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천국’ 대한민국 현주소 ③기업의 역습



“더 이상은 앉아서 당하지 않는다”

기업의 역습이 시작됐다. 온갖 공세에 항상 앉아서 당하기만 했던 기업들이 소극적 태도에서 벗어나 적극적이고 대담한 행동을 보이고 있다. 이들의 무기는 법이다. 돌발 위기가 발생하면 지체 없이 원인 제공자를 찾아내 예외 없이 ‘법적 대응’이란 칼을 꺼낸다. 그 대상도 광범위하다. 타사는 물론 언론을 불문하고 공정위 등 정부기관도 막론한다. 막대한 피해를 입고도 고소·고발을 꺼려온 과거와 비교하면 확실히 다른 양상이다.

지난 5월 삼성그룹에 한 통의 협박 전화가 걸려왔다. “비밀 자료를 폭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홍모씨는 ‘삼성비자금’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의 후배를 사칭해 수십억원을 요구했지만 결국 회사 측 고발로 쇠고랑을 찼다. 당시 삼성그룹은 ‘삼성 특검’사태로 뒤숭숭한 시점이었지만 홍씨와 일체 거래(?)없이 바로 검찰에 고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 농심에도 수상한 소비자 불만이 접수됐다. 허모씨는 농심 제품에서 애벌레가 나왔다며 무작정 돈을 요구했다. 무려 1억원이었다. 그는 만약 돈을 주지 않으면 언론사와 소비자단체 등에 알리겠다고 협박했다.
농심 측은 긴장했다. 잇단 이물질 파문 탓이었다. 그러나 농심은 자체 조사 결과 A씨가 제품에서 이물질이 나왔다고 주장하며 회사에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는 ‘블랙 컨슈머(black consumer)’로 확인, 바로 검찰에 고발했다.
농심 측은 “실제로 제품에서 이물질이 나온 경우는 몰라도 일부러 이물질을 넣은 뒤 돈을 요구하는 사례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며 “옛날 같으면 이미지 타격을 우려해 어떡해서든 합의했지만 최근에는 샘플 조사 등 정확한 경로와 경위 조사를 통해 법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내외 공세에 대처하는 기업들의 자세가 달라졌다. 소극적 태도에서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서고 있는 것. 기업 및 브랜드 이미지 훼손 등을 우려해 ‘벙어리 냉가슴’앓던 과거와 달리 경·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등 적극 대응하고 있다.
대응 방법은 십중팔구 형사상 고소·고발 또는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소송이다. 돌발 위기에 상시적으로 노출돼 있는 기업들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입을 모은다.

언론·정부기관 불문 외부 공세에 지체 없이 ‘법적대응’
“음해세력 추적”수사 의뢰 봇물… 수십억원 민소 뒤따라

한 대기업 관계자는 “경제 불안정 속에서 효과적인 위기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홍보전략을 대대적으로 수술하고 있다”며 “그중 가장 큰 변화는 부당한 입김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속으로만 끙끙 앓던 대외 대응을 강경하게 대처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기업들의 역습 타깃은 광범위하다. ‘끽해야’ 타사에 그쳤던 소송장 남발은 언론을 불문하고 심지어 공정위 등 정부기관도 막론한다. 한마디로 물불 가리지 않는다.
이중 눈에 띄는 것은 언론을 상대로 한 법적대응이다. 그동안 언론에 대해 수세적 태도를 보였던 기업들은 공세적 태도로 급선회하고 있는 양상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한 인터넷 매체를 상대로 10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자사에 악의적 보도를 했다는 이유에서다.
삼성전자는 이 언론사에 “정정보도문을 1개월 동안 게재할 것,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이행 완료일까지 매일 5백만원을 지급할 것, 이와 별도로 10억원의 손해배상금 및 소장 송부 다음날부터 지급일까지 연 20%의 이자를 지급할 것”등을 요구했다.
농협도 최근 한 주간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역시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허위사실을 유포, 자사의 명예와 신용을 훼손했다는 까닭이다. 농협은 신문사와 기자에게 각각 5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업의 언론 소송, 특히 기하급수로 늘고 있는 인터넷 매체를 상대로 한 소송이 줄을 잇고 있다”며 “기업으로선 넋 놓고 있으면 순식간에 확대 해석되거나 지나친 유추를 통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되는 점에서 충격이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법적 대응이란 최후의 카드를 주체 없이 꺼내드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재계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도 예외가 아니다. 공정위 제재에 불복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것.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란 게 재계의 중론이지만 대부분 공정위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한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 삼성화재, 현대해상, LIG, 동부화재 등 10개 손보사들이 보험료 자율화가 시행된 2002년 4월부터 2006년까지 8개 일반손해보험상품의 보험료율 합의를 통해 공동 결정한 혐의(부당공동행위)를 적발해 총 5백억여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삼성화재와 메리츠화재는 이와 관련 “독자적 부가율을 결정했고, 할인·할증률도 다른 손보사와 현저히 다르게 적용했다”며 공정위 처분 취소 소송을 냈으나 패소했다. 대우건설과 삼성물산, GS건설, SK건설 등 4개 건설사도 공정위의 담합 처분에 항의, 시정명령 및 과징금 부과 처분 취소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공정위가 꼬리를 내린 기업도 있다. 바로 신세계다. 공정위는 2006년 11월 신세계의 월마트코리아 인수로 인천·부천, 안양·평촌, 포항, 대구 시지·경산 등 4개 지역에서 경쟁제한성이 있다고 판단해 점포매각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신세계는 이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지난 9월 공정위 양도명령이 위법하다며 신세계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8월 화장품 업체들도 방문판매가 실질적으로 다단계판매라는 공정위의 시정조치처분을 받았으나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공정위의 처분이 불합리하다는 취소 처분을 받아낸 바 있다.
기업들은 특히 루머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번지면서 유동성 관련 악성루머는 더더욱 그렇다.
악성루머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대림산업을 꼽을 수 있다. 증권가를 중심으로 유동성 위기설이 돌았다. 시중에 ‘대림산업이 산업은행의 차입금 만기 연장 거절로 새마을금고에 화의를 신청하면서 파산 절차를 밟을 것’이란 터무니없는 부도설이 퍼진 것.

대림산업의 사실 무근이란 적극적인 해명에도 헛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대림산업은 결국 보이지 않는 손을 색출하기 위해 최근 서울 종로경찰서 사이버 수사대에 수사를 의뢰했다. 
회사 관계자는 “특정한 의도로 음해성 루머와 괴담을 퍼트리는 세력을 끝까지 추적해 엄단할 것”이라며 진원지가 밝혀지는 즉시 법적인 책임을 물을 뜻을 밝혔다.
한국 맥도널드도 지난 6월 촛불정국 당시 “미국산 쇠고기 반대시위가 격화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매출이 급격히 줄고 있다”는 루머에 시달리고 홈페이지가 해킹당하는 등 사이버 공격이 계속되자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바 있다.
이처럼 기업이 고소·고발하는 사례와 반대로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소비자 권리 찾기’를 표방한 피해자들이 해당 기업에 보상을 요구하는 집단·단체소송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3월부터 시행된 집단분쟁조정제는 50명 이상의 소비자가 같은 제품이나 서비스로 피해를 입었을 때 구제를 신청하는 제도다.
지난 1월부터 시행된 단체소송제는 피해 소비자들을 대신해 소비자단체가 사업자를 대상으로 위법행위를 금지 또는 중지할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말한다. 이들 소송은 소액의 피해를 입은 소비자가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도입됐다.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 진행되고 있는 소송이 같은 맥락의 사건이다. 지난달 박상돈(자유선진당) 의원이 국감에서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옥션이 중국인 해커에게 1천만명의 회원 정보를 해킹 당했고, 하나로텔레콤 6백만명, GS칼텍스 1천1백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이들 3사를 상대로 소송중인 건만 47건으로, 17만여 명이 1천9백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를 요구하고 있다.
앞서 지난 9월 해상 유조선 충돌 사고로 기름 유출 피해를 본 충남 태안군 주민 6천8백64명은 15개월간 매달 20만원씩(총 2백5억원)의 생계비를 지급하라며 삼성중공업을 상대로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기업을 상대로 승소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게 현실이다. 대기업과 가장 많은 소송을 벌이고 있는 참여연대의 실적(?)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유관단체인 자유기업원의 ‘참여연대 소송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참여연대는 1994년 설립 이후 지난 5월말까지 총 2백37건의 소송을 제기했다. 이중 43.2%인 1백4건이 기업과 기업인이 대상이다.
절반이 넘는 53.8%(56건)가 회사 경영 및 지배구조 문제다. 유형별로는 형사 87건(36.7%), 민사 73건(30.8%), 행정 45건(19.0%), 헌법소원 32건(13.5%) 등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이 피소된 기업은 삼성그룹. 기업소송 1백4건 중 39건으로 34.5%가 삼성그룹 및 계열사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제기된 소송이다. 범현대가는 10.6%인 12건으로 뒤를 이었다. LG그룹, SK그룹, 신세계그룹 등도 참여연대와 악연을 갖고 있다.
자유기업원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기업을 압박하기 위해 고소·고발을 남발하고 있다”며 “기업소송 행위는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키며 기업 활동을 위축시켜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승소율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1백4건 중 종결된 사건을 기준으로 참여연대가 승소한 사건은 31건(29.8%)으로, 패소사건(46건·44.2%)보다 적었다. 기소·불기소 인원의 비율도 마찬가지다. 참여연대의 기소 비율은 10.3%에 불과하다. 불기소 인원은 89.7%에 이른다. 참고로 검찰의 전체사건 기소·불기소 인원 비율은 각각 52.5%, 47.5%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기업소송에서 승소율보다 패소율이 높은 것은 사법기관의 재벌 봐주기의 전형이자 단면으로 볼 수 있다”며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처벌은 대부분 집행유예로 끝나는 등 면죄부를 주는 온정적 판결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최대 기업소송은?
정보유출 땐 ‘수만명에 수천억’
국내 최대 규모의 기업소송은 무엇일까.  바로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한 소송이다. 고객정보 유출사고를 일으킨 옥션과 하나로텔레콤, GS칼텍스 등 3개사를 상대로 한 집단손해배상 소송은 모두 47건으로, 17만여명이 소송에 참여했다. 소송금액은 2천억원에 달한다.
지난 2월 중국인 해커에 의해 1천만명 이상의 회원 정보를 해킹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던 옥션의 경우 총 19건의 손해배상 소송이 접수된 상태. 소송 인원은 14만여명으로, 소송금액은 1천5백70억원이다. 옥션의 지난해 수수료 매출(1천7백억원)과 맞먹는 액수다.
지난 4월 고객 6백만명의 정보를 제휴 업체에 제공한 하나로텔레콤의 정보유출 사건은 총 18건의 소송이 접수됐다. 1만1천여명의 소송인원이 1백23억원을 청구했다.

옥션, 14만여 명에 1천5백70억원
하나로텔, 1만1천명에 1백23억원
GS칼텍스, 3만명에 2백억원 소송

최근 1천1백만여명의 개인정보가 샌 GS칼텍스 고객정보 유출 사건은 현재까지 10건의 소송이 접수됐다. 3만여명이 소송에 참여중이며 소송가액은 2백억원 정도다. 여기에 소송 준비 중인 인원도 1만명에 육박해 소송금액은 늘어날 전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집단소송이 확산되면서 소송 제기 인원도 최소 수천명에서 수만명 단위로 확대되고 있다”며 “앞으로 추가 소송 가능성도 있고, 판결 결과에 따라 청구 금액을 올릴 가능성도 있어 소송가액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집단소송 확정판결 사례를 보면 ▲2005년 5월 회원 28만여명 명의가 도용된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명의도용 사건은 49명의 소송인원에 1인당 10만원 ▲2006년 3월 3만여명의 고객 이름이 유출된 국민은행의 고객정보 유출 사건은 1천여명의 소송인원에 1인당 20만원 ▲2006년 9월 입사지원자 응시정보 일부가 유출된 LG전자 채용 사이트 해킹 사건은 30여 명의 소송인원에 1인당 70만원 등의 피해배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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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