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사적’ 강화산성 훼손사건 전말

성벽 허물고 절 지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강화도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성이 있다. 이 성의 이름은 강화산성. 사적 제132호로 지정돼 있을 만큼 중요한 문화재다. 이 강화산성에 여러 문 중 ‘서문’ 쪽 성벽을 훼손하고 그곳에 절을 지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일요시사>에서 제보자를 만나 문화재 훼손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봤다.
 

지난달 23일 강화도에 거주하는 A씨로부터 제보가 들어왔다. A씨는 “누군가 강화산성의 성벽을 허물고 절을 지었다”고 주장했다.

마음대로 
부수고 짓고

훼손 논란에 휩싸인 강화산성은 강화도를 방어하기 위해서 쌓은 산성으로 강화읍과 내가면, 하점면 일대에 걸쳐 있으며 성문 4곳과 첨화루·안파루·진송루 등의 문루, 암문·수문·장대 등의 방어시설이 갖춰져 있다.

현재 강화읍 동쪽의 성벽은 없어졌지만 남쪽과 북쪽의 성벽은 잘 보존돼있다. 몽골군의 침입, 병자호란,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 수많은 외세 침략의 현장으로 알려져 있다. 강화산성은 1964년 6월10일 사적 제132호로 지정됐다.

이번에 문제가 된 곳은 ‘서문’이다. 서문의 왼쪽으로는 성벽으로 갈 수 있는 언덕이 있다. 가는 길에 설치된 안내문에는 “이곳은 문화재 보호법서 정하는 문화재보호 구역 및 국유재산입니다. 무단으로 점유하거나 사용하면 관계 법령에 의해 법적 조치를 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언덕 위로 올라가 보니 훼손된 성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제는 성벽의 훼손된 부분이 한 절로 이어지는 통로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훼손된 성벽 안쪽으로는 누군가 관리를 하는 듯한 경작지와 가건물로 세워진 절이 있었다. 안내문이 무색해지는 광경이다.

문화재 보호법 제13조(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의 보호)에 따르면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의 범위는 해당 지정문화재의 역사적·예술적·학문적·경관적 가치와 그 주변 환경 및 그 밖에 문화재 보호에 필요한 사항 등을 고려해 그 외곽 경계로부터 500m 안으로 한다. 하지만 누가 보기에도 경작지와 절의 거리는 성벽과 50m도 채 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 관계자는 “성벽은 누군가에 의해 훼손된 것이 아니라 복구가 그곳까지만 진행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세한 사항은 강화군청에 문의해보면 알 것”이라고 말했다.
 

강화군청 문화재관리과 관계자도 성벽에 대해서 “훼손된 것이 아닌 복구된 것”이라고 밝혔고 “지어진 절은 불법이 맞다. 현재 원상복구 명령을 내린 상태”라고 말했다.

문화재 보호법 제42조(행정명령)에 따르면 문화재청장이나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국가지정문화재의 현상을 변경하거나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행위 등을 한 자에 대한 행위의 중지 또는 원상회복 조처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A씨는 “강화도서 오래 사신 분들에게 물어봐도 분명히 성벽은 이어져 있었다”고 반박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절이 세워진 지 5년이 지난 시점에 원상복구 명령이 내려졌다는 데 있다. A씨는 문화재청과 강화군청의 관리 부실을 탓했다.

지붕 없는 박물관
관리가 부실해∼


문화재 보호법 제44조(정기조사)에 따르면 문화재청장은 국가지정문화재의 현상, 관리, 수리, 그 밖의 환경보전상황 등에 관해 정기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문화재청장은 정기조사 후 보다 깊이 있는 조사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그 소속 공무원에게 해당 국가지정문화재에 대해 재조사하게 할 수 있다.

강화군청 문화재관리과 관계자는 “예전에 불법으로 지어진 절에 대해 시정명령이 내려졌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이번에 내려진 원상복구 명령의 기한은 지난달 31일까지였다. 아직 절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일각에선 사적지 주변서 개발행위를 어느 정도 용인하는 ‘문화재 형상변경 허용기준안’이 너무 느슨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기준안으로 인해 국가 지정 문화재가 오히려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것. 당초 사적지 주변 500m 이내에선 건축이 거의 불가능했지만 이제 강화대교 주변의 강화 외성 경계 20∼30m(1구역)만 벗어나도 건물 신축이 수월해졌다.

유서 깊은 ‘강화도 문화재’ 훼손 논란
관리 부실…5년간 원상복구 명령 전무

문화재청 관계자는 “강화도서 문화재 훼손 사건이 자주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는 “강화도 자체가 문화재가 많은 지역이라 건축물을 짓고 경작할 때 자신도 잘 모르는 사이에 문화재가 훼손된다”고 이유를 밝혔다.
 

강화군 일대는 지리적 입지조건의 영향으로 국가 사적 및 시 지정 유형 문화재, 기념물 등이 다수 위치하고 바다의 조망과 천혜의 자연조건이 어우러져 경관이 수려하고 환경적 보전가치가 매우 높은 곳이다.

인천광역시 소재 문화재 현황서 강화군 지역은 시 전체의 국가지정 문화재로 총 140건 중 65건, 시지정문화재는 90건 중 40건으로 절대다수를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이 때문에 강화도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도 불린다.

문제는 이런 문화재들이 방치되거나 훼손되고 있다는 데 있다. 사적지로 지정돼 있어 건축물 신축이 불가능한 문화재보호 1구역서 산허리를 자르고 도로 개설공사가 이뤄졌는가 하면 건축 제한지역(보호 2∼4구역)에선 건물 신축이 무분별하게 진행됐다.

인천 강화군 선원면 신정리 가리산 돈대로 이어지는 산등성이는 산허리가 잘려나간 모양새다. 5년 전 가리산 돈대 주변 사유지의 진입도로를 개설하기 위해 이 돈대와 외성을 잇는 주요 지점서 포클레인이 산등성이를 파헤쳤기 때문이다.

당시 강화군 문화재 관리 담당자는 “보호 1구역서의 문화재 형상변경 없이 도로 공사가 이뤄지고 있는데, 이미 건축허가를 받아 공사를 하는 개인 땅이기 때문에 제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리산 돈대 성벽 주변서도 문화재가 훼손됐다. 성벽 인근에 6·25전쟁 참전 기념비가 들어서 있고 2000년 해안도로 공사로 인해 성벽 동측이 잘려나갔다. 한 향토사학자는 “고려 때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강화 외성의 길이가 23km나 되는데 곳곳서 훼손 행위가 이뤄지고 있어 복원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계속되는 훼손
방치가 원인


강화읍 갑곶리의 갑곶돈대 일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강화의 남대문과 같은 성루인 ‘진해루’가 있었던 곳이어서 복원이 시급하지만 오히려 신축 건물이 계속 들어서고 있다. 1만4255m²의 터에 지하 1층, 지상 3층의 3개동 건물(총면적 1631m²)이 들어섰다.

이곳은 문화재보호 4구역에 속해 있지만 천주교 인천교구가 문화재 형상변경 허가를 받아 성당과 영성수련관을 짓고 순교성지를 조성했다. 주민들은 “이로 인해 강화 외성과 진해루, 갑곶돈과 제물진, 총제영학당, 갑곶나루 선착장 석축로 등의 역사유적 복원은 이제 완전히 ‘물 건너 갔다’”고 말한다.
 

수도를 옮겨와 항진을 지휘했던 고려궁궐 옛터는 발굴이 중단되면서 궁궐터는 파헤쳐진 채 방치되고 있다. 관리도 허술할 뿐만 아니라 발굴 작업을 통해 나온 것으로 보이는 기왓조각들도 곳곳서 방치되고 있다.

또 해안으로 들어오는 적군을 막기 위해 세워진 돈대는 조선시대 50여 개나 세워졌지만 현재 제대로 보존되는 곳은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사유지라는 이유로 혹은 군부대 초소라는 이유로 절반 정도가 형체를 찾기 어렵다. 민족의 자주정신과 국난극복의 역사적 교훈을 지니고 있는 강화유적 곳곳이 관리부실로 흔적을 잃어가고 있다.

“맘대로 부쉈다” vs “나중 복구” 
불법 점유 두고 엇갈린 주장들


지난해 1월 강화도에선 굴착기로 문화재를 훼손한 50대 6명이 검거됐다. 이들은 강화 중성(총 길이 145m) 성곽을 굴착기로 훼손하고 인근 참나무 100여 그루를 전기톱으로 무단 벌목했다.

강화 중성은 강화산성을 둘러싸고 있는 성곽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비지정 문화재다.이를 주도한 B씨는 자기 소유 땅이라는 이유로 문화재청의 인허가 절차를 밟지 않고 성곽을 훼손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452호 강화 외성의 현상변경허용기준 1구역에 무단으로 주택과 비닐하우스를 지어 구역을 훼손한 혐의로 C씨 등 6명이 경찰에 검거되기도 했다.

이 구역은 문화재 주변을 계획적으로 보존·관리하고자 지정하는 것으로 역시 문화재청의 현상변경허가를 얻어야 건축물 등을 지을 수 있다. 대부분 자영업자인 이들은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등 영업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처벌 강화해도
훼손 사례 증가

문화재 보호법 제99조(무허가 행위 등의 죄)에 따르면 지정문화재(보호물, 보호구역과 천연기념물 중 죽은 것을 포함한다)나 가지정문화재의 현상을 변경하거나 그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행위를 한 자, 허가 없이 명승, 천연기념물로 지정 또는 가지정된 구역 또는 보호구역서 동물, 식물, 광물을 포획·채취하거나 이를 그 구역 밖으로 반출한 자,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영업행위를 한 자에 해당하는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경찰 관계자는 “강화에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문화재가 많은 만큼 문화재 보호법을 위반한 경우가 또 있는지를 계속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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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