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천국’ 대한민국 현주소 ③기업의 역습



“더 이상은 앉아서 당하지 않는다”

기업의 역습이 시작됐다. 온갖 공세에 항상 앉아서 당하기만 했던 기업들이 소극적 태도에서 벗어나 적극적이고 대담한 행동을 보이고 있다. 이들의 무기는 법이다. 돌발 위기가 발생하면 지체 없이 원인 제공자를 찾아내 예외 없이 ‘법적 대응’이란 칼을 꺼낸다. 그 대상도 광범위하다. 타사는 물론 언론을 불문하고 공정위 등 정부기관도 막론한다. 막대한 피해를 입고도 고소·고발을 꺼려온 과거와 비교하면 확실히 다른 양상이다.

지난 5월 삼성그룹에 한 통의 협박 전화가 걸려왔다. “비밀 자료를 폭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홍모씨는 ‘삼성비자금’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의 후배를 사칭해 수십억원을 요구했지만 결국 회사 측 고발로 쇠고랑을 찼다. 당시 삼성그룹은 ‘삼성 특검’사태로 뒤숭숭한 시점이었지만 홍씨와 일체 거래(?)없이 바로 검찰에 고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 농심에도 수상한 소비자 불만이 접수됐다. 허모씨는 농심 제품에서 애벌레가 나왔다며 무작정 돈을 요구했다. 무려 1억원이었다. 그는 만약 돈을 주지 않으면 언론사와 소비자단체 등에 알리겠다고 협박했다.
농심 측은 긴장했다. 잇단 이물질 파문 탓이었다. 그러나 농심은 자체 조사 결과 A씨가 제품에서 이물질이 나왔다고 주장하며 회사에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는 ‘블랙 컨슈머(black consumer)’로 확인, 바로 검찰에 고발했다.
농심 측은 “실제로 제품에서 이물질이 나온 경우는 몰라도 일부러 이물질을 넣은 뒤 돈을 요구하는 사례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며 “옛날 같으면 이미지 타격을 우려해 어떡해서든 합의했지만 최근에는 샘플 조사 등 정확한 경로와 경위 조사를 통해 법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내외 공세에 대처하는 기업들의 자세가 달라졌다. 소극적 태도에서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서고 있는 것. 기업 및 브랜드 이미지 훼손 등을 우려해 ‘벙어리 냉가슴’앓던 과거와 달리 경·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등 적극 대응하고 있다.
대응 방법은 십중팔구 형사상 고소·고발 또는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소송이다. 돌발 위기에 상시적으로 노출돼 있는 기업들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입을 모은다.

언론·정부기관 불문 외부 공세에 지체 없이 ‘법적대응’
“음해세력 추적”수사 의뢰 봇물… 수십억원 민소 뒤따라

한 대기업 관계자는 “경제 불안정 속에서 효과적인 위기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홍보전략을 대대적으로 수술하고 있다”며 “그중 가장 큰 변화는 부당한 입김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속으로만 끙끙 앓던 대외 대응을 강경하게 대처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기업들의 역습 타깃은 광범위하다. ‘끽해야’ 타사에 그쳤던 소송장 남발은 언론을 불문하고 심지어 공정위 등 정부기관도 막론한다. 한마디로 물불 가리지 않는다.
이중 눈에 띄는 것은 언론을 상대로 한 법적대응이다. 그동안 언론에 대해 수세적 태도를 보였던 기업들은 공세적 태도로 급선회하고 있는 양상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한 인터넷 매체를 상대로 10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자사에 악의적 보도를 했다는 이유에서다.
삼성전자는 이 언론사에 “정정보도문을 1개월 동안 게재할 것,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이행 완료일까지 매일 5백만원을 지급할 것, 이와 별도로 10억원의 손해배상금 및 소장 송부 다음날부터 지급일까지 연 20%의 이자를 지급할 것”등을 요구했다.
농협도 최근 한 주간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역시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허위사실을 유포, 자사의 명예와 신용을 훼손했다는 까닭이다. 농협은 신문사와 기자에게 각각 5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업의 언론 소송, 특히 기하급수로 늘고 있는 인터넷 매체를 상대로 한 소송이 줄을 잇고 있다”며 “기업으로선 넋 놓고 있으면 순식간에 확대 해석되거나 지나친 유추를 통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되는 점에서 충격이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법적 대응이란 최후의 카드를 주체 없이 꺼내드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재계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도 예외가 아니다. 공정위 제재에 불복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것.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란 게 재계의 중론이지만 대부분 공정위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한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 삼성화재, 현대해상, LIG, 동부화재 등 10개 손보사들이 보험료 자율화가 시행된 2002년 4월부터 2006년까지 8개 일반손해보험상품의 보험료율 합의를 통해 공동 결정한 혐의(부당공동행위)를 적발해 총 5백억여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삼성화재와 메리츠화재는 이와 관련 “독자적 부가율을 결정했고, 할인·할증률도 다른 손보사와 현저히 다르게 적용했다”며 공정위 처분 취소 소송을 냈으나 패소했다. 대우건설과 삼성물산, GS건설, SK건설 등 4개 건설사도 공정위의 담합 처분에 항의, 시정명령 및 과징금 부과 처분 취소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공정위가 꼬리를 내린 기업도 있다. 바로 신세계다. 공정위는 2006년 11월 신세계의 월마트코리아 인수로 인천·부천, 안양·평촌, 포항, 대구 시지·경산 등 4개 지역에서 경쟁제한성이 있다고 판단해 점포매각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신세계는 이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지난 9월 공정위 양도명령이 위법하다며 신세계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8월 화장품 업체들도 방문판매가 실질적으로 다단계판매라는 공정위의 시정조치처분을 받았으나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공정위의 처분이 불합리하다는 취소 처분을 받아낸 바 있다.
기업들은 특히 루머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번지면서 유동성 관련 악성루머는 더더욱 그렇다.
악성루머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대림산업을 꼽을 수 있다. 증권가를 중심으로 유동성 위기설이 돌았다. 시중에 ‘대림산업이 산업은행의 차입금 만기 연장 거절로 새마을금고에 화의를 신청하면서 파산 절차를 밟을 것’이란 터무니없는 부도설이 퍼진 것.

대림산업의 사실 무근이란 적극적인 해명에도 헛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대림산업은 결국 보이지 않는 손을 색출하기 위해 최근 서울 종로경찰서 사이버 수사대에 수사를 의뢰했다. 
회사 관계자는 “특정한 의도로 음해성 루머와 괴담을 퍼트리는 세력을 끝까지 추적해 엄단할 것”이라며 진원지가 밝혀지는 즉시 법적인 책임을 물을 뜻을 밝혔다.
한국 맥도널드도 지난 6월 촛불정국 당시 “미국산 쇠고기 반대시위가 격화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매출이 급격히 줄고 있다”는 루머에 시달리고 홈페이지가 해킹당하는 등 사이버 공격이 계속되자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바 있다.
이처럼 기업이 고소·고발하는 사례와 반대로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소비자 권리 찾기’를 표방한 피해자들이 해당 기업에 보상을 요구하는 집단·단체소송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3월부터 시행된 집단분쟁조정제는 50명 이상의 소비자가 같은 제품이나 서비스로 피해를 입었을 때 구제를 신청하는 제도다.
지난 1월부터 시행된 단체소송제는 피해 소비자들을 대신해 소비자단체가 사업자를 대상으로 위법행위를 금지 또는 중지할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말한다. 이들 소송은 소액의 피해를 입은 소비자가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도입됐다.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 진행되고 있는 소송이 같은 맥락의 사건이다. 지난달 박상돈(자유선진당) 의원이 국감에서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옥션이 중국인 해커에게 1천만명의 회원 정보를 해킹 당했고, 하나로텔레콤 6백만명, GS칼텍스 1천1백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이들 3사를 상대로 소송중인 건만 47건으로, 17만여 명이 1천9백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를 요구하고 있다.
앞서 지난 9월 해상 유조선 충돌 사고로 기름 유출 피해를 본 충남 태안군 주민 6천8백64명은 15개월간 매달 20만원씩(총 2백5억원)의 생계비를 지급하라며 삼성중공업을 상대로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기업을 상대로 승소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게 현실이다. 대기업과 가장 많은 소송을 벌이고 있는 참여연대의 실적(?)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유관단체인 자유기업원의 ‘참여연대 소송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참여연대는 1994년 설립 이후 지난 5월말까지 총 2백37건의 소송을 제기했다. 이중 43.2%인 1백4건이 기업과 기업인이 대상이다.
절반이 넘는 53.8%(56건)가 회사 경영 및 지배구조 문제다. 유형별로는 형사 87건(36.7%), 민사 73건(30.8%), 행정 45건(19.0%), 헌법소원 32건(13.5%) 등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이 피소된 기업은 삼성그룹. 기업소송 1백4건 중 39건으로 34.5%가 삼성그룹 및 계열사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제기된 소송이다. 범현대가는 10.6%인 12건으로 뒤를 이었다. LG그룹, SK그룹, 신세계그룹 등도 참여연대와 악연을 갖고 있다.
자유기업원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기업을 압박하기 위해 고소·고발을 남발하고 있다”며 “기업소송 행위는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키며 기업 활동을 위축시켜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승소율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1백4건 중 종결된 사건을 기준으로 참여연대가 승소한 사건은 31건(29.8%)으로, 패소사건(46건·44.2%)보다 적었다. 기소·불기소 인원의 비율도 마찬가지다. 참여연대의 기소 비율은 10.3%에 불과하다. 불기소 인원은 89.7%에 이른다. 참고로 검찰의 전체사건 기소·불기소 인원 비율은 각각 52.5%, 47.5%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기업소송에서 승소율보다 패소율이 높은 것은 사법기관의 재벌 봐주기의 전형이자 단면으로 볼 수 있다”며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처벌은 대부분 집행유예로 끝나는 등 면죄부를 주는 온정적 판결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최대 기업소송은?
정보유출 땐 ‘수만명에 수천억’
국내 최대 규모의 기업소송은 무엇일까.  바로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한 소송이다. 고객정보 유출사고를 일으킨 옥션과 하나로텔레콤, GS칼텍스 등 3개사를 상대로 한 집단손해배상 소송은 모두 47건으로, 17만여명이 소송에 참여했다. 소송금액은 2천억원에 달한다.
지난 2월 중국인 해커에 의해 1천만명 이상의 회원 정보를 해킹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던 옥션의 경우 총 19건의 손해배상 소송이 접수된 상태. 소송 인원은 14만여명으로, 소송금액은 1천5백70억원이다. 옥션의 지난해 수수료 매출(1천7백억원)과 맞먹는 액수다.
지난 4월 고객 6백만명의 정보를 제휴 업체에 제공한 하나로텔레콤의 정보유출 사건은 총 18건의 소송이 접수됐다. 1만1천여명의 소송인원이 1백23억원을 청구했다.

옥션, 14만여 명에 1천5백70억원
하나로텔, 1만1천명에 1백23억원
GS칼텍스, 3만명에 2백억원 소송

최근 1천1백만여명의 개인정보가 샌 GS칼텍스 고객정보 유출 사건은 현재까지 10건의 소송이 접수됐다. 3만여명이 소송에 참여중이며 소송가액은 2백억원 정도다. 여기에 소송 준비 중인 인원도 1만명에 육박해 소송금액은 늘어날 전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집단소송이 확산되면서 소송 제기 인원도 최소 수천명에서 수만명 단위로 확대되고 있다”며 “앞으로 추가 소송 가능성도 있고, 판결 결과에 따라 청구 금액을 올릴 가능성도 있어 소송가액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집단소송 확정판결 사례를 보면 ▲2005년 5월 회원 28만여명 명의가 도용된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명의도용 사건은 49명의 소송인원에 1인당 10만원 ▲2006년 3월 3만여명의 고객 이름이 유출된 국민은행의 고객정보 유출 사건은 1천여명의 소송인원에 1인당 20만원 ▲2006년 9월 입사지원자 응시정보 일부가 유출된 LG전자 채용 사이트 해킹 사건은 30여 명의 소송인원에 1인당 70만원 등의 피해배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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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