 하자도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동시에 법원에 본조사위원회 판정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 건은 피고(광주대 측)가 “원고 측 이의를 받아들이고 기존 본조사 판정을 무효화하고 다시 본조사위원회를 소집하겠다”고 약속하고 B 교수가 소를 취하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2023년 세 번째로 소집된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을 표절로 판정했다. 의견서에는 ▲전체 1200여개 문장 중 출처 표시 없이 인용된 문장이 360여개로 과도하게 많은 점 ▲저자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지 않은 점 ▲논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4장과 결론에서도 타인의 학술 논문과 내용이 유사하거나 출처 표시가 없는 문장이 다수인 점 등이 근거로 기재됐다. 하지만 이 결과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구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전면 무효화됐다. ‘광주대학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설치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학장, 교무처장 및 산학협력단장은 당연직으로 하고 교무처장이 위원장이 된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를 일부 준수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다시 해를 넘겨 2024년 6월 예비조사위원회는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놨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이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통과했고, A교수가 KCI 논문 유사도 검사에서 1%의 유사도를 보인 결과서를 제출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저작위원회 “유사성 인정” 또 A 교수가 인용 표시를 하지 않은 부분이 타인의 아이디어나 창작물을 침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른 저자의 논문 역시 다른 논문이나 저서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창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표절이 아니라고 판정한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서 승인했다는 점이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본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는 판정을 내리고 결론을 확정했다. 3년5개월여 동안 진행된 조사에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판정 승인이 떨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단 표면상으로는 최종 결론이 난 셈이다. 첫 채용 공고 시기로 따지면 4년 가까이 이어진 논란은 B 교수의 반발로 법정에 가게 됐다. B 교수는 2024년 7월 광주대가 자신의 이의 신청을 기각하자 같은 해 8월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학교법인 호심학원을 상대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판정 무효확인 등’의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승인한 부분과 본조사위원회가 불필요하다고 한 부분을 무효로 판단해 달라는 취지였다. 이 과정에서도 절차상 하자가 언급됐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에 대한 충분한 혐의를 인지했을 경우에 예비조사를 생략할 수 있고, 피조사자가 연구 부정행위 사실을 모두 인정할 경우 본조사를 생략하고 바로 판정을 내릴 수 있다”며 “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 결과를 확정해 판정할 근거가 없다. 본조사 결과만 승인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A 교수 논문에 대한 표절 여부도 제대로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표절 판정이 엇갈린 만큼 저작권법,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및 한국연구재단이 제시하는 인용 방법 및 논문 표절 기준 등에 따라 A 교수의 논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B 교수는 A 교수의 논문을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감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저작권법 제112조에 따라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법원이 B 교수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한국저작권위원회는 A 교수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12편의 논문을 비교, 감정했다. 반복된 조사 엇갈린 판정 결국 법정 공방으로 번져 <일요시사>가 입수한 감정 결과서에 따르면 A 교수의 논문은 총 12편의 비교 대상 논문 중 총 11편에 대해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을 상당 부분 복제하고 있다며 저작권법상 실질적인 유사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또 ‘단순히 학술적 아이디어나 이론적 사실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선행 저작자들이 자신의 학문적 관점과 예술적 주관에 따라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문장 구조, 단어 선택, 서술 방식 등을 그대로 사용했다’ ‘외국 문헌을 연구자 본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요약하거나 번역한 문장의 경우에도 원저작자의 창작적 개성이 반영돼 저작권법의 보호 범위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A 교수의 논문은 이를 무단으로 복제해 논문에 활용했다’ 등의 감정 결과를 내놨다. B 교수는 “저작권법 위반 여부는 표절보다 그 인정 범위가 좁다. 논문의 독창성을 저작권으로 인정해 그 부분을 침해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결론은 A 교수가 다른 사람이 쓴 논문의 독창성을 인용 없이 가져다 썼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호심학원 관계자는 “소송 중인 사안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을 해왔다. 문제는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오는 동안 손 놓고 있는 진주교대의 태도다. A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여부는 진주교대의 교수 채용과 밀접하게 얽혀있다. 채용 공고에서 지원 자격으로 박사학위 소지자가 명시됐던 만큼 논문 표절 여부는 이번 논란의 중요한 요소다. 표절로 판명되면 학위 자체가 취소되는 사례도 있어 A 교수가 진주교대 교수 채용에 아예 지원조차 할 수 없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주교대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광주대와 B 교수 간의 소송 결과가 나오고 그에 따라 광주대가 조치한 뒤에야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진주교대 교무처 관계자는 “(학교가) 손 놓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법률 검토 등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B 교수는 “학교는 학생들의 수업권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저 누가 학교에 책임을 물을까 봐 전전긍긍할 뿐이다. 학교 측에서 했다는 법률 검토도 현재 손 놓고 있는 학교의 행보가 나중에 직무유기로 문제가 될까 알아본 것이라고 한다. 교대는 학생들이 커리큘럼에 따라 수업을 신청해야 하는 구조라 교수에게 문제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학생들만 뒷전 됐다 그러면서 “광주대와의 소송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A 교수가 수업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 공무원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직위해제’ 조치를 하지 않나.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교사를 길러내는 대학이다. 학교가 그 이름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한편, A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