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삼청동 박물관 거리는 익히 알려진 서울의 명소다. 최근 새로운 박물관이 속속 들어서며 그 면모가 더욱 새로워지고 있다. 현재 이 일대의 박물관은 모두가 개인 박물관으로 규모는 작지만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자랑한다. 특히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 만화 영화 캐릭터 인형을 갖고 놀아 봤을 것이다. 유년시절의 ‘추억’으로 쉽게 잊혀졌을 법한 기억을 끄집어 내어 이를 고스란히 박물관에 재현한 공간이 있다. 바로 ‘토이키노’ 박물관이다. <일요시사>는 지난달 29일 삼청동에 위치한 ‘토이키노’ 박물관을 운영하는 손원경 대표를 만났다. 그의 어린 시절 꿈을 모아 놓은 ‘토이키노’에 담긴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북촌 일대는 예술의 거리로 유명하다. 은행잎이 가득한 거리에는 갤러리, 카페, 옷가게, 독특한 장신구 숍 등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기 저기 위치해 있는 독특한 미니 박물관들도 또 하나의 볼거리다.
지난 2006년 10월 문을 연 ‘토이키노 박물관’은 아이들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공간으로 유명하다. 토이키노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자 엄마 손을 잡은 초등학생 2명이 재미있고 신기한 듯 영화 캐릭터 장난감을 구경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꿈 담은 박물관
유년시절의 꿈이 현실로
토이키노(TOYKINO)는 장난감의 TOY와 영화를 뜻하는 KINO를 합성한 이름이다. 이 재미있고 신기한 박물관을 만든 주인은 바로 손원경 대표(37)다.
“이곳 ‘토이키노’는 제 유년시절의 꿈이 현실로 이뤄진 곳이라 할 수 있어요. 어릴 때부터 하나 둘 사 모으기 시작한 영화 캐릭터 인형과 장난감이 의도하진 않았지만 저만의 취향,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 놓았어요.”
토이키노에는 영화 및 만화 캐릭터를 소재로 한 각종 인형과 장난감들이 전시되어 있다. 손 대표가 중학 시절부터 20여년간 모아 온 소장품만 무려 40만점에 달한다고 한다.
“토이키노 박물관은 1, 2관으로 나눠져 전시되어 있어요. 1관에 3만~4만여 점, 2관에 2만여 점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공간의 제약 때문에 모두 전시하지 못하고 있죠. 대신 정기적으로 디스플레이 된 작품을 교체하고 있어요.”
1관에는 주로 미국 할리우드의 영화, 만화 캐릭터들을 주로 전시하고 있다.
“1관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스타워즈에서부터 슈퍼맨·배트맨·원더우먼 등 영화 주인공 캐릭터, 미국 프로야구(MBA)·미국 프로농구(NBA)의 스포츠 스타 캐릭터 등 다양한 테마로 방을 분류해 놓았어요. 2관에는 추억의 장난감들로 가득해요. 아톰·마징가 Z·은하철도 999 등 30~40대의 향수를 자극할 만한 만화 캐릭터들이 전시 되어 있죠.”
가족 단위의 방문객, 특히 장난감을 갖고 노는 시기의 아이들이 많이 방문하다 보니 2관에는 아예 보드게임 같은 간단한 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토이키노 박물관은 삼청동의 1,2관에 이어 헤이리에 3관까지 문을 열고 있다.
그런데 왜 이 많은 장난감을 수집했을까. 궁금증이 생겨서 손 대표에게 물었다.
“1977년도에 스타워즈가 개봉했고, 이듬해인 1978년에는 슈퍼맨이 개봉하면서 인기를 끌 때였어요. 여섯 살 때 부모님과 함께 허리우드극장에 가서 본 스타워즈가 기억에 남더군요. 또 마침 미국에 교환교수로가 계시던 아버지가 영화 속 캐릭터 장난감을 사다주시면서 자연스럽게 장난감들을 접할 수 있었고 좋아지더군요. 그때 잔뜩 기대감을 안고 아버지가 사오신 장난감을 풀었던 설렘이 지금의 제가 있도록 한 힘인 것 같아요.”
그가 영화 캐릭터 장난감을 이렇게 모을 수 있었던 것은 풍족한 집안 형편 덕분이었다. 손 대표의 할아버지가 유명한 서예가인 소전 손재형 선생(1903~1981)으로 하나 둘 골동품을 모으는 모습에 영향을 받았다고.
내 꿈 열어준 유년시절 캐릭터 조각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즐거운 ‘놀이터’
손 대표의 할아버지 소전 선생은 20세기 한국 서예의 거목으로 1945년 ‘서예’란 말을 처음 붙인 서예가이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예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소전 선생은 일본으로 건너가 간곡한 설득 끝에 추사의 ‘세한도’(국보 180호)를 되찾아 온 일화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하다.
“할아버지에게 모으는 취미를 전수 받은 것 같아요. 제가 어릴 적 할아버지가 돌아 가셨는데 할아버지는 고서와 고가구, 붓을 좋아하셨어요. 서너 살 때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할아버지가 정성껏 벼루를 닦고 계셨던 모습이 떠올라요. 할아버지는 예술가이면서 정치에도 뜻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손 대표에게 할아버지 손재형 선생은 수집하는 것에 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 지금도 손 대표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어디 가서 소전의 손자라고 하면 사람들이 한 번 더 봐주고 생각해주는 것이 할아버지의 영향인 거죠. 할아버지는 저희 가문의 자랑이자 자부심이죠.”
손 대표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장난감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용돈만 생기면 명동, 중국 대사관 앞, 동부이촌동과 남대문을 찾아가 영화 캐릭터 장난감을 샀다. 영화를 보고, 영화관련 자료를 스크랩하면서 영화 캐릭터를 수집했다.
“집안 가구에 곰팡이가 생기니까 어머니가 옷가지를 종이 상자에 넣어 정리하는 걸 보고 저도 장난감을 분류하며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1997년부터는 인터넷으로 쉽게 영화 관련 물품을 모을 수 있게 되어 수집점수가 늘었고 결국 하고 싶었던 박물관을 만들게 된 것이죠.”
손 대표는 또 지금은 사라진 잡지를 사서 주말의 명화, 명화극장을 챙겨보거나 비디오테이프를 빌려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본 후에는 스크랩을 하고 영화감상을 적었는데 그 노트가 무려 30권. 그러다보니 영화보기, 영화음악에 자연스레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외롭고 힘든 ‘인생의 암흑기’
삶의 위로가 되어 준 장난감
그러나 손 대표에게 행복한 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의 이혼으로 그는 외갓집으로 갔다.
“그 당시 제 인생은 암흑기였죠. 부모님이 이혼한 후 어머니를 따라 초등학교 때부터 외갓집에서 살았어요. 미국에 계신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는데, ‘아버지가 이러시면 제 인생이 비참해집니다’라고요. 어릴 때인데 어떻게 그런 단어를 떠올렸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 당시 영화 캐릭터 수집은 그의 상실감을 메워 주었고 위로가 됐다. 그에게 수집의 완성은 수집품을 진열할 공간을 꾸며 전시하는 것이었다.
“장난감을 하나하나 늘어놓으면 설치미술과 다를 바 없었어요. 분류하고 디스플레이하다 보니 인형 옷 하나하나도 중요한 요소라는 걸 새삼 깨달았죠. 사진을 전공한 덕에 수집품은 사진으로 한 장 한 장 기록되어 있어요.”
“장난감은 ‘시대적 유물’이자 ‘역사적 증거’를 말한다”
할아버지 평생 업적 담긴 ‘소전문화예술사업회’ 계획
토이키노를 세우기 위해 손 대표는 전 재산을 쏟아 부었다고 한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사진과 연극영화를 전공한 그는 사진과 광고 관련 일을 하면서 버는 돈을 모두 장난감을 사는 데 쓴다.
“학교에서 강의하고 받은 강의료나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어 번 돈을 모두 박물관 운영에 투자했어요. 개관 후에도 과연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보러 올까 걱정을 많이 했어요. 관객들이 입소문을 타고 찾아와주니 고맙더군요. 요즘은 경제가 어렵다 보니 관람객이 줄어서 걱정이에요.”
그래도 손 대표는 박물관을 세우고 나서 많은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박물관에 있다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가장 즐겁고 보람을 느낄 때는 가족 관객들이 왔을 때에요. 아이들이 잘 모르는 캐릭터 장난감이 나오면 아빠, 엄마는 어릴 때 보던 만화영화 이야기를 해주면서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공간이 돼죠.”
토이키노 박물관이 자연스럽게 소통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부모와 아이들이 정겹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그냥 기분이 좋아지죠. 요즘같이 부모와 아이들 사이에 대화가 단절된 것을 자연스럽게 캐릭터 장난감을 통해 풀어주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낍니다. 토이키노가 부모세대와 아이들 세대를 연결해주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죠.”
팔면 안 되느냐고 끈질기게 요구하는 관객도 많다.
“그럴 때는 제가 수집을 통해 끈기와 상상력을 키웠던 것처럼 모으는 재미를 느껴 보라고 제안합니다. 적게는 몇백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대를 호가하는 장난감들도 있어요.”
“손 대표는 꿈 많은 사람”
간절한 꿈은 이루어 진다
아이들에게 장난감은 꿈이다. 우주를 날아가는 변신 로봇, 예쁜 드레스를 입은 공주 인형. 아이는 장난감을 통해 세상을 꿈꾸고 미래를 꿈꾼다. 토이키노 박물관이 바로 그런 곳이다.
“장난감은 시대적 유물 이예요. 또 역사적 증거인 셈이죠. 아이들은 장난감을 통해 세상을 보고, 미래를 꿈꿉니다. 어른에게 장난감은 추억인 셈이죠.”
손 대표는 토이키노에 이어 또 다른 꿈이 있다. 〈메가키노>라는 영화잡지를 만드는 게 꿈이다.
“영화잡지는 20대 때부터 만들고 싶었어요. 예전에는 방송사 프로듀서가 되고 싶어서, 시험도 준비했지만 마지막 관문에서 고배를 마셨어요. 이제는 직접 미디어를 기획, 운영해 보려고요. 내공이 깊어 좋은 잡지 하나를 더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현재 영화 관련 잡지를 만들 계획을 세우고 추진 중에 있다. 그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꿈과 소망은 사단법인인 ‘소전문화예술사업회’를 추진하는 것이다.
“할아버지 고향인 전남 진도에 소전미술관이 있지만 너무 멀리 있어 사람들이 찾아가기 불편해요. 그래서 장난감 박물관과 더불어 할아버지가 평생을 바쳤던 서예를 위한 박물관을 서울에 세우는 게 꿈이에요. 아는 지인들과 함께 내년 초쯤 사단법인으로 ‘소전문화예술사업회’를 출범 하려고 계획하고 있어요.”
손 대표는 내년에 공연뮤지컬도 계획하고 있고, 다시 다음 학기에는 대학 강의도 더 열심히 하려고 준비 중이다.
손 대표는 “결혼도 내년쯤 해야 하는데 이것저것 일을 많이 벌려 놓은 것 같아 약간은 걱정스러워요”라며 웃는다.
어릴 때부터 영화 캐릭터에 매료돼 문방구, 벼룩시장을 전전하던 한 소년이 어른이 된 지금 장난감 박물관을 세웠을 뿐 아니라 현재 영화·디자인 관련 일에 종사하고 있다.
손 대표의 ‘간절한 꿈은 현실로 이뤄진다’는 진부한 표현이 이곳에서는 유독 설득력을 갖고 마음에 와 닿는다. 그는 자신이 꿈꾸는 또 하나의 꿈과 비전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열정을 가지고걸어가는 중이다.
사진 송원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