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 첫 타깃 ‘용의 기업들’ 어디?

하림? 성주? 걸리면 끝장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새 정부의 정책 기조를 예의주시하던 재계가 난처하게 됐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공정거래위원장에 임명돼서다. ‘재벌 저격수’가 전격 등판함에 따라 ‘일감 몰아주기’와 ‘하청기업 불공정행위’ 등으로 구설을 양산하던 몇몇 기업은 바짝 긴장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지난 13일 문재인 대통령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임명을 강행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김상조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12일까지 보내달라고 국회에 요청했지만 국회에서 논의가 안 되고 기한없이 시간만 지나가고 있다”며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임명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이번 결정은 더 이상 야당에 끌려다닐 수 없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나 다름없다. 

반대 무릅쓰고
돌격 준비 중

청와대의 임명 발표에 즉각 야권은 반발했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서 “자유한국당은 문 대통령의 임명 강행을 협치 포기 선언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절대 동의할 수 없고 인정할 수 없는 독선이자 야당에 대한 기만”이라고 비판했다.


사실 김상조 위원장의 내정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2일까지만 해도 기다려 보자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13일 오전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이 만나서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해 공동으로 반대 의사를 밝히자 결국 임명 강행을 택했다. 

임명을 하지 않아도 추경을 반대하고, 임명을 해도 추경을 반대한다면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는 임명 강행을 하는 것 이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셈이다.

한층 예리해진
공정위의 칼날

김 위원장이 공정위 수장에 오르면서 새 정부의 개혁 드라이브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공정위의 칼끝이 어디로 향할지 벌써부터 수많은 뒷말이 오간다. 재계는 성주그룹, 하림그룹이 김상조호 공정위의 첫 타깃으로 지목될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하고 있다. 이들은 편법 승계, 협력업체에 대한 갑질 문제가 수면위에 불거졌던 곳이다. 
 

패션 브랜드 MCM을 운영하는 성주그룹은 최근 하도급업체에 대한 불공정행위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원청업체의 갑질 여부가 이슈가 된 만큼 불공정하도급 관행을 집중 점검 결과에 따라 ‘적폐척결 1호 기업’이 될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다.

에스제이와이코리아·맨콜렉션 등 MCM 제품 제조 하도급업체들은 지난 3월 성주디앤디(MCM 브랜드 생산·판매법인)를 불공정거래 행위를 이유로 공정위에 신고했다. 

성주디앤디가 부당한 단가를 적용하고 소비자가 반품할 경우 구매가가 아닌 백화점 판매가로 보상을 떠넘기는 등 불공정거래 행위를 지속해 여러 업체가 부도까지 이르렀다는 게 신고서의 요지다. 


사건의 진위 여부를 떠나 성주그룹은 위신 추락이 불가피해졌다. 더욱이 이 회사의 수장인 김성주 회장은 ‘친박’으로 분류되던 인물이다. ‘MCM 성공신화’로 유명한 김 회장은 18대 대선 당시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 공동위원장을 맡는 등 대표적인 친박 인사로 활동했다.

김상조 임명 강행…재계 피바람 예고
일감주기, 편법승계…공정위 예의주시

편법승계 의혹에 휩싸인 하림그룹은 성주그룹보다 상황이 더 심각하다. 양계사업으로 출발한 하림그룹은 국내 육계공 시장 1위이자 NS홈쇼핑, 해운사 팬오션 등을 계열사로 둔 재계 30위 대기업이다.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이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규제와 관련 “편법증여에 의한 몸집 불리기 방식으로 25세 아들에게 그룹을 물려줬다”고 하림그룹을 직접 거론했다. 공정위는 하림의 승계지원·사익편취 여부 등에 대한 조사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편법증여 대상자로 의혹을 받는 이는 김홍국 회장의 1남3녀 중 장남인 준영씨다. 1992년생인 준영씨는 아직까지 그룹 경영에 참여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하림그룹 지배구조서 김 회장보다 더 많은 지배력을 확보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김 회장은 2012년 비상장 계열사 올품(당시 한국썸벧판매) 지분을 준영씨에게 물려줬고, 100억원대 증여세가 부과됐다. 그런데 그룹 자산규모에 비해 증여세가 적다는 점 외에, 증여세 마련 방법에 대한 구설이 불거졌다. 

올품이 지난해 지분 100%를 보유한 준영씨를 대상으로 30%(6만2500주) 규모의 유상 감자를 하고 그 대가로 준영씨에게 100억원을 지급했다는 것이다. 

일감 몰아주기 의혹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준영씨에게 증여되기 전인 2011년 말 707억원 수준이었던 올품과 한국썸벧의 매출은 지난해 4160억원으로 급증했다. 이 과정서 계열사들이 올품에 이익을 몰아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누구라도
걸리면 끝장

성주그룹과 하림그룹이 1순위 타깃이라면 현대글로비스, 롯데시네마 등은 2순위로 이름이 오르내린다. 

지난 2일 인사청문회 당시 김 위원장은 “상장사 규제 지분율 기준인 30% 문턱을 피하려고 29.9%로 지분율을 맞추면서 편법적으로 규제를 벗어난 기업이 적지 않다”며 “이 기업들이 일감몰아주기로 시장에 어떤 폐해를 미쳤는지 정확하게 파악한 후 적절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는 김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을 현대차그룹 오너일가와 연결시키고 있다. 현대글로비스 지분율을 29.99%로 맞춰 놓은 현대차그룹 오너일가를 지적했다는 해석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자산총액 5억 원 이상의 대규모기업집단 가운데 오너일가 지분이 상장사의 경우 30%, 비상장사의 경우 20%를 초과하는 계열사의 내부거래 금액이 200억원 또는 연간 매출의 12% 이상일 경우 과세대상이다.

롯데시네마는 김태년 의원의 작심 발언 후 일감몰아주기 의혹이 한층 커졌다. 김 의원은 “롯데시네마 내 매점 일감떼어주기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실제로 롯데그룹 총수 일가 5명은 이름만 등기이사로 올려놓고 500억원대 급여를 챙겨주고 ‘롯데시네마’에 일감을 몰아주는 방법으로 회사에 700억원대의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2013년에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기업 일감몰아주기 규제에도 걸렸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 신동주 전 부회장,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신 총괄회장의 셋째 부인 서미경씨 등은 조만간 이와 관련해 재판을 본격적으로 받게 된다.

입찰 담합의 불공정 행위가 관행으로 뿌리 내린 건설업계는 통째로 긴장해야 할 처지다. 일감 몰아주기, 하도급 대금 미지급 등 건설업계의 불공정 관행이 공정위에 발각될 시 엄청난 후폭풍에 직면해야 하는 까닭이다. 

25일 공정거래위원회 자료를 보면 2010년부터 지난달까지 주요 20개 건설사가 담합 과징금으로 1조2338억원을 부과받았다. 현대건설이 2041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삼성물산(1837억원), 대림산업(1403억원), SK건설(962억원), 대우건설(855억원), GS건설(746억원), 포스코건설(710억원), 현대산업개발(623억원) 순이었다.


건설업계의 입찰 담합이 좀처럼 근절되지 않자 정치권은 올해 초 강력한 처벌조항을 만들었다. 국회는 올해 3월 2일 본회의를 열고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건설사가 3차례 공공공사 입찰 담합이 적발됐을 때 퇴출당하는 ‘삼진아웃제’ 적용 기간을 기존 3년서 9년으로 늘렸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등 유통업체가 첫 타깃이 될 공산도 크다. 김 위원장은 공정위의 책무 중 골목상권 등 경제적 약자에 대한 보호정책을 강조해왔다. 이를 감안하면 가맹대리점이나 하도급 거래에 대한 공정위의 관리 감독은 더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통업계를 긴장시키는 건 대규모 유통업자의 위법 행위에 대한 징벌 수준 강화 여부다. 현재 대규모 유통업자가 대규모 유통업법을 위반하면 공정위로부터 시정조치를 받거나 과징금을 부과 받는다. 

하지만 해당 과징금이 피해자의 손해배상을 위해 쓰이지 않고 국고로 환수돼 피해자가 배상을 받지 못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공정위는 대규모 유통업법에 징벌적 배상을 도입하는 내용을 국정기획위원회에 보고했다. 

안절부절 속내
폭풍전야 분위기

현행 백화점·홈쇼핑만 공개하는 수수료율 공개서 한발 나아가 대형마트와 오픈마켓, 소셜커머스 업계의 수수료율까지 확대해 공개할 가능성이 높다. 모바일 쇼핑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관련 업계의 수수료율에 대해 공정위는 현재 공개하고 있지 않다. 규제가 확대되면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몰 운영업체의 수수료율이 공개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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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확실하다고 굳게 믿었던 관계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새 정부 초기부터 보이기 시작한 적신호가 이제 눈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모습이다. 어디서부터 균열이 시작된 걸까? 우리나라 외교는 한미동맹을 배경으로 진행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꾀한 때도 있지만 대체로 한·미 혹은 한·미·일 관계가 우선시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와 미국이 삐걱거리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상수였는데 변수됐나 지난 12일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귀국했다. 이번에 구금된 한국인은 총 317명으로 남성 307명, 여성 10명이다. 이 가운데 1명은 잔류를 택했다. 지난 4일, 미국 이민 당국의 불법체류 및 고용 전격 단속에서 체포돼 포크스턴 구금시설 등에 억류된 지 8일 만이다. 이들은 미국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중에 체포·구금됐다. 문제 해결을 위해 조현 외교부 장관이 미국을 급히 방문했다. 당초 이들은 지난 10일(현지시각)에 전세기를 타고 출국할 예정이었지만 ‘미국 측 사정’으로 지연됐다. 외교부는 이번에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향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미국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현 외교부 장관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에게 이들이 신체적 속박 없이 신속히 귀국하고 향후 미국에 재입국하는 데 불이익이 없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미국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을 받았다고 한다.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미국을 떠나는 방식을 두고 우리나라와 미국 간의 이견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자진 출국’을, 미국은 ‘추방’을 언급한 것이다. 자진 출국 방식으로 귀국하면 향후 ‘5년 입국 제한’ 등의 불이익이 없다. 반면 추방 명령으로 미국을 떠나면 영구적으로 기록이 남아 최대 10년간 미국에 들어갈 수 없다. 지난 8일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이 이번 사안과 관련해 “법대로 하고 있다. 그들은 추방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출국 형태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다행히 미국 측과 조율이 이뤄지면서 자진 출국 형태로 귀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루비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도 이재명 대통령과 도출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고, 이 사안에 대한 한국인의 민감성을 이해하고 있다. 특히 미국 경제·제조업 부흥을 위한 한국의 투자와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야 “700조원 줬는데도?”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측이 원하는 바대로 가능한 한 이뤄질 수 있도록 신속히 협의하고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상황이 봉합되는 모양새지만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의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인 체포·구금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 이민 당국의 모습을 두고 동맹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미국 측은 한국인 체포 과정에서 수갑을 채웠고, 이들을 환경이 열악한 수용소에 구금했다. 야권에서 ‘외교 참사’가 일어났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6일,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이후 내놓은 논평에서 “이재명정부는 700조원 선물 보따리를 미국에 안겼지만 회담은 공동성명조차 발표하지 못한 채 끝났다”며 “그 결과가 고스란히 현대차-LG 합작 공장 단속 사태로 돌아왔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국민 사이에서는 실컷 투자해 주고 뒤통수 맞은 것 아니냐는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700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약속해 놓고도 국민의 안전도, 기업 경쟁력 확보도 실패한 것이 이재명정부의 실용 외교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는 관세 협상,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미국에 5000억달러(약 700조원)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지난 6일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수갑 채우고 수용소 넣고 장 대표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불법체류자 단속을 넘어 앞으로 미국 내 한국 기업 현장과 교민 사회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수많은 한국 기업이 미국 전역에서 공장을 건설하고 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무더기로 체포되는 일이 되풀이된다면 국가적 차원의 리스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미국 측과 방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조 장관은 루비오 장관 등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사태의 재발 방지책과 대미 투자 한국 기업 관계자들의 비자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 장관은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새로운 비자 카테고리를 만드는 등 다양한 방안 논의를 위한 ‘한미 외교부-국무부 워킹그룹’ 신설을 제의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한미 관계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미 관계가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 직후부터 관세 등을 무기로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동맹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된 바 있다. ‘삐걱거림’은 이정부 출범 초기부터 감지됐다. 미국 백악관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과 관련해 처음 내놓은 메시지에서 중국을 언급해 ‘이례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백악관은 지난 6월3일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한미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된다”면서도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진행했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의 메시지를 두고 이정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행사 견제, 실용 외교를 표방하는 이 대통령이 중국과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 등 다양한 해석이 이어졌다. 당시 미국은 중국과 관세를 두고 이른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서 다소 소강상태가 되긴 했지만 갈등의 골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분위기만 화기애애? 관세 협상이나 한미 정상회담을 두고도 여전히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 시한으로 정한 날짜를 하루 앞두고 미국과 타결을 이뤄냈다. 당초 한미FTA로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의 관세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0’이었기에 타격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한을 통해 언급한 상호 관세 25%를 15%로 낮추는 데는 합의했지만 과정은 난항을 거듭했다. 루비오 장관의 방한이 취소되는가 하면 ‘한미 2+2 통상 협의’를 앞두고 미국 측의 취소로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길을 돌리는 일도 벌어졌다. 일본이 먼저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기준이 생기고 시간에 쫓기는 등 여의치 않은 상황이 지속됐다. 결국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에서 정리됐고 동시에 천문학적인 수준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이때도 관세 협상 결과를 두고 이견이 나타났다. 우리 정부 측은 쌀, 소고기 등 농산물 개방은 없다고 주장했던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면 개방을 말했다. 또 대미 투자의 방식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보였다. 이견은 한미 정상회담을 거치고도 조율되지 않은 모양새다. 미국 측은 관세 협상 타결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대통령의 방미를 언급했고 실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앞에 두고 면박을 주는 등의 돌발 행동을 보인 바 있어 우려가 제기됐지만 무난하게 마무리됐다는 평을 받았다. 문제는 명문화된 결과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달 25일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했지만 공동합의문은 발표하지 않았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을 통해 동맹의 성과와 협력 의제를 문서화해 왔다. 당선 메시지에 중국 언급 정상회담 합의문도 없어 당시 공동합의문이 나오지 않은 데 대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제기될 정도였다. 정상회담에서 각종 현안을 폭넓게 논의했지만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결과였다. 특히 자동차 관세가 확정되지 않으면서 업계는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으로 타결했지만 문서로 명시되지 않은 것이다. 안보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인 지난달 2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동발표문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라며 “정상 간 논의 내용은 상당 부분 생중계됐고 나머지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양국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위 안보실장은 “문건을 만들어내기까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많은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추가 협의를 하면 마무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온 조 장관의 발언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그는 “투자 부문에서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어 수용하지 않았다”며 공동합의문이 발표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이어 “미일 간 합의문 내용을 보면 왜 우리가 협상을 지연해 가면서까지 안을 만들고 있는지 이해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본은 관세 협상에서 제조업·항공우주·농업·에너지·자동차 등 분야에서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고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내용의 합의를 진행했다. 또 합의 불이행 시 미국이 관세를 재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굴욕 협상’이라는 말도 나왔다. 조 장관은 “일본의 타결 협상안을 보면 우리가 비슷한 협상안을 받아들인다고 할 때 여러 문제점이 많다”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분명히 하며 협상을 강하게 하다 보니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품목 관세가 부과될 때 최혜국 대우가 불확실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그렇다”고 인정했다. 불확실성 해소될까?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자리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타국을 대하는 방식은 이제 변수를 넘어 상수가 되는 모양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한미 관계를 더 흔들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