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vs 재계> 불붙은 주도권 싸움 막전막후

‘밀리면 끝장’ 외나무다리 결투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지 한 달이 지났다.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감지되고 있으며 이전 정권과 확실히 선을 긋고자 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급격한 변화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부류도 제법 보인다. 문 대통령과 힘겨루기 양상에 돌입한 재계가 대표적이다. 팽팽한 기싸움의 결말은 둘 중 하나. 재계가 정부의 강도 높은 압박을 이겨낼지, 백기를 들지 두고 볼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재계가 일자리 정책을 둘러싸고 강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정부와 재계 사이의 주도권 다툼이 시작됐다는 평가가 제기되는 가운데 자칫 전면전으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포문 연 재계
역공세 정부

포문을 먼저 연 쪽은 재계였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는 자신이 주관하는 포럼에서 문 대통령의 일자리 정책에 불만을 드러냈다. 여기에 문 대통령이 즉각 유감을 표명하며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김영배 경총 부회장은 지난달 25일 열린 포럼서 “정부가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해결 없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요구가 넘쳐나게 되면 산업현장의 갈등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며 “이는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새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과 배치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총의 작심 발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4월 말에도 김 부회장은 “세금을 쏟아부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임시방편적 처방에 불과하고, 당장은 효과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대선 후보였던 문 대통령의 공공 일자리 창출 공약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의 일자리 정책을 겨냥한 작심 발언이 나오자 청와대는 즉각 반응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경총은 비정규직으로 인한 사회적 양극화를 만든 주요 당사자로서, 책임감을 갖고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며 “정부, 노동계, 재계가 힘을 모아 비정규직 문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현 정부가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명한 건 집권 후 이번이 처음이다. 경총의 주장에 대한 불쾌감을 표출하는 동시에 문 대통령이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모멘텀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새 정부 경제공약 본격 드라이브
“대화는 없다”…단절된 연결고리

비정규직 정책을 둘러싼 한차례 잡음은 시작에 불과하다. 갈등은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본격화될 전망이다. 최저임금법에 따른 올해 최저임금 최종 결정 시한은 오는 30일. 지난 3월31일 고용노동부 장관의 심의 요청에 따라 최저임금위원회는 6월말까지 내년도 최저임금액을 결정해야 한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직후 결정되는 사안이라 그 어느 때보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기대가 높다.

실제로 과거 최저임금 인상률은 정권 성향에 따라 등락을 거듭했다. 국민의정부, 참여정부 시기에 최저임금 평균 인상률은 각각 9%, 10.6%인 데 반해 이명박 대통령 집권기에는 5.2%에 불과했고 박근혜 대통령 재임 당시에는 7.4%를 기록했다. 

재계는 최저임금 ‘동결’ 주장을 꺼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우는 현 정부에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야 하는 까닭이다. 적어도 물가 인상률과 엇비슷한 기준점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최순실 게이트’로 정경유착 현실과 불투명한 재벌 경영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점은 재계 입장에서는 치명적이다. 문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이 대중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가운데 자칫 항명으로 비칠 가능성도 충분하다. 


‘동상이몽’
불편한 동거

현 정부와 재계의 불편한 동거는 대선 과정서부터 일찌감치 예견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재벌의 불법 경영승계, 황제경영, 부당특혜 근절 ▲불공정 갑질 근절 ▲공정거래위원회 역할 강화 ▲하도급 근로자 임금 체불 해결 ▲중소기업·소상공인·자영업자 보호 등을 주요 ‘경제민주화’ 공약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공약이 이행될 경우 주요 중소기업들과의 공정한 거래 시스템, 투명한 기업지배구조 등을 서둘러 갖추지 않을 경우 대기업들은 새 정부로부터 집중적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정부가 추진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시급 1만원 선 인상 ▲소상공인·골목상권 보호를 위한 복합쇼핑몰 규제 등 나머지 주요 경제 정책들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당장 임금 비용이 늘어나고, 공격적 사업 영역 확대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계는 급격한 경제민주화나 일자리 창출 압박이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는 입장을 누차 밝혀왔다. 지난 2월에는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공동 성명을 통해 경영 투명성 확보, 소액주주 보호 등을 취지로 추진되는 상법 개정 움직임에 공식적으로 반대의 뜻을 표명하기도 했다. 

볼 수 없었던
미묘한 냉기류

현 정부와 재계 사이의 미묘한 냉기류는 분명 이례적이다. 과거 대통령들의 경우 취임 직후 경제 단체들과 ‘경제 살리기’를 위한 회동을 갖고 화기애애한 장면을 연출하는 등 화합의 기간을 가져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당선 후 26일 만에 4대 그룹 총수를 만났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취임 전 손길승 당시 전경련 회장의 예방을 받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취임 전부터 재계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물론 현실적 요인을 무시할 수 없다. 아직 경제부처 내각, 경제 관련 참모진 인선이 완료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인수위원회 없이 정부가 출범하다보니 우선순위에서 밀린 측면도 있다. 그래도 과거와 달라진 분위기인 것만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현 정부가 교류 자체를 꺼려하는 인상이 짙다. 실제로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에 대한상의·중소기업중앙회·한국경영자총협회가 민간 위원 몫으로 참석하는 것 외에 재계와 특별한 교류 움직임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재계는 정경유착 고리를 끊겠다던 문 대통령의 성향이 반영됐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재계 항명이 불쾌한 대통령
일자리 창출 공감대 어떻게?

더욱이 재계는 새 정부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도 마땅한 통로를 찾기 힘든 상황이었다. 국가일자리위원회의 ‘일자리 100일 계획’에 따라 비정규직 많은 대기업에 대한 부담금 부과 방안이 검토되고 있지만, 재계로서는 마땅한 의견 제시 기회조차 없다. 하소연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애매한 여건에 처한 셈이다. 


경총은 작심 발언 후 몸을 낮추는 기색이고 ‘재계 맏형’ 노릇을 하던 전국경제인연합회도 문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다. 

문 대통령은 2012년 9월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직후 경제단체와 양대노총을 초청한 간담회를 주재하면서 전경련만 제외시킨 바 있다. 현재 전경련은 문 대통령의 최우선 국정과제인 적폐청산의 대상으로 지목됐다. 

문 대통령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전경련 해체에 대한 대선주자 공개질의’서 “전경련은 더 이상 경제계를 대표할 자격과 명분이 없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출구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출범 한 달이 지나면서 변화 기류도 조금씩 감지되고 있다. 대한상의는 지난 8일 사실상 인수위 역할을 맡고 있는 국정기획자문위와 간담회를 가졌다. 자문위에선 김연명 사회분과 위원장, 대한상의에선 이동근 상근부회장이 각각 나왔다.

오는 7월10일에는 대한상의가 이용섭 국가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을 초청해 조찬 간담회를 통해 소통의 물꼬를 틀 예정이다. 민간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및 최저임금 1만원 인상 등을 논의하기 위한 정책간담회 형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장관급 인사가 경제단체장과 직접 소통하는 첫 자리라는 데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경총, 전경련 등 재계를 대표하는 단체는 이번에도 논의 대상에서 빠졌다. 이도영 일자리위 정책개발부장은 “경총, 전경련과 소통하기 위해 현재 실무진이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두 단체는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요청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달 말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 파견할 경제사절단 구성에서도 정부는 재계와의 소통에 소극적인 모습이다. 노무현정부 시절 삼성·현대차·LG 등 총수와 경제단체장 등 31명을 경제사절단으로 꾸린 바 있다. 

뻔히 보이는
눈치싸움

다만 재계의 자발적인 일자리 창출 노력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현 정부가 강조해 온 경제공약의 대부분은 한계가 명확하다. 즉, 정부와 재계의 대화는 필수란 뜻이다. 양질의 일자리 확충이라는 공감대 아래 어쩔 수 없이 정부가 재계와 소통의 창구를 마련 할거란 주장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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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