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사적’ 강화산성 훼손사건 전말

성벽 허물고 절 지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강화도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성이 있다. 이 성의 이름은 강화산성. 사적 제132호로 지정돼 있을 만큼 중요한 문화재다. 이 강화산성에 여러 문 중 ‘서문’ 쪽 성벽을 훼손하고 그곳에 절을 지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일요시사>에서 제보자를 만나 문화재 훼손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봤다.
 

지난달 23일 강화도에 거주하는 A씨로부터 제보가 들어왔다. A씨는 “누군가 강화산성의 성벽을 허물고 절을 지었다”고 주장했다.

마음대로 
부수고 짓고

훼손 논란에 휩싸인 강화산성은 강화도를 방어하기 위해서 쌓은 산성으로 강화읍과 내가면, 하점면 일대에 걸쳐 있으며 성문 4곳과 첨화루·안파루·진송루 등의 문루, 암문·수문·장대 등의 방어시설이 갖춰져 있다.

현재 강화읍 동쪽의 성벽은 없어졌지만 남쪽과 북쪽의 성벽은 잘 보존돼있다. 몽골군의 침입, 병자호란,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 수많은 외세 침략의 현장으로 알려져 있다. 강화산성은 1964년 6월10일 사적 제132호로 지정됐다.

이번에 문제가 된 곳은 ‘서문’이다. 서문의 왼쪽으로는 성벽으로 갈 수 있는 언덕이 있다. 가는 길에 설치된 안내문에는 “이곳은 문화재 보호법서 정하는 문화재보호 구역 및 국유재산입니다. 무단으로 점유하거나 사용하면 관계 법령에 의해 법적 조치를 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언덕 위로 올라가 보니 훼손된 성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제는 성벽의 훼손된 부분이 한 절로 이어지는 통로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훼손된 성벽 안쪽으로는 누군가 관리를 하는 듯한 경작지와 가건물로 세워진 절이 있었다. 안내문이 무색해지는 광경이다.

문화재 보호법 제13조(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의 보호)에 따르면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의 범위는 해당 지정문화재의 역사적·예술적·학문적·경관적 가치와 그 주변 환경 및 그 밖에 문화재 보호에 필요한 사항 등을 고려해 그 외곽 경계로부터 500m 안으로 한다. 하지만 누가 보기에도 경작지와 절의 거리는 성벽과 50m도 채 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 관계자는 “성벽은 누군가에 의해 훼손된 것이 아니라 복구가 그곳까지만 진행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세한 사항은 강화군청에 문의해보면 알 것”이라고 말했다.
 

강화군청 문화재관리과 관계자도 성벽에 대해서 “훼손된 것이 아닌 복구된 것”이라고 밝혔고 “지어진 절은 불법이 맞다. 현재 원상복구 명령을 내린 상태”라고 말했다.

문화재 보호법 제42조(행정명령)에 따르면 문화재청장이나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국가지정문화재의 현상을 변경하거나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행위 등을 한 자에 대한 행위의 중지 또는 원상회복 조처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A씨는 “강화도서 오래 사신 분들에게 물어봐도 분명히 성벽은 이어져 있었다”고 반박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절이 세워진 지 5년이 지난 시점에 원상복구 명령이 내려졌다는 데 있다. A씨는 문화재청과 강화군청의 관리 부실을 탓했다.

지붕 없는 박물관
관리가 부실해∼


문화재 보호법 제44조(정기조사)에 따르면 문화재청장은 국가지정문화재의 현상, 관리, 수리, 그 밖의 환경보전상황 등에 관해 정기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문화재청장은 정기조사 후 보다 깊이 있는 조사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그 소속 공무원에게 해당 국가지정문화재에 대해 재조사하게 할 수 있다.

강화군청 문화재관리과 관계자는 “예전에 불법으로 지어진 절에 대해 시정명령이 내려졌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이번에 내려진 원상복구 명령의 기한은 지난달 31일까지였다. 아직 절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일각에선 사적지 주변서 개발행위를 어느 정도 용인하는 ‘문화재 형상변경 허용기준안’이 너무 느슨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기준안으로 인해 국가 지정 문화재가 오히려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것. 당초 사적지 주변 500m 이내에선 건축이 거의 불가능했지만 이제 강화대교 주변의 강화 외성 경계 20∼30m(1구역)만 벗어나도 건물 신축이 수월해졌다.

유서 깊은 ‘강화도 문화재’ 훼손 논란
관리 부실…5년간 원상복구 명령 전무

문화재청 관계자는 “강화도서 문화재 훼손 사건이 자주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는 “강화도 자체가 문화재가 많은 지역이라 건축물을 짓고 경작할 때 자신도 잘 모르는 사이에 문화재가 훼손된다”고 이유를 밝혔다.
 

강화군 일대는 지리적 입지조건의 영향으로 국가 사적 및 시 지정 유형 문화재, 기념물 등이 다수 위치하고 바다의 조망과 천혜의 자연조건이 어우러져 경관이 수려하고 환경적 보전가치가 매우 높은 곳이다.

인천광역시 소재 문화재 현황서 강화군 지역은 시 전체의 국가지정 문화재로 총 140건 중 65건, 시지정문화재는 90건 중 40건으로 절대다수를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이 때문에 강화도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도 불린다.

문제는 이런 문화재들이 방치되거나 훼손되고 있다는 데 있다. 사적지로 지정돼 있어 건축물 신축이 불가능한 문화재보호 1구역서 산허리를 자르고 도로 개설공사가 이뤄졌는가 하면 건축 제한지역(보호 2∼4구역)에선 건물 신축이 무분별하게 진행됐다.

인천 강화군 선원면 신정리 가리산 돈대로 이어지는 산등성이는 산허리가 잘려나간 모양새다. 5년 전 가리산 돈대 주변 사유지의 진입도로를 개설하기 위해 이 돈대와 외성을 잇는 주요 지점서 포클레인이 산등성이를 파헤쳤기 때문이다.

당시 강화군 문화재 관리 담당자는 “보호 1구역서의 문화재 형상변경 없이 도로 공사가 이뤄지고 있는데, 이미 건축허가를 받아 공사를 하는 개인 땅이기 때문에 제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리산 돈대 성벽 주변서도 문화재가 훼손됐다. 성벽 인근에 6·25전쟁 참전 기념비가 들어서 있고 2000년 해안도로 공사로 인해 성벽 동측이 잘려나갔다. 한 향토사학자는 “고려 때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강화 외성의 길이가 23km나 되는데 곳곳서 훼손 행위가 이뤄지고 있어 복원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계속되는 훼손
방치가 원인


강화읍 갑곶리의 갑곶돈대 일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강화의 남대문과 같은 성루인 ‘진해루’가 있었던 곳이어서 복원이 시급하지만 오히려 신축 건물이 계속 들어서고 있다. 1만4255m²의 터에 지하 1층, 지상 3층의 3개동 건물(총면적 1631m²)이 들어섰다.

이곳은 문화재보호 4구역에 속해 있지만 천주교 인천교구가 문화재 형상변경 허가를 받아 성당과 영성수련관을 짓고 순교성지를 조성했다. 주민들은 “이로 인해 강화 외성과 진해루, 갑곶돈과 제물진, 총제영학당, 갑곶나루 선착장 석축로 등의 역사유적 복원은 이제 완전히 ‘물 건너 갔다’”고 말한다.
 

수도를 옮겨와 항진을 지휘했던 고려궁궐 옛터는 발굴이 중단되면서 궁궐터는 파헤쳐진 채 방치되고 있다. 관리도 허술할 뿐만 아니라 발굴 작업을 통해 나온 것으로 보이는 기왓조각들도 곳곳서 방치되고 있다.

또 해안으로 들어오는 적군을 막기 위해 세워진 돈대는 조선시대 50여 개나 세워졌지만 현재 제대로 보존되는 곳은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사유지라는 이유로 혹은 군부대 초소라는 이유로 절반 정도가 형체를 찾기 어렵다. 민족의 자주정신과 국난극복의 역사적 교훈을 지니고 있는 강화유적 곳곳이 관리부실로 흔적을 잃어가고 있다.

“맘대로 부쉈다” vs “나중 복구” 
불법 점유 두고 엇갈린 주장들


지난해 1월 강화도에선 굴착기로 문화재를 훼손한 50대 6명이 검거됐다. 이들은 강화 중성(총 길이 145m) 성곽을 굴착기로 훼손하고 인근 참나무 100여 그루를 전기톱으로 무단 벌목했다.

강화 중성은 강화산성을 둘러싸고 있는 성곽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비지정 문화재다.이를 주도한 B씨는 자기 소유 땅이라는 이유로 문화재청의 인허가 절차를 밟지 않고 성곽을 훼손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452호 강화 외성의 현상변경허용기준 1구역에 무단으로 주택과 비닐하우스를 지어 구역을 훼손한 혐의로 C씨 등 6명이 경찰에 검거되기도 했다.

이 구역은 문화재 주변을 계획적으로 보존·관리하고자 지정하는 것으로 역시 문화재청의 현상변경허가를 얻어야 건축물 등을 지을 수 있다. 대부분 자영업자인 이들은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등 영업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처벌 강화해도
훼손 사례 증가

문화재 보호법 제99조(무허가 행위 등의 죄)에 따르면 지정문화재(보호물, 보호구역과 천연기념물 중 죽은 것을 포함한다)나 가지정문화재의 현상을 변경하거나 그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행위를 한 자, 허가 없이 명승, 천연기념물로 지정 또는 가지정된 구역 또는 보호구역서 동물, 식물, 광물을 포획·채취하거나 이를 그 구역 밖으로 반출한 자,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영업행위를 한 자에 해당하는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경찰 관계자는 “강화에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문화재가 많은 만큼 문화재 보호법을 위반한 경우가 또 있는지를 계속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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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확실하다고 굳게 믿었던 관계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새 정부 초기부터 보이기 시작한 적신호가 이제 눈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모습이다. 어디서부터 균열이 시작된 걸까? 우리나라 외교는 한미동맹을 배경으로 진행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꾀한 때도 있지만 대체로 한·미 혹은 한·미·일 관계가 우선시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와 미국이 삐걱거리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상수였는데 변수됐나 지난 12일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귀국했다. 이번에 구금된 한국인은 총 317명으로 남성 307명, 여성 10명이다. 이 가운데 1명은 잔류를 택했다. 지난 4일, 미국 이민 당국의 불법체류 및 고용 전격 단속에서 체포돼 포크스턴 구금시설 등에 억류된 지 8일 만이다. 이들은 미국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중에 체포·구금됐다. 문제 해결을 위해 조현 외교부 장관이 미국을 급히 방문했다. 당초 이들은 지난 10일(현지시각)에 전세기를 타고 출국할 예정이었지만 ‘미국 측 사정’으로 지연됐다. 외교부는 이번에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향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미국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현 외교부 장관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에게 이들이 신체적 속박 없이 신속히 귀국하고 향후 미국에 재입국하는 데 불이익이 없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미국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을 받았다고 한다.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미국을 떠나는 방식을 두고 우리나라와 미국 간의 이견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자진 출국’을, 미국은 ‘추방’을 언급한 것이다. 자진 출국 방식으로 귀국하면 향후 ‘5년 입국 제한’ 등의 불이익이 없다. 반면 추방 명령으로 미국을 떠나면 영구적으로 기록이 남아 최대 10년간 미국에 들어갈 수 없다. 지난 8일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이 이번 사안과 관련해 “법대로 하고 있다. 그들은 추방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출국 형태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다행히 미국 측과 조율이 이뤄지면서 자진 출국 형태로 귀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루비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도 이재명 대통령과 도출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고, 이 사안에 대한 한국인의 민감성을 이해하고 있다. 특히 미국 경제·제조업 부흥을 위한 한국의 투자와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야 “700조원 줬는데도?”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측이 원하는 바대로 가능한 한 이뤄질 수 있도록 신속히 협의하고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상황이 봉합되는 모양새지만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의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인 체포·구금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 이민 당국의 모습을 두고 동맹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미국 측은 한국인 체포 과정에서 수갑을 채웠고, 이들을 환경이 열악한 수용소에 구금했다. 야권에서 ‘외교 참사’가 일어났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6일,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이후 내놓은 논평에서 “이재명정부는 700조원 선물 보따리를 미국에 안겼지만 회담은 공동성명조차 발표하지 못한 채 끝났다”며 “그 결과가 고스란히 현대차-LG 합작 공장 단속 사태로 돌아왔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국민 사이에서는 실컷 투자해 주고 뒤통수 맞은 것 아니냐는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700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약속해 놓고도 국민의 안전도, 기업 경쟁력 확보도 실패한 것이 이재명정부의 실용 외교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는 관세 협상,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미국에 5000억달러(약 700조원)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지난 6일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수갑 채우고 수용소 넣고 장 대표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불법체류자 단속을 넘어 앞으로 미국 내 한국 기업 현장과 교민 사회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수많은 한국 기업이 미국 전역에서 공장을 건설하고 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무더기로 체포되는 일이 되풀이된다면 국가적 차원의 리스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미국 측과 방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조 장관은 루비오 장관 등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사태의 재발 방지책과 대미 투자 한국 기업 관계자들의 비자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 장관은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새로운 비자 카테고리를 만드는 등 다양한 방안 논의를 위한 ‘한미 외교부-국무부 워킹그룹’ 신설을 제의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한미 관계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미 관계가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 직후부터 관세 등을 무기로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동맹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된 바 있다. ‘삐걱거림’은 이정부 출범 초기부터 감지됐다. 미국 백악관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과 관련해 처음 내놓은 메시지에서 중국을 언급해 ‘이례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백악관은 지난 6월3일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한미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된다”면서도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진행했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의 메시지를 두고 이정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행사 견제, 실용 외교를 표방하는 이 대통령이 중국과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 등 다양한 해석이 이어졌다. 당시 미국은 중국과 관세를 두고 이른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서 다소 소강상태가 되긴 했지만 갈등의 골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분위기만 화기애애? 관세 협상이나 한미 정상회담을 두고도 여전히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 시한으로 정한 날짜를 하루 앞두고 미국과 타결을 이뤄냈다. 당초 한미FTA로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의 관세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0’이었기에 타격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한을 통해 언급한 상호 관세 25%를 15%로 낮추는 데는 합의했지만 과정은 난항을 거듭했다. 루비오 장관의 방한이 취소되는가 하면 ‘한미 2+2 통상 협의’를 앞두고 미국 측의 취소로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길을 돌리는 일도 벌어졌다. 일본이 먼저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기준이 생기고 시간에 쫓기는 등 여의치 않은 상황이 지속됐다. 결국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에서 정리됐고 동시에 천문학적인 수준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이때도 관세 협상 결과를 두고 이견이 나타났다. 우리 정부 측은 쌀, 소고기 등 농산물 개방은 없다고 주장했던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면 개방을 말했다. 또 대미 투자의 방식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보였다. 이견은 한미 정상회담을 거치고도 조율되지 않은 모양새다. 미국 측은 관세 협상 타결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대통령의 방미를 언급했고 실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앞에 두고 면박을 주는 등의 돌발 행동을 보인 바 있어 우려가 제기됐지만 무난하게 마무리됐다는 평을 받았다. 문제는 명문화된 결과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달 25일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했지만 공동합의문은 발표하지 않았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을 통해 동맹의 성과와 협력 의제를 문서화해 왔다. 당선 메시지에 중국 언급 정상회담 합의문도 없어 당시 공동합의문이 나오지 않은 데 대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제기될 정도였다. 정상회담에서 각종 현안을 폭넓게 논의했지만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결과였다. 특히 자동차 관세가 확정되지 않으면서 업계는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으로 타결했지만 문서로 명시되지 않은 것이다. 안보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인 지난달 2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동발표문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라며 “정상 간 논의 내용은 상당 부분 생중계됐고 나머지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양국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위 안보실장은 “문건을 만들어내기까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많은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추가 협의를 하면 마무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온 조 장관의 발언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그는 “투자 부문에서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어 수용하지 않았다”며 공동합의문이 발표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이어 “미일 간 합의문 내용을 보면 왜 우리가 협상을 지연해 가면서까지 안을 만들고 있는지 이해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본은 관세 협상에서 제조업·항공우주·농업·에너지·자동차 등 분야에서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고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내용의 합의를 진행했다. 또 합의 불이행 시 미국이 관세를 재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굴욕 협상’이라는 말도 나왔다. 조 장관은 “일본의 타결 협상안을 보면 우리가 비슷한 협상안을 받아들인다고 할 때 여러 문제점이 많다”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분명히 하며 협상을 강하게 하다 보니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품목 관세가 부과될 때 최혜국 대우가 불확실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그렇다”고 인정했다. 불확실성 해소될까?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자리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타국을 대하는 방식은 이제 변수를 넘어 상수가 되는 모양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한미 관계를 더 흔들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