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테마] ‘송사천국’ 대한민국 현주소 ① 법원 문지방 닳는 ‘소송공화국’

대한민국이 소송 만능주의에 시달리고 있다. 분쟁이 생기면 형사소송부터 걸고 보는 게 요즈음의 현실이다. 입증 증거는 후순위다. 감정을 앞세워 ‘일단 걸고 보자’는 식이다. 소송에서 이기면 잘된 것이고 지면 ‘아니면 말고’ 식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소송 빈도수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2천만원 이하의 소액사건 때문에 재판정에서는 민사소액 재판도 한계 수위를 넘어섰다. 상대를 제압할 때 사용했던 ‘법대로 해 법대로’란 말이 말로만 그치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었을 때 나타나는 집단소송도 급격히 늘고 있다. 지금은 곳곳이 ‘뇌관’이다. 그 누구도 소송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요시사>에서는 ‘소송공화국’으로 변모하고 있는 실태를 집중 조명했다.

 ‘돈’ 잃었다고 ‘욱’한다고   “법대로 해 법대로”

한국이 소송천국으로 변하고 있다. 소송이 흔하기로 유명한 미국을 따라잡을 정도다. 가까운 일본과 비교해 보면 인구 1만명 당 형사고소를 당한 사람의 수는 1백55배에 달한다. 지난 2004년 우리나라에서 형사 고소당한 사람은 63만명에 달하는데 일본은 1만명 수준에 그친 것. 민사소송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이같은 각종 소송 건수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대법원이 발간한 ‘2008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법원에 접수된 소송사건은 6백6만3천46건으로 2006년에 비해 7.6%나 증가했다.

‘툭’하면 법정공방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경제공황이 지속되면서 특히 돈 문제가 법정싸움으로 비화되는 일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돈 앞에서는 혈육도, 친구도 법으로 싸워 이겨야 할 대상이 되는 세태 속에서 이와 관련한 소송건수가 늘어나고 있는 것.
실제 부산경찰청이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올초부터 9월말까지 부산지역 15개 경찰서에 접수된 고소, 고발, 진정 건수는 모두 5만1천5백70건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4만3백50건에 비하면 28%나 증가한 수치다. 합의로 끝날 수 있는 일도 ‘끝까지 가보자’는 오기 섞인 싸움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
또 경제불황은 2천만원 이하의 돈 때문에 법정까지 오게 되는 ‘금융소액사건’을 증가시키고 있다. 민사 사건은 일반적으로 소송가액 1억원 이상이면 합의 사건, 1억원 미만은 단독 사건으로 분류하고 단독 사건 가운데 소송가액 2천만원 이하의 사건을 소액 사건으로 분류한다. 이 소액 사건은 1심 전체 민사 사건의 80% 정도를 차지한다.

지난 7월까지 서울중앙지법에 접수된 대출금반환청구 소송 등 금융소액사건은 13만4천6백18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9만9천7백24건의 소송건수에 비해 35% 이상 늘어난 수치로 불황의 또 다른 단면을 보여주는 지표가 되고 있다.
너도나도 팍팍한 살림살이 속에서 단돈 몇십만원을 돌려받기 위해, 원룸 월세가 밀려서, 대출금을 갚지 못해서 법원은 늘 북적거리고 있다.
이처럼 민사소액사건으로 인해 법원 문이 닳을 지경이 되자 최근 서울중앙지법은 민사소액 사건을 담당하는 단독 재판부 4개를 더 설치했다. 단독 판사 4명이 담당하는 16개 재판부로는 폭주하는 소액사건을 모두 맡을 수 없는 탓이다.
지난해의 경우 판사 1명이 평균 3천6백10건의 소액사건을 처리했지만 올해 들어 평균 4천9백13건을 처리하고 있어 업무 부담이 1.5배나 커진 것도 재판부를 늘인 요인 중 하나다.
지난해부터 불기 시작한 ‘펀드열풍’과 관련된 소송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권택기 의원에게 제출한 최근 3년간 펀드 등 파생상품과 관련한 분쟁과 조정현황에 따르면 분쟁건수는 2006년 40건에 그쳤으나 2년 반 만인 올 상반기 에는 분쟁건수가 1백17건으로 2.9배 증가했다.

경제불황 속에서 해마다 소송건수 증가하는 추세
2천만원 이하 소액으로 인한 재판도 갈수록 늘어
대기업 피해자들의 ‘집단소송’ 열풍도 소송공화국에 한 몫
입증 증거 없이 무작정 걸고 보는 ‘묻지마 소송’경계 해야

이중 신청인의 주장이 타당해 신청인의 청구가 수용된 경우는 55건으로 나타났다. 나머지는 소송·민원인이 중도에 임의철회하거나 신청인의 주장과 사실이 다른 경우로 불수용된 것이다.
인터넷으로 인해 불거진 문제들로 인한 고소·고발 건수도 급속히 늘고 있다. 지난해 6월 개정 저작권법이 시행된 후 이른바 ‘불펌’이라 불리는 저작권 침해에 대한 고소·고발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 전국 검찰청 및 서울 주요 경찰서에 접수된 저작권 관련 고소·고발 건수를 살펴보면 2006년 1만5천5백20건에 비해 지난해는 2만3천7백41건으로 53%나 증가했다.
검찰 관계자는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저작자들이 적극적인 권리 행사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라며 “저작권법 강화로 관련 법 집행이 엄격해진 것도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저작권위원회에 등록된 저작물은 지난해 7월말까지 총 1만2백13건으로 2006년 같은 기간 등록 건수 4천2백8건에 비해 세 배 가까이 급증했다. 이는 대부분 블로그나 P2P를 통해 음악과 동영상 콘텐츠를 허락 없이 퍼가는 바람에 일어난 분쟁이다.
문제는 저작권법을 위반한 사람 중 대부분이 초, 중, 고등학생으로 청소년의 경우 형사처벌을 면하게 되어 법적효력이 강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저작권법을 위반하는 청소년은 계속해서 늘고 있고 이에 따라 관련 소송건수도 덩달아 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같은 피해를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뭉쳐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도 소송공화국으로의 길을 부추기고 있다.
집단소송은 많은 피해자를 낳은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개개인이 소송을 제기하기에는 피해규모가 적을 경우 피해자들이 함께 어느 집단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미국에서 발달된 소송방법 중 하나다. 유명한 사건은 담배회사인 ‘필립모리스’사를 상대로 흡연자 1백10만명이 집단소송을 내 승소한 사례다.
우리나라의 경우 개인정보유출사건이 벌어졌을 때 피해자들이 관련 기업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건 사례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그중 옥션과 하나로텔레콤, GS칼텍스 등 3개사를 상대로 한 집단손해배상 소송금액이 지금까지 1천9백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송에 참여한 고객들은 17만여 명.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에 접수된 옥션ㆍ하나로텔레콤ㆍGS칼텍스 등 3사를 상대로 진행 중인 고객정보 유출 관련 소송은 총 47건으로 17만2천6백40명이 소송에 참여했다.
이중 지난 2월 중국인 해커에 의해 1천만명이 넘는 회원 정보가 해킹당해 정보가 유출되는 초유의 사태를 야기시킨 옥션은 총 19건의 손해배상 소송이 접수됐고 소송인원은 14만4백55명, 소송금액은 1천5백70억원에 달한다.

지난 4월 고객 6백만명의 정보를 동의 없이 수백여 곳의 제휴 업체에 제공한 하나로텔레콤의 정보유출과 관련해서는 총 18건의 소송이 접수됐고, 1만1천2백59명의 소송인원이 총 1백22억8백40만원을 청구했다.
고객 1천1백만여명의 개인정보를 내부 직원들이 고의로 유출시킨 GS칼텍스 고객정보 유출 사건의 경우 현재 2백9억원의 소송이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 10건의 소송에 2만9백36명이 소송에 참여중이다.
이처럼 대규모로 이뤄지는 집단소송이 줄줄이 발생하자 집단소송열풍으로 인한 이득을 얻기 위한 변호사들의 싸움도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집단소송에서 승자는 변호사 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집단소송을 따내 승소할 경우 변호사에게 떨어지는 수임료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집단소송이 일어날 여지가 있는 사건이 발생할 경우 변호사들이 나서 고소인 명단을 모으는 일이 벌어지는 것도 두둑한 수임료를 염두에 둔 행동이다.
사건이 발생한 현장에 와서 피해자들이 집단소송을 하도록 유도하고 인터넷카페를 만들어 사람들을 찾아오게 만드는 변호사들도 있었다. 지난 4월 ‘캘리포니아 와우 부도 사태’가 발생했을 때에도 변호사들이 피해자보다 더욱 목청을 높이며 집단소송으로 이끌기도 했다.
과거에는 ‘법’이라고 하면 왠지 멀게 느껴져 큰 손실을 입지 않는 한 소송을 거는 것을 꺼렸다면 작은 피해를 입더라도 법의 힘을 빌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세태다.

문제는 자신의 피해를 입증할 만한 증거도 없이 ‘무작정’ 소송을 걸거나 민사소송으로 끝낼 만한 가벼운 사안을 가지고 형사고소부터 하고 보는 ‘묻지마 소송’도 덩달아 늘어난다는 것.
무턱대고 법으로 해결을 하자는 ‘묻지마 소송’은 사회경제적 비용을 높이는데다 당사자들 간의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형사고소의 80%가 검찰에서 기소조차 하지 않은 채 끝난 아무것도 아닌 사건이라는 점은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이처럼 밥 먹듯이 소송을 제기하는 이유 중 하나는 소송비용이 비교적 저렴하다는 것이다. 민사소송의 경우 패소하더라도 원고에게 물어줘야 하는 법정 변호사비용과 인지료가 얼마 되지 않아 ‘안 되면 말고’식의 소송을 하는 경우가 많다. 또 형사소송은 변호사 비용 외에는 특별히 드는 돈이 없어 소송을 증가시키는 요인이 된다.
이처럼 각종 원인으로 소송공화국이 되자 법무부는 남소를 막기 위해 공증 관련 법제를 개선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선서인증제도’와 ‘전자공증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다.

선서인증을 하면 법적 분쟁이 났을 때 별도의 증거를 채택할 필요 없이 법정진술에 준하는 증거력을 확보하게 돼 남소를 막게 된다. 만약 허위 선서를 하면 벌금형에 처해지게 된다.
전자공증은 전자문서로 공증 받는 제도다. 누구라도 인증된 특정 정보를 확인하거나 손쉽게 증거를 보전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공정한 계약문화를 확립해 무분별한 소송으로 인한 경제적, 사회적 손실을 줄이자는 의도가 담겨있다.
전문가들은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이 옛말이 되어 가는 세태는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법적공방으로 비화될 거리가 아님에도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서, 분위기에 휩쓸려서 개인적·사회적 손실을 만드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검찰청 선정 “최고의 사건은?”
‘박종철 고문치사 및 은폐 사건’ 1위 선정


대검찰청은 창설 60주년을 맞아 그동안 검찰이 수사한 사건 가운데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 20건을 엄선했다. 20대 사건은 전국 56개 지검ㆍ지청 직원 3천7백95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를 통해 선정됐다. 설문지에 제시된 60개 사건 가운데 가장 많은 표가 몰린 사건은 ‘박종철 고문치사 및 축소 은폐 사건’으로 응답자의 67%인 2천5백여 명이 선택했다. 다음은 목록에 오른 것 중 주요한 사건 10가지다.

장면 부통령 암살미수 배후 규명 사건(1956∼1960년)
1956년 9월28일 장면 부통령에 대한 암살미수 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은 최모씨와 김모씨 등 2명을 구속했다. 검찰은 집권당이던 자유당 간부와 내무부 장관, 치안국장 등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 사건(1966년)
삼성그룹 산하였던 한국비료가 일본으로부터 사카린 원료를 건축자재 명목으로 밀수입한 사실을 적발한 사건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밀수에 연관됐다는 점에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이철희ㆍ장영자 어음사기 사건(1982년)
이철희ㆍ장영자 부부가 기업체에 접근해 자금지원 대가로 지원금의 몇 배에 달하는 어음을 받고서 사채시장에 유통하는 수법으로 2천억원대의 사기 행각을 벌인 사건이다. 장씨 부부는 물론 은행장 2명과 내로라하는 기업인 등 32명이 구속됐고 장씨의 형부이자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처삼촌인 이규광씨도 사건에 휘말려 구속됐다.

부천서 성고문 사건(1986년)
서울대생 권인숙씨가 1986년 노동운동을 위해 위장 취업했다가 문모 경찰관에게 성고문을 당한 사건으로 검찰은 문 경장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으나 재정신청을 통해 처벌됐다.

박종철 고문치사 및 축소은폐 사건(1987년)
경찰은 박씨의 사망에 대해 단순 ‘쇼크사’로 보고했으나 검찰은 부검 지휘를 통해 가혹행위에 의한 사망이란 사실을 규명했다. 재수사를 통해 고문행위에 가담한 경찰과 사건을 축소ㆍ은폐하려 한 경찰 고위간부들을 구속 기소했다.

지존파 연쇄납치 살인 사건(1994년)
감옥과 소각로를 만들어 놓고 5명을 연쇄납치 살해한 ‘지존파’ 두목 김모씨 등 7명을 살인 및 범죄단체조직죄 혐의로 구속기소한 사건이다.


전두환ㆍ노태우 대통령 관련 사건(1995년)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ㆍ노태우 전직 대통령과 관련자들을 처벌하면서 사법적 해결을 통해 역사의 공과를 규명한 사건이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공소권 없음’ 처분이 내려졌지만 ‘역사 바로 세우기’ 일환으로 특별법이 제정돼 이들을 처벌했다.

한보비리 사건(1997년)
한보그룹 정태수 전 회장이 대출 편의 및 국정감사 선처 명목으로 홍인길 전 국회의원 등 유력 정치인과 은행장에게 거액의 뇌물을 제공한 사건이다. 정경유착의 구조적 비리를 파헤친 대표적 사건이다.

대전법조비리 사건(1999년)
대전의 부장검사 출신 이모 변호사가 1994∼1997년 7월 법원ㆍ검찰의 전 현직 간부 등 1백여명에게 소개비와 알선료 조로 1억1천여만 원을 건넨 사건으로 법조계 내부 자정 노력의 계기가 됐다. 이 변호사는 사건 소개 대가로 수임료 일부를 지급키로 약속한 사실이 유죄로 인정됐다.

IMF 공적자금 관련 비리 사건(2001∼2005년)
국세청ㆍ금융감독원 등 7개 기관과 함께 공적자금비리합동단속반을 편성해 IMF 사태 직후 공적자금을 사용한 뒤 갚지 않는 부실기업주 등에 대해 집중 수사를 벌인 사건이다. 기업·은행 임원, 대주주 등 1백6명을 구속기소했으며 5백68억6천만원의 공적자금을 회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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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