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이별법’을 아십니까

“끝내!” 한마디에 ‘욱’ 무서워 못 헤어져요∼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난해 한 결혼정보회사가 20∼30대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진행한 ‘이별 통보 방식’에 대한 조사 결과는 사뭇 놀랍다. 미혼남녀 10명 가운데 4명 이상(44.2%)이 ‘카카오톡 혹은 문자메시지’ 통보를 가장 선호하는 이별 수단으로 꼽은 것이다. 전화(23.9%) 통보 방식까지 포함하면 미혼남녀의 약 70%가 얼굴을 보지 않고 이별하는 방식을 선호한다고 답한 셈이다.
 

해당 결혼정보회사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혼남녀들은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가 감정에 흔들리는 등 변수가 생길 확률이 낮고 자신의 감정 상태와 이별 이유를 명확히 전달하기에 적합다고 응답했다. 

조사 1년 후인 6월 초 온라인 커뮤니티에 해당 자료가 올라왔다. 누리꾼의 반응은 놀라웠다. “안전 이별을 위해서는 카톡이 최고지.” “얼굴 보고 말하면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얼굴 보고 (이별을) 말하더라도 사람 많은 데서 해야 한다.” “이별 범죄는 남 일이 아니다” 등의 댓글이 쏟아졌다.

신조어까지 생겨

포털 사이트서 ‘안전이별’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신조어 사전이 뜬다. 사귀는 사람과 헤어지면서 스토킹·감금·구타·협박 없이 자신의 안위와 자존감을 보전하면서 이별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신조어 사전에는 연인 또는 배우자의 이별 통보를 받아들이지 못해 저지르는 범죄를 뜻하는 ‘이별범죄’라는 단어도 등록돼 있었다. 과거에도 헤어짐을 말한 연인을 살해하거나 구타하는 등 이별 통보가 원인이 된 범죄가 있었지만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잦은 일은 아니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데이트 폭력 집중 단속·수사 결과 9364건의 신고가 접수됐고 그 중 8367명이 형사 입건됐다. 데이트 폭력 검거 인원은 2012년 7584명, 2013년 7237명, 2014년 6675명, 2015년 7692명으로 집계됐다. 지난 5년을 기준으로 매년 평균 7700명이 데이트 폭력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협박, 스토킹, 성폭행, 살인…
연인 이별 범죄 수위 높아져

미혼의 연인 사이에서 나타나는 폭력이나 위협을 뜻하는 데이트 폭력은 관계의 특성상 신고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 실제 범죄 건수는 더 많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또한 연인이라는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일이기 때문에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높고 재범률도 80%에 가깝다.

데이트 폭력 수위는 이별 이후 수직으로 높아진다. 말다툼을 넘어 협박, 스토킹, 성폭행, 살인 등 강력 범죄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안전하게 이별하는 법’ ‘안전 이별 수칙5’ 등의 글이 올라오는 현 상황이 데이트 폭력, 이별 범죄가 이미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는 방증이다.

지난 1일 대전고법 청주제1형사부는 “헤어지자”는 말에 격분해 동거녀를 살해하고 콘크리트로 암매장한 30대 남성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이 남성은 2012년 9월 충북 음성의 한 원룸에서 동거녀의 이별 선고에 분노, 폭행 후 범행을 감추기 위해 시멘트를 덮어 시신을 숨긴 혐의를 받았다. 

해당 남성에 대한 법적 처분에 누리꾼은 분노했다. 범인 측과 합의한 유족이 피해자와 20년간 의절한 아버지라는 소식은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앞서 지난해 5월에도 결별을 통보한 여자 친구를 살해한 후 시멘트를 이용해 암매장한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줬다. 26살의 범인은 이별을 고한 24살 여자 친구를 목 졸라 죽인 후 인근 야산에 시멘트로 암매장한 혐의를 받았다. 


범인은 범행 이후 여자 친구의 휴대폰을 이용해 가족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살아있는 것처럼 꾸미는 등 적극적으로 은폐 시도를 했던 것으로 드러나 대중을 경악케 했다.

이별 통보에 대한 보복이 가족에게 번지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지난 6일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던 80대 여성이 목 졸려 숨진 채 발견됐다. 범인은 피해자 딸의 전 동거남이었다. 범인은 헤어진 동거녀를 만나기 위해 아파트에 침입했다가 여성의 노모를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7월에는 동거녀가 이별 후 만나주지 않자 그의 여동생을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평소 피해자와 허물없이 지냈지만 동거녀가 이별을 통보하자 돌변했다. 피해자의 언니는 자신 때문에 동생이 살해됐다는 죄책감에 시달렸고, 가족 관계가 아예 파괴되는 상황에 처한 것으로 알려졌다.

헤어진 연인의 은밀한 사진을 올려 보복하는 ‘리벤지 포르노’도 10여년 전과 비교해 20배 이상 급증했다. 인터넷 등을 통해 무차별로 유포되는 음란물 중 상당수가 옛 연인을 몰래 촬영하거나 사귀는 동안 함께 찍은 수위 높은 사진인 것으로 추정됐다.

돈 빌려 달라·가족 핑계
무사한(?) 이별방법 관심

지난 3월에는 이별 요구에 앙심을 품고 성관계 동영상을 찍어 피해자의 가족과 직장 동료 등에 무차별로 살포한 50대 남성이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범인은 페이스북 등 SNS에도 동영상을 올리고 피해자가 항의하자 “주변 사람들한테 모두 뿌리겠다”며 협박했다.

수사당국과 법원은 보복성 음란물 유포를 악질 이별 범죄로 규정하고 엄정히 처벌하겠다는 입장이다. 실제 헤어진 여자 친구와의 성관계 동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한 20대 남성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등 처벌 수위가 높아진 상태다. 

일각에선 음란물 유출 행위가 심각한 성폭력 범죄라는 인식이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음란물 보복이 그야말로 ‘인격 살인’에 가까운 범죄인만큼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별 범죄의 이유로 상대를 사랑했다기보다 소유물로 여기는 집착의 심리가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했다. 자존감이 낮거나 사회적 관계 형성이 잘되지 않은 사람의 경우 이별에 취약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중장년층서 발생하는 데이트 폭력 역시 상대를 자신이 취한 성과물로 여겨 저지르는 일이 많다고 설명했다. 또 상대의 이별 통보를 자신이 이룬 업적이나 성과의 상실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아 배신감을 느껴 폭력 혹은 살인을 저지르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깔끔한 이별 방법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집착하는 애인 떼어내는 법’ 등의 글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해당 글에는 “남자친구를 만날 때마다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집착하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회사로 찾아가 진상 짓을 했다.” “일부러 남자 친구 집에 불쑥 들어가 그의 가족들에게 무례하게 굴었다”는 여성의 경험담이 녹아 있었다.


가족도 피해

해당 글에는 안전 이별을 위한 누리꾼들의 숱한 행위가 댓글로 달렸다. 돈을 꿔달라고 하거나 가족 중에 누군가 위독하다거나 등 돈이나 집안 문제를 내세워 상대방이 먼저 떨어지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조언도 이어졌다. 일부 누리꾼들은 “이제 이별도 학습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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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