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1주년 특집7> 21년 전 그들은…

역사에 묻히고 역사가 살리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일요시사>가 21번째 생일을 맞았다. 1996년 5월 창간 이후 <일요시사>는 격동의 현대사를 겪고 수많은 굴곡을 경험하며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했다. 이름만 대면 알 정도로 유명한 각계각층 인사들 역시 21년 전에는 또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일요시사>는 창간을 맞아 유명인사들의 21년 전 모습을 담아봤다.

대중은 유명인사들의 과거에 관심이 많다. 각 분야에서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는 이들이 예전에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대중의 눈에 띈 유명인들의 과거가 공개되는 건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돼버렸다. 대중은 현재 모습에서 한 번, 과거 일화서 한 번 그들을 ‘검증’한다.
 

강산이 두 번
그동안 무슨 일?

▲문재인 대통령 ‘문변’= 1996년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문재인 대통령은 그해 8월 남태평양에서 조업 중이던 참치잡이 원양어선 ‘페스카마호’서 조선족 선원 6명이 한국인 선원을 포함해 11명을 살해한 사건의 변호를 맡았다. 

당시 부산변호사회 인권위원장이던 문 대통령은 페스카마호 사건의 2심부터 변호를 담당했다. 1심 판결에서 피의자 6명은 전원 사형 선고를 받은 상황이었다. 다음 해 4월 항소심에서 주범 1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5명은 무기징역 판결을 받았고, 주범 역시 노무현정부 말기 특별사면 때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문 대통령에게 페스카마호 사건 변론은 일종의 아킬레스건이다. 일부 보수언론은 노무현정부에서 비서실장으로 재직하던 문 대통령이 사면권을 남용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가해자들의 죄가 무겁지만 이들 또한 동등하게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며 “동포로서 따뜻하게 감싸야 한다”는 의견을 유지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칩거’=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숫자 ‘18’과 묘한 인연이 있다. 먼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청와대를 장악해 1979년 10·26사태로 죽음을 맞기까지 18년 동안 대통령의 딸로 살았다. 

이후 신당동 사택으로 이사해 1997년까지 18년 동안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칩거생활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1997년 11월 15대 대선서 이회창 후보를 지지 선언하며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18년 만에야 공식적으로 언론에 얼굴을 비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무려 2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가장 인지도가 높은 정치인으로 이미 알려진 상태였다. 그는 2007년 자서전서 “지금도 내가 걸어온 18년이라는 세월이 은둔과 칩거로 치부될 때 쓴웃음이 나온다”고 표현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 ‘불구속 기소’=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2014년 5월10일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3년째 병상에서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그사이 아들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섰지만 박근혜-최순실게이트가 터지면서 박 전 대통령과 함께 감방 신세를 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21년 전 이 회장 역시 감방 신세를 질 뻔했다. 이 회장은 1995년 11월 대검 중수부가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서 다른 대기업 총수들과 마찬가지로 조사를 받았다. 

이 회장은 당시 100억원의 불법정치자금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었다. 이 회장은 1996년 불구속 기소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1997년 10월 개천절 특별사면 대상자로 사면됐다.

한치 앞 모를 리더들의 희로애락
인생 완전히 뒤바뀐 경우도 있어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 ‘MBC맨’=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은 <시사저널>이 매년 실시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조사에서 12년 연속 1위를 차지하는 등 독보적인 위치를 자랑하고 있다. 

언론계서 하나의 아이콘으로 인정받고 있는 손 사장은 21년 전에는 MBC맨이었다. 손 사장은 1992년 MBC 파업 당시 수의를 입고 웃고 있는 모습이 포착돼 한차례 큰 관심을 받았다. 1996년에도 MBC는 파업 여파에 휘말렸다. 

MBC를 살리고자 했던 구성원들이 노력한 결과였다. 손 사장은 1996년 11월 <말>지에 기고한 글에서 언론인으로 살아가면서 변화한 자신의 삶을 담담히 기술했다.
 

▲조국 민정수석 ‘미국 유학’= 문재인 대통령이 19대 대선서 승리한 이후 청와대 민정수석 자리에 누구를 등용할지를 두고 관심이 컸다. 박근혜정부서 검찰이 보여준 행태가 비정상적이었기 때문에 국민들 사이에선 검찰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민정수석은 말 그대로 칼자루를 쥔, 검찰개혁을 수행하는 데 핵심이 되는 자리다. 문 대통령은 취임 2일 만에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깜짝 발탁했다. 그간 민정수석이 검찰 출신이었던 점을 고려했을 때 조 수석의 등용은 파격 인사라 할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조 수석은 누구보다 빠른 삶을 살았다. 16세에 서울대 법대에 최연소로 입학했고 26세 나이로 최연소 교수가 됐다. 1996년에 그는 미국 유학 중이었다. 1994년 8월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교 로스쿨로 유학을 떠난 그는 1997년 12월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조국 수석의 말에 따르면 지독히 공부만 하던 시기였다고.
 

▲김훈 작가 ‘첫 장편’= 김훈 작가는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문단과 대중의 높은 관심을 받는 한국 대표 문인이다. 수사를 극도로 절제한 간결하고 건조한 문체로 표현한 그의 소설은 나올 때마다 판매순위 최상위권에 위치한다.

시작, 불명예…
가지각색 과거

김 작가는 1994년, 47세 나이로 문단에 데뷔했다. 그는 작가로 데뷔한 이후에도 언론인 활동을 병행했는데, 1996년엔 <TV저널> 편집국장을 지냈다.

 그해 자신의 첫 장편소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을 내놓았다. 작품은 문명에 지배당하는 한 소방관과 신석기 여인으로 비유된 장님 안마사의 죽음을 통해 문명을 지배하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현대인의 고뇌를 형상화했다. 

늘 뭉툭하게 깎은 연필로 한 글자, 한 글자 원고지에 써내려가는 그는 올해 1월, 첫 장편을 내놓은 지 21년 만에 9번째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신경숙 작가 ‘<전설>’= 신경숙 작가는 표절 논란을 겪으며 한국 대표 작가서 바닥으로 추락했다. 신 작가는 표절 논란에 휩싸인 작품 <전설>을 1996년에 발표했다. 신 작가의 단편소설 <전설>은 일본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베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응준 작가가 두 작품의 문장이 유사하다는 이유를 들면서 시작된 표절 논란은 상당 기간 지속됐다. 신 작가는 표절 논란이 있기 전 <엄마를 부탁해> <외딴 방> <리진> 등으로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인기를 끌던 초특급 작가였기 때문이다.

대부분 큰 노력
유명인사로 우뚝

신 작가는 지난 2015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두 작품의 문장을 여러 차례 대조해본 결과 표절이란 문제를 제기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제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신 작가의 표절 논란으로 문단은 큰 타격을 입었다.

수많은 굴곡 경험하고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

 

▲배우 송강호 ‘영화 데뷔’= 지난해 송강호 주연의 영화 <밀정>의 관객수가 700만명을 돌파했다. 송강호는 극 중 조선인 일본 경찰로 출연해 생존과 대의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물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밀정>의 흥행 성공으로 송강호는 주연작 합산 관객수 1억명을 돌파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1998년 첫 주연작인 <조용한 가족>부터 <밀정>에 이르기까지 22편의 작품에 동원한 관객수를 합한 것이다. 


그는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 단역으로 처음 스크린에 등장했을 때부터 완성된 배우라는 평가를 받았다. 송강호는 1991년 연극으로 데뷔해 이미 잔뼈가 굵은 배우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연극배우의 경제 상황이 매우 열악했다. 

송강호는 배고팠던 시절 열정과 노력으로 무대에 올랐고, 21년이 지난 현재 한국 영화계가 자랑하는 대배우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축구 박지성 ‘스승과 만남’= 1996년 박지성은 수원공고 1학년이었다. 박지성은 그 당시 축구에 대한 열정은 충만했지만 왜소한 체격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하던 선수였다. 그런 그를 알아본 게 수원공고 이학종 감독이다. 

이 감독은 박지성에 대해 “키가 165㎝밖에 되지 않아 체격조건이 나빴지만 천부적인 지구력을 갖췄고 경기 운용 능력이 뛰어나 훌륭한 재목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수원공고를 졸업한 박지성을 원하는 대학이 없자 여기저기 읍소하고 다니는 등 제자를 위해 애쓴 것으로 알려졌다. 

간신히 명지대에 진학한 박지성은 허정무 전 감독의 눈에 띄어 2000년 시드니올림픽서 처음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 이후 월드컵서 골을 넣고, 해외 프리미어리그 명문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서 활약하는 등 세계적인 축구스타로 발돋움했다.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시작’= 1996년 7세의 김연아는 과천의 아이스링크장을 찾아 고모가 선물해준 낡고 빨간 피겨 부츠를 신은 채 빙판을 누볐다. 소녀는 14년 후 2010년 캐나다 밴쿠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경기서 금메달을 따내며 ‘피겨여왕’으로 우뚝 섰다.

무대 내려오고
끝없는 추락도

현역 선수로 뛰는 내내 출전한 모든 경기서 3위 밖으로 벗어난 적이 없는 압도적 기량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이뤄진 것이었던 만큼 더욱 값졌다. 김연아는 2014년 러시아 소치올림픽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현재 김연아의 모든 관심은 내년에 있을 2018 평창 올림픽에 가 있다. 

평창올림픽 홍보대사인 김연아는 “평창올림픽은 꽁꽁 얼어붙은 분단의 강을 건너 인종과 언어, 지역과 종교의 벽을 허물고 진정한 인류애가 꽃피는 감동적인 순간을 꿈꾼다”며 “평창 대회는 인류 화합이라는 올림픽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최고의 이벤트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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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