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사적’ 강화산성 훼손사건 전말

성벽 허물고 절 지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강화도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성이 있다. 이 성의 이름은 강화산성. 사적 제132호로 지정돼 있을 만큼 중요한 문화재다. 이 강화산성에 여러 문 중 ‘서문’ 쪽 성벽을 훼손하고 그곳에 절을 지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일요시사>에서 제보자를 만나 문화재 훼손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봤다.
 

지난달 23일 강화도에 거주하는 A씨로부터 제보가 들어왔다. A씨는 “누군가 강화산성의 성벽을 허물고 절을 지었다”고 주장했다.

마음대로 
부수고 짓고

훼손 논란에 휩싸인 강화산성은 강화도를 방어하기 위해서 쌓은 산성으로 강화읍과 내가면, 하점면 일대에 걸쳐 있으며 성문 4곳과 첨화루·안파루·진송루 등의 문루, 암문·수문·장대 등의 방어시설이 갖춰져 있다.

현재 강화읍 동쪽의 성벽은 없어졌지만 남쪽과 북쪽의 성벽은 잘 보존돼있다. 몽골군의 침입, 병자호란,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 수많은 외세 침략의 현장으로 알려져 있다. 강화산성은 1964년 6월10일 사적 제132호로 지정됐다.

이번에 문제가 된 곳은 ‘서문’이다. 서문의 왼쪽으로는 성벽으로 갈 수 있는 언덕이 있다. 가는 길에 설치된 안내문에는 “이곳은 문화재 보호법서 정하는 문화재보호 구역 및 국유재산입니다. 무단으로 점유하거나 사용하면 관계 법령에 의해 법적 조치를 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언덕 위로 올라가 보니 훼손된 성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제는 성벽의 훼손된 부분이 한 절로 이어지는 통로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훼손된 성벽 안쪽으로는 누군가 관리를 하는 듯한 경작지와 가건물로 세워진 절이 있었다. 안내문이 무색해지는 광경이다.

문화재 보호법 제13조(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의 보호)에 따르면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의 범위는 해당 지정문화재의 역사적·예술적·학문적·경관적 가치와 그 주변 환경 및 그 밖에 문화재 보호에 필요한 사항 등을 고려해 그 외곽 경계로부터 500m 안으로 한다. 하지만 누가 보기에도 경작지와 절의 거리는 성벽과 50m도 채 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 관계자는 “성벽은 누군가에 의해 훼손된 것이 아니라 복구가 그곳까지만 진행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세한 사항은 강화군청에 문의해보면 알 것”이라고 말했다.
 

강화군청 문화재관리과 관계자도 성벽에 대해서 “훼손된 것이 아닌 복구된 것”이라고 밝혔고 “지어진 절은 불법이 맞다. 현재 원상복구 명령을 내린 상태”라고 말했다.

문화재 보호법 제42조(행정명령)에 따르면 문화재청장이나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국가지정문화재의 현상을 변경하거나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행위 등을 한 자에 대한 행위의 중지 또는 원상회복 조처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A씨는 “강화도서 오래 사신 분들에게 물어봐도 분명히 성벽은 이어져 있었다”고 반박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절이 세워진 지 5년이 지난 시점에 원상복구 명령이 내려졌다는 데 있다. A씨는 문화재청과 강화군청의 관리 부실을 탓했다.

지붕 없는 박물관
관리가 부실해∼


문화재 보호법 제44조(정기조사)에 따르면 문화재청장은 국가지정문화재의 현상, 관리, 수리, 그 밖의 환경보전상황 등에 관해 정기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문화재청장은 정기조사 후 보다 깊이 있는 조사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그 소속 공무원에게 해당 국가지정문화재에 대해 재조사하게 할 수 있다.

강화군청 문화재관리과 관계자는 “예전에 불법으로 지어진 절에 대해 시정명령이 내려졌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이번에 내려진 원상복구 명령의 기한은 지난달 31일까지였다. 아직 절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일각에선 사적지 주변서 개발행위를 어느 정도 용인하는 ‘문화재 형상변경 허용기준안’이 너무 느슨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기준안으로 인해 국가 지정 문화재가 오히려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것. 당초 사적지 주변 500m 이내에선 건축이 거의 불가능했지만 이제 강화대교 주변의 강화 외성 경계 20∼30m(1구역)만 벗어나도 건물 신축이 수월해졌다.

유서 깊은 ‘강화도 문화재’ 훼손 논란
관리 부실…5년간 원상복구 명령 전무

문화재청 관계자는 “강화도서 문화재 훼손 사건이 자주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는 “강화도 자체가 문화재가 많은 지역이라 건축물을 짓고 경작할 때 자신도 잘 모르는 사이에 문화재가 훼손된다”고 이유를 밝혔다.
 

강화군 일대는 지리적 입지조건의 영향으로 국가 사적 및 시 지정 유형 문화재, 기념물 등이 다수 위치하고 바다의 조망과 천혜의 자연조건이 어우러져 경관이 수려하고 환경적 보전가치가 매우 높은 곳이다.

인천광역시 소재 문화재 현황서 강화군 지역은 시 전체의 국가지정 문화재로 총 140건 중 65건, 시지정문화재는 90건 중 40건으로 절대다수를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이 때문에 강화도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도 불린다.

문제는 이런 문화재들이 방치되거나 훼손되고 있다는 데 있다. 사적지로 지정돼 있어 건축물 신축이 불가능한 문화재보호 1구역서 산허리를 자르고 도로 개설공사가 이뤄졌는가 하면 건축 제한지역(보호 2∼4구역)에선 건물 신축이 무분별하게 진행됐다.

인천 강화군 선원면 신정리 가리산 돈대로 이어지는 산등성이는 산허리가 잘려나간 모양새다. 5년 전 가리산 돈대 주변 사유지의 진입도로를 개설하기 위해 이 돈대와 외성을 잇는 주요 지점서 포클레인이 산등성이를 파헤쳤기 때문이다.

당시 강화군 문화재 관리 담당자는 “보호 1구역서의 문화재 형상변경 없이 도로 공사가 이뤄지고 있는데, 이미 건축허가를 받아 공사를 하는 개인 땅이기 때문에 제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리산 돈대 성벽 주변서도 문화재가 훼손됐다. 성벽 인근에 6·25전쟁 참전 기념비가 들어서 있고 2000년 해안도로 공사로 인해 성벽 동측이 잘려나갔다. 한 향토사학자는 “고려 때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강화 외성의 길이가 23km나 되는데 곳곳서 훼손 행위가 이뤄지고 있어 복원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계속되는 훼손
방치가 원인


강화읍 갑곶리의 갑곶돈대 일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강화의 남대문과 같은 성루인 ‘진해루’가 있었던 곳이어서 복원이 시급하지만 오히려 신축 건물이 계속 들어서고 있다. 1만4255m²의 터에 지하 1층, 지상 3층의 3개동 건물(총면적 1631m²)이 들어섰다.

이곳은 문화재보호 4구역에 속해 있지만 천주교 인천교구가 문화재 형상변경 허가를 받아 성당과 영성수련관을 짓고 순교성지를 조성했다. 주민들은 “이로 인해 강화 외성과 진해루, 갑곶돈과 제물진, 총제영학당, 갑곶나루 선착장 석축로 등의 역사유적 복원은 이제 완전히 ‘물 건너 갔다’”고 말한다.
 

수도를 옮겨와 항진을 지휘했던 고려궁궐 옛터는 발굴이 중단되면서 궁궐터는 파헤쳐진 채 방치되고 있다. 관리도 허술할 뿐만 아니라 발굴 작업을 통해 나온 것으로 보이는 기왓조각들도 곳곳서 방치되고 있다.

또 해안으로 들어오는 적군을 막기 위해 세워진 돈대는 조선시대 50여 개나 세워졌지만 현재 제대로 보존되는 곳은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사유지라는 이유로 혹은 군부대 초소라는 이유로 절반 정도가 형체를 찾기 어렵다. 민족의 자주정신과 국난극복의 역사적 교훈을 지니고 있는 강화유적 곳곳이 관리부실로 흔적을 잃어가고 있다.

“맘대로 부쉈다” vs “나중 복구” 
불법 점유 두고 엇갈린 주장들


지난해 1월 강화도에선 굴착기로 문화재를 훼손한 50대 6명이 검거됐다. 이들은 강화 중성(총 길이 145m) 성곽을 굴착기로 훼손하고 인근 참나무 100여 그루를 전기톱으로 무단 벌목했다.

강화 중성은 강화산성을 둘러싸고 있는 성곽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비지정 문화재다.이를 주도한 B씨는 자기 소유 땅이라는 이유로 문화재청의 인허가 절차를 밟지 않고 성곽을 훼손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452호 강화 외성의 현상변경허용기준 1구역에 무단으로 주택과 비닐하우스를 지어 구역을 훼손한 혐의로 C씨 등 6명이 경찰에 검거되기도 했다.

이 구역은 문화재 주변을 계획적으로 보존·관리하고자 지정하는 것으로 역시 문화재청의 현상변경허가를 얻어야 건축물 등을 지을 수 있다. 대부분 자영업자인 이들은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등 영업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처벌 강화해도
훼손 사례 증가

문화재 보호법 제99조(무허가 행위 등의 죄)에 따르면 지정문화재(보호물, 보호구역과 천연기념물 중 죽은 것을 포함한다)나 가지정문화재의 현상을 변경하거나 그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행위를 한 자, 허가 없이 명승, 천연기념물로 지정 또는 가지정된 구역 또는 보호구역서 동물, 식물, 광물을 포획·채취하거나 이를 그 구역 밖으로 반출한 자,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영업행위를 한 자에 해당하는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경찰 관계자는 “강화에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문화재가 많은 만큼 문화재 보호법을 위반한 경우가 또 있는지를 계속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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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