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시험대 오른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05.22 14:47:49
  • 호수 11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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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르는 박근혜 사단 물귀신 작전?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새 정권의 신임 국무총리로 이낙연 전 전남도지사가 내정됐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정치권 평가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이다. 하지만 아직 청문회라는 관문이 남았다. 이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로 이낙연 전 전남도지사를 내정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 춘추관서 브리핑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첫 인사 결과를 직접 발표했다. 청와대는 “언론인, 국회의원, 도지사를 지내며 풍부한 식견과 경험을 갖췄고 여야를 뛰어넘어 호평을 받았다”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무난한 인사
정치권 호평

이 후보자는 이날 청와대서 기자회견을 열고 “내가 막걸리를 좋아한다. 야당 정치인과도 막걸리를 마셔가며 틈 나는대로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이 ‘내각은 총리 책임 아래, 각 부처는 장관의 책임 하에 일하도록 하겠다’고 해왔다. 각 부처의 업무가 국정과제의 방향과 불일치하거나 속도가 덜 나는 일이 없는지 살피고 유관부처간 업무 조정의 필요가 없는지 살피는 것이 총리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국정운영 최우선 과제에 대해선 “안보 위기를 타개하는 것, 일자리 문제와 서민생활 안정화가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대기업-중소기업 임금격차 해소, 정규직-비정규직 임금차이를 줄이는 것은 합의만 있다면 상당부분 개선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번 이 후보자의 지명 배경에는 ‘탕평 인사’라는 포석이 깔렸다. 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부터 ‘호남 총리’를 강조했던 만큼 이 후보자 내정은 ‘호남 홀대론’ 불식을 위한 카드다. 

이번 대선서 과반의 전폭적 지지를 보내준 호남에 대한 문 대통령의 화답이기도 하다. 이 후보자는 ‘손학규계’로 분류돼왔다. 동교동계와 손학규계 등 이른바 비문(비문재인) 진영 간 가교 역할도 이 후보자에게 기대하는 역할이다.

호남 출신 내정 “탕평인사 평가”
대체로 긍정적…홀대론 불식 포석

이 후보자는 1952년 전라남도 영광 출신이다. 농부 출신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4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0남매 중 3명이 죽었으며 이 후보자의 두 형이 사망하면서 장남이 돼 대학교육을 마쳤다.

이 후보자의 아내 김숙희씨는 전주여자고등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교 교육대학원서 미술교육을 전공했다. 이후 서울서 미술교사로 일했다. 2013년 첫 개인전을 열었다. 외아들 동한씨를 뒀다. 동한씨는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있으며 2013년 11월16일 초등학교 동기동창과 결혼했다.
 

이 후보자는 광주제일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졸업 후 1979년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했다. 언론인 출신의 정치인 중 비교적 성공적인 길을 걷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9년 12월 <동아일보> 도쿄주재특파원을 맡았다. 1997년 9월 <동아일보> 편집국 국제부 차장으로 일했다. 1997년 10월부터 1999년 2월까지 <동아일보> 논설위원실 논설위원을 맡았다. 1999년 11월부터 2000년 2월까지 <동아일보> 편집국 국제부 부장으로 일했다.


기자로 첫발
깐깐한 리더십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로 일하던 시절 ‘동교동계’로 불리던 옛 민주당을 출입하다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알게 되면서 정치권에 입문하게 됐다. 2000년 5월 제16대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19대까지 내리 4선을 지냈다.  

그동안 2000년 국회 인사청문회특별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2002년 월드컵축구 국회의원연맹 위원을 역임했다. 2000년 12월부터 2001년 11월까지 민주당 제1정책조정위원장을 맡았다.

2001년 11월부터 2002년 4월까지 처음으로 민주당 대변인을 맡았다. 2002년 6월 새천년민주당 대변인이 됐으며 2002년 12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당선자 대변인으로 일했다. 2004년 국회 건설교통위원회와 운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또 당 대변인을 다섯 차례나 맡으면서 ‘직업이 대변인’이라는 평도 얻었다. 대변인 시절 간결하고 절제된 논평으로 '대변인 문화'를 새로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시절 논평을 모은 책 <이낙연의 낮은 목소리>는 훗날에도 여야 대변인실서, 농식품위원장 시절의 축사 등을 모은 책 <농업은 죽지 않는다>는 지방의원 등에게 참고자료로 활용될 정도다.

2003년 2월 노무현 대통령 취임사 작성 때 일이다. 노 대통령이 두세 차례 초안에 대해 마음에 들어 하지 않자 당시 대변인이었던 이 후보자가 취임사를 썼는데 단 한 자도 수정하지 않고 극찬했다고 한다. 

이 후보자는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전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전남 도지사에 오른 이 후보자는 국회의원 시절부터 전남을 속속 누빈 경험을 바탕으로 준비된 도지사의 면모를 과시했다.

브랜드 시책으로 제시한 ‘가고 싶은 섬’과 ‘숲속의 전남’은 전남의 자산을 최대한 활용해 관광자원화 하면서 실제 거주하는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인다는 측면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100원 농어촌택시’도 전국적인 히트 시책이다. 100원 택시는 농어촌에 버스가 들어오지 않거나 운행횟수가 적어 교통 불편을 겪는 마을 주민이 택시를 부르면 100원만 내고 마을서 가장 가까운 버스정류장까지 갈 수 있도록 한 제도로 호응을 받았다. 

인사도 비교적 무난하다는 평가다. 지금껏 비리에 연루되거나 구설수에 오른 적이 없을 정도로 자신과 주변의 관리에 철저하다는 평판을 듣고 있다. 특히 15년을 함께한 보좌관이 있을 정도로 한번 믿는 사람은 끝까지 믿는 의리파로 통하고 보이지 않는 잔정도 있는 정치인으로 꼽힌다.  
 

이 후보자는 꼼꼼한 업무 스타일 때문에 ‘이 주사’로 불린다. ‘6급 공무원 같다’는 의미다. 본인도 ‘이 주사’라는 별명을 싫어하지 않는다고 한다. 


여권 관계자는 “이 후보자는 평소 ‘주사처럼 꼼꼼하게 챙기지 않으면 일이 되지 않는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고 전했다. 이 후보자의 꼼꼼한 일처리 스타일상 국무위원인 장관들이 호되게 시달릴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도지사 시절 그는 기자 출신답게 보도자료 문구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썼다. 그의 적확한 단어 사용은 흡사 ‘한 사물을 표현하는 데는 한 단어밖에 없다’는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을 연상시킬 정도다.

 F1대회의 지속 여부와 관련한 전남도의 원칙에 대한 일부 언론 보도에 자신의 코멘트가 ‘재정 최소화’로 나가자 ‘재정부담 최소화’라고 바로잡아 달라고 한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가볍게 통과?
각종 검증 시작

이런 그의 꼼꼼한 성품 때문에 정치권서도 이 후보자에 대해 ‘무난한 인사’라는 반응이다. 먼저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는 “인사에 좋은분들이 거명돼서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졌다”며 사실상 협조 의사를 밝혔다. 

바른정당 주호영 대표 역시 “치명적인 하자가 없다면 청문이나 총리 지명에 동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의당도 “새 정부는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길 기대한다”고 이 후보자 인선에 대해 기대감을 표명했다.


하지만 아직 이 후보자에게 청문회라는 관문이 남아 있다. 국회는 오는 24∼25일 이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개최한다. 여야도 다각적인 검증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현재까지 정치권과 언론의 검증은 이 후보자의 도덕성 부분에 초점이 맞춰졌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인사청문특위는 이 후보자의 상속재산 신고와 아들 병역면제 등을 둘러싼 의혹을 들여다보면서 치밀한 검증을 준비하고 있다. 국회에 제출된 이 후보자 인사청문요청안 자료에 따르면 이 후보자 아들은 2001년 대학교 1학년 때 3급으로 현역입대 판정을 받았다.

각종 의혹…청문회 문턱 넘을까
‘복수의 칼날’ 야당 단단히 준비

이후 운동 중에 어깨를 다쳐 수술을 받았고, 이듬해 2차례에 걸친 재검서 재발성 탈구로 5급 판정을 받아 군대에 가지 않았다. 

총리실은 지난 12일 “이 후보자는 아들 입대를 위해 병무청에 탄원서를 보내는 등 다각도로 노력했지만, 규칙상 어렵다는 판정 결과를 받았다”며 탄원서 사본까지 공개했다. 하지만 더 명확한 해명이 필요하다는 것이 한국당 인사청문특위의 판단이다.

이 후보자 평창동 땅도 검증 대상이다. 이 후보자 부인인 김씨가 1989년 3월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서 강남구 논현동으로 전입했다가 9개월 만인 그해 12월 평창동으로 다시 주소를 옮긴 점이다. 일각서 위장 전입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데,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과 연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13년 전남개발공사가 서울서 열린 이 후보자 부인의 첫 개인전에서 그림 2점을 900만원에 사들인 점도 문제 삼는 대목 중 하나다. 전남개발공사가 전남 지역서 4선의 국회의원을 지낸 이 후보자를 의식해 구매하지 않았겠냐는 지적이다.

부동산 문제
그림 거래도

총리실은 “전시회 기간 작품 구매자가 전남개발공사라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며 “구매 시점도 이 후보자가 전남지사로 취임하기 11개월 전으로, 이 후보자가 작품 판매를 강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작품 판매로 소득을 올린 부인을 이 후보자가 연말정산 세액공제 때 피부양 가족으로 등록해 공제 혜택을 봤다는 점도 논란이 예상된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문재인-김상조 궁합은?
칼잡은 ‘재계 저승사자’

‘재벌 적격수’로 불리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지난 17일 문재인 정부 초대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로 올랐다. 이번 인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강조해온 재벌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재계는 김 후보자의 공정위원장 내정 소식에 긴장감이 역력한 상태다.

김 후보자는 1994년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로 임용된 이후 본격적으로 재벌개혁 운동에 뛰어 들었다. 노사정위원회 경제개혁소위 책임전문위원, 참여연대 재벌개혁감시단 단장,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 등을 역임했다.

그의 약력만 보더라도 재벌개혁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김 후보자는 ‘삼성 저격수’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삼성그룹의 승계 과정에서 불거진 크고 작은 이슈에서 늘 그가 앞장서 왔기 때문이다.

2004년 삼성전자 주총장에서 김 후보자가 이건희 회장이 삼성전자가 불법 대선자금을 지원하게 하는 등 윤리강령을 위반했다며 징계를 주장하다 강제 퇴장당한 사건은 유명한 일화 중 하나다. 

1997년 국민승리21 권영길 대선 후보의 정책자문교수단으로 참여한 이후 현실정치와 거리를 둬왔던 김 후보자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서 특검팀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에 논리적 근거를 제공하고, 지난 3월 문재인 대선 캠프에 전격 합류했다.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낙점
 ‘재벌개혁’ 강력한 의지 반영

문 캠프서 김 후보자는 지금의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인 'J노믹스'를 설계하는 데 기여했다. 특히 재벌 개혁과 관련한 정책과 공약을 입안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문재인 대선 후보의 공약집에는 재벌의 불법적인 경영승계와 ‘황제경영’을 근절하기 위한 기존 순환출자 해소 등 우회적 대주주 일가 지배력 강화 차단, 횡령·배임 등 경제범죄 엄정 처벌 및 사면권 제한 등이 담겨 있다.

특히 일감몰아주기, 납품단가후려치기 등 재벌기업의 갑질행위에 대한 조사·처벌을 강화하기 위한 경찰, 국세청, 공정위, 감사원, 중소기업청 등 범정부차원의 을지로위원회 구성 공약은 문 대통령의 재벌 개혁 핵심 공약으로 꼽힌다.

이 같은 공약에 따라 앞으로 ‘경제 검찰’로서 공정위의 위상도 한층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재벌의 범죄에 대해서는 무관용의 원칙을 세우겠다”며 대기업의 감시 수위를 더 높이고 공정위의 조사 권한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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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