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고-억울한 사람들> (52)홀로 싸우는 김영일 할아버지

모두가 외면한 장애인의 말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신문고’ 지면을 신설합니다. 매주 억울한 사람들을 찾아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담을 예정입니다. 어떤 이야기이든, 어느 누구든 좋습니다. <일요시사>는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쉰두 번째는 자신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18년간 홀로 싸움 중인 대전 서구의 김영일 할아버지 이야기입니다.
 

택시서 내린 김영일 할아버지는 목발을 짚고 있었다. 김 할아버지가 이동할 때마다 도움을 주고 있다는 택시기사는 자동차 트렁크서 묵직한 여행 가방을 꺼냈다. 가방 안에는 보기 좋고, 찾기 쉽게 끈으로 묶은 자료가 한가득이었다. 여행 가방 두 개 분량의 자료는 김 할아버지의 인생이자 투쟁의 역사서였다.

자료가 한가득

올해로 일흔네 살인 김 할아버지는 1944년 함경북도 청진서 태어나 8·15광복 때 남한으로 내려왔다. 김 할아버지는 6·25전쟁 당시 아버지가 좌익으로 몰려 총살당하면서 학교도 다니지 못한 채 충남 예산의 외가댁으로 떠나야 했다. 불행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중학생 시절 갑작스럽게 찾아온 뇌전증(간질)은 평생 그를 따라다니는 족쇄가 됐다. 김 할아버지가 보여준 혓바닥에는 발작 증상으로 정신을 잃을 때마다 혀를 깨물어 생긴 상처가 가득했다. 

“멀쩡하다가 정신이 뚝 떨어지고, 뚝 떨어지고 하는데 어디에 발붙일 수 있겠나.” 발작이 끊임없이 이어지자 다니고 있던 신학교서도 쫓겨났다.


어딜 가나 환영받지 못하던 김 할아버지는 서울에서 돌로 외벽을 만드는 일을 하게 됐다. 군대에 다녀온 이후 석수공으로 자리를 좀 잡나 싶더니 이번에도 운명은 김 할아버지의 편이 아니었다. 신내림, 일종의 무병이 그를 덮친 것이다.

머릿속에서 소리가 들리고 본인도 모르는 새 정신을 잃는 등 무병 증세를 보이는 사이 아내는 결혼 100일 만에 김 할아버지의 곁을 떠났다. 

“어머니가 대구서 과일 가게를 크게 하셨는데 그때 번 돈이 전부 나한테 쓰였다”며 “집에 혼자 있는 동안 발작이 찾아와 혀를 깨무는 바람에 방바닥이 피로 흥건했던 적도 있다”고 회상했다.

결국 신내림을 받은 그는 충남 예산과 홍성의 경계선인 닭재산으로 들어갔다. 김 할아버지는 정신병을 앓고 있던 산 주인의 딸을 치료해주면서 두 번째 인연을 맺었다. 그 사이에 아들과 딸도 한 명씩 얻었다. 

“그 때 산을 살 정도로 돈을 많이 벌었다. 방이 20칸인 기도원을 운영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가족이 생기고 돈을 벌었어도 그의 마음에는 안정이 깃들지 못했다. 

자신의 상황에 회의감을 가진 할아버지는 법당을 부수고 싸움을 하는 등 오랜 시간 방황했다. 이마 한가운데 선명하게 남은 흉터는 그 기간 동안 자해를 하면서 생긴 상처였다. “모든 걸 믿을 수 없었고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어릴 때 간질 판정 받아
정착 못 하고 늘 쫓겨나


또 다른 고초의 시발점이 된 대전행은 순전히 자녀들의 교육 문제 때문이었다. 1999년 1월 대전 서구에 위치한 한 상가에 철학관을 차린 김 할아버지는 처음부터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배척과 멸시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발작 과정서 크게 넘어지면서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상가는 가게마다 개별적으로 전기와 수도요금이 부과되는 체계가 아니라 공동요금을 사용량에 따라 나눠 걷는 방식을 사용했다. 문제는 김 할아버지에게 부과되는 요금만 터무니없이 높았다는 점이다. 
 

2003년 7월 수도요금 장부를 보면 10평 내외인 철학관의 수도요금이 7만원인 데 반해 150평에 달하는 찜질방에선 5만원이 나왔다. 철학관과 비슷한 크기의 정육점에서는 1000원 남짓한 요금만 나왔을 뿐이다.

“장부가 하도 이상해 찾아가 항의했더니 다른 장부를 보여주면서 내가 돈을 내지 않았다고 추궁했다”며 “나는 지금까지 영수증 한 장 버린 적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김 할아버지는 14년 전 관리비 영수증을 전부 갖고 있었다.

그가 소송전에 휘말린 것도 상가 문제서 비롯됐다. 당시 상가서 찜질방을 하던 A씨는 약 3년에 걸쳐 관리비를 내지 않았는데 그 액수가 무려 1350만원에 달했다. 

A씨가 관리비를 내지 않은 만큼 부담을 떠안게 된 상인들은 김 할아버지에게 번영회장을 맡아 달라 요청했다. 번영회장이 된 김 할아버지는 A씨를 상대로 관리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소송이 시작된 지 한 달 만에 밀린 관리비를 전부 내놨다.

김 할아버지는 관리비 청구 소송 외에도 소방 안전시설과 관련해 대전 서부 소방서에 행정 조치를 요청한 상태였다. A씨가 찜질방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건물을 무단으로 개조하고 주차장에 기름 탱크를 두는 등 화재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황은 김 할아버지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현장 조사를 나온 소방서에서 그에게 과태료 200만원을 부과한 것이다.

결국 소송까지 간 김 할아버지는 법원서 과태료를 낼 필요가 없다는 판결을 받았다. 그는 법원서 “번영회장으로서 기름 탱크 같은 위험물질이 주차장에 있고, 소방시설이 훼손돼서 생명과 재산에 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신고했을 뿐”이라며 “신고자에게 과태료를 물리는 것은 법조문 어느 조항에 따른 것인지 가르쳐 달라”고 외쳤다.

상가 번영회장 맡아 노력했지만…
가족 떠나고 친구 배신 ‘외톨이’

김 할아버지가 번영회장을 하는 동안 A씨에게 받아낸 관리비도 문제가 됐다. 그가 번영회장을 그만두고 뒤이어 구성된 번영회에서 돈을 인수인계받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김 할아버지가 그동안 모은 자료에는 통장 기록뿐 아니라 후임자에게 넘어간 돈의 흐름이 전부 남은 상태다. 

“자료를 다 보여줘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며 “처음에는 위임장을 써준 상가 주민들이 뒤에서는 나를 모함하거나, 믿었던 친구가 배신한 경우도 있다”고 허탈해했다.

소송전을 치르는 사이 철학관의 전기가 끊기고, 누군가 그에게 해코지하려 가게에 쳐들어오는 사건도 발생했다. 그 때마다 고소를 진행하고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누구 하나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상가 관계자는 전기 공사를 하다가 누전이 발생해 전기가 끊겼다고 말했지만 공사 관계자한테 물어보니 거짓말로 들통났다. 의도적으로 끊었던 것”이라며 “2층인 가게 좁은 문 틈새로 들어와 고래고래 욕을 하던 남자도 잡아서 신고했지만, 술 먹어서 실수한 거라고 경찰에선 훈방 조치로 끝냈다”고 주장했다.

외로운 시간

그사이 아내와 자식들은 전부 그의 곁을 떠났다. 소송에 매달리느라 기도원이 있던 산까지 헐값에 넘겼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발작 증세가 심해져 병원 신세를 진 것도 여러 번이다. 


국회의원부터 장애인 단체, 법률구조공단, 아름다운 재단 등 안 찾아가본 곳이 없다. 

“시간이 있으면 도와주겠다, 돈이 생기면 도와주겠다는 말만 무수하게 들었다”며 “도움을 받는 데도 조건이 필요했다”고 한탄했다. 18년간 홀로 싸웠지만 그에게 남은 건 여전히 쏟아지는 차가운 시선뿐이다.

김 할아버지가 원하는 건 소송에서 이기거나 피해 보상을 받는 게 아니다. 그는 “장애인이 억울한 게 있어 판사·검사·경찰관에게 증거를 내밀어도 확인조차 해주지 않는다”며 “증거 서류가 확실하다면 법적 근거를 확인해 잘잘못을 가려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 할아버지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래도 나같이 뛰는 사람이 있으니 세상이 조금은 바뀌지 않겠나”며 “내 삶은 늘 슬펐기 때문에 더 이상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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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