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고-억울한 사람들> (55)두 번 쫓겨난 사연

“나는 성희롱을 하지 않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신문고’ 지면을 신설합니다. 매주 억울한 사람들을 찾아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담을 예정입니다. 어떤 이야기이든, 어느 누구든 좋습니다. <일요시사>는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쉰다섯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성희롱 혐의로 조직서 쫓겨난 후 고군분투 중인 국민생활체육전국당구연합회 전 사무처장 A씨입니다.
 

A씨의 가방에는 문서가 가득했다. 국민생활체육전국당구연합회(이하 연합회)나 사단법인 대한당구연맹(이하 연맹),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이하 지노위) 등에서 받은 자료였다. 그 외에도 A씨는 사건을 나름대로 정리한 문서를 한 뭉텅이 꺼냈다. 날짜별, 시간별로 꼼꼼하게 정리된 사건 일지였다.

성희롱 쟁점

2015년 5월 A씨는 연합회 이사로 임명됐다. 그 전까지 A씨에게 당구는 취미에 불과했다. 평범하게 당구를 즐기던 그가 동호인을 관리하는 조직에 들어가게 된 것은 지인의 요청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자리를 메우기 위해 받은 직책이었다. 문제는 A씨가 이사에 임명될 무렵 연합회가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당장 이사 임명 2개월 뒤인 2015년 7월부터 연합회 사무처장에 대한 투서가 들어오는 등 조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투서에는 사무처장의 연합회 사조직화, 잡지 수익 횡령 등 비리 의혹이 적혀 있었다. 

사무처장은 연합회에 사표를 내려 했지만 대의원총회에선 이를 수리하지 않았다. 대신 진상조사위원회를 열어 상황을 파악하기로 결정했다. A씨는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에 선정됐다. 이사로 임명된 지 4개월 만에 연합회 터줏대감이던 사무처장의 비리 의혹을 조사하라는 지시가 떨어진 것이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 때 진상조사위원을 맡았던 게 모든 일의 시작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당시 연합회는 작은 조직이었지만 파벌 싸움이 극심했습니다. 저는 내부에 아는 사람도 없었고 조직서 누구에게도 빚진 게 없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지인 요청에 이사직 맡아
사무처장 됐지만 ‘왕따’

연합회 사무처장은 진상조사위원회 조사 결과 파면이 결정됐다. A씨는 그 자리서 연합회 안정화대책위원장을 맡았다. 사무처장 자리가 징계로 공석이 됐고 연맹과 통합 등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인 상황서 조직을 안정화 시켜야 하는 임무를 맡게 된 셈이다. 

2개월 뒤 연합회 이사회는 A씨를 신임 사무처장으로 승인했다. 하지만 사무처장 인준을 받은 건 3개월이 지나서였다.

“정말 긴 3개월이었습니다. 저는 사무국 사람들 사이서 완벽하게 소외된 사람이었습니다. 점심시간에도 밥을 같이 먹은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사무국 직원들은 제게 ‘A씨 여기는 민간인이 오는 곳이 아니에요. 어디 다른 데 가 있으세요’ 같은 말을 서슴없이 했습니다. 저를 사무처장으로 대접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지난해 3월 사무처장 인준을 받은 뒤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실무를 담당해야 하는 사무처장이었지만 사무국 직원들은 그의 말을 외면했다. 연합회와 연맹의 통합, 각종 대회 등으로 조직이 분주한 상황에서도 A씨는 완벽하게 고립돼있었다. 

그러던 중 A씨는 같은 해 7월 스포츠비리신고센터로부터 조사 통보를 받는다. 사무국 여직원이 그가 3∼4월경 자신을 성희롱을 했다며 6월에 민원을 넣었다는 것이다.
 


“제가 여직원 성희롱 혐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스포츠비리신고센터에 가서야 알게 됐습니다. 처음엔 정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3개월 전 얘기라 기억도 희미했습니다. 특히 여직원 입장에서는 제가 가해자가 되는 건데 저희는 3개월 간 한 공간에 있었어요. 상식적으로 문제될 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사 당일 이사회 등 일정이 빡빡했던 A씨는 조사관이 내민 문서에 덜컥 서명을 했다고 한다. A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지금까지 후회하고 있었다. 자신이 문서에 서명을 하면서 성희롱 혐의에 대해 인정한 꼴이 됐다는 주장이었다. 

기분이 찜찜했던 A씨는 사흘 뒤 다시 스포츠비리신고센터를 찾아가 첫 조사에 대해 해명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A씨가 서명한 문서는 2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리고 지난해 8월 연맹의 통합 회장이 선출됐다. 3월 천신만고 끝에 통합된 이후 5개월 만에 뽑힌 초대 회장이었다. 통합 연맹에서 A씨의 자리는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사무국 업무를 맡아야 했지만 9월 이후 모든 업무서 배제됐다. 

통합 연맹 초대 회장은 언론과 인터뷰서 “비리에 관련된 사람들은 조직에 두지 않겠다”는 입장을 천명했고, A씨는 그 대상으로 지목된 상태였다.

“회장님, 부회장님, 전무님 할 것 없이 고위직 분들은 저를 볼 때마다 ‘너 아직도 안 나갔냐?’라며 사직을 종용했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사표를 낼만큼 저는 잘못한 게 없습니다.”

여직원 성희롱 혐의로 ‘파면’
지노위 승소했지만 또 쫓겨나

A씨가 사표를 내지 않고 버티면서 그의 직위는 곤두박질쳤다. 그는 지난해 10월1∼3일 치러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기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채 통합 연맹 사무실을 구하기 위해 부동산을 찾고 이삿짐을 나르고, 정리하는 등의 업무를 맡았다. 보통 행사 때 사무처장이 담당하는 참석자 의전과는 한참 동떨어진 업무다.

이후 10월27일 인사위원회가 열렸고 A씨는 결국 파면 처리됐다. 전날 통합 연맹 부회장이 찾아와 “성희롱 혐의 받으면서 더럽게 나갈 거냐, 깨끗하게 나갈 거냐”라며 신변을 정리하라는 제안을 거절한 뒤였다. 

A씨는 재심을 청구했지만 올해 1월 결국 최종 파면 결정이 났다. 2015년 5월부터 올해 1월까지 1년8개월간 단 한 번도 직급에 대한 대접을 받지 못한 채 끝난 시간이었다.

최종 파면 결정 이후 A씨는 지노위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청구했다. 2월20일 연맹 측 관계자와 노무사, A씨가 동석해 심문이 이뤄졌고, 그 날 저녁 ‘인정’ 처분이 나왔다. A씨가 청구한 구제 신청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지노위 조사관은 A씨에게 “승소”라는 말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지노위 판정에 안도하면서도 한 달 뒤 집으로 온 판정서에 대해서는 분통을 터트렸다.


“판정서에는 두 가지 내용이 한꺼번에 기록돼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제가 여직원을 성희롱한 게 맞다고 기재했고, 또 다른 부분에서는 성희롱까지는 보기 어렵다고 적었습니다. 그러면서 복직은 허용했어요, 또. 지노위 판정대로면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공간에 근무하게 되는 셈입니다. 이게 어떤 의도의 판정서인지 정말 답답합니다.”

A씨는 일단 4월21일 복직 명령에 따라 출근했지만 2시간 만에 대기발령 처분을 받았고, 24일 인사위원회에서 재파면 당했다. A씨가 제시한 문서에 따르면 그가 복직하기 전 대기발령 처분 관련 문서는 이미 만들어져 있었다. 애초부터 조직은 그를 받아들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또다시 파면

“제 나이가 올해로 55세입니다. 집에는 80대 노모가 몸이 아파 고생 중입니다. 두 사람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공사판서 4월까지 안전 요원으로 일했습니다. 아침 6시부터 저녁 5시까지 꼬박 일하면 일당 8만원이 주어집니다. 복직 명령이 떨어져 그 일도 그만뒀는데 또 다시 파면 당했습니다. 이제 제 인생은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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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