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면 더 볼만한 풍경·소리 ④안동 농암종택

뒷모습이 아름다운 선비를 찾아서

 

7월 장마철에는 우리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안동 농암종택으로 떠나보면 어떨까. 구름이 내려앉은 청량산 줄기가 수묵화를 그려내고, 낙동강 물소리는 더욱 세차다. 농암 이현보 선생의 손때가 묻은 긍구당에서 하룻밤 묵어보자. 넓은 마루에 앉아 빗소리, 강물 소리, 새소리에 귀 기울이면 몸과 마음이 깨끗해진다. 

 

농암 이현보는 조선 중기 때 문신이자 시조 작가다. 1498년(연산군 4) 식년 문과에 급제하고, 32세에 벼슬길에 올라 예문관검열, 춘추관기사, 예문관봉고 등을 거쳐 38세에 사간원정언이 된다. 

그러나 서연관의 비행을 논하다가 안동에 유배되고, 나중에 중종반정으로 복직돼 30년 이상 조정을 위해 일한다. 1542년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시를 벗삼아 지낸다. 

전통이 살아 숨쉬는 곳

조선시대 자연을 노래한 대표적인 문인으로, 국문학 사상 강호 시조 작가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작품으로 전해오는 ‘어부가’를 장가 9장, 단가 5장으로 고쳐 지은 것과 ‘효빈가’ ‘농암가’ ‘생일가’ 등 시조 8수가 남았다. 
 

농암종택에 도착하니 비가 그쳤다. 단비를 뿌린 구름은 청량산으로 느릿느릿 걸어간다. 비 오는 날 한옥의 운치를 즐기려는 계획은 살짝 어긋났지만, 그래도 촉촉한 풍경이 반갑다. 무거운 구름이 내려앉은 청량산 줄기는 농암종택의 한옥과 어우러져 그윽한 풍경을 빚어낸다. 
 


농암 선생의 17대 종손 이성원씨가 긍구당으로 안내한다. 긍구당(肯構堂)은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농암종택의 별채로 당호는 ‘조상의 유업을 길이 잇다’라는 뜻이다. 고려 때 농암 선생의 고조부가 지은 소박한 건물이다. 

마루에 오르니 낙동강 물소리가 시원하다. 나무에 가려 낙동강은 보이지 않지만 소리 덕분에 유장하게 흐르는 강줄기가 떠오른다. 방에는 색이 고운 원앙금침이 깔렸다.
 

“여기서는 산과 강을 함께 봐야 해요. 건물만 보고 가는 분이 있는데, 그러면 농암종택을 모르는 거야. 산은 높지도 낮지도 않고, 강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아요.”
 

이씨를 따라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본다. 능선과 한옥의 지붕이 부드럽게 이어진다. 과연! 고개가 끄덕여진다. 농암종택이 본래 자리했던 도산서원 앞 분천마을은 1976년 안동댐 건설로 수몰됐다. 

1996년 이씨가 이곳에 터를 잡고, 10여년 동안 여기저기 흩어진 종택과 사당, 긍구당, 분강서원 등 문화재를 한데 모아 지금의 농암종택을 만들었다. 종택을 개방한 건 이씨의 결정이다. 안동의 어느 집안도 해본 적 없는 일이다. 
 

이씨가 애일당과 강각에 다녀오라며 열쇠를 건넨다. 긍구당서 나오면 농암 선생을 모신 분강서원이 있고, 좀 더 강변으로 가면 건물 두 채가 보인다. 앞에 있는 애일당은 구순이 넘은 부친을 위해 농암이 지은 건물이다. 

부친이 늙어가는 것을 아쉬워하며 ‘하루하루를 사랑한다’는 뜻에서 애일당(愛日堂)이라 이름 지었다. 선생은 부친을 포함한 노인 아홉 분을 모시고 어린아이처럼 색동옷을 입고 춤추며 즐겁게 해드렸다고 한다. 
 


애일당 뒤에 자리한 강각에 오르니 세찬 물소리와 함께 낙동강과 벽련암이 펼쳐진다. 강각(江閣) 앞에서 강물은 여울을 만나기에 물소리가 클 수밖에 없다. 물소리를 듣는 수성각(水聲閣)이란 이름이 더 어울려 보인다. 마루에 놓인 의자에 앉으면 시간이 느릿느릿 흘러가는 느낌이다. 
 

농암은 뒷모습이 아름다운 선비로 조선 시대 유일하게 은퇴식을 하고 정계서 물러났다. 임금은 금포와 금서대를 하사했고 퇴계 이황은 전별시를 지어 선물했다. 한강까지 이어진 행차를 보고 도성 백성들이 담장처럼 둘러섰다고 한다. 

농암이 고향으로 돌아와 강각서 읊은 시가 ‘어부가’다. 농암은 부모님을 공경하며 자연서 유유자적 지내고 싶어 임금의 계속되는 상경 명령에도 끝내 응하지 않았다. 나라에서는 종일품 숭정대부의 품계를 내려 예우했다. 명예를 포기해 더 큰 명예를 얻은 셈이다. 
 

강각서 강변으로 내려오면 퇴계오솔길(예던길)이 이어진다. 퇴계가 집에서 청량산 갈 때 걷던 길이다. 한동안 낙동강을 따라 조붓한 길이 이어진다. 15분쯤 지나 ‘공룡 발자국’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발길을 돌리는 게 적당하다. 

긍구당에 오니 저물 무렵이다. 마당을 서성이며 땅거미가 풍경을 집어삼키는 걸 바라본다. 산이 검게 변하고, 구름은 비명처럼 푸른빛을 토하며 서서히 블랙홀 같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긍구당 마루에 누워 어둠 저편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 개울물 소리가 공처럼 튄다. 소쩍새가 운다. 쏙독새는 어둠을 쫀다. 호랑지빠귀는 밤하늘에 구슬프게 휘파람을 분다. 
 

다음 날 아침, 새소리에 눈을 떴다. 강각 앞의 강변을 산책한다. 간밤에 비가 그치고 세수한 듯 맑은 하늘이 나왔다. 강가서 연방 물수제비를 떠본다. 이성원 씨가 식사하라고 부른다. 이성원 씨 부부와 오붓하게 담소하며 아침을 먹는 시간도 농암종택의 큰 매력이다. 

청량산·낙동강이 어우러진 농암종택
비 오는 날, 한옥 운치와 함께 금상첨화

농암종택서 나와 2km쯤 가면 강 건너편으로 작은 정자가 있다. 정자 앞으로 미끈한 소나무 한 그루가 강물에 비친 제 얼굴을 본다. 고산정은 퇴계의 제자 금난수가 1560년대에 지은 정자로 주변 경관이 빼어나 농암과 퇴계를 비롯한 선비들이 즐겨 찾았다. 
 

가송리서 남쪽으로 20분쯤 달리면 안동군자마을에 닿는다. 주차장에서 바라보면 산기슭 경사면에 고택이 옹기종기 모였고, 뒤로 미끈한 소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싼 풍경이 고풍스럽다. 농암종택과 더불어 하룻밤 묵어가기 좋은 고택이다. 
 

군자마을은 조선 초기부터 광산 김씨 예안파가 약 20대에 걸쳐 600여년 동안 살아온 외내에 있던 문화재와 고가를 옮겨다 세운 마을이다. 오천리가 군자마을이 된 것은 입향조인 김효로의 종손과 외손 일곱 명이 ‘오천 칠군자’라 불렸기 때문이다. 

대표적 인물이 퇴계의 수제자 후조당 김부필이다. 군자마을 가장 높은 곳에 후조당의 사랑채와 별당이 자리한다. 퇴계가 애제자를 위해 쓴 후조당 현판이 별당 대청에 걸렸다. 
 


사랑채와 별당을 구경했으면 탁청정을 둘러볼 차례다. 탁청정은 1541년 김유가 지은 가옥에 딸린 정자로, 영남 지방의 개인 정자 가운데 으뜸으로 꼽힌다. 정면 3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이고 명필 한석봉이 쓴 현판이 걸렸다. 탁청정 마루에 앉아 연못과 고택을 바라보는 맛이 일품이다. 
 

군자마을서 나와 안동호를 따라 7분쯤 가면 도산서원 주차장에 닿는다. 도산서원의 건축물은 민가처럼 검소하게 꾸민 것이 특징이다. 서원은 퇴계가 제자를 가르치고 기거한 도산서당 영역과 퇴계 사후에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지은 도산서원 영역으로 나뉜다. 

도산서당은 1561년 퇴계가 직접 설계하고 지은 삼간집이다. 가운데 온돌방은 퇴계가 기거한 완락재, 동쪽의 대청은 암서헌이다. 대청이 좁아 궁여지책으로 평상을 댄 것만 봐도 퇴계의 검소함을 알 수 있다. 

이육사의 삶 ‘이육사문학관’

마지막 여행지는 이육사문학관이다. 육사는 퇴계의 14세손으로 본명은 이원록이다. 육사의 저항성과 문학성은 퇴계의 학통서 이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육사문학관은 대대적 리모델링을 거쳐 올해 2월 재개관했다. 전시관과 영상실, 세미나실 등 복합 시설을 갖췄다. 

동선을 따라가면 이육사의 짧지만 강렬한 생애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육사가 생을 마감한 베이징 감옥을 재현한 방에서는 울컥했다. “내 고장 칠월은 /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그의 대표작 ‘청포도’를 읊조리며 안동 여행을 마무리한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농암종택→고산정→안동군자마을→도산서원→이육사문학관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안동군자마을→고산정→농암종택 
[둘째 날] 농암종택→이육사문학관→도산서원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농암종택 http://www.nongam.com
- 안동군자마을 http://www.gunjari.net
- 도산서원 http://www.dosanseowon.com
- 이육사문학관 http://www.264.or.kr
- 안동관광(안동시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http://www.tourandong.com

문의 전화
- 안동시청 체육관광과 054)840-6391
- 농암종택 054)843-1202
- 안동군자마을 054)852-5414
- 도산서원 054)856-1073
- 이육사문학관 054)852-7337

대중교통 정보
[기차] 청량리-안동, 무궁화호 하루 7회(06:40~21:13) 운행, 약 3시간30분 소요.
* 문의 : 레츠코레일 1544-7788, http://www.letskorail.com 
[버스] 서울-안동, 동서울종합터미널서 하루 32회(06:00~23:00) 운행, 약 2시간50분 소요. 
* 문의 :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http://www.ti21.co.kr

자가운전
중앙고속도로 풍기 IC→소백로→온천로→온혜교차로서 태백·봉화 방면 좌회전→퇴계로→가송길→농암종택

숙박 정보
- 농암종택 : 도산면 가송길, 054)843-1202, http://www.nongam.com(명품고택)
- 안동군자마을 : 와룡면 군자리길, 054)852-5414, 
http://www.gunjari.net(한옥스테이)
- 안동호반자연휴양림 : 도산면 퇴계로, 054)840-8265, 
http://huyang.gb.go.kr 

식당 정보
- 도산대가(안동찜닭·간고등어정식): 도산면 퇴계로, 054)852-6660, http://www.dosandaega.wo.to
- 뉴서울갈비(갈비): 안동시 음식의길, 054)843-1400
- 보문식당(약산채밥상·보리밥): 안동시 번영길, 054)854-6009 
- 까치구멍집(헛제삿밥·한정식): 안동시 석주로, 054)821-1056, http://andongrice.com 

주변 볼거리
경상북도산림과학박물관, 퇴계종택, 안동호반자연휴양림, 유교문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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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