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34) 복귀

  • 황천우 작가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5.22 10:35:09
  • 호수 11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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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돌아오긴 했는데…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임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선도해 역시 웃음을 흘렸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뒤질세라 연정토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 사람들이 어찌 삼천 명으로 감히 고구려를 치겠다고 함부로 떠들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책사 말씀은 이놈들이 우리가 이미 김춘추를 석방하기로 결정한 사실을 알고 한번 허풍을 떨어보는 게 아니냐, 이 말이지요?”


“그렇지 않고서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허허, 이거 참.”

석방된 춘추

“왜 그러시오, 막리지.”

“전하, 신라의 하는 짓이 하도 어이없어 그러하옵니다.”

“그것 참.”

선도해 역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참 웃기는 놈들이군요. 백제 군사도 감당하지 못해 당나라와 우리에게 지원 요청하는 한심한 놈들이 감히 고구려를 치겠다고. 전하, 그리고 형님. 이참에 놈들이 정신 차리도록 확 쓸어버리지요.”

“허탈할 뿐이네.”

“허탈하다니요?”

“그것도 한 민족이라고 일시적으로나마 도와주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가졌던 마음이 부끄럽다는 말이네.”

“막리지 대감,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전하, 꼴도 보기 싫으니 빨리 보내버리지요.”

“그리하도록 하시지요.”

보장왕이 승인을 표하자 연개소문이 바로 선도해에게 눈짓을 주었다. 선도해가 희미하게 미소를 머금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궁에서 나온 선도해가 음식과 술을 장만하여 다시 춘추가 감금되어 있는 장소를 찾았다.

이미 석방 사실을 알고 있던 춘추 일행이 반가운 표정으로 선도해를 맞이했다.

“전하께서 그냥 보내기 섭섭하니 소홀하지 않게 접대하라는 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저희는 바로 석방 되는 겁니까?”


춘추 곁에 있던 훈신이 고조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물론이지요. 허니 오늘은 전하께서 하사한 음식이나 들며 그간의 노고를 달래시지요.”

선도해의 말이 끝나자 음식이 차려지고 모두 둘러앉았다.

“이 모두 책사의 공입니다.”

“아니오. 이는 공의 직위와 신뢰 때문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경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경주로부터요!”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공이 돌아오지 않자 대규모로 군을 편성하여 고구려를 치려 한다는 보고였소.”

“김유신 장군이 말입니까?”

“그렇소. 신라 최고의 정예병들과 함께요.”

춘추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죽다 살아난 춘추…군대 움직인 유신
거짓 서신 후폭풍…선덕여왕의 환대

“그런데 김유신 장군과 공은 어떤 사이입니까?”

“사사로이는 처남매부지간이고 공적으로는 긴밀한 동반자입니다.”

춘추가 의외로 순진했다.

애초 고구려에 온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건만 그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만 들떠 있는 듯했다.

하여 하지 않아도 되는 유신과의 관계에 대해 세세하게 곁들였다.

“후일 신라는 두 분 손에 움직이겠군요.”

“그 부분은 차마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여러 순배의 잔이 돌자 선도해가 춘추에게 은근히 다가갔다.

“무슨 일 있소?”

“돌아가는 길에 혹여 두사지를 만나면 죽는 날까지 항상 건강하게 살기 바란다고 전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반드시 전해 드리리다.”

“보고 싶은 사람들은 보면서 살아야 할 텐데.”

선도해가 한숨을 쉬며 잔을 들자 춘추가 동조한다는 듯 잔을 들었다.

선도해의 배웅을 받고 헤어진 춘추가 오래지 않아 국경에 도달했다.

잠시 고구려 땅을 돌아보고 붓을 들어 서신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서신을 마무리한 춘추가 서찰을 접어 그곳까지 동행한 사람에게 선도해에게 전해줄 것을 요청했다.

‘나는 백제에 대한 유감을 풀고자 하여 군대를 청하러 왔다가 대왕께서 허락하지 않고 도리어 땅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니 이는 신하인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얼마 전 대왕께 서신을 올린 일은 죽음에서 벗어나려는 뜻이었을 뿐입니다. 하오니 이 뜻을 왕과 막리지에게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서신을 읽은 선도해가 씁쓰레한 미소를 머금고는 찢어버렸다.

김유신이 선덕여왕에게 출정보고를 마치고 막 경주를 벗어나려던 시점에 춘추 일행이 오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병력 이동을 즉각 중단하고 잠시 감회에 젖어 길목에서 기다리는 중에 춘추가 다가오고 있었다.

가만히 그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초췌한 표정에서 적지 않은 마음고생이 있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고생 많았네.”

“면목 없습니다, 맨 손으로 돌아와서.”

“이렇게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만족하네.”

잠시 동안 그간의 회포를 푼 춘추가 김유신 뒤로 위풍당당하게 도열해 있는 병사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움직이려 하였군요.”

“막 진군하려던 중에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예서 기다리고 있었네.”

춘추가 세세하게 병사들의 모습을 살폈다.

“왜 그러는가?”

“갑자기 기발한 생각이 들어 그럽니다.”

“말해주겠는가?”

“이참에 처남께서 가려 뽑은 최정예 병사들로 처남의 부대를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신이 춘추의 표정을 살피며 부대를 되뇌었다.

“말만이라도 고맙네.”

“그게 아닙니다, 처남. 어서 궁으로 들어갑시다.”

영문을 알 길 없는 유신이 춘추와 어깨를 나란히 하여 궁으로 들어갔다.

선덕여왕이 춘추를 구하기 위해 고구려로 진격하겠다고 나선 유신과 당사자인 춘추가 함께 들어서자 당황한 듯 잠시 멍하니 말을 잃고 있었다.

“송구하옵니다, 전하.”

“송구할 일이 무엇이오. 여하튼 고생 많았소.”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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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