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토이키노’ 박물관 손원경 대표

“토이키노는 부모와 아이 연결 ‘소통’의 장소”

서울 종로구 삼청동 박물관 거리는 익히 알려진 서울의 명소다. 최근 새로운 박물관이 속속 들어서며 그 면모가 더욱 새로워지고 있다. 현재 이 일대의 박물관은 모두가 개인 박물관으로 규모는 작지만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자랑한다. 특히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 만화 영화 캐릭터 인형을 갖고 놀아 봤을 것이다. 유년시절의 ‘추억’으로 쉽게 잊혀졌을 법한 기억을 끄집어 내어 이를 고스란히 박물관에 재현한 공간이 있다. 바로 ‘토이키노’ 박물관이다. <일요시사>는 지난달 29일 삼청동에 위치한 ‘토이키노’ 박물관을 운영하는 손원경 대표를 만났다. 그의 어린 시절 꿈을 모아 놓은 ‘토이키노’에 담긴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북촌 일대는 예술의 거리로 유명하다. 은행잎이 가득한 거리에는 갤러리, 카페, 옷가게, 독특한 장신구 숍 등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기 저기 위치해 있는 독특한 미니 박물관들도 또 하나의 볼거리다.
지난 2006년 10월 문을 연 ‘토이키노 박물관’은 아이들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공간으로 유명하다. 토이키노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자 엄마 손을 잡은 초등학생 2명이 재미있고 신기한 듯 영화 캐릭터 장난감을 구경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꿈 담은 박물관
유년시절의 꿈이 현실로

토이키노(TOYKINO)는 장난감의 TOY와 영화를 뜻하는 KINO를 합성한 이름이다. 이 재미있고 신기한 박물관을 만든 주인은 바로 손원경 대표(37)다.
“이곳 ‘토이키노’는 제 유년시절의 꿈이 현실로 이뤄진 곳이라 할 수 있어요. 어릴 때부터 하나 둘 사 모으기 시작한 영화 캐릭터 인형과 장난감이 의도하진 않았지만 저만의 취향,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 놓았어요.”
토이키노에는 영화 및 만화 캐릭터를 소재로 한 각종 인형과 장난감들이 전시되어 있다. 손 대표가 중학 시절부터 20여년간 모아 온 소장품만 무려 40만점에 달한다고 한다.

“토이키노 박물관은 1, 2관으로 나눠져 전시되어 있어요. 1관에 3만~4만여 점, 2관에 2만여 점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공간의 제약 때문에 모두 전시하지 못하고 있죠. 대신 정기적으로 디스플레이 된 작품을 교체하고 있어요.”
1관에는 주로 미국 할리우드의 영화, 만화 캐릭터들을 주로 전시하고 있다.
“1관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스타워즈에서부터 슈퍼맨·배트맨·원더우먼 등 영화 주인공 캐릭터, 미국 프로야구(MBA)·미국 프로농구(NBA)의 스포츠 스타 캐릭터 등 다양한 테마로 방을 분류해 놓았어요. 2관에는 추억의 장난감들로 가득해요. 아톰·마징가 Z·은하철도 999 등 30~40대의 향수를 자극할 만한 만화 캐릭터들이 전시 되어 있죠.”

가족 단위의 방문객, 특히 장난감을 갖고 노는 시기의 아이들이 많이 방문하다 보니 2관에는 아예 보드게임 같은 간단한 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토이키노 박물관은 삼청동의 1,2관에 이어 헤이리에 3관까지 문을 열고 있다.
그런데 왜 이 많은 장난감을 수집했을까. 궁금증이 생겨서 손 대표에게 물었다.
“1977년도에 스타워즈가 개봉했고, 이듬해인 1978년에는 슈퍼맨이 개봉하면서 인기를 끌 때였어요. 여섯 살 때 부모님과 함께 허리우드극장에 가서 본 스타워즈가 기억에 남더군요. 또 마침 미국에 교환교수로가 계시던 아버지가 영화 속 캐릭터 장난감을 사다주시면서 자연스럽게 장난감들을 접할 수 있었고 좋아지더군요. 그때 잔뜩 기대감을 안고 아버지가 사오신 장난감을 풀었던 설렘이 지금의 제가 있도록 한 힘인 것 같아요.”
그가 영화 캐릭터 장난감을 이렇게 모을 수 있었던 것은 풍족한 집안 형편 덕분이었다. 손 대표의 할아버지가 유명한 서예가인 소전 손재형 선생(1903~1981)으로 하나 둘 골동품을 모으는 모습에 영향을 받았다고.

내 꿈 열어준 유년시절 캐릭터 조각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즐거운 ‘놀이터’


손 대표의 할아버지 소전 선생은 20세기 한국 서예의 거목으로 1945년 ‘서예’란 말을 처음 붙인 서예가이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예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소전 선생은 일본으로 건너가 간곡한 설득 끝에 추사의 ‘세한도’(국보 180호)를 되찾아 온 일화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하다.
“할아버지에게 모으는 취미를 전수 받은 것 같아요. 제가 어릴 적 할아버지가 돌아 가셨는데 할아버지는 고서와 고가구, 붓을 좋아하셨어요. 서너 살 때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할아버지가 정성껏 벼루를 닦고 계셨던 모습이 떠올라요. 할아버지는 예술가이면서 정치에도 뜻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손 대표에게 할아버지 손재형 선생은 수집하는 것에 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 지금도 손 대표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어디 가서 소전의 손자라고 하면 사람들이 한 번 더 봐주고 생각해주는 것이 할아버지의 영향인 거죠. 할아버지는 저희 가문의 자랑이자 자부심이죠.”
손 대표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장난감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용돈만 생기면 명동, 중국 대사관 앞, 동부이촌동과 남대문을 찾아가 영화 캐릭터 장난감을 샀다. 영화를 보고, 영화관련 자료를 스크랩하면서 영화 캐릭터를 수집했다.

“집안 가구에 곰팡이가 생기니까 어머니가 옷가지를 종이 상자에 넣어 정리하는 걸 보고 저도 장난감을 분류하며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1997년부터는 인터넷으로 쉽게 영화 관련 물품을 모을 수 있게 되어 수집점수가 늘었고 결국 하고 싶었던 박물관을 만들게 된 것이죠.”
손 대표는 또 지금은 사라진 잡지를 사서 주말의 명화, 명화극장을 챙겨보거나 비디오테이프를 빌려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본 후에는 스크랩을 하고 영화감상을 적었는데 그 노트가 무려 30권. 그러다보니 영화보기, 영화음악에 자연스레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외롭고 힘든 ‘인생의 암흑기’
삶의 위로가 되어 준 장난감

그러나 손 대표에게 행복한 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의 이혼으로 그는 외갓집으로 갔다.
“그 당시 제 인생은 암흑기였죠. 부모님이 이혼한 후 어머니를 따라 초등학교 때부터 외갓집에서 살았어요. 미국에 계신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는데, ‘아버지가 이러시면 제 인생이 비참해집니다’라고요. 어릴 때인데 어떻게 그런 단어를 떠올렸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 당시 영화 캐릭터 수집은 그의 상실감을 메워 주었고 위로가 됐다. 그에게 수집의 완성은 수집품을 진열할 공간을 꾸며 전시하는 것이었다.
“장난감을 하나하나 늘어놓으면 설치미술과 다를 바 없었어요. 분류하고 디스플레이하다 보니 인형 옷 하나하나도 중요한 요소라는 걸 새삼 깨달았죠. 사진을 전공한 덕에 수집품은 사진으로 한 장 한 장 기록되어 있어요.”

“장난감은 ‘시대적 유물’이자 ‘역사적 증거’를 말한다”
할아버지 평생 업적 담긴 ‘소전문화예술사업회’ 계획


토이키노를 세우기 위해 손 대표는 전 재산을 쏟아 부었다고 한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사진과 연극영화를 전공한 그는 사진과 광고 관련 일을 하면서 버는 돈을 모두 장난감을 사는 데 쓴다.
“학교에서 강의하고 받은 강의료나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어 번 돈을 모두 박물관 운영에 투자했어요. 개관 후에도 과연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보러 올까 걱정을 많이 했어요. 관객들이 입소문을 타고 찾아와주니 고맙더군요. 요즘은 경제가 어렵다 보니 관람객이 줄어서 걱정이에요.”
그래도 손 대표는 박물관을 세우고 나서 많은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박물관에 있다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가장 즐겁고 보람을 느낄 때는 가족 관객들이 왔을 때에요. 아이들이 잘 모르는 캐릭터 장난감이 나오면 아빠, 엄마는 어릴 때 보던 만화영화 이야기를 해주면서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공간이 돼죠.”
토이키노 박물관이 자연스럽게 소통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부모와 아이들이 정겹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그냥 기분이 좋아지죠. 요즘같이 부모와 아이들 사이에 대화가 단절된 것을 자연스럽게 캐릭터 장난감을 통해 풀어주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낍니다. 토이키노가 부모세대와 아이들 세대를 연결해주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죠.”     
팔면 안 되느냐고 끈질기게 요구하는 관객도 많다.
“그럴 때는 제가 수집을 통해 끈기와 상상력을 키웠던 것처럼 모으는 재미를 느껴 보라고 제안합니다. 적게는 몇백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대를 호가하는 장난감들도 있어요.”

“손 대표는 꿈 많은 사람”
간절한 꿈은 이루어 진다


아이들에게 장난감은 꿈이다. 우주를 날아가는 변신 로봇, 예쁜 드레스를 입은 공주 인형. 아이는 장난감을 통해 세상을 꿈꾸고 미래를 꿈꾼다. 토이키노 박물관이 바로 그런 곳이다.
“장난감은 시대적 유물 이예요. 또 역사적 증거인 셈이죠. 아이들은 장난감을 통해 세상을 보고, 미래를 꿈꿉니다. 어른에게 장난감은 추억인 셈이죠.”
손 대표는 토이키노에 이어 또 다른 꿈이 있다. 〈메가키노>라는 영화잡지를 만드는 게 꿈이다.
“영화잡지는 20대 때부터 만들고 싶었어요. 예전에는 방송사 프로듀서가 되고 싶어서, 시험도 준비했지만 마지막 관문에서 고배를 마셨어요. 이제는 직접 미디어를 기획, 운영해 보려고요. 내공이 깊어 좋은 잡지 하나를 더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현재 영화 관련 잡지를 만들 계획을 세우고 추진 중에 있다. 그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꿈과 소망은 사단법인인 ‘소전문화예술사업회’를 추진하는 것이다.
“할아버지 고향인 전남 진도에 소전미술관이 있지만 너무 멀리 있어 사람들이 찾아가기 불편해요. 그래서 장난감 박물관과 더불어 할아버지가 평생을 바쳤던 서예를 위한 박물관을 서울에 세우는 게 꿈이에요. 아는 지인들과 함께 내년 초쯤 사단법인으로 ‘소전문화예술사업회’를 출범 하려고 계획하고 있어요.”

손 대표는 내년에 공연뮤지컬도 계획하고 있고, 다시 다음 학기에는 대학 강의도 더 열심히 하려고 준비 중이다.
손 대표는 “결혼도 내년쯤 해야 하는데 이것저것 일을 많이 벌려 놓은 것 같아 약간은 걱정스러워요”라며 웃는다.
어릴 때부터 영화 캐릭터에 매료돼 문방구, 벼룩시장을 전전하던 한 소년이 어른이 된 지금 장난감 박물관을 세웠을 뿐 아니라 현재 영화·디자인 관련 일에 종사하고 있다.
손 대표의 ‘간절한 꿈은 현실로 이뤄진다’는 진부한 표현이 이곳에서는 유독 설득력을 갖고 마음에 와 닿는다. 그는 자신이 꿈꾸는 또 하나의 꿈과 비전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열정을 가지고걸어가는 중이다.

사진 송원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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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검찰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한때 정부의 ‘칼’ 역할을 맡아 위세를 떨쳤던 검찰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면서 우리나라는 또 한 번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됐다. 검찰청이 완전히 폐지되기까지 유예기간은 1년. 검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봤다. 검찰은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그 쓰임새가 달라졌다. 개혁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고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적도 있다. 칼로 쓰이면서 동시에 고쳐야 할 기관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정부도 검찰의 존재 자체를 지우진 못했다. 견제 기관을 만들어 권한을 축소한 적은 있지만 ‘폐지’를 가시화한 적은 없었다는 뜻이다. 대통령 의지 당이 화답? 지난달 26일 검찰청을 폐지하고 기획재정부를 분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에 따라 검찰청은 설립 78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검찰청 업무 중 수사는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 기소는 공소청이 맡는다. 중수청은 행정안전부 장관, 공소청은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정해졌다. 검찰청 폐지와 중수청·공소청 설치에는 1년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지난달 30일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서 검찰청 폐지는 내년 10월로 정해졌다. 내년 10월1일에 법률안이 공포되고 이튿날인 10월2일 중수청·공소청이 설치되는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검찰의 권한을 줄이는 방향으로 검찰개혁을 본격화한 데 이어 이재명정부에서 검찰 폐지를 결정하면서 진보 정부의 숙원이 이뤄졌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정부 출범 직후부터 검찰청을 폐지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검찰의 수사‧기소 업무를 분리하고 수사권 등은 신설 기관으로 이관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취임한 이후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 선거 전부터 “추석 전 처리”를 공공연하게 말해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검찰이 되도 않는 것을 기소해 무죄를 받고 나면 면책하려고 항소하고, 상고하면서 국민한테 고통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형사소송법에 ‘10명의 범인을 놓쳐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며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혹시 무죄거나 무혐의일 수 있으면 기소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검찰이) 마음에 안 들면 기소해서 고통을 주고 자기 편이면 죄가 명확한데도 봐주면서 기준이 다 무너졌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1심이 무죄라고 했는데 (검찰이) 무조건 항소해서 유죄로 바뀌면 타당한가”라며 “검찰이 1심에서 무죄 난 사건을 항소해서 유죄로 바뀔 가능성이 얼마나 되나”라고 물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 내년 10월 폐지 확정돼 정 장관이 ‘5% 정도’라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95%는 무죄를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서 항소심으로 생고생한다는 말”이라며 “나중엔 무죄는 났는데 집안이 망했다, 이거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말 아닌가”라고 했다. 또 “국가가 왜 이리 국민한테 잔인한가”라며 “인류 수천년 역사에서 경험으로 정한 역사가 있다. 의심스러우면 피고인 이익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검찰청 폐지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검찰개혁을 숙원으로 여겼던 여권에선 일제히 ‘환영’의 뜻을 보였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일방 독주’라고 비판했다. 실제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국민의힘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퇴장하면서 민주당 주도로 표결이 진행됐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본회의 의결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대중 대통령님에게 사형을 구형했고 노무현 대통령님을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던 정권의 칼, 검찰은 이제 사라졌다”며 “역사적인 날이다. 검찰청이 78년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과 함께 기자간담회를 진행한 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78년이라는 세월 사이 우린 여러 번에 걸친 개혁의 후퇴, 개혁의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며 “이제는 그 길을 다시 가지 않겠다고 하는 개혁 의지가 제대로 발현된 정부조직법”이라고 개정안을 평가했다.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이재명정권이 끝내 검찰청을 없앴다. 이는 간판을 바꾼 문제가 아니라 국민을 지켜주던 마지막 사법 안전망을 무너뜨린 폭거”라며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건 사회적 약자”라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그러면서 “그 공백은 가장 약한 곳에서부터 드러난다. 아동 학대, 장애인 대상 범죄, 노인 학대 사건은 피해자가 말문을 열기 어렵고 증거는 금세 사라진다”며 “예전에는 빠진 단서를 보완하고 잘못된 수사를 되돌릴 두 번째 기회가 있었지만 이제 그 문이 닫혔다”고 비판했다. 검사들은 집단 반발 하루아침에 조직이 사라지게 된 검찰 내부는 참담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노 대행은 지난달 29일 검찰 구성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78년간 국민과 함께해 온 검찰이 충분한 논의나 대비 없이 폐지되는 현실에 총장 직무대행으로서 매우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어 “헌법상 명시된 검찰을 법률로 폐지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역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들도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명백한 위헌”이라면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헌법은 89조에서 검찰총장 임명에 대해, 또한 제12조와 제16조에서는 검사의 영장 청구권에 대해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며 “이런 규정은 헌법의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정부의 준사법기관인 검찰청을 둔다는 것을 명백히 한 것이므로 이를 폐지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설명했다. 검사들 사이에서도 동요가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을 통해 발동한 특검에 파견된 검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3대 특검팀에는 110명의 검사와 99명의 검찰 수사관이 파견돼있다. 김건희 특검팀에는 40명, 내란 특검팀과 채 상병 특검팀에는 각각 56명, 14명의 검사가 근무하고 있다. 김건희 특검팀과 내란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 수를 보면 웬만한 일선 검찰청 검사 정원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 가운데 김건희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들이 “검찰청으로 복귀하겠다”고 요청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국무회의 의결에 대한 집단 반발로 해석된다. 위헌 주장 헌재 가나 검사들은 지난달 30일 민중기 특검에게 입장문을 제출했다. 입장문에는 정부여당의 검찰개혁 핵심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 ‘검찰의 직접 수사 금지’인데 특검에 검사들이 남는 건 모순이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권이나 시민사회 단체 등에서는 ‘자업자득’이라는 의견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검찰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칼을 휘두르면서 현재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권력의 방향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는 검찰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줄 수 없다는 의지가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안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실제 진보 정부에서는 오랜 시간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시도해 왔다. 본격화된 것은 문정부 때부터지만, 그 시발점은 김대중·노무현정부 때라고 봐야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립 등 검찰개혁의 핵심 방안들은 다 그 시기에 나왔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검찰개혁은 실패했다. 검찰의 반발이 대단했고 당시 정치권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를 진행하면서 이들의 위세도 엄청났다. 실질적인 검찰개혁이 이뤄진 건 문정부 들어서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검찰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고 국민 여론도 정부에 힘을 더했다. 문정부에서 검찰은 ‘적폐 청산’의 칼로 기능하면서 동시에 개혁 대상으로 지목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졌고 공수처가 출범했다. 문제는 검찰개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내부 출혈이 상당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박근혜정부에서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이후 한직으로 좌천돼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연이어 영전시켰다. 진보 정부의 숙원 노·문 거쳐 결말 이는 향후 문정부를 뒤흔들었던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의 갈등, 윤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 당선 등의 불씨가 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의혹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떨구기도 했다. 조 전 장관의 뒤를 이어 취임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윤 전 대통령과 정면으로 출동했다. ‘추·윤 대전’이라는 표현이 1년 내내 언론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검찰개혁은 흐지부지됐다. 법안이 급하게 처리되면서 ‘누더기’라는 지적이 잇따랐고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공수처는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정 사건에 대한 수사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등을 두고 기관끼리 갈등을 빚는 일도 일어났다. 경찰에 수사가 몰리면서 재판이 지연되는 일도 벌어졌다. 문정부의 검찰개혁을 ‘반쪽짜리’라고 평가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이후 이정부는 아예 검찰청을 없애겠다는 뜻을 품고 임기를 시작했다. 대선후보 때는 물론 윤석열정부 시기 내내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던 이 대통령은 검찰에 대판 비판적인 시각을 줄곧 드러낸 바 있다. 그리고 이 대통령의 뜻은 민주당을 거쳐 법안을 통해 실현됐다. 물론 과제는 산적해 있다. 당장 보완수사권 문제를 두고 이견이 있고 중수청과 공소청을 어떻게 운영할지 세밀하게 구상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은 보완 수사권을 존치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검사가 경찰의 기록만 갖고 기소 여부를 판단하면 부실 기소, 불기소 남발 등으로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주장의 배경이다. 또 검찰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기 위해 개혁을 진행했지만, 이 과정에서 또 다른 기관이 비대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일각에서는 이름만 다른 ‘검찰’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검찰이 정권의 칼로 기능했던 것처럼 다른 이름의 ‘칼’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걱정이다. 산적한 과제 후폭풍 남아 검찰은 꽤 오랜 시간 외줄 위에 서 있던 상황이다. 이정부가 그 줄을 끊으면서 검찰은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검찰에 대한 경고는 늘 있었고 전조도 뚜렷했다. 이제 후속조치를 두고 정치권은 물론 사회가 시끄러워질 전망이다. 검찰 해체가 가져올 후폭풍은 국민에게 언제쯤 닿을 것인가.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