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천국’ 대한민국 현주소②

어느 분야 못지않게 고소·고발이 끊이지 않는 곳이 바로 정치권이다. 선거철이 되면 특히 의원과 의원, 의원과 기업, 의원과 시민 등 명예훼손에 따른 쌍방 고소·고발 건은 계속해서 늘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권의 고소·고발은 처음엔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 정도로 떠들썩하다가 시간이 흐르면 고소·고발을 모두 취소하거나 대부분 흐지부지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동안 정계에 있었던 대표적인 고소·고발 사례를 들춰봤다.


<사례1>
한나라당 vs 민주당
BBK 김경준’ 의혹 사건

지난해 17대 대선을 앞두고 이전투구 식으로 한나라당과 민주당(당시 대통합민주신당)은 고소·고발을 쏟아냈다. 고소·고발 건은 대부분이 명예훼손으로, 반의사불벌죄에 해당돼 고소인이 취하하면 검찰은 수사를 중단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해 대선후보 한나라당 경선과 대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권의 고소·고발로 인한 수사의뢰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검찰이 정치권 공방에 휘말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대선과 관련해서 고소·고발 건이 가장 많이 나왔던 대표적인 사건은 여야를 막론하고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BBK 김경준’ 사건이었다. BBK 대표 김경준씨가 국가정보원과 정치권의 사전 음모에 의해 귀국했다는 이른바 ‘기획입국’ 의혹은 검찰 수사 결과 ‘혐의 없음’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당시 김씨는 대선 정국을 잘 이용하면 자신의 수사나 재판에 유리할 것으로 판단해 귀국했으며 “BBK의 실소유자는 이명박 후보”라는 김씨의 거짓말에 정치인들이 ‘놀아난’ 것이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와 공안1부는 ‘기획입국’과 ‘BBK 의혹’ 등으로 여야 정치권이 고소·고발을 주고받았던 사건과 관련, 당시 한나라당 홍준표, 정두언, 나경원, 정형근 의원 등과 대통합민주신당 박영선, 김종률, 이해찬 등 여야 정치인 20여명에 대해 결국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검찰은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가 불교방송에 압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던 정동영 전 후보에 대해선 혐의는 인정되지만 고소가 취소된 점 등을 감안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또 “선거 당시 이명박 후보 부인 김윤옥씨가 고급 외제 시계를 차고 있다”고 주장한 민주신당 김현미 전 의원에 대해선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에 따라 “이명박 후보가 BBK를 100%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한 민주신당 정봉주 전 의원과 “이 후보 재산이 8천억~9천억원에 이른다”고 주장한 자유선진당 곽성문 전 의원 등은 불구속 기소됐다.

또 지난해 한나라당 경선당시 이명박 후보 캠프와 박근혜 후보 캠프가 서로를 상대로 고소·고발을 했다. 그러던 중 이명박 후보 측은 고소·고발을 취하하라는 당 지도부의 권고를 받아들이고 박근혜 후보를 상대로 한 각종 고소·고발을 취하했다.

취하 건으로는 ▲이 후보의 처남 김재정씨가 박근혜 후보 측 유승민·이혜훈 의원, 서청원 상임고문과 경향신문을 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한 사건 ▲김씨가 대주주인 ㈜다스가 이혜훈 의원을 고소한 사건 등에 따른 고소·고발을 취하했다.

이 후보 측은 그러나 고소취하 입장이 관련 의혹을 인정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김씨의 부동산 거래 계약서 등 각종 자료를 당 검증위에 제출했다.


<사례2>

청와대 VS 이재오·박계동 의원
이재오·박계동 명예훼손 ‘무혐의’

고소·고발 건 중 청와대가 국회의원을 명예훼손으로 고소·고발한 사례도 있다. 지난 대선 당시 청와대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한나라당 이재오 전 최고위원에 대해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일부 혐의가 인정된 박계동 전 의원은 약식기소 됐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지난 대선 당시 청와대 공작설을 제기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된 이 전 최고위원을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 전 최고위원은 지난해 6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현해 “청와대 비서관들이 퇴근 후 서울 공덕동 창평포럼에 모여 노무현 정권 연장과 이명박 후보 죽이기 계획을 꾸미고 있다는 정보와 근거를 확보하고 있다”고 말해 청와대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검찰은 이 전 최고위원이 청와대 비서관들의 모임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모임에서 대선 관련 논의가 있었다는 제보를 받은 사실 등이 인정돼 혐의 없는 결론을 내렸다.

검찰은 또 지난해 7월 청와대의 정권재창출 TF팀이 있다고 발언해 고소당했던 박계동 당시 한나라당 위원장에 대해서는 당시 발언에 대한 근거자료를 제시하지 못해 벌금 3백만원에 약식기소 판결을 내렸다.

<사례3>
주성영 의원 VS 고대녀
주 의원 공개사과…고대녀 “절대 용서 못해”


시민이 한나라당 현직의원을 고소·고발해 화제가 되었던 사건도 있다. 지난 6월20일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이 MBC ‘100분토론’에 고대녀로 알려진 김지윤 학생의 프로필이 기록된 문서를 들고 나와 김씨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주 의원은 “지난주에 MBC ‘100분토론’에 서강대녀와 고려대녀가 나온 적이 있다”며 “고려대 여학생의 프로필이다. 김지윤 학생”이라며 A4용지 한 장을 들어보였다.

이어서 “김지윤은 고려대 학생이 아니다. 고려대학교에서 제적을 당했다. 이력을 보면, 민주노동당 당원이고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보궐 선거에도 선거운동을 했다. 정치인이다”라며 “그런데 프로그램에 나올 때는 고려대학교 재학생으로 나왔다. 이게 말이 되느냐”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지윤씨는 학교 측으로부터 제적됐다가 복학해서 현재 사회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김씨는 “정말 황당하고 화가 난다. 저는 지금 고려대학교에 다니고 있다”며 “2006년 출교 조치 이후 2007년 법원으로부터 무효판결을 받았고 가처분 판결을 통해 학생 신분을 회복했다”고 밝혔다.

또 “저는 몇몇 인터뷰를 통해 제가 출교를 당했었고 민주노동당 당원임을 밝힌 바 있다”면서 “주성영 의원은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저를 마치 전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공중파 방송에서 경솔하게 한 학생의 명예를 완전히 훼손하는 주성영 의원의 행동에 분노를 감출 수 없다”고 전했다.

결국 주 의원은 김씨에게 공개사과를 했고 김씨는 허위사실을 유포로 인한 명예훼손으로 주 의원을 고소·고발했다. 김씨는 “이 사건에 대해 주변에서 질문을 많이 받아 얼마 전 검찰에 문의를 했는데 검찰 측에선 아직 조사 시작도 안 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사례4>

전직 대통령 VS 주성영 의원
DJ, 허위사실 유포·명예훼손 고소


최근 주성영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DJ) 측으로부터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대검찰청에 고소당한 상태다. 전직 대통령이 현직 의원을 상대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주 의원은 지난달 21일 한 라디오 프로 인터뷰에 출연해 전날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장에서 제기한 이른바 DJ 비자금 문제를 다시 발언함으로써 고소를 당한 것이다.

주 의원은 이날 “2006년 3월초 전직 검찰 관계자로부터 1백억원짜리 CD(무기명 양도성예금증서) 제보를 받았다”며 “DJ 비자금 문제는 전부 해외계좌에 연결되어 있고 6조원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DJ 측의 법률대리인 이호균 변호사(법무법인 한강)는 이날 고소장을 제출하면서 낸 보도 자료에서 “이러한 피고소인의 발언은 그동안 미국에 있는 일부 무책임한 교포신문들이 수년 동안 거듭 주장해온 허무맹랑한 내용들이다”라며 “한국의 일부 언론도 이를 받아썼다가 법정에서 사과하고 정정보도를 낸 바 있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피고소인은 그 어느 것도 사실로 밝혀진 것이 없음에도 익명의 검찰 관계자를 내세워 마치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 의혹인 양 허위의 사실을 적시했다”면서 “국회의원은 일개인이 아니고 국가기관이다. 무책임한 허위 사실을 함부로 퍼뜨려서 국민을 현혹시키고 무고한 사람의 명예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고소 배경을 밝혔다.

<사례5>
언론사 VS정청래 전 의원
문화일보 기자 무혐의 판결에 이의 제기


지난 4월7일 총선을 앞두고 <문화일보>는 민주당 정청래 전 의원이 4월3일 한 초등학교에서 김 모 교감에게 “이런 식으로 하면 다 모가지 잘리는 수가 있어”라고 발언했다는 내용을 보도해 당시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정 전 의원은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 및 제보자 2명 등에 대해 명예 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검찰은 7월24일 서울 중앙지법은 제보자 2명에 대해서만 혐의를 인정하고 해당사의 기자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에 정 전 의원은 8월11일 국회 기자실을 찾아가 “거짓 기사를 쓴 거짓 기자에 대해 검찰이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처리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가 없다며 이의를 제기하고 항고를 해서라도 끝까지 추궁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교감 폭언 사건에 대해 “<문화일보>가 서울 중앙지법에 공개한 취재원은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한나라당 현역 구 의원이었다”면서 “이 한나라당 구 의원은 가짜 학부모를 동원해 <문화일보> 기자에게 허위제보를 하게 하고 문화일보 기자는 사실 확인도 안 한 채 허위 날조 기사를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정 전 의원은 “김 교감이 교육청에 제출한 경위서에 따르면 ‘폭언, 폭행을 당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대답했으며, ‘행사장 진입을 막았고 정 의원이 항의를 했다는데’라는 말에는 ‘70% 정도 맞다’고 답한 것으로 돼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문화일보>가 이 내용을 섞어 ‘폭언, 폭행을 당했느냐’는 질문에 ‘70% 정도 맞다’고 대답한 것으로 조작해 기사를 쓴 것이다”고 정 전 의원은 주장했다.

이어 “KBS <미디어포커스>에서 선거 직후 ‘정청래 죽이기’의 실상을 보도하자 이 모 기자가 김 교감을 찾아가 ‘회유성 입 맞추기’를 시도, 녹음까지 하는 비윤리적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며 “언론으로서 <문화일보>는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이라고 비난했다.

아울러 정 전 의원은 “이 같은 검찰 수사 결과를 볼 때 <문화일보> 기자에 대해 ‘허위 제보임을 알고도 악의적으로 기사를 썼다’는 양심 고백이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판결을 내린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검찰은 정 전 의원의 고소에 대해 “4월2일자 시비과정에서 고소인 정청래가 S초등학교 교감 K에게 면전에서 ‘잘라버리겠다’고 실이 없고, 위 학교 교장 C로 하여금 3시간 동안 기다리게 하는 등 무례하게 군 사실이 없음에도 <문화일보> 기자인 000, 000이 위와 같은 기사를 작성했고 문화일보 편집국장인 000 등이 위 기사들을 보도해 일부 사실과 다른 내용의 보도가 된 점은 인정된다”고 결론내림으로써 해당기사가 사실에 근거하지 않았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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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에 판 깔린 ‘명심’ 선발전

경기도에 판 깔린 ‘명심’ 선발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6·3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선거판을 달구고 있다. 여당 강세 지역인 만큼 민심은 물론 당심까지 한번에 훑어볼 절호의 기회다. 1차 예비경선도 ‘기승전 이재명’으로 막을 내렸다. ‘찐명’ 타이틀을 거머쥘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지, 여당의 이목이 경기도에 쏠리는 이유다. 지난 22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경기도지사 예비경선을 실시했다. ▲김동연 현 경기도지사 ▲추미애 의원 ▲한준호 의원 등으로 후보가 압축되면서 3강 체제가 굳어졌다. 권칠승·양기대 후보는 고배를 마셨다. 100% 권리당원 투표로 진행된 만큼 오직 당심으로만 결정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현역인 김동연 후보는 행정력을, 추미애 후보는 검찰개혁 선봉자와 6선의 중량감을, 한준호 후보는 친명(친 이재명)계 조직력을 바탕으로 1차 관문을 통과했다는 평을 받는다. 당심 100% 첫 관문 본경선은 다음 달 5~7일 진행되며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상위 2명이 15~17일 결선투표를 치른다. 본경선 투표는 권리당원 50%와 국민 여론조사 50%가 반영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 검찰개혁에 앞장선 추 후보는 강성 지지층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다. 추 후보 역시 이를 동력 삼아 사법 3법(법 왜곡죄, 재판소원법, 대법관 증원법)과 중수청·공소청 설치 법안 강행 처리를 주도했다. 추 후보는 출마 선언을 통해 선명한 개혁과 강인한 리더십을 강조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이 재난지원금과 청년기본소득을 적극 추진하며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하고, 수십 년간 지지부진했던 불법 계곡을 정비해 경기도가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던 것처럼 경기도에도 도민을 행정 중심에 놓는 사고의 전환과 강한 결단력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 추미애는 개혁이 필요하면 정면으로 돌파했다. 원칙 앞에서 물러선 적이 없었고 어려운 이웃을 외면한 적이 없었다”며 “책임지는 행정, 실천하는 행정으로 경기도정을 이끌겠다”고 밝혔다. 한 후보는 “경기도가 성공해야 이재명정부가 성공한다”며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을 전면에 내세웠다. 한 후보는 “이정부의 실용주의를 경기도에서 가장 먼저, 가장 분명하게 성과로 완성하겠다. 지금 경기도에 필요한 것은 망설임이 아니라 실행, 말이 아니라 결단, 계획이 아니라 책임지는 도정”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당시 한 정치권 관계자는 “추 후보는 정부를 이끌 리더십을 강조했다면 한 후보는 보조하는 조력자 역할에 방점을 찍었다.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명심을 내세웠지만 이를 활용하는 방법은 다른 셈”이라며 “민주 당원도 어떤 역할이 이정부 성공에 도움이 될지 저울질하면서 선거 과정을 지켜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역인 김 후보는 “일잘러(일을 잘하는 사람) 대통령에게는 일잘러 도지사가 필요하다”며 행정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김 후보는 이 대통령이 경기도지사를 지내던 당시 추진하던 기본소득과 지역화폐 등의 정책을 이어받아 발전시킨 사례를 성과로 제시했다. 김 후보는 “지금 이 대통령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속도와 체감’이다. 좌충우돌, 시행착오로 낭비할 시간이 우리에겐 없다”며 자신이 이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국정 제1동반자’임을 거듭 강조했다. ‘강경’ 추 ‘친명’ 한 ‘비명’ 김 앞다퉈 “내가 국정 파트너 적임자” 정치권은 세 사람의 성향이 모두 다른 점에 주목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강성 추미애’ ‘친명 한준호’ ‘비명(비 이재명)이었던 김동연’이 한자리에 모였다. 경기도지사 선거를 빙자한 ‘친명 선발 토너먼트’인 격”이라며 “최종 후보가 선정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민주당 권력이 어디를 향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어 “국민의힘이 끼어들 틈이 없다 보니 민주당만의 리그가 됐다. 민주당 최종 후보는 경기도지사직뿐만이 아니라 ‘이재명의 복심’이라는 타이틀까지 얻는 효과를 본다. 민심과 당심의 향배를 모두 주목해야 한다”고 봤다. 세 사람 모두 네거티브 경쟁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예비경선 득표율을 놓고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후보 측이 “(예비경선) 2위를 확신한다”고 주장하며 불을 지핀 것. 득표율은 후보 본인에게만 공개되지만 본선 진출을 위해 각자 유리한 여론 조성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예비경선이 치러진 다음 날인 23일, 민주당 염태영 의원은 경기도의회 브리핑룸에서 ‘한준호 후보 본경선 전략 브리핑’을 갖고 “당이 후보별 전체 순위와 득표율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 추정치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면서도 “한 후보가 상당히 약진했고, 권리당원 투표에서는 2위를 했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중요한 것은 현재 수치보다 추세와 흐름”이라며 “경기도민과 권리당원들이 경기도의 미래를 이끌 새로운 지도자의 기준을 바꾸기 시작한 결과가 이번 예비경선에 반영됐다”고 해석했다. 이에 김 후보는 “순위 발표도 안 됐는데 각자 자기주장 하는 것”이라고 받아쳤다.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는 권리당원의 당심과 경기도민의 민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의 승리다. 김 후보는 당심이, 나머지 두 후보는 민심에 취약한 만큼 각각 절반이 부족하다는 평이다. 민심과 당심이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 만큼 후보들은 전략 수정에 나섰다. 그동안 추 후보는 각종 개혁에 앞장서는 등 강성 이미지를 굳혀왔다. 하지만 강성 이미지는 양날의 검이 돼 2024년 하반기 국회의장 선거 당시 낙선 원인이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강성 당심은 추 후보를 밀었지만, 의원 투표 결과 온건파인 우원식 후보가 당선되면서 급제동이 걸린 것. 추 후보는 6선의 중진이지만 이번 경기도지사까지 패배하게 되면 정치적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역풍 불라” 완급 조절 이를 의식한 듯 최근 추 후보는 ‘추다르크’라는 별명을 내려놓고 행정가로서의 면모와 실용성을 강조하고 있다. 추 후보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입법·사법·행정을 골고루 경험한 유일 후보”라며 “입법을 통해 큰 틀 아이디어를 냈다면 이제는 현장에 뛰어들어 성과를 내보고 싶다”고 말했다. 검찰개혁 완수를 본인의 최대 성과로 내세운 추 후보가 법사위원장을 내려놓고 선거에 뛰어든 것 역시 중도를 설득하기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권리당원 100%로 치러진 예비경선과 달리 본경선은 일반 여론조사와 당원 조사가 각각 50%씩 반영된다. 결국 줄어든 강성 당원의 영향력 만큼 중도층을 최대한 끌어오는 것이 관건이다. 추 후보는 사퇴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7개월간 법사위원장으로서 총 682건의 개혁법안과 민생법안을 처리했다”며 “법 왜곡죄를 도입하는 ‘형법’, 재판소원을 허용하는 ‘헌법재판소법’, 대법관 증원안이 담긴 ‘법원조직법’ 개정안 등 사법개혁 3법과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법안까지 검찰개혁 과제를 완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언제나 제 중심에는 국민이 있었고, 어떠한 가시밭길도 외면하지 않았다”며 “2021년 검찰개혁을 완수하지 못한 채 법무부 장관 자리를 떠나야 했던 무거운 발걸음이 아니라 이처럼 뜻깊은 결과를 여러분께 보고드릴 수 있게 되어 영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힘이 되어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대한민국의 중심 경기도를 승리로 이끌고 이정부와 함께 국민주권시대를 만들어 내겠다”고 덧붙였다. 한 후보는 오히려 ‘이재명 픽’을 앞세웠다. 이정부를 흔드는 세력을 향해 각을 세우면서 전투력을 강조하는 등 기존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최근 한 후보는 ‘이재명 공소 취소설’의 근원지인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대통령의 생각을 자꾸 언급하는 것 자체가 당을 지휘하고 있는 당 대표로서 맞냐는 생각이 있다”며 김어준씨와 정청래 대표 등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했다. 여권 갈등의 뇌관이 된 유시민 작가의 ‘ABC론’을 놓고 설전이 이어지기도 했다. 유 작가는 민주당 지지층을 A(가치 중시), B(본인 이익 추구), C(A, B의 교집합) 등 세가지 그룹으로 분류했으며 특히 B그룹은 “이익과 생존을 위해 친명을 자처하는 이들”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한 후보는 “갈라쳐서 얻는 게 뭔지 모르겠다”고 반응했고 유 작가가 재반박에 나섰다. 이후 한 후보는 자신의 SNS를 통해 “작가님의 말씀, 무겁게 듣고 있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며 “저를 향한 비판과 비난은 기꺼이 감당하겠다. 하지만 이 대통령님과 정부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어 “지금의 모습은 불안한 외줄타기 같다”며 “선은 분명하다. 그 선은 지켜달라”고 요구했다. 끊지 못한 명 꼬리표 한 후보는 “53% 싸움”을 내세우며 본경선 승리를 위한 지지층 결집을 호소했다. 오는 6월 선출되는 경기도지사의 임기는 4년으로 이 대통령의 남은 임기와 맞물린다. 따라서 이정부와 합을 잘 맞추는, 명심을 잘 꿰뚫는 후보가 경기도지사에 당선되어야 한다는 게 한 후보 측 지지층의 핵심 메시지다. 한 후보 역시 “‘이재명 지사였다면 벌써 해결했을 일들’을 한준호가 가장 스마트하고 빠르게 해결하겠다”며 “딱 세 표가 부족하다. 나의 한 표에 더해, 가장 가까운 두 분만 더 설득해 달라”고 밝혔다. 김 후보는 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1위의 김 후보를 추 후보가 뒤쫓고, 한 후보가 마지막 뒤집기 기회를 엿보는 구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4일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블릭이 <중부일보> 의뢰로 경기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지난 2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오는 6월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누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은 결과 김 후보는 25%, 추 후보는 22%, 한 후보는 11%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전화면접조사 방식(CATI)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5%p, 응답률은 12.7%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김 후보는 당심 100%라는 가장 어려운 관문을 뚫었지만 질긴 비명 꼬리표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의 최대 약점은 경기도지사 선거 당시 본인에게 도움을 줬던 민주당 핵심 지지층과의 관계를 소홀히 했다는 국민 인식이다. 유 작가는 한 유튜브 방송을 통해 “(당시 이재명) 대표한테 붙어 지사가 된 사람이지 않나. 배은망덕”이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2024년 임기 후반기 접어들자 본격적으로 비명 프레임이 굳어졌다. 당시 김 후보는 민주당 전해철 전 의원 등 대표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영입했고, 친명계에서는 “유력 대권후보 주자인 이재명 당 대표에 맞서기 위한 결집 시도” 등 견제가 이어졌다. 김 후보는 표를 분산시키는 친비명 프레임을 깨고 인물론에 승부를 걸었지만 민주당 여론이 심상치 않다. 일부 친민주당 성향 커뮤니티에서 “친명계와 개딸(개혁의 딸)이 벼르고 있다”는 여론이 형성되자 김 후보는 자세를 낮추고 당원에게 호소하는 메시지를 냈다. 2% 부족한 후보들…해법은? 이제 와서 고개 숙인 김동연 김 후보는 예비경선이 시작된 지난 21일 자신의 SNS에 “‘나는 동지들의 헌신에 보답했는가’ 되묻는다. 많이 부족했다”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김 후보는 “경기도의 저력도, 제가 여기에 서 있는 것 자체도, 당원 동지들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며 “갚을 길은 하나라고 믿는다. 이재명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 저는 선택의 시간 앞에, 당원동지들 앞에 서 있다. 감히 청한다.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뛰어라, 당원의 마음을 명심하고 다시 한번 일하라.’ 저 김동연에게 그 기회를 주십시오. 당원 동지들의 뜻을 간절히 기다린다”고 호소했다. 김 후보는 친비명 논란에 거듭 선을 그었다. 그는 “이 대통령 중심으로 성공한 나라를 만드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당의 친명(친 이재명)·비명은 의미가 없다”며 “경기도는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서 국정 제1파트너로서 충분히 뒷받침하면서, 필요하다면 앞에서 끌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한 후보와 마찬가지로 유 작가의 ABC론을 꼬집었다. 김 후보는 JTBC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가나다’론을 제시하며 “ABC 때문에 논쟁이 벌어진 거 같은데 저는 ‘가나다’로 얘기하면 어떨까 싶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가’는 김대중 대통령을 좋아하는 민주당의 토대다. ‘나’는 그 뒤를 이은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하고 지지했던 분들, ‘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과 성과로 보여주는 리더십을 좋아하는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ABC론이 조선시대 노론이나 소론도 아니고 가나다로 한데 뭉치고 더하는 민주당이 됐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민주당은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가 계파 분열의 초입이 될까 노심초사하는 모양새다. 이에 민주당 원조 친명 핵심으로 꼽히는 김영진 의원은 김 후보를 향한 ‘반명 공세’에 “이 대통령과 어려움을 함께했던 소중한 민주당의 멤버”라며 직접 엄호에 나섰다. 또 김 의원은 2022년 대선 당시 김동연 대선후보(새로운 물결)와의 단일화 과정을 회상하며 “안철수 후보는 윤석열 후보에게 갔지만 김 후보는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어려운 선거를 함께 뛰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분열은 ‘독’ 친명 지원전 한 민주당 관계자는 김 지사의 화합 메시지와 호소력에 주목했다. 이 관계자는 “골수 친명은 김 후보에 대한 반감이 크다. 김 후보에게 친문 표가 약 30% 정도 있다고 본다”며 “김 지사가 막판에 승리하려면 이 30%를 유지하면서 당원에게 호소하는 전략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친명을 적으로 돌리면 답이 없다. 등 돌린 사람이 있는 곳에 가서 그 사람이 원하는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